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疎通(소통)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

작성자탄금뜰 김창년|작성시간22.02.26|조회수51,388 목록 댓글 0

1934생 -2022.02.26 졸(卒)( 89세)

 

"죽는 것은 돌아가는 것… 내가 받은 모든 게 선물이었다"
"죽음 알기 위해 거꾸로… 유언같은 '탄생' 써내려가"
"촛불 꺼지기 전 한번 환하게 타올라"
"나중 된 자 먼저 돼, 죽음 앞에서 당당했던 딸 좇아"

 

 

"죽을 때 뭐라고 해요?

돌아가신다고 하죠.

그 말이 기가 막혀요.

나온 곳으로 돌아간다면 결국 죽음의 장소는

탄생의 그곳이라는 거죠.

생명의 출발점.

다행인 건 어떻게 태어나는가는

죽음과 달리 관찰이 가능해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지금의 한국 사회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미래를 낙관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밀물의 시대에서

썰물의 시대로 가고 있어요.

이 시대가 좋든 싫든,

한국인은 지금 대단히 자유롭고 풍요하게 살고 있지요.

만조라고 할까요.

그런데 역사는 썰물과 밀물을 반복해요.

세계는 지금 전부 썰물 때지만,

썰물이라고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갯벌이 생기니까요."

썰물 후에 갯벌이 생긴다는 말이 파도처럼 가슴을 적셨다.

 

 

어떤 환자라도 그런 순간이 와요.

촛불이 꺼질 때 한번 환하게 타오르듯이.

신은 전능하지만,

병을 완치해주거나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게 해주진 않아요.

다만 하나님도 인간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면

가엾게 여겨 잠시 그 자비로운 손으로 만져줄 때가 있어요.

배 아플 때 어머니 손은 약손이라고

만져주면 반짝 낫는 것 같잖아.

그리고 이따금 차가운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지요.

그때 나는 신께 기도해요."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침대에서 깨어 눈 맞추던 식구,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요.

한국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죽는다고 하지 않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마지막에 ‘END’ 마크 대신

꽃봉오리를 하나 꽂아놓을 거라고 했다.

피어있는 꽃은 시들지만,

꽃봉오리라면 영화의 시작처럼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을테니.

 

"끝이란 없어요.

이어서 또 다른 영화를 트는

극장이 있을 뿐이지요

위 노래 중지, 아래 유튜브 클릭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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