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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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무십일홍 작성시간14.05.14 태산 옆의 황산이 황산전투이지요, 산동 북부에 황산이 잇습니다.당의 수군을 막기 위해서 계백을 북족으로 보낸 것입니다. 사수를 통해 당의 수군이 남하하면 밑에서 신라의 합동작전으로 전멸당하는 이유입니다. 먼저 백제의 올바른 경계 비정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훗날 사람들이 황산벌전투라 하지만 대군을 5천 결사대로 들판에서 맞는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옛부터 벌판에서의 싸움은 패배이므로 병가의 기본이엇습니다. 태산 옆에 황산이 있고 그곳에 책성이 있으므로 당의 수군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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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무십일홍 작성시간14.05.14 신라의 첫 수도는 감숙성에서 시작 되었으며(금성)나중에 금관가야(김수로)를 복속하게 됩니다. 금관가야는 한반도가 아닌 사천성 성도로 밣혀졋으며 허왕후는 곤명에서 성도로 오게 되는 것이며, 곤명에 있는 호수를 곤명호라 하는데 여기서 김해란 어원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김해 김씨의 족보는 사천성 성도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라가 감숙성에서 시작되었기에 지도가 달라져야 한 다는 것이지요 원래 신라의 조상인 김일제는 흉노*(스키다이)족 투국에서 시작 되었는데 신강지역으로 보고 잇습니다. 그러므로 차츰 남하하여 감숙에서 신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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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무십일홍 작성시간14.05.14 중국 고지명대조표에' 보면 금성이 감숙성에 있다고 되어 잇습니다. 초기 수도는 금성으로 일명 서라벌이라 하엿습니다.
서라 라고 하는것은 서쪽에서펼쳐 일어난것'으로 이해를 하여야 합니다.그러므로 서쪽에서 펼쳐 일어난 국가란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300수십군데를 모른다 하고 공란을 비워 두었고 지명이나 기술에 많은 혼돈이 있엇습니다.
올바른 사가가 아니 것이지요, 그래서 금관(錦官)가야를 금관(金官)가야로 기술하여 한반도에서 고작 김해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김해엔 성이 한곳도 없습니다.김수로부터 9대까지 이어진 왕궁터와 성이 없다는 것은 허구이며 금관가야는 사천성 성도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