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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기생 운심(8) 운심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윤순의 문집이 완비되지 않은 까닭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집을 편찬하는 자들은 운심과 같은 기생에 관한 일이 다루어진 시문을 실으려 하지 않으니 윤순이 설사 글로 남겼다 해도 문집에 실리기는 어려웠으리라. 언젠가 운심이 영변에 있는 약산동대(藥山東臺)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진달래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약산동대는 깎아지른 듯한 만길 벼랑을 내려다볼 수 있는 명승지다. 운심은 마침 술에 취해 있었다. “약산은 천하의 명승지요 운심은 천하의 명기(名妓)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한번 죽는 법,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더없는 만족이다.”
그리고는 벼랑으로 몸을 던졌다. 때마침 곁에 있던 사람이 운심을 붙잡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대로 떨어져 죽었을 것이다. 운심의 성격이 엿보이는 일화다.
그녀는 비록 늙었어도 아름다움에 도취해 생명도 버릴 수 있는 열정과 광기(狂氣)를 지녔던 것이다.
성대중은 ‘청성잡기’에서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운심의 풍정과 성깔이 저와 같기에 한 시대에 명성을 독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고 평했다.
즉 그가 검무로 천하의 명성을 거머쥐게 된 것은 저와 같은 풍정과 성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았다. 가장 흥미롭게 여기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약산이 천하의 명승지이니 나 같은 천하 명기가 여기에서 죽어야 한다’는 발언은 오만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검무라는 자기예술의 성취에 대한 당찬 오기가 아닐까.
다른 이들이 무어라 하든지 자기가 최고라는 자부심을 세속의 질곡과 자기통제 속에 가두어두고 있다가, 술기운과 명승지의 장관 앞에서 우연히 발설한 것이리라. 천재적 예술가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운심이 약산동대에서 술에 취해 벼랑 아래로 투신하려 한 행동이 비슷한 시기의 광인 화가 최북(崔北)의 행동과 어쩌면 그렇게도 유사한가 말이다.
금강산 구룡연에 오른 최북은 술에 취해 “천하의 명인 최북이는 마땅히 천하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며 투신하려 했다. 어느 한 사람의 행동을 기록자가 착각하여 똑같이 쓴 것일까.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요 그들의 풍정과 성깔이 비슷했다는 점이다. 당시 예술가들에게는 빼어난 산천에 예술혼을 묻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유명한 화가이며 벼루 제작자였던 석치(石痴) 정철조(鄭喆祚) 역시 금강산을 유람하고 나서 강릉에 이르렀을 때
임하상(任夏常)이 그에게 “금강산이 어떻습디까?”라고 묻자 “그곳에서 죽지 못한 것이 여한일 뿐이오”라고 답 했다는 말을 보면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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