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任人唯賢(임인유현)
任(맡길 임) 人(사람 인) 唯(오직 유) 賢(어질 현)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하(外儲說左下)편의 이야기. 춘추시기, 제(齊)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여 양공(襄公)이 피살되었다. 이듬해 양공의 두 동생인 공자(公子) 규(糾)와 공자 소백(小白)은 서둘러 제나라로 돌아와 왕위를 다퉜다. 제나라 환공(桓公)으로 즉위한 소백은 공자 규를 죽이고, 그의 측근인 관중을 잡아 보내도록 하였다.
압송되던 관중은 제나라의 변방에 이르자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변방을 지키는 관원에게 음식을 좀 부탁했다. 이 관원은 제나라 환공이 관중을 중용할 것으로 생각하여, 매우 정중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그는 관중에게 만약 제나라에 도착하여 중용되면, 저에게 어떤 보답을 하시겠오? 라고 물었다. 관중의 대답은 이러했다. 만약 당신의 말대로 된다면, 나는 현명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을 임용할 것이요. 그렇다면 내가 당신에게 어떠한 보답을 할 것 같소? 그 관원은 말문이 막혔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은 잘못 고른 인물들 때문이다. 이제 새 대통령과 능력있는 인물들이 환상적인 드림팀(?)을 이루었으면 한다. 任人唯賢 이란 오직 재능과 인품만을 보고 사람을 임용함 을 뜻한다.
202
挺身而出(정신이출)
挺(빼어날 정) 身(몸 신) 而(말 이을 이) 出(날 출)
당(唐)나라의 개국황제인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에게는 건성(建成), 세민(世民), 원길(元吉) 등 세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인 건성은 태자(太子)에 옹립되고 세민은 진왕(秦王)에, 원길은 제왕(齊王)에 봉하여졌다. 그러나 세민은 부친을 도와 당나라 건국에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그의 위엄과 명망은 세 아들들 가운데에서 가장 높았다.
태자 건성은 제위계승을 세민에게 빼앗기게 될까 두려워 원길과 연합하여 그을 죽이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음모를 알아차린 세민은 먼저 공격에 나서 건성과 원길을 죽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건성과 이원길의 부하들이 이세민을 공격하여, 현무문을 지키고 있던 경군홍(敬君弘)의 병력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경군홍은 놀라운 용맹성을 발휘하여, 빗발같은 화살 속을 뚫고 반격에 나서 결국 국면을 진정시켰다. 훗날, 당태종으로 즉위한 이세민은 경군홍의 임전무퇴 정신을 치하하였다.
지금의 상황을 걱정하면서도, 일부에서는 생필품 사재기에 열심이다. 하지만 난국을 돌파하는 길은 국민적 협조와 공직자들의 책임 완수뿐이다. 挺身而出 이란 위급할 때 과감히 나서 모든 책임을 다함 을 뜻한다.
203
大器晩成(대기만성)
大(큰 대) 器(그릇 기) 晩(늦을 만) 成(이룰 성)
삼국지 위서(魏書) 최염(崔琰)전의 이야기. 동한(東漢) 말년, 원소(袁紹)의 측근에 최염이라는 식객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술을 좋아하여, 23세에야 논어 등을 공부하였다. 그는 처음 원소의 부하로 일했으나, 후에는 조조(曹操)의 휘하에서 상서(尙書)를 지내며 태자 옹립문제를 해결하여 공정한 관리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최염에게는 최림(崔林)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그는 젊었을 적에 아무 것도 이루어 놓은 것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명망도 없었으므로,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그를 경시하였다. 그러나 최염은 항상 그를 존중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는 큰 그릇은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此所謂大器晩成者也). 그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과연 최림은 훗날 위(魏) 문제(文帝)의 휘하에서 사공(司空)을 지냈다.
50년만의 정권 교체. 마침내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런 경우 大器晩成 만큼 잘 어울리는 말은 없으리라. 大器晩成 이란 큰 인물은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뒤늦게 이루어짐 을 비유한 말이다.
204
城下之盟(성하지맹)
城(성 성) 下(아래 하) 之(-의 지) 盟(맹세할 맹)
춘추좌전(春秋左傳) 환공(桓公) 12년조의 이야기. 춘추시기, 초(楚)나라 군대가 교(絞)나라를 침공하여 교나라 도읍의 남대문에 이르렀다. 교나라 군사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초나라 군대는 몇 차례 공격을 시도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이에 초나라의 장군 굴하(屈瑕)는 무왕(武王)에게 한 가지 계책을 제시하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이튿날, 초나라는 수십명의 병사들을 나뭇꾼으로 변장시켜 성곽 주변의 산에서 나무를 하는 척하게 하였다. 교나라의 군인들은 그들을 즉시 잡아와, 득의만만해 하였다. 이튿날, 초나라의 같은 작전에 속아 넘어간 교나라 군사들이 그들을 잡으러 성문을 열고 나오자, 미리 매복해있던 초나라 군사들은 교나라 도성을 포위하며, 총공격을 해들어왔다. 교나라는 순식간에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자, 도성 아래에서 굴욕적인 맹약을 맺고 초나라의 속국이 되고 말았다.
IMF와의 협상으로 사실상 경제 주권을 상실하였다. 많은 국민들이 치욕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렇듯 城下之盟 이란 압력에 의한 굴욕적인 조약이나 협약 을 비유한 말이다.
205
一飯千金(일반천금)
一(한 일) 飯(밥 반) 千(일천 천) 金(쇠 금)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新)이 무명의 서민이었을 때, 집안이 가난한데다가 별 재간도 없어서 항상 남에게 얹혀 먹고 사는 신세였다. 이렇다보니 그를 싫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일찍이 남창(南昌)의 한 마을의 촌장 집에서 자주 밥을 얻어 먹었는데, 여러 달씩이나 신세를 진적도 있었다. 한신을 귀찮게 여기던 촌장의 아내는 아침 밥을 지어 몰래 먹어 치우곤 하였다.
어느 날, 한신은 회수(淮水)에서 낚시질을 하다가, 마침 물가에서 무명을 표백하고 있던 노파들을 보았다. 그들 중 한 노파가 굶주린 한신의 모습을 보고 수십 일동안 그에게 밥을 먹여 주었다. 이에 한신은 크게 감동하여 언젠가 반드시 후하게 보답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한신은 초왕(楚王)에 봉하여진 뒤, 고향 회음에 와서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노파를 찾아 천금을 주고, 촌장에게는 일백전의 돈을 주었다.
작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만이 큰 보답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다. 一飯千金 이란 한 끼니 밥에 천금이라는 뜻으로 은혜에 후하게 보답함 을 비유한 말이다.
206
一鳴驚人(일명경인)
一(한 일) 鳴(울 명) 驚(놀랄 경) 人(사람 인)
사기 골계(滑稽)열전의 이야기. 전국시대, 제(齊)나라 위왕(威王)이 국정에 무관심하게 되자, 나라는 혼란하게 되고 제후들의 침략 또한 빈번하여졌다. 하지만 이를 간언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순우곤(淳于 )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익살이 좋았다. 그는 위왕이 수수께끼를 좋아한다는 점을 알고 그에게 말했다. 우리 나라에 큰 새가 있는데, 그 새는 왕궁에 살면서 3년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이 새가 무슨 새인지를 알고 계시는지요?
위왕은 그 새는 날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한 번 날았다하면 하늘 끝까지 날아 오를 것이다. 또 울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한번 울었다 하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위왕은 깨달은 바가 있어, 생활 태도를 바꾸고 국정을 챙기고 나섰다. 그는 외치(外治)에도 적극적으로 임하여 침략당한 영토를 되찾았다. 이후, 위왕은 36년 동안 제나라를 다스렸다고 한다.
一鳴驚人 이란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한번 시작하면 큰 일을 하여 사람을 놀램 을 비유한 말이다.
207
一髮千鈞(일발천균)
一(한 일) 髮(터럭 발) 千(일천 천) 鈞(서른 근 균)
한서(漢書) 매승(枚乘)전의 이야기. 서한(西漢) 시기, 매승이라는 유명한 문인이 있었는데, 그는 사부(辭賦)에 능했다. 그는 오왕(吳王) 유비(劉 )의 휘하에서 낭중(朗中)을 지내며, 오왕이 모반하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하나의 비유를 들어 오왕에게 모반을 포기하도록 권고하였다.
한 가닥의 머리카락에 매달린 삼만근 무게의 물건이 위는 그 끝을 모를 높은 곳에 매달려 있고, 아랫부분은 바닥이 없는 깊은 못에 드리워져 있다고 합시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상황이 극히 위태롭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만약 윗부분이 끊긴다면 다시 이을 수 없으며, 아랫부분이 깊은 못으로 떨어진다면 다시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왕께서 모반하시려는 것은 바로 한 가닥의 머리카락에 매다린 것처럼 위험한 일입니다.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자, 매승은 오나라를 떠나 양(梁)나라로 가서 양효왕의 문객이 되었다. 그후 오왕은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치솟는 환율과 곤두박질 치는 주가. 무너지는 기업과 금융기관. 이는 한 올의 머리카락에 매달린 우리 경제의 실상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들이다. 一髮千鈞 이란 극도의 위험에 처해 있음 을 비유한 말이다.
208
開源節流(개원절류)
開(열 개) 源(근원 원) 節(절제할 절) 流(흐를 류)
춘추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학자 순황(荀 )은 순자(荀子)를 저술하였다. 그는 부국(富國)편에서 국가의 강약과 빈부에 대해 설명하였다. 국가가 부강해지고자 한다면, 조정은 백성들을 사랑해야 하며, 그들로 하여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백성들은 적극적으로 생산에 임하며, 그 축적된 것이 증가함에 따라 국고(國庫)가 충실해지고, 국가는 곧 부강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조정에서 생산은 돌보지 않고 무거운 세금만 부과하며 물자를 아끼지 않는다면, 백성들과 나라가 빈곤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이에 대한 군주의 의무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온 백성이 천시(天時)의 화기(和氣)를 얻고 사업에 차서를 얻으니 이는 재화의 본원이요, 차등을 두어 거둬들인 국고의 저장물은 재화의 지류(支流)이다. 그러므로 명철한 군주는 반드시 신중하게 화기를 기르고 그 지류를 절제하며, 재화의 원천을 더욱 개발하여야 한다(節其流, 開其源).
가계(家計)도 나라도 모두 힘들다. 가라앉은 분위기다. 더 일하고 덜 쓰는 수밖에 없다. 開源節流 란 재원을 늘리고 지출을 줄임 을 뜻한다.
209
日暮途遠(일모도원)
日(해 일) 暮(저물 모) 途(길 도) 遠(멀 원)
사기 오자서(伍子胥) 열전의 이야기. 전국시기, 오사(伍奢)와 비무기(費無忌)는 모두 초평왕(楚平王)의 태자 건(建)의 스승이었는데, 비무기는 계략에 능하고 음흉한 사람이었다. 그는 태자 건의 혼인문제로 태자가 자기에게 보복할까 두려워, 태자에게 충성하는 오사와 오상 등을 죽였다.
오사의 아들인 오자서는 오(吳)나라로 도망하여 복수를 결심했다. 그는 오왕 합려(闔閭)에게 제의하여 초나라의 도성인 영( )을 공략했다. 이때, 초나라는 평왕의 아들 소왕(昭王)이 왕위에 있었는데, 그는 공격을 피해 도망해 버렸다. 소왕을 놓친 오자서는 대신 초평왕의 무덤에서 그의 시체를 끌어내어 3백번이나 매질을 하였다. 오자서의 친구 신포서는 이를 너무 가혹한 짓이라고 그를 꾸짖었다. 오자서는 그에게 말했다. 해는 저물고 갈길은 아직 멀고, 나는 초조한 나머지 도리에 따를 수만은 없었서 그만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였다네.
日暮途遠 이란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할 일은 아직 많음 을 비유한 말이다.
몰락하는 경제와 이틀 남은 1997년. 이루기는커녕 잃기만 한 채 이 해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210
有備無患(유비무환)
有(있을 유) 備(갖출 비) 無(없을 무) 患(근심 환)
춘추좌전 양공(襄公) 11년조의 이야기. 기원전 641년, 진(晋)나라 도공(悼公)은 11개 동맹국의 군대와 연합하여 정(鄭)나라를 공격하였다. 정나라는 당시 약소국으로서 맹주(盟主)인 진나라 덕분에 전란을 피할 수 있었다. 정나라는 악사, 전차, 가녀(歌女)와 많은 악기를 감사의 예물을 진나라에 보냈다. 진나라 도공은 이를 받고 대단히 기분이 좋아 예물의 반을 대신 위강(魏絳)에게 주었다.
그러나 위강은 이를 사양하며 말했다. 이렇게 화평하게 된 것은 우리 국가의 복이옵고, 8년간에 제후들을 아홉 차례나 화합시키어 제후들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던 것은 군주의 덕택입니다. 신에게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서경(書經)에 이르길, 편안히 있으며 위태로움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잘 생각하면 대비가 있게 되고, 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 신은 이것을 규범으로 삼으시도록 아룁니다
외환(外換)이 외환(外患)인 때, 1달러에 2천원. 이는 실로 無備無換(?) 의 상황이다. 有備無患 이란 미리 준비해 두면 걱정이 없음 을 뜻한다.
211
捲土重來(권토중래)
捲(말 권) 土(흙 토) 重(거듭 중) 來(올 래)
당대(唐代) 시인 두목(杜牧:803-852)의 제오강정(題烏江亭)이라는 시.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는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포위를 빠져 나와 천신만고 끝에 오강(烏江)까지 퇴각하였다. 오강의 정장(亭長)은 항우를 위해 배를 한 척 준비해 놓고 그에게 강을 건너라고 했다. 그러난 항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그는 살아남은 20여명의 병사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대세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31년의 생애를 자결로 마쳤다.
항우가 죽은 지 1,0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시인 두목은 패배의 수치를 참지 못하고, 훗날을 도모하지 않은 채 자결해 버린 항우를 애석히 여기며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승패란 병가에서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수치를 삼키고 참는 것이 바로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는 재능있고 뛰어난 이들이 많은데, 흙 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올 것은 알지 못 하였구나(捲土重來未可知).
국치(國恥)를 경험했던 이 해가 저물었다. 새로운 다짐으로 새해를 맞아야 할 때이다. 捲土重來 란 실패 후 재기를 다짐함 을 비유한 말이다.
212
近悅遠來(근열원래)
近(가까울 근) 悅(기쁠 열) 遠(멀 원) 來(올 래)
논어 자로(子路)편의 이야기.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공자(孔子)는 열국(列國)을 주유(周遊)하였다. 위(衛), 조(曹), 송(宋), 정(鄭), 채(蔡) 등의 나라를 돌다가 당시 초(楚)나라에 속해 있던 섭읍(葉邑)에 이르렀다. 이 당시 초(楚)나라에는 심제량(沈諸梁)이라는 대부(大夫)가 있었는데, 그의 봉지(封地)가 섭읍이었으므로, 스스로 섭공(葉公)이라 했다.
섭공은 공자를 보고, 그에게 정(政) 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공자는 이 물음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은 언급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政)이란, 가까운 데서는 기뻐하고, 먼데서는 오는 것입니다(近者悅, 遠者來).
이는 정치를 잘 하면 인근 국가의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게되어 기뻐하고, 먼 나라의 사람들도 정치 잘하는 것을 흠모하여 모여든다는 것을 뜻한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 대통령에 새 정부. 그리고 새로운 정치. 모두 기분 좋은 출발이다. 올해에는 좋은 정치 덕분에 국민들이 늘 기뻐하고, 우리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몰려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近悅遠來 란 좋은 정치의 덕(德)이 널리 미침 을 비유한 말이다.
213
未能免俗(미능면속)
未(아닐 미) 能(능할 능) 免(면할 면) 俗(풍속 속)
세설신어 임탄(任誕)편의 이야기. 진(晉)나라 초, 완함(阮咸)과 숙부 완적(阮籍)은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길의 남쪽에 살았으며, 그밖의 완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길의 북쪽에 살았다. 그런데 북쪽의 완씨들은 모두 부유했지만, 남쪽의 완씨들은 매우 가난했다.
당시에는 매년 7월 7일에 겨울옷을 꺼내어 햇볕에 말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마치 잘 사는 티를 내는 시합을 하는 것같았다. 어느 해 7월 7일, 관습대로 북쪽의 완씨들은 옷을 꺼내 말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훌륭한 비단 옷들뿐이었다. 하지만 남쪽의 완함과 완적은 이 일에 대해 이미 신물이 난 상태인지라, 완함은 긴 장대에다 낡은 포대기와 헌 바지를 걸어 놓고 햇볕을 쪼였다. 어떤 이가 이를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여 완함에게 물었다. 완함은 웃으면서 풍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어서 이렇게 하고 있을 뿐이오. 라고 대답했다.
한때 신정(新正)에 밀려 구정(舊正)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미풍양속이란 제도보다 강한 것이어서, 대부분 구정을 설로 쇠고 있다. 未能免俗 은 전해 내려온 습속을 따를 수 밖에 없음 을 뜻한다.
214
竹頭木屑(죽두목설)
竹(대 죽) 頭(머리 두) 木(나무 목) 屑(가루 설)
진서(晉書) 도간전(陶侃傳)의 이야기. 진(晉)나라 초, 파양( 陽)이라는 곳에 도간(陶侃)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그는 높은 벼슬에도 불구하고, 생활은 오히려 검소했다. 도간은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던 까닭에 어려운 환경에서 홀어머니에 의해 자랐다. 때문에 그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절약하였다.
그가 배를 만드는 일을 관리하던 때, 이 과정에서 많은 대나무 뿌리와 나무 부스러기 등이 버려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은 시켜 이것들은 전부 모아 기록해 놓도록 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어느 해, 새해 모임이 있었던 날, 많은 눈이 내린 후 날씨가 풀리자, 길은 온통 진흙탕이 되었다. 도간은 즉시 나무 가루을 꺼내 길위에 뿌렸다. 그는 후에도 많은 폐품들을 모아서 여러 가지 급한 곳에 사용하였다.
쓸 만한 물건들이 자주 버려지고, 아파트 내부 개조를 위해 멀쩡한 시설물을 떼어 버리는 일이 잦다. 싫증이 났거나 구식이 아니면 싸구려이기 때문이란다. 정말 배 부른(?) 소리다. 竹頭木屑 이란 못 쓰게 된 것들을 모아 후에 다시 활용함 을 비유한 말이다.
215
狐疑不決(호의불결)
狐(여우 호) 疑(의심할 의) 不(아닐 불) 決(터질 결)
술정기(述征記)의 이야기. 맹진(盟津)과 하진(河津)은 모두 황하(黃河)에 있는 나루터이다. 맹진은 지금의 중국 하남성 맹현(孟縣)에 있었으며, 하양도(河陽渡)라고도 하였다. 하진은 중국의 산서성 하진현(河津縣)에 있었다. 이 두 곳은 양자강보다는 좁고, 회하(淮河)나 제수(濟水)보다는 넓었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얼면 두꺼운 곳은 몇 장(丈)에 달했으므로, 거마(車馬)들도 얼음 위로 통과할 수 있어 나룻배보다 편리하였다. 하지만 얼음이 막 얼기 시작할 때에, 사람들은 섣불리 건너지 못하고 먼저 여우들을 건너가게 하였다. 여우는 본시 영리한 동물로서 청각이 매우 뛰어났다. 여우는 얼음 위를 걸으면서도 이상한 소리가 나면 곧 얼음이 갈라지는 것을 예감하고 재빨리 강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여우가 강을 다 건너간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안심하고 수레를 출발시켰던 것이다.
의심많은 여우의 성질을 이용한 사람들의 지혜. 이는 사람들이 여우를 의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지나친 의심은 사회의 결집력을 약화시킨다. 이제는 서로 믿는 분위기가 필요한 때이다. 狐疑不決 이란 의심이 많아 결단을 내리지 못함 을 비유한 말이다.
216
面壁功深(면벽공심)
面(낯 면) 壁(벽 벽) 功(공 공) 深(깊을 심)
오등회원(五燈會元) 동토조사(東土祖師)편의 이야기. 남북조시대에 불교가 흥성하자, 많은 인도 승려들이 중국으로 왔다.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 천축국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왕자인 달마(達摩)는 광동지방을 지나 양나라의 수도인 건업(建業)에 도착하였다. 달마는 건업을 떠나 북위(北魏)의 영토인 숭산(嵩山)에 있는 소림사(少林寺)에 머무르게 되었다.
달마는 소림사에서 밤낮으로 벽을 향해 앉은채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面壁而坐, 終日默然,). 그에게 무슨 오묘함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달마가 이렇게 수행하기를 9년. 그리고 그는 죽었다.
소림사의 서쪽에는 높이가 2 장(丈)이나 되는 석벽(石壁)이 있다. 얼핏 보면 보통 돌 같지만, 대여섯 걸음 물러나서 보면, 달마가 정좌(靜坐)하고 있는 모습이나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달마가 9년 동안 면벽하며 도를 닦아 남긴 흔적이라고 한다.
요즘 벽 뚫는(?) 범죄가 부쩍 늘고 있다. IMF시대의 도둑들은 달마신공(?)이라도 연마한 것일까. 정말 기막힌 공력들이다. 面壁功深 이란 오랜 수련을 통하여 깊은 경지에 이름 을 비유한 말이다.
217
蕭規曹隨(소규조수)
蕭(맑은 대쑥 소) 規(법 규) 曹(나라 조) 隨(따를 수)
한나라 양웅(楊雄)의 해조(解嘲)에 실린 이야기. 진(秦)나라 말, 소하(蕭何)는 한고조 유방을 도와 반진(反秦)의 의거를 일으켰다. 그는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한 왕조를 세우는데 공이 컸기 때문에, 흔히들 한신(韓信), 장량(張良) 등과 더불어 한흥삼걸(漢興三杰) 이라 부른다.
기원전 206년, 유방이 진나라의 함양을 공격할 때, 병사들은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납치하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소하는 상부(相府)로 달려가서 지도와 법령 등 중요한 문건들을 수습했다.
훗날, 소하는 재상(宰相)이 되자, 이미 확보한 진나라의 문헌과 자료들을 토대로 전국의 지리나 풍토, 민심 등을 파악하여, 한나라의 법령과 제도를 제정하였다. 당시 유방의 수하에는 조참(曹參)이라는 모사(謀士)가 있었다. 그는 유방의 동향 사람으로서 소하와도 관계가 매우 좋았으므로, 사람들은 두 사람을 소조(蕭曹) 라고 불렀다. 소하의 추천으로 승상된 조참은 모든 정책과 법령을 고치지 않고, 소하가 결정해 놓은 것을 따라(蕭規曹隨) 계속 집행하였다.
蕭規曹隨 란 전인(前人)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를 답습함 을 비유한 말이다.
218
遼東之豕(요동지시)
遼(멀 요) 東(동녘 동) 之(-의 지) 豕(돼지 시)
후한서(後漢書) 주부(朱浮)전의 이야기. 동한(東漢) 말, 주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쟁에 참가하여 약간의 무공을 세워운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으므로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공로를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여 항상 자랑하고 다녔다.
천하가 태평해지자, 주부처럼 평범한 군인들은 별 볼일이 없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요동에 갔다가, 검은 돼지가 머리털이 흰 새끼를 낳은 것을 보고 매우 희귀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머리털이 흰 돼지 새끼를 황제에게 바쳐 환심을 사고자 하동(河東)으로 갔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서 보니 검은 돼지 뿐만 아니라 머리털이 흰 돼지는 말 할 것도 없고, 몸 전체가 흰 돼지도 엄청나게 많았다. 주부는 끌고 갔던 돼지 새끼를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에 크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곧장 돌아온 그는 다시는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첨단 시대. 희귀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흰 돼지 따위에 감탄할 틈이 없는 때이다. 遼東之豕 는 요동의 돼지 라는 뜻으로, 견문이 좁아 무엇이든지 희귀하게 여김 을 비유한 말이다.
219
投筆從戎(투필종융)
投(던질 투) 筆(붓 필) 從(좇을 종) 戎(되 융)
한서 반초(班超)전의 이야기. 동한(東漢) 초, 반고(班固)와 반초(班超) 형제가 있었다. 그들의 집안은 서한 말의 시대적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점차 빈곤해지기 시작했다. 형 반고가 낙양(洛陽)에서 관직을 맡게 되자, 동생 반초도 어머지와 함께 낙양으로 왔다. 낙양에서는 생활이 어려웠으므로, 반초가 관청에서 문서를 베껴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당시 북방의 흉노들은 끊임없이 한나라의 북쪽 변경을 침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반초는 문서를 베끼다가 변방을 안정시켰던 역사적인 인물들을 생각하고, 마음이 괴로웠다. 그는 홧김에 붓을 내던지면서 외쳤다.
대장부는 큰뜻을 품고 나라의 변방을 안정시키는 일을 해야 하거늘 어찌 하루종일 붓만 들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는 곧 군에 입대하여 흉노 정벌에 큰 공을 세웠으며, 41세 때에는 서역으로 가서 흉노의 세력을 제거하였다. 31년 후 그는 백발 노인이 되어 귀국하였다. 반초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지만, 일단 학업을 중단하고 군에 입대하려는 대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흉노 보다 무서운 IMF 때문이다.
投筆從戎 이란 학문을 포기하고 종군(從軍)함 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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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而代之(취이대지)
取(취할 취) 而(말 이을 이) 代(대신할 대) 之(그것 지)
사기 항우본기(項羽本紀)의 이야기. 진(秦)나라 때, 초(楚)나라의 귀족이었던 항량은 조카 항우(項羽)가 학문을 하거나 무술을 연마해 주기 바랬다. 하지만 항우는 숙부인 항양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글 공부는 자기의 이름을 쓸 줄 알면 족하고, 검법은 한 사람만을 상대하는 것이므로 배울 가치가 없습니다. 저는 만인(萬人)을 대적하는 일을 배우겠습니다.
항우가 20세 되던 해, 숙부 항량은 사람을 죽이고 오중(吳中)으로 피신하였다. 당시 진시황(秦始皇)은 6국을 통일하고 자신의 위업을 과시하기 위해 전국을 순시하고 있었다. 항량과 항우가 오중에 있던 그 해, 마침 진시황도 그곳에 오게 되었다. 사람들 속에 끼어 진시황의 행렬을 지켜보던 항우가 항량에게 말했다.
저 사람의 자리를 제가 대신할 것입니다(彼可取而代也).
대통령직 인수위를 두고 잡음이 좀 있었다. 잘못한 구관(舊官) 사또와 꾸짖는 신관(新官) 사또가 서로 다투는 듯했다. 이를 보고 가능하다면 좀 빨리 바뀌었으면 하고 바라는 이들도 있는 것 같았다. 取而代之 란 지위나 물건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물로 대신함 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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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暴十寒(일폭십한)
一(한 일) 暴(사나울 포) 十(열 십) 寒(찰 한)
맹자 고자장구 상편의 이야기. 전국시대, 유세(遊說)가 성행하였는데, 맹자 또한 당시의 세객(說客)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찍이 여러 나라를 유세한 적이 있었으며, 제나라에서는 선왕(宣王)의 객경(客卿)을 지냈다. 맹자는 제나라에 있을 때, 선왕이 국가를 다스림에 별 업적이 없으며, 일처리가 경솔하고 참언을 쉽게 믿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 맹자는 선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왕이 지혜롭지 못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쉽게 자라는 물건이 있다 할지라도, 하루 동안 해를 쬐고 열흘 동안 차게 하면(一日暴之十日寒之) 자라날 물건이 없다. 내가 왕을 만나 보긴 하지만 그 기회는 역시 드물고, 내가 물러나면 그를 차게 하는 자가 오니, 내가 싹을 트게 해 준다고 한들 무엇이 되겠는가?
새 정부에서 초등학교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전면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고, 수정 보완하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본 정책의 일관성이리라. 一暴十寒 이란 어떤 일에 일관성이 없어 자주 끊김 을 비유한 말이며, 하다 말다 하는 것 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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彈冠相慶(탄관상경)
彈(탄알 탄) 冠(갓 관) 相(서로 상) 慶(경사 경)
한서(漢書) 왕길전(王吉傳)의 이야기. 서한(西漢) 시기, 왕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품행이 단정하였다. 선제(宣帝)의 휘하에서 관리를 지내면서도 항상 밤 늦도록 책을 읽었다. 그의 아내는 매일 밤참으로 대추를 내놓았다. 어느 날, 왕길은 아내가 옆집 대추나무에서 그 대추를 몰래 따냈음을 알고, 그녀를 내쫓아버렸다. 이웃사람들은 그에게 아내를 다시 데려오라고 했지만, 그는 옆집 사람이 대추를 수확한 다음에 아내를 데려 오겠다고 했다.
왕길은 황제들에게 몇 차례 글을 올려 그들의 향락 행위와 조정의 일에 대하여 간언하였다. 이 일로 그는 큰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고향 친구인 공우는 이 소식을 듣고, 마침내 자기에게도 벼슬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자기 모자의 먼지를 툭툭 털면서 벼슬에 나아갈 준비를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풍자하여, 왕길이 벼슬에 나가니, 공우가 부임할 채비를 하네. 라고 하였다. 벌써 새 정부의 인선(人選)이 관심거리다. 하지만 될 사람이 되어야지 친구 덕에 모자의 먼지나 터는(?) 그런 사람은 곤란하다. 彈冠相慶 이란 벼슬하게 됨을 서로 축하함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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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珠彈雀(명주탄작)
明(밝을 명) 珠(구슬 주) 彈(탄알 탄) 雀(참새 작)
장자(莊子) 양왕(讓王)편의 이야기. 노(魯)나라 애공(哀公)은 안합(安闔)이 도를 터득한 인물이라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예물을 들고 그를 찾아가 보게 하였다. 애공의 사자가 찾아가 보니, 안합은 허술한 집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소를 돌보고 있었다. 안합은 사자를 돌려 보냈다. 사자가 다시 그의 집을 찾았지만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장자는 이 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안합은 부귀에 뜻이 없었으며, 부귀가 찾아오는 것도 환영하지 않았다. 세속적인 군자들은 생명을 돌보지 않고 부귀를 추구하는데,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어떤 사람이 수후(隨侯)의 보석으로 천길 벼랑 위에 있는 참새를 쏘았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분명 그를 비웃을 것이다(以隨侯之珠彈千 之雀).
요즘 금모으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돌반지, 결혼반지 등등 추억이 담긴 소중한 물건들이 모아 지고 있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이 틈을 노려 묵직한 금붙이를 사 모으고 있다니, 이야 말로 금 몇 돈 때문에 나라를 말아 먹을(?) 짓이다. 明珠彈雀 이란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음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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庭訓(정훈)
庭(뜰 정) 訓(가르칠 훈)
논어 계씨(季氏)편의 이야기. 공자의 제자인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인 백어(伯魚)에게 아버님에게서 다른 말씀이라도 들은 것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백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는 것을 보시더니 저에게 시를 배웠느냐? 라고 물으시기에 아직 안 배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시(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물러 나와 시를 공부했습니다. 다른 날, 역시 제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는데 예(禮)를 배웠느냐 하고 물으시기에 저는 아직 안 배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예를 배우지 않으면 남의 앞에 나설 수가 없느니라 라고 하시기에 저는 예를 공부하였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들은 것은 이 두 가지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공자의 아들은 뜰을 걷다가 아버지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를 일러
정훈(庭訓) 이라 한다. 어려운 형편에 학원비까지 올라 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하니, 모두 庭訓 을 받고 있는 셈. 庭訓 이란 곧 가정에서의 가르침 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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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丘之 (일구지학)
一(한 일) 丘(언덕 구) 之(-의 지) (담비 학)
한서(漢書) 양운(楊 )전의 이야기. 양운은 한(漢)나라 소제(昭帝) 때 승상을 지냈던 양창의 둘째 아들이며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의 외손자이다. 그는 재물을 탐하지 않고 청렴결백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의 결점 또한 용납하지 않았다. 한편 양운과 원한이 있었던 대장락이라는 관리는 양운이 황제를 비방했다는 글을 직접 황제에게 올렸다. 대장락은 상소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양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능한 왕은 충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나라를 다스리는 책략을 쓸 줄도 모르니, 마땅히 죽어야 한다. 과거 진나라도 충신을 죽이고 소인들만을 등용하여 결국 망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모두 한 산속의 담비로구나.
양운과 대장락은 모두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양운은 고향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답답함을 호소했는데, 이 사실이 한나라 선제에게 발각되어, 결국 허리를 절단하는 형벌에 처해졌다.
一丘之 이란 같은 산속에서 살고 있는 담비라는 뜻으로, 나쁜 사람들의 무리 를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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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公移山(우공이산)
愚(어리석을 우) 公(존칭할 공) 移(옮길 이) 山(뫼 산)
열자 탕문(湯問)편의 이야기. 태행산과 왕옥산은 원래 기주의 남쪽, 하양의 북쪽에 있었는데, 산 밑에는 90세가 다 된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가로 막은 두 산 때문에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어느 날, 우공은 가족들을 모아 놓고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의 부인은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반대했으나 다른 가족들이 모두 찬성했기 때문에 곧 공사에 착수했다.
이를 본 지수라는 사람은 이름 그대로 우직하고 미련한 노인네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우공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그 아들이 죽으면 또 손자가 있고, 또 그 손자의 아들이 또 있을게 아닌가. 이와 같이 자자손손 일을 계속한다면 이 산을 평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네.
하늘에서 이 말을 들은 천제(天帝)가 우공의 꾸준한 노력과 성의를 가상히 여겨, 산 하나는 삭동 땅에, 다른 하나는 옹남 땅에 옮겨 놓게 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 때, 묵묵히 노력하는 우공의 정신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같다.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자. 愚公移山 이란 아무리 큰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루어짐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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招搖過市(초요과시)
招(부를 초) 搖(흔들릴 요) 過(지날 과) 市(저자 시)
사기 공자세가(孔子世家)의 이야기. 공자는 광(匡) 지역을 떠나 포(浦)땅에서 잠시 머문 뒤, 위(衛)나라에 와서 거백옥( 伯玉)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위나라 영공에게는 남자(南子)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사람을 보내 공자를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다. 공자는 이를 사양하다가 부득이 그녀를 만나러 갔다. 부인은 휘장 안에서 답례하였는데, 이때 허리에 찬 구슬 장식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공자는 돌아와서 불만스러워하는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말했다.
나는 원래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기왕에 만났으니 이제는 예로 대해 주어야겠다. 만일 내가 잘못이라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위나라에 머문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영공은 부인과 함께 수레를 타고 환관인 옹거(雍渠)를 시위관으로 옆에 태우고 궁문을 나섰다. 공자는 뒷 수레에 타고 따라오게 하면서 거드름을 피우고 뽐내며 시내를 지나갔다(使孔子爲次乘, 招搖過市之). 이에 공자는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 라고 말했다.
招搖過市 란 야단법썩을 피우며 자랑하고 다님 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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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起之秀(후기지수)
後(뒤 후) 起(일어날 기) 之(-의 지) 秀(빼어날 수)
세설신어 상예(賞譽)편의 이야기. 동진(東晋) 때, 왕침(王 )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미치광이 같은 행동은 어려서부터 소문이 나 있었다. 어느 날, 왕침이 삼촌인 범영(范寧)의 집에 갔는데, 마침 장현(張玄)이라는 사람이 와 있었다. 범영은 장현과 왕침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했다. 그러나 장현은 자리에 앉은채 왕침과는 인사도 하지 않았고, 왕침도 말을 하지 않고 나와버렸다. 범영은 왕침이 장현과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을 꾸짖었다. 그러자 왕침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진정으로 저를 알고 싶어한다면, 스스로 저를 찾아올 것입니다.
범영은 왕침의 성격을 칭찬하며 말했다. 너는 매우 희망이 있으니, 참으로 후배 중에서 뛰어난 인물이로다. 왕침은 말했다. 삼촌 같으신 분이 안계셨다면, 이런 조카가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전해 들은 장현은 왕침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찾아왔다. 왕침도 그를 맞아들여 그들은 곧 좋은 친구가 되었다. 훗날 왕침은 형주자사(荊州刺史)를 맡아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後起之秀 란 후배들 중의 우수한 인물 을 가리키는 말이다.
229
曳尾塗中(예미도중)
曳(끌 예) 尾(꼬리 미) 塗(진흙 도) 中(가운데 중)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의 이야기. 어느 날, 장자가 복수( 水)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초왕(楚王)이 보낸 두 대부(大夫)가 찾아왔다. 그들은 장자에게 왕이 관직을 맡기고자 한다는 말을 전달했다. 장자는 낚시대를 쥔 채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제가 듣기에 초나라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죽은지 이미 3천 년이나 되었다더군요. 왕께서는 이 거북을 헝겊에 싸서 상자에 넣고 묘당의 위에 모셔 놓았다지만, 이 거북은 죽어서 뼈를 남긴 채 귀한 대접을 받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까요(寧其生而曳尾於塗中乎)?
사신들이 그거야 차라리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라고 하자, 장자는 곧바로 그렇다면 어서 돌아 가시오. 나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고 싶으니까요. 라고 대답하였다.
새 정부의 인사청문회가 있을 것 같다. 거론되는 인사들이 진정한 선비라면 장자처럼 머드팩(?)의 효과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曳尾塗中 은 벼슬을 하지 않고 한가롭게 지내는 것 을 비유한 말이다.
230
死灰復燃(사회복연)
死(죽을 사) 灰(재 회) 復(돌아올 복) 燃(불사를 연)
사기 한장유(韓長孺)열전의 이야기. 서한(西漢) 시대, 양(梁)나라 효왕(孝王)의 수하에는 한안국(韓安國)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효왕과 한나라 효경제 사이의 불화를 해결하여 관직에 올랐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훗날, 그는 위법행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때 전갑이라는 옥졸이 그를 모욕하자, 한안국은 지금은 불 꺼진 재이지만 다시 타오르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러자 전갑은 다시 탄다면 오줌을 누어 꺼버리겠다. 라고 했다.
얼마 후, 양나라에 내사(內史) 자리가 비게 되었다. 한나라에서는 사신을 보내 한안국을 양나라의 내사로 임명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한안국은 곧 석방되어 다시 높은 관직에 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전갑은 놀라 달아나 버렸다. 한안국은 전갑이 관직에 복귀하지 않으면 일족을 멸하겠다 라고 포고했다. 벌벌 떨며 자수해 온 전갑에게 한안국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줌을 누어 보아라. 너희 같은 무리들은 문책할 가치조차 없느니라.
한보비리관련 정치인들이 모두 풀려났다. 그것도 오줌(?)에 불씨마저 꺼질 뻔했던 순간에. 死灰復燃 이란 세력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득세함 을 비유한 말이다.
231
牝牡驪黃(빈모려황)
牝(암컷 빈) 牡(수컷 모) 驪(가라말 려) 黃(누를 황)
열자 설부(說符)편의 이야기. 진(秦)나라 목공이 백락(伯樂)에게 말을 잘 고를 만한 사람을 추천하라고 하자, 그는 구방고라는 사람을 소개했다. 목공은 그에게 좋은 말을 구해 오도록 하였다. 석달 뒤 구방고는 돌아와서 보고하길, 지금 사구라는 곳에 있습니다. 누런 색의 암놈입니다. 했다.
목공이 다른 사람을 시켜 알아 보니, 검은 색에 수놈이라 하였다. 목공은 곧 백락을 불러서 구방고라는 자는 말의 색깔과 암수조차도 구별하지 못했소. 라고 꾸짖었다. 백락은 크게 한숨을 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방고는 정수만을 파악하고 대체적인 것은 잊어버립니다. 그는 속을 살피고서 외모는 잊어 버리며, 보아야 할 것만을 보고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않습니다. 그는 살펴야만 할 것만을 살피고 살피지 않아도 될 것은 빠뜨린 것입니다. 그가 말을 골랐다는 것은 그 말의 귀중한 특징을 발견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후, 그가 골랐다는 말을 데려와 보니 과연 천하의 명마였다.
牝牡驪黃 이란 이렇듯 사물을 인식하려면 그 실질을 파악하여야 함 을 비유한 말이다.
232
曲突徙薪(곡돌사신)
曲(굽을 곡) 突(굴뚝 돌) 徙(옮길 사) 薪(땔나무 신)
한서(漢書) 곽광( 光)전의 이야기. 한나라 선제(宣帝) 때, 황후의 부친인 곽씨 일가가 모반을 꾀하였다. 선제는 곽씨 일가를 멸하고, 그들을 진압한 사람들에게 큰 상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을 미리 제거하라고 간언하였던 서복(徐福)이라는 사람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한 신하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선제에게 불공평함을 간언하였다.
옛날, 한 나그네가 어느 집을 찾아 왔다가, 그 집의 굴뚝이 똑바로 서있어서 불꽃이 위로 곧장 치솟는 것과 아궁이 옆에는 땔감이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굴뚝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땔감은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이 집에 정말 불이 났습니다만, 이웃 사람들의 도움으로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주인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였는데, 주인에게 충고했던 그 나그네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집주인에게 그 나그네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술자리도 필요없을 것이며, 불도 나지 않았을 것이요. 그 나그네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라고 하였답니다.
曲突徙薪 이란 준비를 철저히 하여 화근을 미연에 방지함 을 뜻한다.
233
解衣推食(해의추식)
解(풀 해) 衣(옷 의) 推(옮을 추) 食(밥 식)
사기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신(韓信)은 본시 초나라 항우(項羽) 밑에서 말단 군관을 지냈으나, 항우가 자신을 크게 써주지 않자 유방(劉邦)에게 귀순하였다. 유방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한신이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했을 때, 항우는 20만 대군을 보내 제나라를 지원하며 한신의 진격을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초나라 군대를 무참하게 격파하였다. 한신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한 항우는 사람을 보내 한신에게 스스로 왕이 되라고 권하였다.
한신은 그의 말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과거 내가 항우의 부하로 있을 때, 그는 나를 하급군관에 임명하여 하찮은 일만을 시키고, 나의 계책을 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이제 한나라 왕은 나를 대장군에 임명하고 수만 대군을 통솔하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자기의 옷을 벗어 입게 해주고, 자기의 먹을 것까지도 먹게 해주었소. 내가 어떻게 그런 분을 배신하고 스스로 왕이 될 수 있겠소?
解衣推食 이란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사심없이 선심을 베품 을 비유한 말이다.
234
鐵面皮(철면피)
鐵(쇠 철) 面(낯 면) 皮(가죽 피)
송(宋)나라 손광헌(孫光憲)이 쓴 북몽쇄언(北夢 言)에 나오는 이야기.
왕광원(王光遠)이란 진사(進士)가 있었다. 그는 학식과 재능이 뛰어나 진사시험에도 합격했으나 출세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다. 그는 권세있는 사람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아부를 계속했다.
하루는 어떤 고관이 술에 취해 매를 들고 그에게 때려 주고 싶은데 한 대 맞아 보겠나? 하고 말했다. 아부꺼리만 찾고 있던 왕광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인의 매라면 맞고 말고요. 라고 하였다.
사정없이 얻어 맞은 왕광원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친구가 자네는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아무렇지 않나? 하고 물었다. 왕광원은 높은 사람들에게 잘 보여서 손해볼 게 없잖아? 하고 대답했다. 이런 왕광원을 가리켜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왕광원의 낯가죽은 열 겹의 철판만큼 두껍다. 라고.
독도문제로 한참을 떠들어 대더니, 이번에는 일방적인 어업 협정 파기. 낯가죽이 두꺼워도 너무 두껍다. 뻔뻔해도 너무 뻔뻔하다. 무식해도 너무 무식하다. 鐵面皮 란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 을 가리킨다.
235
捉襟見 (착금견주)
捉(잡을 착) 襟(옷깃 금) 見(볼 견) (팔꿈치 주)
장자 양왕(讓王)편의 이야기. 증자(曾子)가 위(衛)나라에 살고 있을 때, 그의 솜옷은 다 낡아서 껍데기가 없었으며,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 종기가 곪아 터졌으며, 손발은 트고 갈라져 있었다. 그의 집은 사흘 동안이나 불을 때지 못했으며, 십 년이 넘도록 옷 한 벌을 변변히 지어 입지 못했다.
갓을 쓰려고 하면 갓끈이 끊어지고, 옷깃을 여미려 하면 팔꿈치가 나오고(捉襟而 見), 신을 신으려 하면 뒤꿈치가 터져 버리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그가 신발을 끌면서 시경을 읊으면, 그 소리는 사방에 가득차며 마치 금석(金石)의 악기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증자는 높은 벼슬도 하지 못했으며, 귀족들과 벗하지도 못했다.
형편이 예전과 같지 않다보니, 70년대식 생활 모습이 차츰 나타나고 있다. 연탄이 인기를 끌고, 장작을 때는 아궁이도 다시 등장했다. 유행이 지난 옷을 입어도 쳐다 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이제 조그만 더 있으면 팔꿈치 뚫린 저고리와 구멍난 양말이 새로운 유행(?)을 이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捉襟見 란 옷깃을 여미면 팔꿈치가 나와 버린다는 뜻으로, 재정적으로 형편이 어려움 을 비유한 말이다.
236
牝鷄司晨(빈계사신)
牝(암컷 빈) 鷄(닭 계) 司(맡을 사) 晨(새벽 신)
상서(尙書) 목서(牧誓)의 이야기. 은(殷)나라 말기 주왕(紂王)의 폭정이 심해지자, 주(周)나라 서백(西伯)의 아들 발(發)은 주왕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발은 목(牧) 땅에 이르러 군사들을 격려하며 훈시를 시작하였다.
나를 따르는 제후와 용사들이여. 그대들의 창을 들고, 그대들의 방패를 나란히 하며, 그대들의 긴 창을 세우시오. 내 훈시를 하겠소.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소.
암탁은 아침을 알리지 않는 것이니, 암탉이 아침을 알리면 집안이 망한다 고 하였소. 지금 은나라의 주왕은 오직 여자의 말만 듣고, 마땅히 제사를 지내야할 분들을 버리고 보답하지 않고 있으며, 살아 있는 임금의 부모형제들도 버렸소. 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죄를 짓고 도망온 자들을 공경하며 믿고 그들에게 벼슬자리를 주고 있소. 그는 백성들에게 포학한 짓을 일삼으며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소. 지금 나는 오직 하늘의 벌을 주려고 하는 것이오. 용사들이여, 힘을 내시오.
牝鷄司晨 이란 여자가 기승을 부림 비유한 말이다. 얼마 전 한 여인 때문에 곤경에 처했던 미국의 대통령.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순리에 어긋나면 뒷탈(?)이 생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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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石爲開(금석위개)
金(쇠 금) 石(돌 석) 爲(할 위) 開(열 개)
신서(新序) 잡사(雜事) 4편의 이야기. 주(周)나라 때, 초(楚) 지방에 웅거자(熊渠子)라는 유명한 활의 명수가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는 홀로 산속에 걷다가, 앞에 호랑이가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풀무더기를 발견하고, 즉각 활을 잡아당겼다. 그는 호랑이가 맞아 죽었으리라고 확신하였다.
한참을 기다려 보았지만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호랑이라면 죽기 전에 분명히 몸부림을 쳤을텐데, 이것은 전혀 움직임이 없는게 아닌가. 웅거자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의심이 들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거대한 바위였다. 이러한 일은 웅자거의 강한 힘과 집중된 정신에서 나온 강한 신념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서경잡기(西京雜記)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수많은 국민들이 금(金) 모으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금 화살로 달러의 바위를 뚫는 작전(?)이다. 국민들의 의지가 이렇듯 강한 이상, 머지않아 종이로 만든 달러쯤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金石爲開 란 의지가 강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음 을 비유한 말이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는 사석위호(射石爲虎) 중석몰시(中石沒矢)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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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部論語(반부논어)
半(반 반) 部(분류 부) 論(말할 론) 語(말씀 어)
송(宋)나라 나대경(羅大經)의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린 이야기. 북송(北宋) 초, 산동(山東)에 조보(趙普)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찍이 송 태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여 송나라를 건국하게 하였다. 태종(太宗)이 제위를 계승하자, 그는 승상에 임용되어 국가를 매우 잘 다스렸다.
그러나 그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그가 겨우 논어 밖에 읽지 않아 학식이 없는데다, 별다른 재능도 없어서 중책을 맡기 어렵다고 모략하였다. 송 태종이 이를 알고 조보에게 묻자, 조보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대답하였다.
저의 평생 지식은 분명히 논어를 넘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논어의 절반 지식으로 태조께서 천하를 평정하시는 일을 도왔으며, 이제는 그 나머지 절반의 지식으로 폐하께서 천하를 다스리도록 돕고 있습니다.
半部論語 란 반 권의 논어라는 뜻으로 고전의 학습이 매우 중요함 을 비유한 말이다. 요즘 가벼운 읽을거리만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가뜩이나 복잡한 때 골치 아픈 책을 읽지 않겠다는 독서 전략(?)이다. 하지만 약으로 말하면, 옛 성현들의 지혜가 담긴 고전은 인삼녹용이 든 보약중의 보약과 같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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量體裁衣(양체재의)
量(헤아릴 량) 體(몸 체) 裁(마를 재) 衣(옷 의)
남제서(南齊書) 장융전(張融傳)의 이야기. 남북조 시대, 남제(南齊)에 글재주가 좋은 장융이라는 고관(高官)이 있었다. 그는 비록 요직에 있었지만 평소 생활은 검소하였으며, 항상 오래되고 낡은 의복을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나라 태조는 사람을 시켜 자신이 입던 옷을 장융에게 보냈다. 당시 황제가 자신이 입던 옷을 하사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할 상이었다. 제나라 태조는 옷을 보내면서 친서(親書)도 함께 보냈는데, 태조는 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인은 경의 옷차림을 보고 경의 생활이 매우 검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소. 그런데 경과 같은 고관이 낡고 헤어진 옷을 입는 것은 조정의 체면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으며, 백성들로부터 과인이 경을 천하게 대우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소. 지금 옷을 함께 보내니, 좀 낡긴 했지만 새옷을 입는 것보다는 더 잘 맞을 것이오. 왜냐하면 이 옷들은 과인이 특별히 사람을 시켜 경의 몸에 맞게 고치도
록 하였기 때문이오.
量體裁衣 란 구체적인 상황에 근거하여 문제나 일을 처리함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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汗流浹背(한류협배)
汗(땀 한) 流(흐를 류) 浹(적실 협) 背(등 배)
사기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의 이야기. 서한(西漢)시기, 한문제(漢文帝)는 태위 주발(周勃)을 우승상에 임명하고, 진평은 좌승상에 임명하였다. 문제는 국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자, 어느 날 조회에서 우승상 주발에게 물었다. 일 년 동안 전국에서 옥사를 판결하는 건수가 얼마인가? 주발은 사죄하며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문제는 다시 일 년 동안 전국의 재정상의 수입과 지출이 얼마인가를 물었다. 주발은 또 모른다고 사죄하며 땀으로 등을 적시면서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였다(汗出霑背, 愧不能對).
문제가 다시 진평에게 묻자, 진평은 조리있게 대답을 잘했다. 문제는 진평의 답변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였다. 우승상 주발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신의 능력이 진평에 못 미침을 알게 되었다. 얼마 후, 주발은 병을 핑계로 재상의 자리를 물러나고 말았다.
외환 위기의 책임 문제가 강도높게 제기되고 있다. 아마도 몇몇 사람들은 지금쯤 식은 땀을 줄줄 흘리고 있을 것이다. 汗流浹背 란 극도로 무서워하거나 긴장된 상황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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欲蓋彌彰(욕개미창)
欲(하고자 할 욕) 蓋(덮을 개) 彌(널리 미) 彰(밝힐 창)
춘추좌전 소공(昭公) 31년조의 이야기. 춘추시기, 노(魯)나라 소공 31년 겨울, 주( )나라 대부 흑굉(黑肱)이 주나라를 배반하고 노나라에 투항하자, 그가 다스렸던 남(濫)땅은 노나라에 편입되었다. 흑굉은 본시 신분이 높은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굳이 그의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공자는 흑굉으로 인하여 국토의 변동이라는 큰 사건이 발생하였기 때문 춘추에 이 사건을 분명히 기록하고,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이름이 나타나 있으면서도 나타나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한 일이 있다. 토지를 지니고 군주를 배반한 일은, 그의 지위가 비록 낮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땅 이름을 써서 밝히고 그 사람을 말했는데, 그것은 결국 불의(不義)가 되고, 그 불의는 없어지지 않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몸이 움직이게 되면 예의를 생각하고, 무슨 일을 행하면 의리를 생각하며, 이익을 위해서 비뚤어지지 않고, 의리를 위해서는 괴로워하지 않는다. 혹은 이름나기를 원하나 이름나지 못하게 되고, 혹은 이름을 감추려 하나 이름이 나타나게되는 것은 불의를 징벌하려는 것이다(或欲蓋而名章, 懲不義也).
欲蓋彌彰 은 진상을 감추려 하나 모두 드러나게 됨 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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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爾反爾(출이반이)
出(날 출) 爾(너 이) 反(되돌릴 반) 爾(너 이)
맹자 양혜왕(梁惠王) 하편에 나오는 이야기. 전국시대 추나라는 노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였다. 추나라 목공은 자신의 잘못된 정치를 반성하지 않고, 병사들과 백성들이 결사적으로 싸우지 않아 패하였다면서 그들을 탓하였다. 가르침을 청하는 목공에게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흉년과 기근이 든 해에 추나라의 백성들 중에는 노약자들이 도랑에 빠져 죽고, 젊은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는데, 그 수효가 천명에 가깝습니다. 한편 관리들은 왕의 창고에는 곡식과 물자가 가득 차 있었는데도 이 사실을 왕께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윗사람이 교만하여 아랫사람들을 잔인하게 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증자는 경계할지라.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돌아오느니라(出乎爾者, 反乎爾者也) 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당한 것을 다시 갚았던 것이니, 왕께서는 그들을 탓하지 마십시오. 이렇듯 정치의 품질에 따라 국민들의 충성의 질도 달라진다. 좋은 정치에는 칭송과 박수 갈채가 따르지만, 나쁜 정치에는 비난과 야유라는 보답이 있을 뿐이다. 出爾反爾 는 언행의 앞뒤가 서로 모순되고 신의(信義)가 없음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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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學阿世(곡학아세)
曲(굽힐 곡) 學(배울 학) 阿(아첨할 아) 世(세상 세)
사기 유림열전(儒林列傳)의 이야기다. 한나라 경제(景帝) 때, 시경(詩經)에 정통했던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강직한 성품과 학문으로 왕자의 스승을 지냈으나 병 때문에 물러났다. 얼마 후, 무제(武帝)가 즉위하자, 원고생은 9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게 되었는데, 아첨을 일삼는 관리들은 그가 너무 늙었다며 헐뜯었다.
원고생이 조정의 부름을 받았을 때, 당시 60세이던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사람도 함께 부름을 받았다. 공손홍은 늙은 원고생을 꺼리며 마땅치 않은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에 원고생은 공손홍의 태도를 보고 말했다.
바른 학문에 힘써 직언(直言)하도록 하시오. 배운 것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일부 대학, 그것도 국립 대학의 교수 채용을 둘러싼 비리(非理) 소식이 보도되었다. 자존심을 포기한 선비들의 왜곡된 학문의 결과이며,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별로 신기하지 않은 비밀(?)이기도 하다. 曲學阿世 란 이렇듯 자신의 학문을 굽히면서 권세나 세속에 아첨하는 것 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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兼聽則明(겸청즉명)
兼(겸할 겸) 聽(들을 청) 則(곧 즉) 明(밝을 명)
자치통감(資治通鑒) 당기(唐紀) 태종(太宗) 정관(貞觀) 2년조의 이야기. 당나라 태종 때 위징(魏徵)이라는 유명한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역사에 정통하였기 때문에 항상 당태종에게 여러 가지 계책을 건의하였다. 그는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다. 서기 628년, 즉위한지 얼마되지 않은 당태종이 그에게 물었다.
나라의 군주로서 어떻게 해야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는가? 또한 일을 잘못 처리하는 경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위징은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면 자연스럽게 정확한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쪽 말만 듣고 그것을 믿는다면 일을 잘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위징은 역사적인 교훈을 예로 들면서, 군주의 편파적인 판단이 얼마나 큰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는지 설명하였다. 위징의 말은 차기 대통령의 비서진과 각료 인선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兼聽則明 이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면 시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음 을 뜻한다.
245
負重致遠(부중치원)
負(질 부) 重(무거울 중) 致(보낼 치) 遠(멀 원)
삼국지 촉서(蜀書) 방통(龐統)전의 이야기. 삼국시기, 동오(東吳)의 대도독(大都督)이었던 주유(周瑜)가 병으로 죽자, 그의 친구인 방통은 몹시 슬퍼하며 달려와 조문을 하였다. 박학다식하고 명성이 높은 방통이 동오지방에 오자, 동오의 명사(名士)인 육적, 고소, 전종 등은 그와 친분을 맺었다. 문상을 마치고 방통을 환송하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방통은, 육적에 대해서는 잘 달리는 말과 같은 인재라고 하고, 고소는 힘든 일을 이겨내며 일하는 소와 같다라고 하고, 전종은 지혜는 좀 떨어지지만 그 역시 당대의 인재라고 평하였다.
이에 어떤 사람이 방통에게 그렇다면 육적의 재능이 고소를 능가한다는 뜻입니까? 하고 묻자, 방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말은 민첩하여 빠르게 달릴 수 있지만, 한 사람 밖에 태울 수 없소. 하지만 소는 하루에 삼백리를 갈 수 있거니와, 소가 짊어진 짐이 어찌 한 사람의 몸 무게만 되겠소?
負重致遠 이란 무거운 물건을 지고 먼 곳까지 간다는 뜻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음 을 비유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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屢見不鮮(누견불선)
屢(여러 누) 見(보일 견) 不(아닐 불) 鮮(깨끗할 선)
사기 역생육가( 生陸賈)열전의 이야기.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한나라의 유방(劉邦)을 수행하며 세객(說客)으로 있던 육가(陸賈)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방이 죽은 후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육가는 월(越)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받은 두 개의 보물자루를 천 금을 받고 팔아, 자식들에게 2백 금씩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보검(寶劍)을 차고,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탄 채 하인 10명을 거느리고 다녔다. 어느 날, 육가는 자식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너희들 집에 들르거든 너희들은 하인들과 말에게도 음식을 주어야 하며, 10일간 지내고 다음 집으로 갈 것이다. 그러다 내가 죽게 되거든 바로 그 집에서 나의 보검, 수레와 말, 그리고 하인들은 갖도록 하여라. 여러 군데 들르다 보면 1년 중 너희들 집에 들르는 것은 두세 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자주 보면 새롭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한 번 총리는 영원한 총리(?). 잘 하면 두 세기에 걸쳐 해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구관(舊官)의 대명사인 JP를 놓고 되느니 안되느니 말이 많다. 屢見不鮮 이란 너무 자주 보아 전혀 새롭지 않음 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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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不由徑(행불유경)
行(갈 행) 不(아닐 불) 由(따를 유) 徑(지름길 경)
논어 옹야(雍也)편의 이야기.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이라는 작은 고을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에게 축하도 하고, 또 잘 하고 있는 지도 볼 겸하여 공자가 찾아 왔다. 공자는 반가운 마음으로 자유에게 자유아, 일을 잘하려면 좋은 사람이 필요할 텐데, 너의 수하에 쓸만한 인재이라도 있느냐? 하고 물었다.
자유가 대답하였다. 예, 있습니다. 성이 담대(澹臺)이고 이름이 멸명(滅明)이라는 자가 있사온데, 그는 언제나 지름길로 다니지 않으며(行不由徑), 공적인 일이 아니면 저의 방에 찾아 오는 일이 없습니다. 참으로 존경할 만한 인물입니다.
돈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일부 대학의 교수들, 그리고 전현직 판사들과 변호사들, 소위 지도급 인사들의 냄새나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이 번듯한 큰 길을 두고 자꾸 샛길만을 고집하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徑 은 지름길이나 샛길 을 뜻한다. 行不由徑 이란 지름길이나 샛길을 가지 않고 떳떳하게 큰 길로 가는 것이니, 이는 곧 눈 앞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함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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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葉障目(일엽장목)
一(한 일) 葉(잎 엽) 障(가로막을 장) 目(눈 목)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이 쓴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갈천자( 冠子) 천칙(天則)편의 이야기. 옛날 초나라 땅에 가난한 한 서생(書生)이 있었다.
그는 회남자(淮南子)를 읽고 사마귀 벌레가 매미를 잡을 때 나뭇잎에 몸을 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나무를 찾아 잎사귀를 모조리 따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나뭇잎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채 아내에게 자기의 모습이 보이는지 물어보았다. 처음 그의 아내는 다 보인다. 고 대답하였으나, 남편이 계속 이렇게 눈을 가리고 다니자 어찌나 보기 싫었던지 그만 보이지 않는다 고 말해 버렸다.
아내의 말에 자신감이 생긴 서생은 잎사귀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길거리로 나갔다. 그는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심문하는 관리에게 나뭇잎으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당신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이오. 라고 말했다. 그는 관리로부터 미친 놈 대접을 받았다.
一葉障目 은 국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에 미혹되어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깨닫지 못함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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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傅衆 (일부중휴)
一(한 일) 傅(스승 부) 衆(무리 중) (떠들 휴)
맹자 등문공하( 文公下)편의 이야기. 전국(戰國) 시대, 송(宋)나라의 대부 대불승(戴不勝)이 강왕을 도와 인정(仁政)을 실시해 보려고 설거주(薛居州)를 시켜서 왕을 보필하게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맹자는 송나라를 방문하였다. 대불승을 만난 맹자는 그에게 물었다.
어떤 초(楚)나라 대부가 자기 아들에게 제(齊)나라 말을 배우게 하려는데, 제나라 사람을 시켜 가르치는게 낫겠습니까? 아니면 초나라 사람을 시켜서 가르치는 게 낫겠습니까? 대불승은 당연히 제나라 사람을 시켜서 가르쳐야 겠지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제나라 사람 한 명이 가르치는데, 많은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고 떠들기만 한다면(一齊人傅之, 衆楚人 之), 매일 매 때리며 제나라 말을 하라고 강요한다 해도 배우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를 몇 년 동안 제나라의 번화한 길거리에 데려다 두고, 배우게 한다 할지라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맹자는 대불승 혼자의 힘으로는 어진 정치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였다. 一傅衆 란 학습 환경이 좋지 않고 방해가 많음 을 뜻하며, 일에 성과가 없음을 비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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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傍苦李(도방고리)
道(길 도) 傍(곁 방) 苦(쓸 고) 李(오얏 리)
진서(晉書) 왕융전(王戎傳)의 이야기. 진 나라의 왕융(서기 234-305년)은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며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좋아하였다. 그는 유유자적하며 인생을 즐기고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왕융이 일곱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동네의 아이들과 놀다가 문득 길가의 자두나무에 가지가 휘어지게 많은 자두가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따려고 앞다투어 그 나무로 달려갔으나, 왕융만은 그 자리에 가만 있었다.
그때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왕융에게 물었다.
얘야, 너는 왜 따러가지 않고 서 있는 거냐?
왕융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무가 길 가에 있는데도 열매가 저렇게 많이 달려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써서 먹지 못하는 자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 자두를 따서 맛을 보니 과연 왕융의 말처럼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라 살림을 절반으로 줄여버린 YS, 퇴임 박두(?). 마침내 나쁜 추억 속으로 초라하게 버려지는 순간이다. 道傍苦李 란 길 옆의 쓴 자두나무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버린 물건이나 무용지물 을 비유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