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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및 영상산책

문자도

작성자비단고동|작성시간10.11.19|조회수367 목록 댓글 1

 

잘 아시겠지만...  제가 그린 그림인데 넘 높게 작품을 달아놓으니 키가 작은 나로써는  사진을 찍어도 요모양으로 나오네요 ㅎ

다음에 한컷씩 다시 찍어 올려 놓을께요.

 

문자도란...

 


민화의 한 종류로 문자와 그림을 결합시킨 것.

가장 대표적인 것은 효제문자도이다. 효제문자도는 일명 효제도·팔자도라고도 하는데, 효도·우애·충절·교신·예절·의리·청렴·부끄러움을 뜻하는 효·제·충·신·예·의·염·치 8자를 소재로 각각의 한자 자획 속에 해당 글자의 의미와 관련된 고사나 설화의 내용을 대표하는 상징물을 그려넣은 것이다. 예를 들어 효자에는 중국의 여러 가지 효행고사들이 핵심적인 상징물로 표현되는데 진나라 때 왕상이 계모에게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드린 일은 잉어로 상징하며, 오(吳)나라의 맹종이 한겨울에 노모에게 죽순을 따드린 일은 죽순으로 상징하고 있다. 또한 제자에는 형제의 우애와 정을 읊은 〈시경〉의 상체지화 고사에 따라 옥매화() 더불어 화목을 상징하는 접동새나 집비둘기 한 쌍이 표현되는 것이 통례이다. 이 8자는 유교적 윤리강령을 8자로 압축한 것으로 효·제·충·신은 〈논어〉에서, 예·의·염·치는 〈관자〉에서 유래한 덕목들이다.

이와 같이 효제문자도에는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의 감계적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데, 문자도에 표현된 중국고사들은 조선 후기에 대국민 교화를 위해 간행되었던 〈이륜행실도〉(1730)·〈삼강행실도〉·〈오륜행실도〉(1797)의 내용에서 추출한 것들이다. 문자도의 역사적 변천을 살펴보면 18세기 이전부터 궁중이나 사대부 가정에서 큰 글자의 효제문자도 장식병풍을 사용했던 것으로 짐작되며, 18세기에 이르러 각 글자의 의미내용과 형식이 결합되어 상류층 문자도의 정형이 만들어졌다. 19세기에는 새로운 수요층인 기층민들의 기호와 미적 정서가 반영된 민화문자도가 널리 유행하게 된다. 이것은 18세기 상류층 문자도의 정형에서 벗어나 회화성과 장식성이 강해지고 문자 본래의 의미와는 무관한 다양한 표현이 가미된 것으로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탁월한 디자인 감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후기로 갈수록 화제 구성이 다양해져 단순히 문자도로만 구성된 순수한 문자도 이외에 문자도가 책거리기물이 상하로 배치된 책거리문자도, 문자도와 소상팔경도나 관동팔경도같은 산수도가 아래 위로 배치된 산수문자도 등과 같이 다른 민화 화제와의 결합 양상을 보인다. 한편 문자도에 쓰이는 문자로는 앞에서 설명한 8자 외에도 용·호·구 등의 수호적 문자, 수복강령·부귀·다남 등의 길상적 문자가 있으며, 근래에는 한글을 이용한 문자도가 제작되고 있다. 문자도 제작기법으로는 모필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기법 이외에도 가죽붓을 재빨리 구사하는 혁필화 기법, 인두로 종이를 지져서 그리는 낙화 기법이 있다.

 

제목 : 미상 윤리문자도
 
설명 : 민간 소장 민화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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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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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동녘이 | 작성시간 10.11.20 문자도이군요. 삶에 있어 바라는 바를 글에서, 그림에서 정성을 담고 있지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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