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프로이드와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해

작성자호산|작성시간11.10.31|조회수2,953 목록 댓글 0

 

프로이드와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해

-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중심으로-

 

 

                                                                                                                                                                                                 이 영욱

 

 

쟈크 라캉 자신이 프로이트의 계승자로 자부를 하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기본 개념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의 정신분석학을 이해하기 어렵다. 최소한 정신분석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은 있어야지 라캉을 이해하지, 정신분석에 대해 전혀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라캉을 접하면 사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그리고 왜 라캉이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또 여러 가지로 프로이트에 대해서 수정을 가하는지, 이론적으로. 이런 데에 대해서 이해하기가 힘들다.

 

 

먼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이해하면

 

프로이트는 1920년대에 와서 첫 번째 위상학을 수정해서 두 번째 위상학을 내놓는다. 두 번째 위상학의 내용이 정신의 구조는 자아, 초자아, 이드 이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물론 나누어져 있는 게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게 아니라 은유적 차원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 근데 “자아라고 하는 것들이 흔히 이성과 어떤 상식을 대변하는 부분이다”라고 프로이트는 얘기를 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의식이라든지 합리성 같은 것이 자아에 속한다고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자아는 이드로부터 분화되어서 나온 것들인데 현실과 관계를 갖는 것이 자아의 기능이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우리는 원래 본능적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성장하면서 본능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것을 배운다. 특히 프로이드의 '성 발달' 이론에서 보면 항문기 때 최초의 사회적 규율에 대해서 체험을 하게 되는데, 용변 훈련이라는 것들이 단지 어떤 용변을 가리는 것들이 아니라, 자기의 어떤 본능적 요소들을 통제해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시기다. 이 때 발달하게 되는 게 '자아'다. 이제 더 이상 '이드'의 어떤 정령들이라는 건 무원칙하게 독자적으로 수용 되서는 안 된다는 걸 배우게 된다. '이드'는 어떤 정념적인 요소, 그리고 이제 '무의식'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초자아'는 양쪽을 매개 하면서 이 외부로부터 부모의 어떤 요구에 의해서 수용되는 부분으로서 특히 양심과 도덕에 관련이 되는 게 바로 '초자아'다. 이 세 가지를 프로이트가 후기에 구상하게 되는데 이 세 가지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어지는 게 아니라 다 무의식에 뿌리를 박으면서 분화되는 그 정신기관들로 이해를 해야 한다.

그런데 특히 기존의 국제 정신 분석학회는 이 '자아'라는 것들을 강화하는 게 정신분석의 목표가 된다. 실제로 자아가 강하지 못하면 현실에 적응을 못하면서 어떤 이드적인 것 초자아적인 것에 쉽게 굴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분석이라는 것은 허약한 자아를 강화시켜주고, 사회적인 것들에 잘 적응하게끔 해주는 것이 분석의 목표였다. 그러면 ‘분석은 굉장히 교육적이고, 그리고 좀 사회적인 규율들이나 사회적인 관계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다.’ 라고 얘기 할 수가 있겠다. 이런 걸 대변하는 것이 바로 특히 ‘자아 심리학’에서 이런 걸 강하게 대변했다.

그런데 라캉은 상상계라는 걸 통해서 자아의 본질에 대해서 공격을 하게 되면서 "자아라는 것들이 결국 주체성이 소외된 부분이다." 라는 것들을 얘기한다. 바로 여기서 거울 단계의 중요성들이 대두가 된다고 볼 수가 있다. 거울단계는 구체적으로 심리학자인 앙리 발롱(Henri Wallon)이라는 사람이(라캉의 친구) 최초로 제안했던 개념들이었는데, ‘거울 효과’라는 말을 썼다. 그의 실험에 의하면, 침팬지와 어린아이 6~18개월 된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둘 다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가? 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서 침팬지는 거울에 비친 이미지가 자기라는 걸 굉장히 빠르게 알아내지만 그걸 아는 순간에 거기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그냥 딴청을 피운다는 거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자기 이미지가 거울에 비쳤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이미지에 굉장히 매혹이 되가지고 그걸 막 붙잡으려고 한다든지 막 좋아서 친다고 한다든지 이런 현상들이 나타났다.

앙리 발롱 같은 경우는 이 거울에 비쳐진 이미지라는 것은 원래 외부현실과 하나로 융합되어 있는 덩어리들인데 아이는 최초의 자아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구분 못 하다가 어느 틈엔가 자기라는 하나의 독자성들을 외부세계로부터 분리하는 걸 배우게 되는데 이때 중요한 게 거울의 이미지라고 주장한다. 거울에 비쳐지는 자신의 신체를 보면서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거다. 이러한 효과를 통해서 거울이라는 것은 어떤 자아의 원형으로서 작용하게 되고, 인격발달에 있어서 하나의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고 이러한 것들이 거울 단계의 이념인데, 라캉은 거울단계가 바로 이제 인간의 어떤 정신구조를 상상 계에 고착화 시키고, 특히 상상계의 본질일 수 있는 어떤 자아. 여기서 이제 소외단계가 벌어진다는 것을 중심적인 내용으로 얘기한다.

라캉이 상상계 자아를 겨냥한 것은 단지 프로이트의 위상학만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의 대변자(코키토)로 자처하는 서구철학의 전통에 대한 재수정을 겨냥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흔히 말하는 어떤 이성의 합리성이라는 것은 결국 ‘거울적 이미지’에서 비롯된 허상들에 매혹되면서 그것을 주체의 본질인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캉은 세계를 하나의 이성이 그리고 어떤 의식이 비추어보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들은 사실은 거울적인 작용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어떤 편집증적 구조라고 얘기를 한다.

원래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하면 자아라는 것은 마부에 비유를 한다. "두 마리 말을 끌고 가는 마부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 초자아도 잘 다뤄야 되고, 이드도 잘 다뤄야 되고, 그러다 보니까 자아의 기능이라는 게 굉장히 강화가 되지만, 말기에 프로이트는 죽음 충동 타나토스적인 것에 주목을 하면서 이드가 다스려지고 제어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들에 주목을 했다. 바로 이런 가능성이 라캉한테는 자아의 어떤 호소성 내지는 자아를 강화한다는 분석의 목표에 대한 명시적인 거울 이런 것들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국제정신분석협회'를 공격하는 가장 주된 논거로서 활용되었던 게 바로 '상상계'다. 상상계에 불과한 자아적인 것을 정신분석이 강화해야 된다고 주장하니까 라캉이 보면 이건 프로이트의 가르침을 뒤집은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욕망의 주체와 무의식의 주체

 

라캉의 욕망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샤르트르의 현상학적 존재론을 먼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샤르트르의 타자의 시선의 문제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는 기본 개념이다. 그래야만 라캉의 타자의 시선과 응시가 어떻게 주체를 형성하게 되는지. 이미지/스크린(마스크)이 현실계와 실재계를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라캉‘욕망의 대상’(원인cause)인 응시gaze는 의식의 눈이 보는 시선eye과 구별하였다. 라깡에 의하면, 이 응시는 싸르트르의 응시, 즉 혼자 있을 때 복도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사냥할 때 조용한 숲 속에서 들리는 듯한 낙엽들의 소리로 예증 화된 응시와 다르다. 싸르트르의 응시는 주체를 그 응시 하에서 대상object으로 만들어 그 주체를 수치스럽고 당황하게 만드는 상상계적 응시라면, 라깡의 응시는 주체로 하여금 욕망의 ‘대상(원인)’으로서 결여를 메우게끔 그의 욕망을 활성화시키는 실재계적 응시이다.

 

라캉의 주체는 욕망의 주체이자 무의식의 주체라고 말할 수 있다. 라캉은 53년부터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내걸고 프로이트의 새로운 계승자를 자처하게 되는데 라캉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 빠져 있는 언어와 주체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게 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론으로, 아이가 성적인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에 겪게 되는 복합적 드라마라 할 수 있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신경증의 핵으로 설명한다. 라캉 역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라캉은 이것을 주체가 상징계로 진입하면서 말하는 주체로 태어나는 과정으로 설명 한다.

라캉은 거울단계를 통해 전통적으로 프로이트의 이론을 자아심리학으로 해설했던 미국의 정신분석을 비판하고, 또한 철학에서 말하는 의식적 주체, 데카르트적 사유주체를 비판한다. 이는 라캉이 의식을 거울에 비친 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일종의 소외이자, 타자성에 지배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거울단계는 라캉이 왜 자아심리학을 비판하고 상징계 이론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라캉의 욕망이론은 욕망의 본성을 결여자체이지 대상의 결핍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결여는 무엇보다도 존재결여이다. 욕망이란 기본적으로 결여에서 비롯되는데 결여는 어떠한 대상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여이다. 그래서 ‘순수결여’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오브제 a’는 결여자체를 주체로 하여금 감당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주체의 공백과 언어의 심급으로서 대타자가 갖는 공백 부분을 채우는 것이 환상대상 a이기 때문에 주체가 가지는 욕망의 능동적 측면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라캉에게 있어 주체의 욕망개념은 결여와 연관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들뢰즈가 욕망을 해석하는 입장과는 차이가 나는데 들뢰즈는 결여로서 욕망을 바라보는 것을 비판하고 욕망의 충만성, 능동성과 힘 자체를 강조한다. 하지만 라캉은 수동성이나 결여로부터 욕망의 능동성을 가져온다. 결여가 이야기되는 것은 상징계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라캉의 욕망이론은 상징계에 대한 복종의 측면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의 또 다른 측면을 보게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의 대상으로서 특히 실재계에 속한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라캉의 욕망은 결과적으로 상징계가 아니라 실재계를 겨냥하는 데서 영원성이 있게 된다. 욕망은 결국 충족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욕망 자체가 실재계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캉의 세 가지 구도 <R. S. I>

 

라캉이 세 가지 구도 <R. S. I: S(Symbolic)상징계, I(imaginary)상상계, R(real)실재계> 는 항상 동시적으로 작용한다. 라캉은 자아가 상상계의 구조고, 기만하는 구조라고 해서 자아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주제를 찾아야 한다. 라고 라캉은 주장하지 않았다. 상상계는 벗어던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상상계에 갇혀서 소외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상상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타자적인 이미지에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욕망들은 타자적인 것에 불과하다. 주체가 가지는 자기 고유한 욕망이라는 것은 사실은 있을 수 없다. 바로 이런 것들이 라캉의 상상계의 분석을 통해서 규명이 될 수가 있다. 그래서 6~18개월 된 아이는 거울의 이미지를 보면서 열광을 하게 되는데, 라캉은 여기서 거울적 이미지가 최초의 어떤 주체성을 형성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긴 하지만 동시에 최초의 주체성에 대해서 소외를 발생시키고 오인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이미지 부위에 불과한 것들에 대해서 고착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거울단계의 본질이다.

 

 

 

 

                                                                                                          보로메오 고리

 

 

<상상계 : 거울단계의 이미지>

라캉은 거울단계를 심리적 원형이다. 라고 얘기를 한다. 이 말은 아이 때 한 번 겪고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인식을 할 때 계속해서 작용하는 원형이 바로 거울적 이미지라는 거다. 주체는 언제나 타자를 통해서만 자기의 내면에 대해서 알 수 있다. 타자를 통해 그리고 타자에 의해. 타자라는 게 없고서는 주체성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라캉은 여기서 주체의 분열을 본다. 왜냐면 6~18개월 된 아이는 아직 자기 몸에 대해서 완벽하게 통제를 할 수 없다. 아직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에게 거울에 비쳐진 모습은 완벽한 상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렇게 완벽하게 다가오는 상. 이상적인 이미지와 실제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몸의 분리 간격. 이게 바로 거울단계에서 겪게 되는 경험이다. 아이는 완벽한 이미지에 대해서 굉장히 열광을 하고, 저게 나라는 것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낀다. 근데 완벽한 이미지는 실제 몸의 현실을 반영해주고 있지는 못한다. 바로 여기서 자아라는 것들이 완성은 안 되었지만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처럼 투사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몸은 계속해서 여기에 대해 불일치를 보여주게 된다. 이걸 아이는 어떤 식으로 경험 하냐면 마치 완벽하게 주어져 있는 이미지가 한편으로는 자기 이상적인 모델로서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자기 실제 몸이라는 것을 위협하는 존재처럼 느끼게 된다. 우리가 타자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가 바로 이런 것이다. 나랑 닮은 사람을 볼수록 굉장히 사랑스럽고 존경스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위협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처럼, 라이벌은 일종의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근데 제거가 되면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의미가 없어진다. 항상 라이벌이 있기에 자기가 돋보이는 거지, 라이벌이 없이 혼자 딱 주어지는 존재라는 것들은 주목을 못 받는 것처럼, 바로 거울의 이미지가 그렇다.

비춰지는 자기의 완벽한 이미지. 이건 실제 나이면서 내가 아니다. 나이면서 내가 아닌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서 내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아가 주축이 되는 주체성의 내용이 출발부터 어떤 불일치를 안고 갈 수 밖에 없다는 것. 바로 여기서 욕망의 시작이 비롯된다. 완벽이 보여주는 타자의 이미지와 실제 몸의 괴리감. 이걸 라캉은 ‘조각난 몸의 환상으로서 경험이 된다.’ 라고 말한다. 꿈에 그리고 어떤 무의식적인 환상 속에서 항상 자기 실체를 드러내는 어떤 조각난 몸의 모습들. 바로 이런 것들이 거울의 이미지가 주는 어떤 위협으로서 아이는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나르시시즘의 본성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르시시즘은 한편으로는 자아를 어떤 이상적 대상으로 '성애'적으로 좋아하고, '성애'적으로 집착하는 거지만 동시에 그러한 자아에 대해서 또 불안해하고, 위협을 느끼게 심리상태다.

바로 거울적 이미지는 이런 이자관계. 이자관계를 다른 말로 유사 자와의 관계라고 한다. 닮은 꼴의 사람타자. 타인이 바로 유사 자아적인 이미지다. 나랑 가장 닮아 있고, 거울. 동시에 나의 이상이면서 나를 위협하는 자. 그게 바로 유사 자아다. 근데 여기서 타인이라고 해서 꼭 남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타자적인 것이. 바로 이 거울단계가 원형으로 작용하는 것은 하나는 인간의 인식구조를 기본적으로 오인의 구조로 고착화 시킨다. 또 하나는 인간이 가진 자기의 욕망을 언제나 타인적인 것에서 타인이 욕망하는 것에서 가져오는 ‘인간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에 대한 욕망일 수밖에 없다.’라고 라캉은 얘기한다. ‘이 욕망이 주체의 내면적인 어떤 것. 주체의 자율적이고, 주체가 생각하는 어떤 자기의 어떤 고유한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 라는 것이 라캉의 생각이다. 실제로 이런 유사 자와의 관계. 이런 건 라캉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많이 분석을 했다.

예를 들어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희생양>개념을 통해서 사회가 왜 폭력을 구조적으로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는가? 에 대해서 잘 분석한 사람이다. 그에 의하면 폭력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항상 집단,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폭력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면 폭력은 집단의 내부의 갈등을 특정한 대상으로 전가시킴으로 해서 집단의 결속력을 유지하고, 갈등들을 조절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항상 유태인, 집시, 이런 사회적인 공동체 불만을 전가시킬 수 있는 희생양들이 필요했다. 라는게 르네 지라르의 생각인데, 희생양이 아니라 희생양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에서 르네 지라르가 정신분석을 많이 활용 한다.

 

<상징계>

프로이트의 인격구조모델은 메타심리학, 즉 경제적economic 관점, 역동적dynamic 관점, 공간론적 관점 등에 의해 설명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관점이다. 에너지가 끊임없이 흐르면서 그것이 긴장되어 있을 때는 해소하려 하고 한 곳에 집중되는 리비도 집중, 대상선택 등에 대해 설명한다.

라캉은 이것들을 언어학적 설명과 구조로 바꾼다. 에너지의 흐름이 아니라 언어적인 관계에서 무의식을 해설한다.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론이다. 대타자는 타자적인 차원이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만날 때 A가 주체라면 B는 A에게 있어‘타자’로서 이해된다. 그러나 라캉의 대타자는 A와 B가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때 가정할 수 있는 제3의 장소, 즉 언어가 기원하는 곳이 대타자이다.

일반적인 의미의 타자는 라캉의 체계에서는‘소타자’라고 한다. 소타자는 상상계적인 이미지이다. 주체와 주체가 만나는 관계는 단순히 주체와 주체의 만남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주체가 만들어낸 자아상과 타자의 상이 만나는 상상계적인 작용이다. 그래서 이것은 왜곡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근본적인 분석의 관계는 자아심리학에서 말하듯이 자아를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 분석가의 목표가 된다.

분석가의 조건 중 하나는 상징계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대타자는 언어의 장소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타자는 아니지만 점유될 수 있는 공간이다. 분석가는 여기서 안다고 가정된 주체로서 설명이 되는데, 즉 대타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주체로 성장하게 될 때는 어머니/아버지가 대타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대타자는 언어가 기원하는 장소이다.

 

<실재계>

실재계란 라캉에 의하면 상징계에서 배제되면서도 상징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핵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재는 불가능성이다. 이 불가능성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상징화된 접근방법으로는 실재 자체에 다가갈 수 없는 게 실재의 모습이기 때문에 불가능성이라고 지칭된다. 라캉은 이 부분을 욕망의 윤리적 차원에서 이야기한다. 정신분석에 윤리가 있다면 그 근저에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욕망이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언어를 떠나서는 욕망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욕망은 상식적으로는 대상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로 생각되지만 라캉의 욕망개념은 이와는 다르다. 말하는 주체가 가지는 결여가 그 근본특성이기 때문에 비록 대상적인 것을 지향을 하긴 하지만 대상관계로서 욕망이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대상을 찾고자 하는 것이 욕망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미끼의 역할일 뿐이고 근원적으로 욕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존재이다. 이 존재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은 말하는 존재로서의 주체가 가지는 본질적인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

주체와 ‘주이상스jouissance’고통 속의 쾌락 같은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불가능한 쾌락이기도 하고 법률적 의미로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고 향유하는 측면을 뜻하기도 한다. 내 것으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잠시 누리며 향유하는 측면을 말한다. 성적인 의미로는 사정,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도 주이상스에 들어간다.

주이상스야말로 욕망의 또 다른 모습이자 궁극적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는 실재계다. 쾌락원칙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 주이상스인데 쾌락원칙은 라캉에 의하면 상징계이다. 상징계 자체가 주체를 현실적인 쾌락의 충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주체는 상징계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그 너머로 가보려 하는데 그 너머는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것들이다. 바로 이 불가능한 것들에 도전하는 것이 욕망이기 때문에 욕망의 운명이라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인 것이다.

 

▲ 라캉의 연표

 

ㅡ프로이트가 신경과 의사로서 자기의 경력을 출발했듯이 라캉도 정신과의사로 시작한다.

ㅡ1932년 ‘인격과 관련된 편집증적 정신병에 대하여’라는 의학박사논문을 씀

 

■ 정신병은 크게 (1)편집증과 (2)정신분열증이 있다. 편집증은 과대망상, 극단적인 동일시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는 주체들은 예를 들어 자신이 인류를 구원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박해한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이나 과대망상적인 경향이 있다.

 

ㅡ‘에메(가칭)’는 편집증에 걸렸던 여성인데 라캉은 그녀를 대상으로 어떻게 편집증이 인격적인 구조와 연관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체적 이상에서 정신병을 설명하는 당시 학계의 주류 흐름과의 차별화된 입장을 보여준다. 라캉은 선천적이고 유전적/신체적 이상으로부터 정신병을 설명하는 것에 반대를 하면서 주체가 가진 역사 속에서 인격 개념으로 설명을 한다.

 

ㅡ1934년에는 SPP(파리정신분석학회)에 정식으로 가입

 

ㅡ1953년에는 SPP에서 분리해 나오게 되고 SFP(정신분석프랑스학회)를 주도적으로 만들게 된다. 이 단체의 창립선언문 형태로 발표한 글이 에크리의 유명한 '로마담론'이다.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이라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루이 알튀세르의 주선으로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강의를 시작. 일반대중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세미나의 내용도 철학적이면서 사상적인 면이 강화가 됨

 

ㅡ1963년 계획되어 있었던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제목의 세미나는 라캉의 SFP 제명 소식과 함께 한번의 강의를 끝으로 취소된다. 대신 라캉은 ‘정신분석의 4대 기본개념’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세미나를 시작한다.

 

ㅡ1966년 『에크리Ecrits』를 출간한다. 라캉 자신은 에크리를 읽을 수 없는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책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라캉 자신이 무의식의 기본 개념을 풀어서 글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미나에서 라캉은 글을 배포하지 않는다. 말이라는 것은 무의식의 과정이기 때문에 이중적이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속성들이 있게 된다. 에크리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의식적으로 지향되기 때문에 말장난이나 모호한 의미들이 많이 등장해서 읽기가 굉장히 어렵다.

 

ㅡ1964년 파리프로이트학교가 창설된다. 1980년에 해체가 되면서 프로이트주의파, 81년 또 이름이 프로이트주의학교로 또 이름이 바뀐다.

 

■ 라캉이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말할 때는 후기까지 이어지는 프로이트의 전체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의 프로이트, 그러니까 1900년 출판된 『꿈의 해석』, 그리고 『무의식과 농담의 관계』,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에서의 프로이트를 말한다.

■ 프로이트는 언어적 현상인 망각, 말실수, 말장난, 농담 같은 것들이 무의식의 억압된 매카니즘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고 본다. 꿈도 마찬가지인데 왜곡되어 있고 이미지들이 겹쳐져 있지만 무의식의 잠재된 생각들을 잘 보여준다. 라캉이 주목하는 프로이트는 바로 이러한 프로이트이다.

 

parler(말하는) + e?tre(존재) = parle?tre(말하는 존재)

 

 

■ 프로이트 후기 이론에 의하면 이드/자아/초자아가 있다.

 

1) 이드id

ㅡ성적인 에너지, 리비도가 나오게 되는 저장고 같은 곳.

ㅡ쾌락원칙의 지배를 받음. 즉각적이고 제한 없는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이드의 본성이다.

 

2) 자아ego

ㅡ대상관계에서 확립이 됨. 외부세계와의 접촉에서 생겨남.

ㅡ현실원칙의 지배를 받음. 만족에 대해 지연시키는 역할을 함

ㅡ이드와 초자아의 욕망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 자아는 두 마리 말을 몰고 가는 마부에 비유된다.

 

3) 초자아super ego

ㅡ도덕과 종교의 기원. 억제하는 양심의 형태로 자리 잡음.

■ 부모의 명령, 도덕적 요구들이 주체에 내면화되면서 욕망을 억제하고 양심으로서 기능

ㅡ때때로 초자아는 다른 방식으로 이드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하는데 이드는 공격성이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본성을 갖고 있는 반면 초자아는 도덕적이지만 때때로 도덕의 이름으로 공격성이 표출되기도 한다.

 

예) 중세의 종교 재판■ 종교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고문하고 처형한다.

 

ㅡ도덕이라는 명분으로 승화된 형태의 공격성을 표출되도록 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이드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자아심리학에 의하면 정신적으로 사람의 자아는 현실원칙을 잃어버리지 않고 항상 두 가지 요구, 즉 이드로부터 오는 욕망의 원초적 차원과 초자아로부터 오는 외부적인 억제, 도덕적 요구를 적당히 조절하고 통제해준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이드가 있던 자리를 에고가 차지하게 된다. 국제정신분석학회의 해석은 ‘자아가 이드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라캉은 ‘그것이 있던 곳으로 내가 돌아가야 한다’고 해석한다.

ㅡ분석가의 역할은 환자의 불완전한 자아를 교정해주고 모범을 보여주는 선생님과 같은 것인데 이 관계는 라캉에 의하면 자아와 또 다른 자아의 상상계적인 만남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분석은 이런 것들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주체의 진실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대타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 라캉이론은 상징계에서 출발하지만 이것이 상징계가 라캉 이론의 전부이거나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징계는 라캉의 고유한 개념은 아니다. 이미 프랑스에서 60년대 이후 구조주의 사상이 나오면서 상징계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많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 대해 인터뷰하면서 제3의 질서로서 언어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언어가 인간의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언어의 지배를 당하는 이러한 발견 자체가 현대사상의 출발점이 된다. 들뢰즈 역시‘구조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논문에서 구조주의의 7가지 특성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그 중 첫 번째가 상징계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이다. 이런 면에서 라캉이 구조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 그러한 측면만 강조되면 라캉의 주체라는 것이 상징계의 또 하나의 효과처럼 소극적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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