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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Arshile, Gorky [1904-1948] - 아쉴 고르키

작성자호산|작성시간15.10.24|조회수311 목록 댓글 0


고르키 ( Arshile Gorky : 1904.4.15~1948.7.21 )

미국의 화가. 본명은 Vosdanig Manoog Adoian. 아르메니아 출생. 15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디자인 및 공예를 배우고, J.미로의 작품과 R.마타, A.콜더 등과 알게 되어 초현실주의에 접근하였다(1929). 한때 W.데쿠닝과 아틀리에를 쓰면서 유기적인 추상양식을 확립하였다(40). 자연물의 원형을 조합하여 내적인 세계를 표현한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 화가이다. 만년에 화재와 교통사고의 불행이 겹쳐 자살하였다.
그는 세잔느(Paul Cezanne)의 가르침을 주의깊게 관찰한 뒤 입체주의를 연구했고, 1930년대에는 피카소(Pablo Picasso)에 매료되어 그는 초현실주의를 향해 방향전환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날 무렵에는 보다 대담한 탐구를 시작했다.
고르키가 갖는 특이한 이미지에 대한 표현은 은유와 연상이 과장되고 야릇하고 부드러운 유기체를 가지며, 깊고 어두운 가는 틈, 얼룩거리고 흐물거리는 신체부위 등의 표현은 미국에서 가장 초현실주의에 밀접하게 접근하였다. 그가 큐비즘에서 배운 구성적이고 구도적인 것에 대한 기본 개념은 그의 후기 미술에까지 지속적으로 남아있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그의 이미지들은 '생물형태학적 형상'의 성격을 갖는데, 이는 고르키의 큐비즘에 대한 재해석이며, 초현실주의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발점이 되었다.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의 옛 거장들에 대한 모방과 창조의 과정을 통하여 큐비즘의 이성적 요구와 초현실주의의 비이성적인 꿈을 결합함과 동시에 자연에 대한 관찰을 통하여 이루어진 정확한 스케티에 있어서 추상표현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즉 과거의 거장들과의 접촉으로 자신의 예술적 기둥을 세웠고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하여 자연을 구상에서 자신의 예술적 기둥을 세우고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하여 자연을 구상에서 추상으로, 외부세계에서의 영역에서 내부의 상상력으로 이동한 기억과 추상을 통하여 여과하였고, 심리적 드라마를 표현하는 장으로써 자연을 창조하였다. 그는 그의 아르메니아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시적인 은유로 자연과 융화하여 독특한 새로운 영역의 예술을 창조하였다.
고르키의 독특한 형태는 자연계에서 유래한 것이 많고 그 현상들은 때가 되어 봉우리 맺어지고 꽃피고 결실 맺는 것과 같은 자연의 섭리를 암시하고 있다.
고르키는 그의 회화 세계에 대한 '놀랄만한 정서적 섬세성'이라는 평론을 들을 만큼 섬세하고 예리하게 자연을 통하여 화가의 심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고 이러한 심상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연을 시적 암시로 다루었으며, Automatic 기법을 사용하여 관람자들로 하여금 혼성물적인 인상을 받게 하였다. 이 Automatic 기법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사용한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의 독특한 형태들은 자연계에서 유래할 뿐이고 그가 자연을 심화시킬수록 그림은 특정한 모티브로부터 떨어져 나와 특정대상이 아닌 화가의 심리적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할 뿐이었다.


Arshile Gorky, The Artist and His Mother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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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그림과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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