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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작품 소개

[스크랩] 가문의 영광1-중광의 달마도 구입 실패기

작성자호산|작성시간11.10.01|조회수744 목록 댓글 0

가문의 영광 만들기

            

가문의 영광 만들기

- 중광의 “달마도” 구입 실패記

 

몇 년 전 일이다. 청주에 있는 경찰서라며 출두를 요구했다. 얼마 전 구입한 중광의 그림이 문제라는 것이다. 벌렁거리는 가슴 때문에 자초지종도 제대로 묻지 못하고 다음날 작품을 들고 직접 가기로 했다. 일이 손에 안 잡혀 하루 종일 좌불안석이다가 허겁지겁 퇴근했다. 신발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거실 벽 한복판에 위풍당당 걸려있는 중광의 달마도 앞에 똥그란 눈으로 마주섰다. 놀란 나와는 달리 날 내려다보는 달마스님은 “무슨 일 있어?”하며 태연했다.

 

 

                        

 

일이 있기 전 한 1년 전쯤 청주에 있는 모 화랑 인터넷을 통해 그림을 구입했다. 그 그림이 중광의 달마도였다. 최영림의 드로잉을 구입한 것이 인연이 되어 비록 전화상이지만 화랑 주인과는 친분이 돈독하다 생각되어 권한 작품을 아무 의심 없이 샀다. 그냥 그림이 마냥 좋아 여유 있을 때마다 한두 점 샀으나 안목 부족으로 변변한 작품 하나 없었던 차에 걸레스님 중광의 그림은 내 그림 컬렉션에서 단박에 우두머리로 등극했다. 게다가 달마상이 어떤 그림이던가. 속설에 의하면 기를 팍팍 내뿜는 그런 그림 아니던가. 내공이 만만치 않은 중광의 달마상이라니. 그 기의 양과 질이 웬만한 작가의 달마상과는 비교도 안 될 것 아니던가. 나는 다른 그림들을 죄다 제쳐놓고 거실 벽 중앙에 떡하니 달마도를 걸어 놨다. 그리고 내 집을 드나드는 친지나 벗들에게 그림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기 일쑤였고, 몸이 찌뿌드드한 날은 기를 팍팍 받는다고 그림 앞에서 팔을 벌리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심호흡을 하곤 했다.

그런 그림이 사단이 났다는 것이다.

 

찬찬히 그림을 뜯어봤다. 정좌하여 약간 왼쪽으로 고개를 틀고 내려다보는 꼿꼿한 자세에서는 위엄이 물씬 묻어났다. 부리부리한 눈은 삼라만상 모든 일을 꿰뚫어 볼 듯 잔뜩 힘이 들어가 있고, 옹골지게 앙다문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예끼 놈.”하는 불호령이 떨어질 듯 했다. 성근 수염발마저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그림을 그려나간 굵은 먹 선들에서는 힘찬 기백이 느껴졌고, 세로로 내려쓴 중광(重光)이라는 한문마저도 망설인 흔적이란 일체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느 한구석 나무랄 데 없는 그림이었다. 재질 및 보관 상태는 또한 어떤가. 검은 먹을 더욱 도드라지게 할 정도로 바탕 한지는 우유보다 더 뽀얀 빛이었고, 어찌나 보관이 잘 되었던지 찢어져 배접한 흔적은커녕 종이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곰팡이 자국 하나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어찌 이 그림이 가짜란 말인가.

  

  

 

 

 

 

 

밤새 잠 한숨 못잔 나는 약속 시간에 맞춰 화랑협회 문을 밀쳤다. 사무실에는 열댓 명의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중 경찰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자에 이끌려 고이고이 싸가지고 온 달마 그림을 너른 책상 위에서 펼쳐보였다. 웅성거리던 소리는 일순 정지했고 우왕좌왕 서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어느새 내 주위에 몰려서서 목을 쭉 빼고 달마 그림에 시선을 쏘아댔다. 의심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눈초리로. 그리고 흐른 시간은 단 1초. 더도 덜도 아닌 딱 1초 만에 내 우측에서 자신만만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짜네.” 나지막하지만 확신에 찬 그 소리와 더불어 사람들의 목은 순식간에 오그라들더니 수긍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설마 했던 기대감이 순식간에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1년 남짓 뜯어봐도 모르겠는데 단 1초 만에 어찌 진위를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짜네.”했던 이는 중광스님의 사촌(?)이라 했고 고개를 끄덕였던 사람들 틈에는 이름만 대도 알 만한 화랑의 주인들도 섞여 있었다.

사건의 개요는 이랬다. 시중에 중광스님의 가짜 그림이 나돌아 추적해 보니 청주 부근에서 전문 위조단을 적발했고 위조된 작품의 유통과정 끄트머리에 내가 있었다고 한다.

 

 

 

오른 혈압을 내리고 있는 내게 우선 다가온 이는 청주 모 화랑의 주인이었다. 자신도 속아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머리를 무릎까지 숙여 사과했다. 작품 가격도 100% 환불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치밀어 오른 혈압은 좀처럼 내려가질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에게 침을 뱉을 수도 없고 되돌려 주겠다는 돈을 마다할 수도 없어 쭈뼛거리고 있는 내게 또 다른 이가 다가왔다. 모 방송국 PD라는 사람이었다.

“저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그림 좀 만들려고 하는데, 작품 들고 오는 장면부터 연출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하였던가. 말하는 본새는 정중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새파랗게 젊은 PD가 얄미워 힐끗 째려보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순식간에 내 뇌리를 스치는 것은 우리 가문 중에 지나가는 행인으로라도 TV에 얼굴을 비친 핏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승낙했고, 나는 풀어놓은 중광의 가짜 달마도를 다시 포장하고, 나는 화랑협회 문밖으로 나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그리고 나는 화랑협회 문을 밀치고 들어가 PD가 질문하는 말에 행여 화면에 잘못 나올까 싶어 또박또박 대답하고, 그래 그렇게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며칠 후 9시 뉴스 말미에 내 인터뷰가 멋지게 나오게 되었다. 아 가문의 영광이여. 내가 TV에 나오던 날 내 생애 최고로 많은 전화를 받았다. 속 모르는 이들은 마치 자신이 TV에 나오기라도 한 듯 한껏 고양되어 축하한다는 말을 연실 해댔다. 안목 부족으로 일어난 지난날의 해프닝을 생각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나온다. 물론 그 사건을 계기로 미술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말이다. 축하 전화를 해줬던 그들은 아직도 내가 TV에 나온 것을 기억하고 있을는지.

아참, 청주 모 화랑에서 구입한 또 다른 그림인 최영림의 드로잉은? 그 얘기도 사연이 많다.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나는 걸레

- 중광스님

 

 

             나는 걸레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

            三千大天世界는

            산산이 부서지고

            나는 참으로 고독해서

            넘실넘실 춤을 추는 거야.

 

            나는 걸레

 

            남한강에 잉어가

            싱싱하니

            탁주 한 통 싣고

            배를 띄워라.

 

           별이랑 달이랑 고기랑

           떼들이 모여들어

           별들은 노래를 부르고

           달들은 장구를 치오.

           고기들은 칼을 들어

           고기회를 만드오.

 

           나는 탁주 한 잔

           꺽고서

           덩실 더덩실

           신나게 춤을 추는 게다.

 

          나는 걸레

 

          (중광스님의 자작시 “나는 걸레”)

   

 

* 중광((重光) 1935 ~ 2003)

 

속명은 고창률(高昌律)이며,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걸레스님', '미치광이 중'을 자처하며 파격으로 일관하며 살았다. 1960년 26세 때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로 출가하였으나 불교의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기행 때문에 1979년 승적을 박탈당하였다. 그러나 선화(禪畵)의 영역에서 파격적인 필치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여 명성을 얻었고,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높게 평가받았다.

1977년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에 참석해 〈나는 걸레〉라는 자작시를 낭송한 후 '걸레스님'으로 불렸다. 1979년 미국 버클리대학교 랭커스터 교수가 펴낸 책 《광승》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으며 그로부터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기도 하였다. 미국 뉴욕의 록펠러재단과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 대영박물관 등에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중광의 일화는 김수용 감독의 영화 《허튼 소리》(1986)로 만들어졌고, 이두용 감독의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1990)에는 직접 출연하기도 하였다.

막걸리통에 소주를 담아 마시는 등 과도한 음주와 줄담배로 건강이 나빠지자 1998년 강원도 설악산에 있는 백담사로 들어가 선수행하며 달마 그림에 몰두하였다. 백담사의 오현(五鉉) 스님으로부터 '바위처럼 벙어리가 되라'는 뜻의 '농암'(聾庵)이라는 법호를 받았고, 2000년부터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의 '벙어리 절간'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달마도 그리기에 열중하였다. 2000년 10월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마지막 전시회가 된 〈중광 달마전: 괜히 왔다 간다〉를 열었다. 2002년 3월 9일 타계한 뒤 동년 3월 13일 양산 통도사에서 다비식이 열렸다.

저서로 《허튼 소리》(1989), 《벙어리 절간 이야기》(1997) 등과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와 함께 펴낸 《도적놈 셋이서》(1998) 등이 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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