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미술사의 연금술
40년 작품 세계를 결산하는 회고전:공간 풍경전·피카소와의 만남전·사진전
한성희 <미술사>
영국 팝아트의 기수이자 '수영장의 화가'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호크니.
그는 풍부한 실험정신으로 거의 모든 미술 장르를 섭렵,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펼쳐왔다.
최근 그의 작품 세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세 전시가 파리에서 열렸다.
풍경화를 통해 그의 공간 개념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풍경전> (1. 27~4. 26 퐁피두 센터),
작품 세계에 녹아있는 피카소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피카소와의 만남전> (2. 10~5. 4 피카소 미술관),
미술과 시공간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엿볼 수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사진전>(2. 10~3. 14 유럽 사진의 집). 이를 소개한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가 화가로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다.
이 시기는 비틀스가 인기를 누리고 미니스커트가 유행하기 시작한 영국 대중문화의 전성기.
이때 그는 론 키타이(Ron Kitaj)·앨런 존스(Allen Jones) 등과 함께 60년대 영국 팝아트의 기수로 부상한다.
그리고 60년대 중반 <닉 와일더의 초상> (1966), <텀벙>(1967) 등과 같은 '수영장' 이미지의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 더 이상 이와 같은 작업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호크니는 여전히 영국 팝아트의 기수이자 수영장을 그린 화가로만 기억되고 있다.
실제 그는 특유의 풍부한 실험정신으로 회화· 데생· 판화· 사진·
영화· 무대장식· 일러스트레이션 등 거의 모든 미술 장르에 손을 댔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양식적 면모를 선보였다.
이렇듯 호크니에게 항상 쫓아다니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그의 작품세계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는 세 개의 전시회가 올 봄 파리에서 열렸다.
퐁피두 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공간·풍경전>은 다른 두 전시의 주제를 모두 포괄하는 대규모 전시회.
60년대 '수영장' 시리즈를 비롯해 최근의 그랜드 캐년 및
영국 요크셔 지방 풍경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풍경화들을 한 군데 모아놓았다.
이 풍경화들은 2차원의 화면 속에 공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평생에 걸친 탐구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전시회를 쫓아가다 보면 관람객들은 그의 예술세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피카소와의 만남전>에는 호크니가 피카소의 입체주의에 영향받은 작품들과 함께
피카소와 관련된 주제의 작품, 예를 들어 피카소에게 경의를 표한 작품이나
피카소의 작품을 주제로 한 시를 읽은 후 그에 대한 영감을 표현한 작품 등 5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호크니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미술양식을 섭렵했기에 그가 영향받은 작가 역시 많은 편이다.
그중 그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은 바로 피카소다.
호크니는 피카소를 통해 예술가란 한 가지 방법만을 가지고 닫힌 틀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새로운 표현방식을 꾸준히 탐색해야 한다는 예술관을 갖게 된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공간과 평면의 상반되는 개념을 서로 연결시켜 나름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연 점이다.
이 전시회의 기획 의도 역시 바로 이러한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또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사진전>에는 사진을 바탕으로 한 콜라주 작품들과
일상적인 스냅 사진들이 함께 전시되었다.
호크니는 사진찍기를 매우 좋아해 그를 둘러싼 주변, 즉 가족이나 친구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들 스냅 사진은 그의 일상적인 삶의 단편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그리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한 콜라주 작품은 그가 어떻게
피카소의 입체주의적 시각을 재해석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일상적 친밀함과 막연한 기이함
호크니의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친밀함'과 '막연한 기이함'이다.
즉, 그의 일상적인 주제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떤 친밀함과 동시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사춘기 때 언젠가 그가 집에 돌아오는데 아버지가 길가 공중전화 박스 옆에
평소 즐겨앉던 안락의자를 가져다놓고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까 아버지는 당구대를 팔려고 내놓았는데
그 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일화는 호크니가 자기 작품의 특성과 한 사람의 인간
혹은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밝히기 위해 종종 들려주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호크니가 어떻게 일상적인 친밀함과 기이함을 한데 얽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즉, 아버지의 안락의자는 원래 있던 자리와는 전혀 다른 길바닥 위에 나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자 주인은 평소대로 편안한 자세로 신문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친숙한 삶 속에 그 무엇인가 이상하고 어색한 것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 바로 호크니 작품의 특성이며,
영국 팝아트를 미국의 팝아트와 달리 볼 수 있는 점이 되기도 한다.
60년대 초 주목받는 화가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호크니는 미국·이집트·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한다.
이 여행을 통해 20대의 젊은 호크니는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미술에 토대가 되는 틀을 마련하게 된다.
특히 이집트 여행에서 깨달은 이집트 미술의 익명성과 평면성·시간성은
호크니 미술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미술을 '우리'라는 개념 속에 깃들여 있는 집단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팝아트 세대에 속하는 이 화가가 이집트 미술의 익명성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평면적인 이집트 미술 속에는 신화의 내용과 사회상을 표현하는 이야기가 전개되어 있는데,
이같은 평면성과 시간성의 합치는 '전형적'인 추상미술에서 야기되는
지나치게 형식주의적인 얄팍함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보였다.
즉, 호크니는 미술의 순수한 조형성 속에 서술적인 요소를 집어넣음으로써
결국 그가 즐겨 말하는 것처럼 "절충적인 화가"로서의 면모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세계는 다음과 같이 연대별로 살펴볼 수 있다.
60년대 초기의 작품 <이탈리아 여행-스위스 풍경>(1962)에는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되어온 알프스 산맥 지층의 지질학적인 단면도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길을 달리고 있는 자동차가 나온다.
이들은 각각 '유구함'과 '순간성'이라는 대립되는 시간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렇듯 대립되는 시간 개념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 당시 호크니 그림의 주제적인 특징이다.
형식적으로는 프랭크 스탤라나 케네스 놀랜드 등의 '줄무늬 회화' 혹은
'색면회화'와 같은 추상회화에 영향받았는데, 그의 풍경화에 나오는
지층의 단면도 같은 산의 모습이 바로 그 영향임을 보여주는 요소다.
물·평면성·공간성
호크니의 예술에 있어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는 아마도 60년대 중반일 것이다.
<텀벙>이라는 작품으로 대표될 수 있는 '수영장' 시리즈는
호크니에게 명성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회화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덧붙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60년대 초기에 그가 다루었던 주제,
즉 서로 반대되는 시간 개념의 포개짐은 <텀벙>에서도 다시 한번 제기된다.
"물방울을 사진으로 찍기 위해선 단지 3백분의 1초만이 필요했으나
그것을 그리기 위해선 75시간이나 걸렸다"는 언급에서
그가 순간과 지속이라는 개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이 작품에서 호크니는 근대 회화의 쟁점인 '평면성'이라는 문제에 다시 한번 주목한다.
작품 둘레의 여백은 이 그림이 2차원의 화면 공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한다.
반면 다이빙 발판은 어느 정도 경사를 이루며 기울어져 있어 '깊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되었다.
그리고 수영장 물의 표면 위에 흰색으로 처리된 물방울은 메를로 퐁티가 일컬은 대로
"깊이감을 나타내기 위한 소동"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바로 이 물방울이 물의 표면 밑에 무언가 감춰져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러나 2차원이라는 표면성은 건물과 창문, 그리고 터키색 하늘의 정면성에 의해 또다시 나타난다.
즉, 그는 '평면성'과 어떤 '깊이감'을 하나의 화면에 넣기 위해 시도했고,
그럼으로써 그 두 대립 개념은 서로 절묘하게 절충된 것이다.
<잘 가꾸어진 잔디>(1967) 등에서도 호크니는 물의 깊이감과 반사면에 대해 강한 흥미를 보인다.
그 이유는 2차원의 표면과 관련되면서도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감을 보이는 소재가 바로 '물'이며,
그에게 있어 '물'이야말로 회화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즉 '평면성'과 '공간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호크니는 <비시의 온천공원>(1970),
<클라크와 퍼시의 초상>(1971) 등과 같은 '2인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비시의 온천공원>에서는 양쪽으로 잘 정렬된 정원의 키 큰 나무들이 깊은 공간감을 느끼게 해 주고,
<클라크와 퍼시의 초상>에는 연극 무대의 공간 같은 깊이감이 있다.
그는 이들 2인 초상화에서 모더니즘 회화 논리와는 양립할 수 없는
깊이감이라는 논리를 다시 도입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미술은 신고전주의적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반대로 호크니는 이 작품들에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한 요소는 어떠한 것도 집어넣지 않았다.
<비시의 온천공원>의 관람객을 등지고 멀리 공원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두 인물과 그 왼쪽 옆의 빈 의자,
그리고 <클라크와 퍼시의 초상>의 거리가 충분하면서도 서로를 보지 않고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는 두 인물은 바로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표현한다.
이를 통해 호크니는 말할 수 없는 그 무엇,
즉 침묵적인 신비로움을 그림의 공간 속에 표현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호크니는 윌리엄 호가드의 판화
'방탕아의 편력' 시리즈를 새롭게 바라봄으로써 고전적인 원근법에 대한 정열이 식게 된다.
원근법을 따르지 않은 호가드의 판화를 통해 그는
이같은 법칙 위반이
오히려 의외의 환상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커비(호가드를 따라서), 유익한 지식>(1975)에서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읽을 수 있다.
전통적 원근법만이 공간을 암시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새로운 해결책으로서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새롭게 읽기 시작한다.
피카소 입체주의의 새로운 해석
80년대로 넘어오면서 호크니는 피카소의 입체주의에 영향받은 주관적인 공간과,
반 고흐식의 강렬한 색채로 과장되게 표현되는 새로운 풍경화를 선보인다.
사실 그는 일찍부터 피카소에 빠져 있었지만 정작 이 대가의 양식과
시각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 것은 80년 이후,
즉 뉴욕 MoMA에서 열렸던 피카소의 회고전 이후부터였다.
피카소를 통해 호크니는 입체주의의 다양한 시점에 의한 공간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 것이다.
<아칼탄 호텔 안뜰 산책> (1985)이 대표적인 예로, 논리적으로는 쑥 들어가 있어야 하는 공간을
관객 쪽을 향해 확장시킴으로써 원근법의 규칙을 무시하고,
그 결과 공간이 변형되면서 표현주의적인 효과를 거둔 것이다.
입체주의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재구성하는 경향은
82년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한 작업으로 더욱 가속화된다.
이같은 경향은 하나의 오브제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 해체했다가 다시 구성한
<1985년 8월 10일 파리의 뤽상부르그 공원> (1985) 같은 사진 콜라주 작품들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본래 사진을 좋아한 호크니는 처음엔 입체주의 정물화에 대한 단순한 모방으로
이 사진 콜라주 작업을 시작했으나 점차 더 복잡하고 야심만만한 작업으로 성장시켜간다.
호크니는 여러 시점에서 각기 다른 시간에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자르고 재구성한다.
사진에 내재되어 있는 원근법의 법칙을 완전히 뒤엎어버림으로써
사진이 갖고 있는 재현이라는 체계를 완전히 해체시킨 것이다.
여기에 사진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합치시킴으로써
결국 좀더 생생하고 현실적인 공간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호크니는 자신의 사진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진이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해주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을 믿는다.
그러나 원근법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없애고 현재의 시점을 다양화함으로써
사진을 이전과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좀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90년부터 호크니는 캘리포니아의 풍경화를 그리는 데 몰두한다.
대부분 붉은 색을 주조로 한 파노라마식의 풍경화들인데,
최근 그랜드 캐년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입체주의적 시각으로
각각 다른 시점에서 그린 수십 개의 소형 패널들을 이어붙였다.
한편 그의 고향인 영국의 요크셔 지방을 주제로 한 풍경화는
물결치는 소용돌이 모양이나 곡선 등과 같은 추상적 요소들로
자그마한 산등성이나 골짜기들을 표현했다.
호크니의 예술 행로는 한마디로 화면의 평면성과
현실의 공간성 사이를 끊임없이 탐색한 과정이다.
그는 최근의 인터뷰에서 그의 생각을 아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간과 평면 혹은 재현과 추상은 서로 각각 포용해야 하고,
더 나아가 어떤 의미에서는 동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요소를 서로 분리시키는 우를 범했다.
… 나 스스로도 이처럼 간단한 개념을 파악하는 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40년 작품 세계를 결산하는 회고전:공간 풍경전·피카소와의 만남전·사진전
한성희 <미술사>
영국 팝아트의 기수이자 '수영장의 화가'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호크니.
그는 풍부한 실험정신으로 거의 모든 미술 장르를 섭렵, 다양한 양식의 작품을 펼쳐왔다.
최근 그의 작품 세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세 전시가 파리에서 열렸다.
풍경화를 통해 그의 공간 개념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풍경전> (1. 27~4. 26 퐁피두 센터),
작품 세계에 녹아있는 피카소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피카소와의 만남전> (2. 10~5. 4 피카소 미술관),
미술과 시공간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엿볼 수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사진전>(2. 10~3. 14 유럽 사진의 집). 이를 소개한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가 화가로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다.
이 시기는 비틀스가 인기를 누리고 미니스커트가 유행하기 시작한 영국 대중문화의 전성기.
이때 그는 론 키타이(Ron Kitaj)·앨런 존스(Allen Jones) 등과 함께 60년대 영국 팝아트의 기수로 부상한다.
그리고 60년대 중반 <닉 와일더의 초상> (1966), <텀벙>(1967) 등과 같은 '수영장' 이미지의 작품으로 유명해진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 더 이상 이와 같은 작업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호크니는 여전히 영국 팝아트의 기수이자 수영장을 그린 화가로만 기억되고 있다.
실제 그는 특유의 풍부한 실험정신으로 회화· 데생· 판화· 사진·
영화· 무대장식· 일러스트레이션 등 거의 모든 미술 장르에 손을 댔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양식적 면모를 선보였다.
이렇듯 호크니에게 항상 쫓아다니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그의 작품세계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는 세 개의 전시회가 올 봄 파리에서 열렸다.
퐁피두 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공간·풍경전>은 다른 두 전시의 주제를 모두 포괄하는 대규모 전시회.
60년대 '수영장' 시리즈를 비롯해 최근의 그랜드 캐년 및
영국 요크셔 지방 풍경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풍경화들을 한 군데 모아놓았다.
이 풍경화들은 2차원의 화면 속에 공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평생에 걸친 탐구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전시회를 쫓아가다 보면 관람객들은 그의 예술세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피카소와의 만남전>에는 호크니가 피카소의 입체주의에 영향받은 작품들과 함께
피카소와 관련된 주제의 작품, 예를 들어 피카소에게 경의를 표한 작품이나
피카소의 작품을 주제로 한 시를 읽은 후 그에 대한 영감을 표현한 작품 등 5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호크니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미술양식을 섭렵했기에 그가 영향받은 작가 역시 많은 편이다.
그중 그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은 바로 피카소다.
호크니는 피카소를 통해 예술가란 한 가지 방법만을 가지고 닫힌 틀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새로운 표현방식을 꾸준히 탐색해야 한다는 예술관을 갖게 된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공간과 평면의 상반되는 개념을 서로 연결시켜 나름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연 점이다.
이 전시회의 기획 의도 역시 바로 이러한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또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사진전>에는 사진을 바탕으로 한 콜라주 작품들과
일상적인 스냅 사진들이 함께 전시되었다.
호크니는 사진찍기를 매우 좋아해 그를 둘러싼 주변, 즉 가족이나 친구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이들 스냅 사진은 그의 일상적인 삶의 단편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그리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한 콜라주 작품은 그가 어떻게
피카소의 입체주의적 시각을 재해석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일상적 친밀함과 막연한 기이함
호크니의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친밀함'과 '막연한 기이함'이다.
즉, 그의 일상적인 주제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떤 친밀함과 동시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사춘기 때 언젠가 그가 집에 돌아오는데 아버지가 길가 공중전화 박스 옆에
평소 즐겨앉던 안락의자를 가져다놓고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까 아버지는 당구대를 팔려고 내놓았는데
그 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일화는 호크니가 자기 작품의 특성과 한 사람의 인간
혹은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밝히기 위해 종종 들려주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호크니가 어떻게 일상적인 친밀함과 기이함을 한데 얽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즉, 아버지의 안락의자는 원래 있던 자리와는 전혀 다른 길바닥 위에 나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자 주인은 평소대로 편안한 자세로 신문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친숙한 삶 속에 그 무엇인가 이상하고 어색한 것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 바로 호크니 작품의 특성이며,
영국 팝아트를 미국의 팝아트와 달리 볼 수 있는 점이 되기도 한다.
60년대 초 주목받는 화가로 떠오르기 시작하던 호크니는 미국·이집트·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한다.
이 여행을 통해 20대의 젊은 호크니는 그동안 혼란스러웠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미술에 토대가 되는 틀을 마련하게 된다.
특히 이집트 여행에서 깨달은 이집트 미술의 익명성과 평면성·시간성은
호크니 미술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미술을 '우리'라는 개념 속에 깃들여 있는 집단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팝아트 세대에 속하는 이 화가가 이집트 미술의 익명성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평면적인 이집트 미술 속에는 신화의 내용과 사회상을 표현하는 이야기가 전개되어 있는데,
이같은 평면성과 시간성의 합치는 '전형적'인 추상미술에서 야기되는
지나치게 형식주의적인 얄팍함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보였다.
즉, 호크니는 미술의 순수한 조형성 속에 서술적인 요소를 집어넣음으로써
결국 그가 즐겨 말하는 것처럼 "절충적인 화가"로서의 면모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세계는 다음과 같이 연대별로 살펴볼 수 있다.
60년대 초기의 작품 <이탈리아 여행-스위스 풍경>(1962)에는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되어온 알프스 산맥 지층의 지질학적인 단면도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길을 달리고 있는 자동차가 나온다.
이들은 각각 '유구함'과 '순간성'이라는 대립되는 시간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렇듯 대립되는 시간 개념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 당시 호크니 그림의 주제적인 특징이다.
형식적으로는 프랭크 스탤라나 케네스 놀랜드 등의 '줄무늬 회화' 혹은
'색면회화'와 같은 추상회화에 영향받았는데, 그의 풍경화에 나오는
지층의 단면도 같은 산의 모습이 바로 그 영향임을 보여주는 요소다.
물·평면성·공간성
호크니의 예술에 있어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는 아마도 60년대 중반일 것이다.
<텀벙>이라는 작품으로 대표될 수 있는 '수영장' 시리즈는
호크니에게 명성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회화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덧붙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60년대 초기에 그가 다루었던 주제,
즉 서로 반대되는 시간 개념의 포개짐은 <텀벙>에서도 다시 한번 제기된다.
"물방울을 사진으로 찍기 위해선 단지 3백분의 1초만이 필요했으나
그것을 그리기 위해선 75시간이나 걸렸다"는 언급에서
그가 순간과 지속이라는 개념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이 작품에서 호크니는 근대 회화의 쟁점인 '평면성'이라는 문제에 다시 한번 주목한다.
작품 둘레의 여백은 이 그림이 2차원의 화면 공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한다.
반면 다이빙 발판은 어느 정도 경사를 이루며 기울어져 있어 '깊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되었다.
그리고 수영장 물의 표면 위에 흰색으로 처리된 물방울은 메를로 퐁티가 일컬은 대로
"깊이감을 나타내기 위한 소동"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바로 이 물방울이 물의 표면 밑에 무언가 감춰져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러나 2차원이라는 표면성은 건물과 창문, 그리고 터키색 하늘의 정면성에 의해 또다시 나타난다.
즉, 그는 '평면성'과 어떤 '깊이감'을 하나의 화면에 넣기 위해 시도했고,
그럼으로써 그 두 대립 개념은 서로 절묘하게 절충된 것이다.
<잘 가꾸어진 잔디>(1967) 등에서도 호크니는 물의 깊이감과 반사면에 대해 강한 흥미를 보인다.
그 이유는 2차원의 표면과 관련되면서도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감을 보이는 소재가 바로 '물'이며,
그에게 있어 '물'이야말로 회화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
즉 '평면성'과 '공간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호크니는 <비시의 온천공원>(1970),
<클라크와 퍼시의 초상>(1971) 등과 같은 '2인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비시의 온천공원>에서는 양쪽으로 잘 정렬된 정원의 키 큰 나무들이 깊은 공간감을 느끼게 해 주고,
<클라크와 퍼시의 초상>에는 연극 무대의 공간 같은 깊이감이 있다.
그는 이들 2인 초상화에서 모더니즘 회화 논리와는 양립할 수 없는
깊이감이라는 논리를 다시 도입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미술은 신고전주의적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반대로 호크니는 이 작품들에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한 요소는 어떠한 것도 집어넣지 않았다.
<비시의 온천공원>의 관람객을 등지고 멀리 공원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두 인물과 그 왼쪽 옆의 빈 의자,
그리고 <클라크와 퍼시의 초상>의 거리가 충분하면서도 서로를 보지 않고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는 두 인물은 바로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표현한다.
이를 통해 호크니는 말할 수 없는 그 무엇,
즉 침묵적인 신비로움을 그림의 공간 속에 표현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호크니는 윌리엄 호가드의 판화
'방탕아의 편력' 시리즈를 새롭게 바라봄으로써 고전적인 원근법에 대한 정열이 식게 된다.
원근법을 따르지 않은 호가드의 판화를 통해 그는
이같은 법칙 위반이
오히려 의외의 환상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커비(호가드를 따라서), 유익한 지식>(1975)에서 이러한 생각의 전환을 읽을 수 있다.
전통적 원근법만이 공간을 암시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새로운 해결책으로서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새롭게 읽기 시작한다.
피카소 입체주의의 새로운 해석
80년대로 넘어오면서 호크니는 피카소의 입체주의에 영향받은 주관적인 공간과,
반 고흐식의 강렬한 색채로 과장되게 표현되는 새로운 풍경화를 선보인다.
사실 그는 일찍부터 피카소에 빠져 있었지만 정작 이 대가의 양식과
시각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 것은 80년 이후,
즉 뉴욕 MoMA에서 열렸던 피카소의 회고전 이후부터였다.
피카소를 통해 호크니는 입체주의의 다양한 시점에 의한 공간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 것이다.
<아칼탄 호텔 안뜰 산책> (1985)이 대표적인 예로, 논리적으로는 쑥 들어가 있어야 하는 공간을
관객 쪽을 향해 확장시킴으로써 원근법의 규칙을 무시하고,
그 결과 공간이 변형되면서 표현주의적인 효과를 거둔 것이다.
입체주의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재구성하는 경향은
82년 폴라로이드 사진을 통한 작업으로 더욱 가속화된다.
이같은 경향은 하나의 오브제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 해체했다가 다시 구성한
<1985년 8월 10일 파리의 뤽상부르그 공원> (1985) 같은 사진 콜라주 작품들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본래 사진을 좋아한 호크니는 처음엔 입체주의 정물화에 대한 단순한 모방으로
이 사진 콜라주 작업을 시작했으나 점차 더 복잡하고 야심만만한 작업으로 성장시켜간다.
호크니는 여러 시점에서 각기 다른 시간에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자르고 재구성한다.
사진에 내재되어 있는 원근법의 법칙을 완전히 뒤엎어버림으로써
사진이 갖고 있는 재현이라는 체계를 완전히 해체시킨 것이다.
여기에 사진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합치시킴으로써
결국 좀더 생생하고 현실적인 공간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호크니는 자신의 사진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진이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재현해주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을 믿는다.
그러나 원근법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없애고 현재의 시점을 다양화함으로써
사진을 이전과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좀더 흥미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90년부터 호크니는 캘리포니아의 풍경화를 그리는 데 몰두한다.
대부분 붉은 색을 주조로 한 파노라마식의 풍경화들인데,
최근 그랜드 캐년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입체주의적 시각으로
각각 다른 시점에서 그린 수십 개의 소형 패널들을 이어붙였다.
한편 그의 고향인 영국의 요크셔 지방을 주제로 한 풍경화는
물결치는 소용돌이 모양이나 곡선 등과 같은 추상적 요소들로
자그마한 산등성이나 골짜기들을 표현했다.
호크니의 예술 행로는 한마디로 화면의 평면성과
현실의 공간성 사이를 끊임없이 탐색한 과정이다.
그는 최근의 인터뷰에서 그의 생각을 아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간과 평면 혹은 재현과 추상은 서로 각각 포용해야 하고,
더 나아가 어떤 의미에서는 동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요소를 서로 분리시키는 우를 범했다.
… 나 스스로도 이처럼 간단한 개념을 파악하는 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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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그리고 맑음 **수채화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