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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진심을 알고 그들은 함께 떠난다. 그리고 끝내 살아있는 장남을 만나고야 만다. 이 영화는 그러나 단지 부자간의 정만을 담은 영화 차원이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조국을 위한 목숨을 다 바친 숭고한 애국심이 잘 표현된 영화다. 터키와 호주 생판 모른 나라끼리 싸울 일이 없어야 하는데도 그들은 수만명씩이나 목숨을 거는 전쟁을 치렀다는 건 뭘로도 설명이 안되는 일이다. 단지 땅이 필요한 게 아닐 만큼 호주는 드넓은 대륙이 아닌가.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대답을 했지만 목숨 보다 더 소중한 원칙이란 뭔가. 칸트의 위대한 선의지라도 된단 말인가. 이렇게 영화는 인간 전쟁역사의 근원적 문제를 통찰하고 있었다.
전쟁은 이제 막아야 한다. 언제나 전쟁을 먼저 일으킨 쪽이 명분을 앞세우는데 국가이익이라는 명분인데 그러나 침략을 먼저 하면서 그런 명분이 통할 리가 없지 않는가. 우리의 근대역사는 왜놈의 침략사다. 그들의 명분또한 마찬가지로 자국의 이익선에 조선을 포함시켜놓고 침략의 명분을 삼았던 거다. 조선을 먼저 치지 않으면 우리가 당하니까 침략해야한다는 그 선동이 먹힌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애국심이다. 얼마나 숭고한 감정인데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도 있다는 게 아닌가. 원칙이 세워지지 않으면 군중심리로서 악용당하고야 마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제 세계 평화는 어떻게 달성되는가. 문제는 언제나 침략의 정당화로서 여전히 미일 패권주의로 인해 전쟁이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비극 앞에서 여전히 그들 전쟁의 명분이 필요하고 외부의 적이 요청되니까 여론을 앞세워서 적으로 삼아야하고 그런 적국이 지금은 북한이고 테러집단으로서 우려먹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평화는 늘상 위태로울 뿐이다. 이제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선언할 시점에 와 있다. 우선 침략을 멈춰야 한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남의 나라 주권을 간섭할 수는 없다는 대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북한과 남한은 같은 민족인데도 적군이 되어 있다. 적대적으로 정책을 추구하니까 적이 될 뿐이 아닌가. 총을 겨누고 있으면서 상대방의 위협을 비난할 수는 없지 않는가. 동시에 함께 총을 내려놓기만 하면 전쟁의 종식이 되는 아주 간단한 방식을 왜 못하는가. 애국심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자기 양심의 원칙을 배신한 그 결과로서 비극은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집단 이전에 먼저 개인이 앞서 존재한다. 개인에게는 이성과 양심이 주어져 있다. 그게 원칙을 제시하고 있으며 선의지라고 불리운다. 남을 존중해야 나도 존중받는다는 기본이 지켜지기만 하면 평화는 도래하는 법이다. 내가 무기를 사들이고 총질을 해대고 대규모 군사훈련을 자행하면서 남을 나무랄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내가 평화정책을 실천하지 않는 그게 근원적 악이라는 거다. 주둥이로 떠드는 평화가 아니고 실천하는 평화적 정책을 펼치는 걸로서만 전쟁은 막을 수가 있다. 소위 자위권에도 휘둘려서는 안되는 법이다.
우선 평화헌법을 새롭게 만들고 중립적 연방국가로서 남북의 적대적 대결을 종식시키는 그 방식은 이미 고려연방제통일방안으로 수십년 전에 제시되어 있다. 두 정부체제를 그대로 두고도 얼마든지 평화적 국가체제로의 이행이 가능한 유일한 방식으로서 연방의회와 연방공화국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내는 그 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