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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 목사 연구방

간신히 유복자를 면한 손양원 목사 막내아들

작성자이명재 목사|작성시간17.07.04|조회수763 목록 댓글 0




손양원 목사가 순교한 날은 1950년 9월 28일 밤이다. 이 날은 수도 서울을 수복한 날이기도 하다. 퇴각하던 인민군들이 여수 근교 미평 과수원에서 총을 쏘아 손양원 목사의 목숨을 앗아갔다.


총살당하기 직전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김창수의 증언에 의하면 순교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끌고 가는 인민군들에게 예수 믿으라며 전도를 했다고 한다. 김창수는 동신의 친구이다.


손양원 목사가 순교한 날 아침에 태어난 막내아들이 동길이다. 동길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필리핀 선교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아버지가 섬겼던 애양원에서 봉사하며 지내고 있다.


몇 시간 차이로 동길이 유복자를 면했다고 했다. 아침에 아기가 태어나고 그 날 밤에 아버지가 죽은 것이다. 어떤 분이 위의 사진을 보고 이의를 제기해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해도 갓 태어난 아기가 저렇게 바깥바람을 쐴 수는 없다고.


타당한 이의 제기 같지만 당시 상황을 숙고(熟考)하지 않은 결과이다. 손양원 목사가 희생된 날은 1950년 9월 28일이다. 장례 예배는 다음 달인 10월 13일 날 드렸다. 부산 고려고등성경학교 교장 오종덕 목사가 집례했고, 설교는 고려신학교 교장 박윤선 목사가 맡았다.


그러니까 위의 사진은 손양원 목사 사후 적어도 16일 뒤에 찍은 것이 된다. 다시 말해 막내아들 동길 생후 16일 후에 찍은 사진이다. 갓 태어난 핏덩이가 아니라 조금 자란 상태로 보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보통 세이레라고 해서 그 사이 아이를 위해 지킬 것들이 많다. 바같출입을 삼가는 것도 거기에 포함된다. 허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 동길을 그렇게 놓아 두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삼일장을 치르는데 손양원 목사는 16일 만에 장례를 치른 셈이 된다.


시신을 수습하고 또 애양원까지 운구하고, 믿음의 아버지인 손양원 목사였기 때문에 얽혀 있는 사연들이 많을 것이다. 이에 대한 연구가 뒤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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