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浮雲작성시간26.06.15
분황사 금강역사상은 증국 북제 북주 금강역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신에 X자 모양으로 天衣를 걸쳤으며 하반신에는 치마인 裙을 들렀다. 머리카락을 끌어올려 묶은 상투에는 꽃모양으로 장식했다. 넓고 둥근 이마에 크게 뜬 눈, 추켜세운 누썹, 돌출된 과대뼈, X자 모양 전의는 북제, 북주, 당나라 금강역사상에 비해 목이나 가슴 근육을 좀 더 과장되게 표현하였는데 분황사 금강역사상 역시 같은 범주에 둘 수 있다.
작성자浮雲작성시간26.06.15
분황사 금강역사상은 손에 아무 것도 들지 않은 소위 권법자세를 취했다. 금강역사는 금강저를 쥐고 있어 금강역사라고 부르지만 늘 금강저를 쥐는 것은 아니다. 6-7세기 중국의 금강역사 역시 금강저를 쥔 것과 권법자세가 공존하는데 이들을 서로 구분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작성자浮雲작성시간26.06.15
분명한 점은 중국에서는 금강저를 쥔 금강역사상으로 시작하지만 6세기 전반부터 맨손의 금강역사가 등장한다. 이후에는 북위 공현 5굴 외벽 입구 좌우의 금강역사상처럼 금강저를 쥔 금강역사상과 맨손의 금강역사상이 병존하며 사자를 동반하기도 한다.
작성자浮雲작성시간26.06.15
분황사 석탑 기단의 네 모서리에 사자상이 각 1구씩 있지만 처음에는 사자상이 탑문 좌우, 즉 금강역사상 바로 엎에 1구씩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분황사 금강역사상 역시 6-7세기 동아시아 금강역사상과 마찬가지로 사지상을 동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