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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역사상의 계보 ㅡ 구황동 전도림사지 금강역사상

작성자계림|작성시간26.06.17|조회수7 목록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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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浮雲 | 작성시간 26.06.17 구황동 금강역사상은 분황사 금강역사상보다 신체가 길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여러면에서 상통한다.
    원래 모전석탑이었다는 점, 1층탑신 문 좌우에 금강역사상만 별도로 고부조로 조각하여 세운 점도 같다. 특히 문비석을 올려놓기 위해 상단의 모서리 부분을 잘라낸 모양도 같다.
  • 작성자浮雲 | 작성시간 26.06.17 현장에 남아있는 4구는 2구씩 서로 짝을 지어 놓여 있는데 4구 모두 손에 지물이 없다. 또 바깥쪽의 팔을 들어 권법 자세를 취하고 있다.
  • 작성자浮雲 | 작성시간 26.06.17 금강역사상은 몸은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얼굴 방향은 모두 다르다. 정면을 바라보기도 하고 중앙의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 작성자浮雲 | 작성시간 26.06.17 남겨진 6구의 금강역사상은 모두 벗은 상반신 위에 천의를 걸치고 있으며, 하반신의 천의는 이전 시기에 유행했던 X자형이 아닌 U자형을 그리고 있어 제작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하반신의 U자형 천의 자락, 4등신인 분황사 금강역사상에 비해 신체의 길이가 길어진 점 등은 분황사 금강역사상보다 진전된 모습인데 분황사 금강역사상이 제작된 634년보다 늦은 시기인 7세기 중후반에 제작됐을 것으로 주정된다.
  • 작성자浮雲 | 작성시간 26.06.17 분황사와 구황동의 금강역사상은 마치 탑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환조에 가까운 고부조로 조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문 좌우에 실제로 금강역사상이 서 있는 모습을 고부조로 재현한 결과이다.
    특히 금강역사상이 밟고 있는 암좌는 앞으로 돌츨되어 있어 입체적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모습은 이전 시기에 독립상으로 조성했던 금강역사상을 사리 수호를 위해 탑에 세워두게 된 것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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