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 30년(1243) 봄 정월 경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최린(崔璘)과 비서소감(秘書少監) 김지대(金之岱)를 파견하여 몽고로 가게 하여 토산물을 바쳤다.
2월 신해. 태백성(太白星, 금성)이 낮에 나타났다.
임술. 연등회(燃燈會)를 열고 왕이 친히 소재도량(消災道場)을 열었다.
무진. 각 도(道)에 순문사(巡問使)를 파견하였다. 민희(閔曦)를 경상주도(慶尙州道)에, 손습경(孫襲卿)을 전라주도(全羅州道)에, 송국첨(宋國瞻)을 충청주도(忠淸州道)에 보내었다.
3월 정축. 초하루 일식(日食)이 일어났다.
신묘. 왕이 현성사(賢聖寺)에 행차하였다.
여름 5월 을유. 왕이 본궐(本闕)로 돌아왔다.
가뭄 때문에 전국의 〈참형과 교형〉 2죄(二罪) 이하의 죄수를 사면하고, 내전(內殿)에서 5일간 운우도량(雲雨道場)을 열었다.
6월 병오. 초하루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갔는데, 가뭄 때문에 일산과 부채[繖扇]를 사용하지 않았다.
무신. 큰 비(大雨)가 내렸다.
가을 7월 유경로(柳卿老)와 정진(丁瑨)을 파견하여 몽고로 가게 하였다.
흥국사(興國寺)를 창건하였다.
8월 경오. 중죄수 16인을 용서하여 섬으로 유배 보냈다.
세조(世祖)와 태조(太祖)를 강화(江華) 개골동(盖骨洞)으로 이장(移葬)하였다.
윤8월 정해. 왕이 현성사(賢聖寺)에 행차하였다.
기해. 왕이 왕륜사(王輪寺)에 행차하였다.
9월 임술. 왕이 묘통사(妙通寺)에 행차하였다.
경오. 왕이 내전(內殿)에서 소재도량(消災道場)을 열었다.
임신. 금주방어관(金州防禦官)이 보고하기를, “일본국(日本國)에서 토산물을 바쳤으며, 또 우리나라에서 풍랑으로 표류한 사람들을 돌려보냈습니다.”라고 하였다.
겨울 10월 병자. 왕이 이궁(離宮)으로 거처를 옮겼다.
계사. 몽고 사신 이가대(伊加大)와 아토(阿土), 노거(奴巨) 등 24인이 왔다.
갑오. 몽고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정유. 용산별감(龍山別監) 박익유(朴益儒)가 백성들을 괴롭히며 착취하였으므로 법사(法司)에서 사사로이 사용한 곳을 조사하여 비단 150필을 추징[折徵]하고 바닷섬으로 유배 보냈다.
11월 갑진. 왕이 내전(內殿)에서 친히 소재도량(消災道場)을 열었다.
기유. 왕이 본궐(本闕)로 돌아왔다.
12월 갑신. 낭중(郞中) 유경로(柳卿老)를 파견하여 몽고로 가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