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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백제의 여운 ㅡ 부여 재현 능사(陵寺)

작성자浮雲| 작성시간26.06.07| 조회수0|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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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7 능사(陵寺)는 한자 그대로 '왕릉(능)을 수호하고 죽은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사찰(절)'을 말한다. 왕릉 옆에 두고 제사 음식을 준비하거나 능을 관리하던 원찰(願刹)인 것이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7 대표적인 능사는 부여 능산리 사지 (백제 능사)로 능산리 고분군(왕릉군)과 나성 사이에서 발굴된 절터로 고분의 주인공인 성왕의 명복을 빌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위덕왕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7 능사의 주요 역할로는 왕릉에서 치르는 제사에 쓰일 향과 초를 조달하고 제례를 지원하는 ​향화(香火)의 유지와 돌아가신 왕이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추복(追福) 등 불교 사찰 본연의 기능을 수행했다.
    또한 국가적인 차원에서 왕릉 주변의 산림과 묘역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초소 및 관리소 역할이 ​수호(守護) 기능을 겸했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7 이곳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백제 유물로 꼽히는 백제 금동대향로(국보)와 부여 능산리 사지 석조사리감(국보)이 출토되었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7 부여 능사는 백제의 성왕(聖王)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성왕은 백제의 중흥을 이끌며 수도를 사비(부여)로 옮긴 인물이었으나, 554년 신라와의 관산성 전투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위덕왕(창왕)은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슬퍼하며 왕위를 포기하고 승려가 되려 했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신하들의 만류로 왕위에 오른 위덕왕은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 성왕의 무덤(능산리 고분군) 바로 옆에 이 특별한 왕실 사찰, '능사'를 창건했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7 부여 능사는 백제 전형적인 사찰 구조인 '1탑 1금당' 구조를 가장 정밀하게 보여준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일직선상에 배치가 되었다.

    ​중문(정문) ➔ 목탑 ➔ 금당(본당) ➔ 강당(학문 공간)

    ​특이한 점은 왕릉의 바로 옆이라는 좁은 골짜기 지형에 지어지다 보니, 좌우 폭은 좁고 남북으로 긴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절터 서편에는 금동대향로가 발견된 공방(공예품을 만들던 곳) 터가 따로 존재하여, 이곳이 단순히 기도만 하던 곳이 아니라 왕실의 수준 높은 의례 용품을 직접 생산하던 국가 기관이었음을 보여준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7 ​부여 능사는 백제 위덕왕이 비극적으로 전사한 아버지 성왕을 추모하기 위해 567년에 건립한 백제 왕실의 격조 높은 원찰이다. 비록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이곳에서 나온 금동대향로와 석조사리감은 백제의 뛰어난 미의식과 과학 기술을 증명하는 최고의 유산이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7 능사 가람배치도<1탑1금당>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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