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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7 부여 능사는 백제의 성왕(聖王)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성왕은 백제의 중흥을 이끌며 수도를 사비(부여)로 옮긴 인물이었으나, 554년 신라와의 관산성 전투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위덕왕(창왕)은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슬퍼하며 왕위를 포기하고 승려가 되려 했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신하들의 만류로 왕위에 오른 위덕왕은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 성왕의 무덤(능산리 고분군) 바로 옆에 이 특별한 왕실 사찰, '능사'를 창건했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07 부여 능사는 백제 전형적인 사찰 구조인 '1탑 1금당' 구조를 가장 정밀하게 보여준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일직선상에 배치가 되었다.
중문(정문) ➔ 목탑 ➔ 금당(본당) ➔ 강당(학문 공간)
특이한 점은 왕릉의 바로 옆이라는 좁은 골짜기 지형에 지어지다 보니, 좌우 폭은 좁고 남북으로 긴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절터 서편에는 금동대향로가 발견된 공방(공예품을 만들던 곳) 터가 따로 존재하여, 이곳이 단순히 기도만 하던 곳이 아니라 왕실의 수준 높은 의례 용품을 직접 생산하던 국가 기관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