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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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3 이 불상의 정확한 존명(보살의 이름)은 고고학·미술사학계에서 오랜 기간 연구와 논란이 이어져 왔으며, 현재 공식 문화유산 명칭은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으로 특정 존명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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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3 이 불상은 과거 문화재 지정 당시 '군수리 금동미륵보살입상'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6세기 당시 삼국시대(특히 백제와 신라)에 미륵 신앙이 크게 유행했던 역사적 배경과 양식적 특징을 근거로 미륵보살로 추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도상학적 근거(명문 등)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2010년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에서 공식 명칭을 현재의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으로 변경했다. -
작성자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3 미술사학계에서는 관음보살 (觀音菩薩) 또는 봉보주보살 (奉寶珠菩薩)로 추정하기도 한다.
관음보살설은 보살상의 왼손이 아래로 내려와 무언가를 쥐고 있는 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이 손 모양이 불교 도상학적으로 연꽃이나 정병(물병) 혹은 보주를 들고 있는 관음보살의 초기 형태로 해석되기도 한다. -
작성자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3 봉보주보살은 손에 보주(보물 구슬)를 받들어 올리거나 쥐고 있는 형태의 보살을 뜻한다. 중국의 남북조 시대(동위·북제 등)에 이와 유사하게 옷자락이나 보주를 쥔 보살상 양식이 크게 유행했고, 이것이 백제로 유입된 대표적인 예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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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3 문헌 기록이나 불상 자체에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아 현재로서는 '관음'이나 '미륵' 중 어느 하나로 단정 짓기 어렵다. 때문에 학계와 박물관에서는 특정 존명을 붙이지 않고, 출토지와 재질을 그대로 살려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이라고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