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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大理, dàlǐ) 희주고진 엄가대원 문신(門神) 진숙보(秦叔宝​, Qín Shūbǎo)ㆍ울지공(尉迟恭,Yùchí Gōng)

작성자浮雲| 작성시간26.06.17| 조회수0|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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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중국 전통 민속 신앙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악귀와 잡신을 막고 복을 부르기 위해 대문에 붙이는 문신(門神, 먼선) 그림이다.
    ​이 그림들은 대문의 왼쪽과 오른쪽에 쌍으로 붙여 서로 마주 보게 배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이들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문신(門神) 콤비인 당나라 초기의 명장들이다.
    ​첫 번째 그림 (왼쪽 배치)은 ​우측 하단에 '秦叔寶'라고 적혀 있다. 본명은 '진경(秦瓊)'으로, 소설 《삼국지 연지》의 관우처럼 의리가 깊고 용맹한 장수로 사랑받는 인물이다. 그림 상단에는 해를 뜻하는 '日(일)'이 그려져 있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두 번째 그림 (오른쪽 배치)은 ​좌측 하단에 '尉遲恭'이라고 적혀 있다. 본명은 '울지경덕(尉遲敬德)'으로, 검은 피부에 털이 많고 불 같은 성격을 가진 장수로 묘사된다. 그림 상단에는 달을 뜻하는 '月(월)'이 그려져 있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이 두 장수가 왜 대문을 지키는 신이 되었는지는 당나라 태종(이세민)과 관련된 유명한 전설에서 비롯된다.
    ​현무문의 변과 용왕의 원혼
    당 태종 이세민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형제들을 죽인 일(현무문의 변)과 억울하게 죽은 경하룡왕(용왕)의 원혼 때문에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잠을 청하려 하면 궁전 문밖에서 귀신들이 울부짖고 기와장을 던지는 소리가 들려 병이 날 지경이었다.
    ​이때 당나라의 두 명장 진숙보와 울지공이 자원하여 무기를 들고 밤새 황제의 침전 문 앞을 지켰다. 신기하게도 두 장수가 문을 지킨 날부터 귀신들이 감히 틈타지 못해 황제는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황제는 두 장수가 매일 밤 고생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 두 장수의 위엄 있는 모습을 그리게 한 뒤 궁전 문에 붙이도록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림만 붙여두어도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민간으로 퍼져나가 오늘날의 '문신' 풍습이 되었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두 장수 모두 눈을 부릅뜨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으며, 갑옷 중앙에는 도깨비나 용의 얼굴(당예)이 강렬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사악한 기운과 악귀를 겁주어 쫓아내기 위함이다.
    ​진숙보 머리 위의 '日'과 울지공 머리 위의 '月'은 낮과 밤, 즉 24시간 내내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집안을 빈틈없이 지켜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붉은 바탕에 화려한 금빛과 오색 빛깔로 장식된 것은 민간에서 '복(福)'과 '길상(吉祥)'을 상징한다. 단순히 귀신을 막는 것을 넘어, 집안에 경사스럽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결론적으로 이 그림들은 엄가대원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수호신이자, 집안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부적'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중국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는 악귀와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지키기 위해 문에 붙이거나 그려두는 문신(門神)의 기원은 크게 신화적 기원(선사~한나라)과 역사적 기원(당나라)의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대가 흐르면서 추상적인 신에서 구체적인 역사 속 영웅들로 변화한 것이 특징이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神荼)와 울루(鬱壘)
    ​가장 오래된 문신의 기원은 중국의 고대 신화집이《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神荼)와 울루(鬱壘)라는 두 형제 신이다.

    동해 바다 가운데 도삭산(度朔山)이라는 산이 있고, 그 정상에는 거대한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의 동북쪽으로 뻗은 가지 사이를 '귀문(鬼門)', 즉 귀신들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불렀다. 신도와 울루 형제는 이 문을 지키면서,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악한 짓을 한 귀신들을 잡아 갈대 끈으로 묶어 호랑이에게 먹이로 던져주었다고 한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이 신화에서 유래하여 사람들은 새해(정월 초하루)가 되면 복숭아나무 판자(도부, 桃符)에 신도와 울루의 이름이나 얼굴을 그리거나, 갈대 끈과 호랑이 그림을 문에 걸어두기 시작했다. 이것이 문신 풍습의 시초이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역사적 기원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무장(武將) 형태의 문신인 진숙보(秦叔寶)와 울지공(尉遲恭)과 당나라 태종(이세민) 시기의 일화에서 기원한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시대가 지나면서 문신은 단순히 악귀를 쫓는(벽사) 목적을 넘어, 복을 불러오거나(기복) 학문적 성취를 기원하는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한 인물로 분화되었다.

    ​종규(鍾馗)는 당나라 시기부터 유래한 인물로, 귀신을 잡아먹는 달인으로 알려져 문에 단독 혹은 쌍으로 자주 붙여졌다.

    무서운 무장 대신 인자한 모습의 관리들이나 신선을 그려 '부귀(富貴)', '수명(壽命)', '관직 등용' 등을 기원하는 문신도 등장했다.
  • 작성자 浮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6.06.17 문신은 고대 도삭산 신화의 '신도·울루'라는 자연·신화적 숭배에서 출발하여, 당나라 이후 '진숙보·울지공'이라는 역사적 영웅 서사와 결합하면서 오늘날의 형태로 고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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