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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祖 元年 八月

작성자계림|작성시간26.06.18|조회수14 목록 댓글 0

○8월.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짐은 여러 도(道)의 도적들이 짐이 처음 즉위하였다는 말을 듣고 혹시 틈을 타 변방에서 변란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각지에 단사(單使)를 나누어 보내 폐백을 후하게 주고 말을 낮춤으로써 화친의 뜻을 보였더니 과연 귀부하여 오는 자가 많았으나, 백제(百濟)의 견훤(甄萱)만은 홀로 교빙(交聘)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삭방(朔方)의 골암성(鶻巖城) 장수 윤선(尹瑄)이 내부(來附)하였다. 윤선(尹瑄)은 침착하고 용맹스러웠으며, 병법(兵法) [도검, 韜鈐]에 뛰어났다. 궁예(弓裔) 말년에 화를 피하여 북쪽 변방으로 달아나 2,000여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골암성에 살면서 흑수(黑水)의 오랑캐[번, 蕃]들을 불러 들여 변방의 고을들을 침해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왕이 사신을 보내어 초유(招諭)한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 항복하여 오니, 북쪽 변방이 편안하여졌다.

 

○조서에 이르기를,
“태봉(泰封)의 임금은 도참설(圖讖說)을 믿어 송악(松嶽)을 버리고 부양(斧壤)으로 되돌아가 궁실(宮室)을 세웠다. 백성들은 토목공사로 고단해지고 봄·여름·가을은 농사의 때를 잃어버렸으며, 더하여 기근이 거듭해서 닥치고 역병이 뒤따라 일어나니 가족들이 서로 흩어지고 길에서 굶어 죽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세포(細布) 1필(匹)의 값이 쌀 5되에 달하여 백성[제민, 齊民]들로 하여금 자신의 몸과 자식을 팔아 다른 사람의 노비가 되게 하는 데에까지 이르렀으니, 짐이 심히 가엷게 여긴다. 각 소재지에 명령하여 상세히 기록하여 아뢰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이에 1,000여 명을 찾아내고 내고(內庫)의 포백(布帛)으로 속환(贖還)하였다.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내쫓고 나서 곡식과 재물을 풀었으며, 한(漢)나라 고조(高祖)는 항우(項羽)를 멸망시킨 후 산천(山川)에 숨어사는 백성들로 하여금 각자의 전리(田里)로 돌아가게 하였다. 짐은 덕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대통(大統)을 획득하고 기업(基業)을 받들게 된 것을 매우 부끄럽게 여긴다. 비록 하늘이 도와준 위력에 힘입은 것이지만, 또한 백성들이 추대해 준 힘에 의지한 것이기도 하니, 백성[여원, 黎元]들이 편안히 살며[안도, 按堵] 집집마다 태평성대를 누리며 덕스럽게 살게[비옥가봉, 比屋可封]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무너져 가는 국운을 이어받았으니, 진실로 조세를 줄이고[건감, 蠲減] 농상(農桑)을 장려하지 않는다면, 어찌 집집마다 살림이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여 지는 데에 이를 수 있겠는가? 백성들에게 3년 동안의 조세와 부역을 면제해주고, 사방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자들은 고향[전리, 田里]으로 돌아가게 하며, 이어서 크게 사면령을 내려 더불어 쉴 수 있게 하라.”
고 하였다.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신하[인신, 人臣]로서 군주를 보좌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기이한 책략[佐時之奇略]을 운용하고 세상을 뒤덮는 훌륭한 공을 세운 자에게 띠를 나누어[分茅] 봉토[胙土]를 내려주고 높은 벼슬과 지위로써 포상하는 것은 오랫동안 전해져 온 상전(常典)이요, 영원토록 이어지는 큰 규범이다. 짐(朕)은 출신이 미천하고 재주와 식견이 용렬한데도 불구하고 진실로 뭇사람들의 여망(輿望)에 힘입어 대업의 기반 위에 설 수 있었으니, 포악한 임금을 폐위하던 때를 만나 충신의 절개를 다 한 자들에게는 마땅히 상을 내려 줌으로써 그 공훈과 노고를 표창하여야 할 것이다. 홍유(洪儒)·배현경(裴玄慶)·신숭겸(申崇謙)·복지겸(卜智謙)을 제1등으로, 견권(堅權)·능식(能寔)·권신(權愼)·염상(廉湘)·김락(金樂)·연주(連珠)·마난(麻煖)을 제2등으로 삼아 각각 금·은 그릇, 수놓은 비단 옷과 요 이불, 능라와 포백을 차등 있게 내려주고, 제3등 2,000여 명에게도 또한 능라와 포백, 곡식을 차등 있게 나누어주라. 짐은 그대들과 더불어서 백성들을 살리고자 하여 끝까지 신하로서의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이 일을 공으로 삼게 되었으니, 어찌 덕에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그러나 공이 있는데도 포상을 하지 않는다면 후대를 장려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오늘의 이 포상이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짐의 뜻을 밝게 알라.”
라고 하였다.

 

○견훤(甄萱)이 일길찬(一吉粲) 민합(閔郃)을 보내어 즉위를 축하하였다. 왕이 대중전(大中殿)에 임어(臨御)하여 축하를 받고 두터운 예로써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병부경(兵部卿) 훤식(萱寔)을 내봉경(內奉卿)으로 삼았다.

 

웅주(熊州)·운주(運州) 등 10여 주(州)·현(縣)이 배반하여 백제(百濟)에 붙었다. 전 시중(侍中) 김행도(金行濤)를 동남도초토사 지아주제군사(東南道招討使 知牙州諸軍事)로 삼아 방비토록 명하였다.

 

○유문률(柳問律)을 광평낭중(廣評郞中)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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