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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祖 元年 九月

작성자계림|작성시간26.06.22|조회수16 목록 댓글 0

○9월. 마군장군(馬軍將軍) 복지겸(卜智謙)이 아뢰기를, “순군리(徇軍吏) 임춘길(林春吉)이 그 고향인 청주(靑州) 사람 배총규(裴悤規), 계천(季川) 사람 강길(康吉)·아차귀(阿次貴), 매곡(昧谷) 사람 경종(景琮)과 더불어 반역을 꾸미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잡아들여 신문을 하니 모두 자복하였다. 그들을 처형하도록 명하였으나, 배총규(裴悤規)만은 도망쳐서 〈죽음을〉 면하였다.

 

○청주(靑州) 사람 현률(玄律)을 순군낭중(徇軍郞中)으로 삼았다. 마군장군(馬軍將軍) 배현경(裵玄慶)과 신숭겸(申崇謙) 등이 말하기를, “전에 임춘길(林春吉)이 순군리(徇軍吏)로 있을 때, 반역을 도모하였다가 일이 누설되자 죄를 자백하고 처형된 일이 있는데, 이는 병권(兵權)을 잡고서 청주(靑州)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또 현률(玄律)을 순군낭중(徇軍郞中)으로 삼으시니, 신들은 저으기 의아스럽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옳다.”라고 하고, 이에 병부낭중(兵部郞中)으로 고쳐서 임명하였다.

 

○전 시중(侍中) 구진(具鎭)을 나주도대행대시중(羅州道大行臺侍中)으로 삼았다. 구진(具鎭)이 태봉(泰封) 시절에 오랫동안 수고로웠다고 하여 사양하며 기꺼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왕이 달가워하지 않으며 유권열(劉權說)을 보고 말하기를, “옛날에 내가 험난한 일을 두루 겪으면서도 일찍이 수고롭다고 아뢴 적이 없었던 것은 진실로 위엄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구진(具鎭)이 완고하게 사양하며 가려 하지 않으니, 그래도 되는가?”라고 하였다. 유권열(劉權說)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상을 내림으로써 선한 일은 권장하고, 벌을 내림으로써 악한 행위를 징계하는 것이니, 마땅히 극형(極刑)을 내려 여러 신하들을 경계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이 옳다고 여겼다. 구진(具鎭)이 놀라 두려워하며 사죄하고, 마침내 갔다.

 

○상주(尙州)의 우두머리 아자개(阿字盖)가 사신을 보내어 내부(來附)하였다. 왕이 의전을 갖추어 맞아들이도록 명하였다. 구정(毬庭) [구장,毬場]에서 의례를 익히면서 문·무관들이 모두 반열(班列)에 따라 자리에 나아갔다. 광평낭중(廣評郞中) 유문율(柳問律)과 직성관(直省官) 주선길(朱瑄劼)이 서열을 다투었다. 왕이 그 일을 듣고 말하기를, “사양하는 것은 예(禮)의 으뜸이요, 공경하는 것은 덕(德)의 근본이다. 지금 예로써 손님을 접대하여 장차 그 완성을 보려고 하는데, 유문율(柳問律)과 주선길(朱瑄劼)이 서열을 다투니, 어찌 공경하고 삼가는 것이라고 하겠는가? 마땅히 모두 변방으로 쫓아내어서 그 죄가 드러나게 하라.”라고 하였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평양(平壤)의 옛 도읍이 황폐하여 진지가 이미 오래되어 가시덤불이 무성하고, 번인(蕃人)들이 그 사이에서 사냥하며 돌아다니면서 침략하니, 마땅히 백성들을 옮겨 채워서 변경의 울타리를 굳건하게 하라.”라고 하였다. 마침내 황주(黃州)·봉주(鳳州)·해주(海州)·백주(白州)·염주(鹽州) 등 여러 주(州)의 인호(人戶)를 나누어 살게 하였으며, 대도호(大都護)로 삼아 사촌 동생인 왕식렴(王式廉)과 광평시랑(廣評侍郞) 열평(列評)을 보내어 지키게 하고, 이어서 참좌(參佐) 4~5명을 두었다.

 

○진각성경(珍閣省卿) 유척량(柳陟良)을 광평시랑(廣評侍郞)으로 삼았다. 혁명을 할 때에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여러 관료들이 모두 흩어져 달아났는데도 유척량(柳陟良)만은 홀로 그 직무를 성심껏 지켜, 담당하였던 창고에서 없어진 것이 없었으니, 이에 특별히 이를 제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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