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그레아는 사론만 또는 이기나만에 있는 항구로써, 고린도에서 약11km 동남쪽에 위치한 항구 이다. 당시 고린도에는 2개의 항구가 있었는데 북쪽 항구에서 승선하면 로마로 가게 되었고, 남쪽 항구인 이 겐그레아에서 승선하면 소아시아와 예루살렘 방향인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갈수 있었다. 현재 지명을 케흐리에스(Kehries)라고 부르는 이곳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기념하여 항구 방파제에 큰 동상을 세워놓았다. 그리고 근협 지역에서 매 2년마다 소위 고린도 지협경기가 열렸는데 이를 Isthmian Games이라고 부른다.
"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사도행전 18:18 ) 겐그레아는 고린도 동쪽 한적한 해안 마을로 바울이 로마교인들에게 쓴 편지(로마서)를 로마에 전달한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Phoebe)"가 이 교회 교인이었다.(롬16:23) 사진은 초대 교회당 건물의 유적으로 반쯤 바다에 잠겨있다. 아마도 바울 사도는 그의 역작인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복잡한 고린도 도시를 피하여 한적한 겐그레아의 뵈뵈의 집에서 로마서를 써서 뵈뵈의 손에 들려 보냈을 가능성도 많다. 그리고 이 겐그레아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로마서를 쓴 후 그의 모 교회가 있는 수리아 안디옥으로 떠나려고 배를 타기 전 머리를 깎은 곳이기도 하다. 바울은 왜 머리를 깎았을까? 무슨 큰 충격이라도 받은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또 왜 누가는 머리를 깎은 것을 새삼 성경에 기록하고 싶었을까? 바울이 머리를 깎은 이 시점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사도행전 15장부터 18장 22절까지) 즉, 주후 50년부터 52년까지 약 3년 반 동안 약 5,600km의 전도여행의 마지막 기간에 고린도에서 체류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겐그레아 항구에 도착한 시점이었다. 성경은 이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같이 동행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사도행전은 "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바울이 머리를 깎은 것은 구약의 나실인의 서원 전통을 따랐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울도 하나님과 나실인의 서약을 맺었던 것일까? 구약 민수기 6장의 나실인의 규례로 돌아가보자. "나실"人은 히브리어 나지르 ryzIn:로 (영어성경은 Nazarite, Nazirite로 번역) '구별된 자' “ 헌신한 자”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 헌신을 서약한 자로서 스스로 서원하거나 출생하면서부터 또는 부모가 서원했다. 유명한 사사 삼손도(삿 13) 지도자 사무엘도(삼상1) 나실인이었다. 나실인이 레위지파의 제사장과 다른 것이 있다면 베냐민 지파였던 삼손이나 에브라임 족속이었던 사무엘처럼 어느 지파 출신이나 자원하여 하나님과 나 사이의 서원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는 점이며 남녀나 나이 구분이 없었고 (제사장 남자, 30세-50세 사이-민 4:3) 그 서약의 기간도 30일간, 60일간, 100일, 또는 7년, 20년, 나아가서 평생동안 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실인으로서 서약한 사람이 지켜야 할 세가지 원칙은 있었다. 첫째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는 것이며 둘째, 머리에 삭도(면도칼)를 대지 않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는 것은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지배를 받고 산다는 뜻이며 어떤 인위적인 가공도 거부한다는 순수한 헌신의 표시이다. 민수기 6장 7절은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고 말한다. 셋째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다. 즉 죽어가는 것들과 접촉하지 말라는 뜻이다. 꿈이 죽고 사랑이 죽어간다면 우리는 죽어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죽지만, 모든 사람이 진정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 Van Dyck 들릴라의 품에서 머리가 깎이는 나실인 삼손(1620) Oil on canvasDulwich Picture Gallery, London, UK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나실인은 머리를 깎는 것이 아니라 깎지말고 길러야했다!! 머리를 깎는 경우는 그 서약기간이 무사히 잘 끝났을 경우 감사하는 마음으로 길렀던 머리를 잘라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는 몸의 제사이거나 (민 6;13-20) 아니면 그 서약이 무너지고 서원이 깨져 다시 시작할 때 재출발의 결단과 각오를 다짐하며 깎는 경우인데 이때는 머리를 박박 밀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켈란젤로 Buonarroti Michelangelo(1475~1564)'사울의 다메섹 회심回心' 이 당시 바울은 아직 30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의 전도자의 서원의 생애가 시작된다
로마의 마머티움(마메르티누스Mamertinus) 감옥 교회 툴리아눔 (Tullianum) 감옥인데 중세 때부터 Mamertinus 감옥으로 불리웠다. 바울이 갇혀 있었다고 알려진 암반을 깎아서 만든 로마의 감옥이다. 훗날 베드로도 이곳에 갇혀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초대교회 교부인 터툴리안(Tertullian 160-225년)은 “바울 사도가 황제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네로 황제의 기독교 대박해 때에 로마에서 참수당했다”고 전한다. ![]() 바울사도가 참수 당했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로마 서쪽 성문 밖 5㎞쯤 떨어진 곳에 있는 순교기념교회 안에 있는 바울의 참수 장면 부조. [출처] 겐그레아 해변에서 머리를 깎다|작성자 pane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