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화 해서 봐주세요~^^;
[가루X쿠루]
"가루루 중위님, 크, 큰일났습니다!!"
뱅글뱅글 돌아갈 것 같이 두꺼운 안경을 쓴, 짧은 주황색 머리에 사복을 입은 어린
소년 하나가 다짜고짜 가루루의 방 문을 열고 쳐들어왔다. 그건 굉장히 무례한 행동
이었지만, 가루루는 다만 눈살을 찌푸리며 소년을 쳐다볼 뿐이었다. 한편 그의 방으로
쳐들어온 소년은 수치심과 분노로 가늘게 떨고 있었다. 평상시엔 컴퓨터방에만 쳐박혀
있던 소년이 이렇게 직접 대장실까지 뛰어온다는건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에, 가루루는
잠시 침묵을 두고 입을 열었다.
"무슨일인가, 토루루 신병."
"해, 해킹… 해킹당했어요…… 저희가 1년동안 공들여서 만들려던 그 신무기…."
소년은 어찌나 분했는지 목소리까지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는 자신의 후드티를 오른손
으로 꽉 움켜쥐었다.사실 군대 내에서 복장이란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 소년에게만큼은
예외였다. 어차피 그는 최전선에 나가서 싸우는 일도 없는 작전 참모같은 존재였고,
육체 노동파가 아닌 정신적 노동파─굳이 말하자면─, 해커였다. 가루루는 엄격했지만
융통성 있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이번만큼은 가루루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부 다?"
"…네, 네에……."
낮은 중저음의 보이스에 토루루의 목소리가 힘없이 수그러졌다. 그러나 토루루는 다시
고개를 번쩍 쳐들며 바락바락 악을 써대듯이 소리쳤다.
"대장님! 전 이런 짓을 할 놈은…… 이건 분명히…!!"
"조용히 하게, 신병. 지금 자네때문에 머리가 아프니까."
가루루는 지끈지끈 쑤셔오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토루루에게 대답했다. 해킹? 해킹당
했단 말인가? 그것도 그가 근 1년간 추진해왔던 그것을? 지금 안그래도 할일이 쌓였는
데 또 한건을 만들어주셨군….
가루루는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실 토루루가 소리치지 않아도 그 범인이 누구인지는 아주 잘 알았다. 물증? 그런것
은 필요 없다. 토루루의 컴퓨터를 깰 수 있는 사람은 '그' 하나밖에 없으니까.
가루루는 참을성 좋게 화를 이겨냈다. 다른 대장들이었다면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신
병을 두드려 팼을지도 모르지만, 누가뭐래도 가루루를 젊은 나이에 중위까지 끌어 올
려 준 것은 어떤때도 무너지지 않는 그의 냉정함과 명석한 판단력이었다.
어쩌면 토루루는 가루루의 이런 성격을 알고 소리를 지르는 등의 행동을 했을지도 몰
랐다. 물론 의식적인건 아니었겠지만… 응석이랄까. 뭐, 그렇게 된 것에는 자신의 책
임도 있었다. 토루루에겐 어쩐지 관대해진다고나 할까.
가루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토루루는 드디어 자기가 끝맺지 못한 말을 하기
위해 다시금 입을 열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쿠루루 상사입니다! 쿠루루 상사라구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가 했다는 증거가 있나?"
가루루는 그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토루루에게 그렇게 물어봤다. 아마 이 질문에 자
세히 대답하는 것으로 토루루에게는 엄청난 모멸감이 될 것이다. 일급 기밀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해커에게는 이정도의 벌이면 충분했다. 이런 부류들은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쪽이니까. 가루루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질문을 이었다.
"증거도 없는데 범인을 무작정 쿠루루 상사라고 우겨대는건 아니겠지. 신병?"
"즈, 증거는 없지만……… 그치만………."
소년의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나올 듯 했다. 가루루가 그에게서 등을 돌린 사이 소년
의 안경에 눈물방울이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초간의 짧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토루루는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
"그치만… 제 컴퓨터를 해킹할 수 있는건 그자식밖에 없단 말입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토루루의 목소리가 더 격하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그는
분명 지금 울고 있을 것이었다. 방금 이 한마디로 토루루의 자존심에는 엄청난 금이
갔을 것이다. 됐다. 벌이라면 이걸로 충분했다. 가루루는 토루루에게 등을 돌린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
"쿠루루 상사는 자네보다 계급이 한참 위다. 다른 소대라고는 하지만 군대에서 하극상
은 사형감이지. 앞으론 제대로 호칭을 부르도록."
"……죄송합니다."
토루루는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서 있었다. 아까의 그 분노에 차오르던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젠 비에 젖은 강아지마냥 깨갱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토루
루에게 들려온 가루루의 명령은 소년을 다시 기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 당장 케로로 소대의 쿠루루 상사를 연행해 오도록. 저항할 시 수단과 방법
을 가리지 말고 내 앞으로 끌고 와라. 이번 건은 특무에 부친다. 케로로 중사가 항의
할 경우엔 직접 나에게 오라고 해."
가루루는 지금쯤 신병의 표정이 조금쯤 생기를 되찾았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예상대로였다.
"…알겠습니다!"
소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경례가 붙여졌다.
****
"끅~끄끄끅. 그래서 지금 그 망할꼬맹이 하나 때문에 이몸을 잡아왔다 이건가?"
뱅글뱅글 돌아갈것 같은 두꺼운 안경이 벌꿀빛의 노란 금발과 함께 큭큭큭하고 웃었다.
의도적으로 상대를 비웃는 기분나쁜 웃음소리였다. 취조실 치고 이곳의 조도는 꽤
높았다. 벽에 음습하고 찬 기운이 도는것은 여느 감옥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럼에도 불
구하고 밝아보이는 이유는 어제 갈아 끼운 형광등 덕분일수도 있고, 지금 신나게 가루
루를 비웃고 있는 이 과학자의 눈부신 금발때문일지도 몰랐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
발을 검은 고무줄로 아무렇게나 묶어 왼쪽 어깨로 내린 이 과학자는, 가까이서 보니
상당한 미형이었다.
"그나저나 이 소대도 다 됐구만~ 군내에서 저런 새파랗게 어린 놈이 사복을 입고 돌아
다니고 말이야. 응? 끅~끅끅끅."
─그 입만 안 열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말하는 당사자 역시 검은 남방에 청바지, 그 위에 흰 가운만 걸친 주제에 남말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는 이때가 기회라는 듯 마음껏 가루루를 비웃어 주었다. 매
드 사이언티스트는 방금전까지 여기서 씩씩대며 그를 노려보던 주황색 머리의 소년이
사복을 입고 있던 것을 보고 또 비꼴 건수를 하나 잡은 것이다.
"묻는말에 대답해라. 쿠루루 상사."
가루루는 자신과 마주보고 앉아있는 과학자─혹은 해커, 발명가─를 노려보았다. 이렇
게 하면 상대의 표정을 읽는 동시에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일거 양득의 효과가 있었지
만─ 그러나 눈 앞의 쿠루루에게 그것은 통하지 않는 듯 했다. 그는 압축 렌즈로 만든
것 같은 두꺼운 안경을 쓰고 가루루의 시선을 능숙하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가루루는 문득 쿠루루가 저 안경을 그런 용도로 쓰기 위해 일부러 착용하는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쿠루루를 거의 반 강제로 연행해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지만, 1개소대를
다 투입한 만큼 성과는 있었다. 솔직히 가루루는 쿠루루의 능력이 이 정도까지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자칭 라이벌인 토루루 신병이 보기에 이 남자를 잡아오려면 1개 소
대 정도는 출동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부대원 중 누군가가 대량의 다이너마이트를 던져 쿠루루의 제 1 컴퓨터를 박살내지 않
았더라면, 지금쯤 아마 그들은 다 저세상에 가 있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쿠루루와 부
대원들의 꼴을 비교해 보면, 쿠루루가 그들을 잡아 온건지 그들이 쿠루루를 잡아 온건
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뺨을 살짝 긁힌것 뿐인데, 자신
의 소중한 병사들은 말도 안되는 기계들과 싸우느라 대부분이 중상이었다.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쿠루루는 마치 그런 그의 속마음을 읽듯이 더욱 더 가루루를
비웃었다.
"이거이거 아무리 중위라지만 너무한거 아니야?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막무가내로 잡
아오고 말이야. 끅~끅끅끅. 게다가 내 컴퓨터는 박살났지, 그 망할 꼬맹이는 나한테
막무가내로 욕을 해대지. 이거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꼭꼭 챙겨야겠어~? 끅~끅끅끅."
"빼돌린 문서는 어떻게 했나. 폐기했나? 아니면 벌써 케로로중사에게 갖다줬나?"
가루루는 자신의 눈 앞을 가리는 보라색의 앞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리며 쿠루루
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사람들이 말하길, 가루루의 눈동자는 꼭 뱀을 연상시킨다고 했
다. 짙은 보라색 머리칼에 샛노란 눈동자.
…아름다움? 그러나 그는 아름다움과는 느낌이 멀었다. 확실히 가루루는 준수한 용모
였지만, 그와 대면해 본 사람들은 그 기세에 눌려 아무말도 못하는게 대다수였다. 그
의 무시무시할 정도의 압도적 카리스마는 상대를 주눅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
루루가 그렇다고 하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맞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말장난을
잘 한다는 게 아니라, 그의 말 한마디는 상황을 바꿔버릴 정도의 힘을 갖고 있었다.
물을 한잔 마시는 단순한 동작에서도 품위와 절도가 뚝뚝 묻어 나오는 그런 것.
그러나 어딜가나 예외는 있는 법. 가루루 앞에서 능청스럽게 말할 수 있는 두 사람중
하나가 바로 이 쿠루루 상사였다. 친동생인 기로로조차 자기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는
데, 도대체 이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 것일까.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설계도에 조작일지를 비롯해서 죄다 다 빼갔더군. 무슨 속셈인가?"
"아 글쎄, 그건 이몸이 아니래도. 끄윽~큭큭큭큭."
쿠루루는 사람을 기분나쁘게 만드는 그 웃음소리와 함께 딴청을 피웠다. 어깨까지 내
려오는 눈부신 금발을 검은 고무줄로 아무렇게나 묶은 그는 확실히 이상한 면이 있었
다. 과학자를 상징하는 흰 가운속 삐쩍 마른 몸. 가루루는 가운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
고 삐딱하게 앉아있는 쿠루루의 신체를 어림잡아 계산 해 보기 시작했다.
결론은 이거였다.
"밥 좀 먹어야겠군."
"뭐?"
그제서야 심문의 내용과 관계없는 이 말에 쿠루루가 조금 당황한 듯 반문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오른손 검지로 자신의 벌꿀빛나는 금발을 배배꼬며 입을 열었다.
"이봐이봐, 증거도 없이 사람을 막 잡아오는건 아무리 상사라해도 불법입니다아~? 끅~
끅끅끅. 게다가 당신네들이 Top Secret나 되는 것을 해킹당한건 순전히 다 그 망할 꼬
맹이 때문이잖아? 열받는다고 엄한사람 붙드는거 아니지, 그 실력없는 꼬맹이한테 고
문을 하든가 심문을 하든가 하라고. 끅~끅끅끅."
"……."
─은근히 쌓였나 보군, 하고 가루루는 생각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때는 쿠루루의
컴퓨터를 점령까지 했던 토루루였다. 물론 쿠루루는 단시간내에 자신의 시스템을 되찾
고 신병의 대사를 똑같이 날려주었지만, 쿨한 척 했어도 그 역시 한때나마 자신의 시
스템을 빼앗겼다는 것이 그 대단하신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이다. 역시 해커란 단순하다.
어찌되었든 지금 상황으로만 보자면 가루루는 직권남용에 무단납치죄였다. 일단 쿠루
루의 말대로 그가 해킹을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고, 다짜고짜 쳐들어가서 그를
데리고 나온것도 그닥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쿠루루가 해킹을 한 것만큼은 확
실했다. 가루루 소대의 컴퓨터는 본부 다음으로 좋은 것이었다.(공식적으로는)
게다가 오퍼레이터로는 쿠루루만큼은 못해도 컴퓨터 천재인 토루루가 있는데─ 이걸
뚫고 들어올 사람은 전에 본부의 컴퓨터를 한번 해킹한 전적이 있는, 바로 이자밖에
없는 것이었다.
가루루가 보기에 지금 쿠루루의 행동은, 부모의 돈을 훔쳐놓곤 자기가 안그랬다고 우
기는 아이와 다름 없었다. 뭐, 오히려 그 아이는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지만.
가루루는 야트막하게 보이지 않는 한숨을 쉬며 좀더 유화책을 쓰기로 했다. 어찌되었
든 그 파일은 되찾아야만 했다.
"쿠루루 상사."
"…?"
"자네한테는 일종의 취미거리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소대에겐 중요한 문서다. 원상복귀
시켜놓는다고 약속만 하면 지금 당장 돌려보내주지."
─이미 케로로한테 보여줬다고 해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쿠루루가 만들 마음이 생기
지 않는 이상 그런 복잡한 문서는 케로로같은게 본다고 해도 알 내용이 아니니까. 중
위씩이나 되는 자가 한참 낮은 상사에게 이정도로 부탁조로 말하면 가루루도 상당히
많이 낮추고 들어간 것인데, 쿠루루는 잠시 그런 가루루를 쳐다보다가 이내 그 기괴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끅~끄끅끅. 끅~크크크큭. 이거야 정말 장관이군! 설마 '중령님'께서 나한테 부탁을
한건가? 끅~끅끄끅. 정말 안타깝지만 그건 내가 한게 아니래도? 오히려 이런 그쪽의
모습을 보여준 그 천재 해커에게 내가 감사할 따름이야! 끅~끅끅끅!"
─아아 그래, 네가 한번에 '예 죄송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라고 말할건 기대도 안
했지.
가루루는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그 또한 예상했다는 듯이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
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상사 모독죄라는 둥 까마득한 부하가 상관을 놀리는 것이냐
는 둥 버럭 화를 냈겠지만─그리고 그게 쿠루루가 원하는 것이었겠지만─가루루의 최
대 무기이자 장점은 바로 그 어느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이었다. 다만 뱀을 연상
시키는 그의 샛노란 눈동자는 줄곧 마이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천재 과학자를 잠시
노려볼 뿐이었다.
가루루는 기다렸다는 듯이 책상 서랍 속에서 두꺼운 문서덩어리들을 꺼내 책상 위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 거의 대사전 한권은 될 정도의 두께였다.
"이게 뭔줄 아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끅~큭큭큭."
"……여태까지 자네가 저지른 각종 범죄에 대한 보고서들이다."
─흠칫.
이제서야 쿠루루가 약간 긴장한 듯 싶었다. 그러나 가루루는 단 한치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가루루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증거 조작이라고 비웃을 생각인가?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다 사실이라서 말이야.
자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증거까지 다 수집해뒀지. 자네가 케론군에 들어올때부터 시작
해서 최근 39일전의 해킹까지. 그리고 지금 이 건도. 덧붙여 이것은 우리 소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소대의 것 까지 다 합쳐져 있다. 총 256건이더군. 자네는 밥먹고 해킹만
하나?"
가루루는 마지막 말에 의도적으로 약간의 비웃음을 실어 상대를 조소했다. 문득 저 두
꺼운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가루루는 또
그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든 자신 또한 남에게 지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무너진다면 쿠루루 역시 쿠루루가 아니었다.
"흥, 한 소대의 대장이라는 사람이 할일없이 남의 사생활이나 캐고 다녔나?"
"매일 건프라나 만드는 누구네 대장하고는 격이 틀리지. 그런 질 낮은 소대에 있는 자
네로서는 조금 놀랐을지도 모르겠군."
"…쳇."
쿠루루는 들릴락말락하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입가에 여전히 비웃음을 띄우고 있었
지만, 가루루가 보기에 그건 그저 심사 뒤틀린 땡깡쟁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두
꺼운 안경 때문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문득, 저 안경을 벗겨버리면 어떨까─ 하고, 가루루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끝까지 발뺌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게 좋을거다, 상사. 파일을 돌려주고 없었던 일로
하겠는가, 아니면 여태까지의 화려한 전적을 들춰내서 군법회의소로 가겠는가?"
"내가 아니라고 했지."
쿠루루의 눈썹이 크게 찌푸려지는것을 가루루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 금발의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문득 가소롭게 느껴졌다. 정말 저 안경을 벗겨버리면 무슨 표정을 짓
고 있을까?
어쨌든 지금은 쿠루루가 그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지 않게 된것만 해도 커다란 수확이
라고 볼 수 있었다. 그 큭큭거리는 비웃음은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상태. 가루루
는 슬슬 본격적으로 돌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젊은나이에 중위까지 된 그는, 단정하고
수려한 외모에 비해 잔혹하고 무자비한 면이 있었다. 또 그걸 장점이라면 장점, 단점
이라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말하자면, 고문같은건 가루루에게 있어 애들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
"계속 그렇게 시치미 떼는 건 자네에게 좋지 않다."
"아니라면 아니라는 줄 알지, 진~짜 끈질기구만. 여태껏 그렇게 물고 늘어지기 전법으
로 일관해서 중위자리를 꿰찬건가? 게다가 나같은 천재님께서 그런 조악한 컴퓨터를
해킹하는건 시간죽이기도 안된다고. 끅~끅끅끅. 그리고 그딴 무기는 이 몸 혼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어. 알아?"
쿠루루의 조소 뒤로─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가루루의 뱀 같이 차가운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의식한 것일까. 쿠루루는
미미한 불안과 함께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듯 했다. 그러나 발끈할 줄 알았던 가루루는 한참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다가, 한참
이 지나서야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더이상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었다. 마
치 뱀이 개구리를 입에 넣은 승리감이랄까?
"그게 무기라는건 어떻게 알았지, 쿠루루 상사?"
"………니가 아까 설계도에 제작일지라고 했…."
"설계도에 제작일지라면 건축물일수도 있다. 그리고 뭣보다 난 자네에게 그걸 무기
라고 말한적이 없어."
가루루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그와 대조적으로 방 안에는 싸늘한 정적만이 감돌 뿐
이었다. 쿠루루는 앗차 하는 느낌이었지만 그것 또한 놓칠 가루루가 아니었다. 쿠루루
의 마이페이스는 점차 무너져 가고 있었다. 네모반듯한 직사각형의 책상을 사이에 놓
은 채 마주보고 앉아있는 두 남자. 보기드문 광경이었다. 가루루는 쿠루루가 좀더 변
명을 하길 바랬지만, 쿠루루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말해봤자 자신이 손
해라는걸 간파한걸까.
그런데 바로 그때. 어색한 침묵을 대신 깨주기라도 하듯이 벽의 네모난 스피커에서 토
루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대장님!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현재 제한구역으로 가는 중…… 아무래도 A-88
방 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뭐야?"
그때까지 쿠루루와의 싸움에서 방금 쟁취한 자그마한 승리를 즐기고 있던 가루루는, 토루루
에게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A-88. 자신들이 개발 단계
에 있던 그 신무기가 있는 곳이었다. 가루루는 눈 앞의 쿠루루따위는 금새 까맣게 잊
어버린 듯 스피커쪽으로 달려가 마이크를 켰다.
"심각한 상황인가?"
「아닙니다. 적은 혼자인 모양입니다. 금방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워낙 이놈이 전
투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서……앗!」
그때, 토루루의 말이 짤막한 비명과 함께 끊겼다. 실로 가루루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
는 순간이었다. 설마 적이 벌써 그곳에 침입한건가?
"왜그러나, 신병? 대답해라!"
「치, 침입자 확인, ………케로로 소대의 기로로 하사입니다!」
순간 아까보다 더한 싸늘함이 취조실에 맴돌았다. 분명 시멘트로 만들어진 공간의 스
산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었다. 가루루는 조용히 마이크의 스위치를 끄고 뚜벅뚜벅 쿠
루루쪽으로 다가갔다. 스피커에서는 아직도 토루루가 뭐라고 지껄이는 것 같았지만,
가루루는 이미 들리지 않는다는 듯 쿠루루의 앞에 멈춰섰다.
─가루루는 이제 정말 화가 나려고 했다.
"…빠르군, 쿠루루 상사. 벌써 내 동생에게까지 가르쳐 준건가? 케로로 중사에게는 아
직 안보여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인가보군. 아무래도 내 동생은 우리들의
무기를 파괴하러 온 모양이야? 그러면서 잘도 아닌척 시치미를 뗐어."
그는 콱, 하고 쿠루루의 목을 움켜쥐었다. 가는 목이었다. 그 덕분에 쿠루루의 고개가
홱 쳐들어올려졌다. 가루루는 쿠루루의 귓가에 입술을 갖다댔다.
"……침입자는 죽여야겠지?"
"…아, 아니야. 선배는 몰라! 아직 대장한테도 안보여줬…큭!"
"그걸 나한테 믿으라고? 웃기는군."
가루루는 당장이라도 쿠루루를 죽여버릴 듯 그 목을 꽉 조이다가 이내 홱 놓고는, 다
시 마이크의 스위치를 켜고 토루루에게 말했다. 뒤에선 쿠루루가 콜록콜록 하고 기침
을 하고 있었다.
"신병. 침입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포획해라. 저항한다면 사살해도 괜찮다."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명령이다."
얼음장 같은 말과 동시에 스위치를 끄면서, 가루루는 뒤에 깜짝 놀란 얼굴이 된 쿠루
루를 바라보았다. 쿠루루는 아직까지도 콜록거리고 있었지만, 그 치고는 정말 보기 드
물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방금 전 자신의 해킹사실을 가루루에게 들켰을때보다 지금
기로로의 사살 명령을 들었을때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했다. 쿠루루는 더이상 입가에
비웃음을 걸고 있지 않았다. 가루루는 그런 쿠루루를 좀더 비웃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표정이지? 난 분명히 자네에게 기회를 줬다."
"…도, 동생이잖아."
"이런…. 자네는 내가 동생을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뭘 했는지 잊어버렸나보군."
자신이 지구에서 동생을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한것. 그것은 바로 싸움이었다. 그것도
그냥 싸움이 아닌 목숨을 걸고 하는 싸움─ 그리고 기로로는 거기서 저항한번 못하고
져서 호숫가 바닥에 쳐박혔었다. 기로로가 나츠미를 생각하면서 깨어난건 그저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기적에 불과했다.
"어차피 적이다. 적이라면 죽여야지."
"………."
"난 그대가 좀더 시치미를 떼주길 바랬는데."
이것은 진심이었다. 가루루에게 있어서 지금의 기로로는 적, 그 이상 이하 아무것도
아니었다. 형제간의 정? 그런건 이미 예전에 팔아치운지 오래다.
그걸 알기 때문일까. 쿠루루는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파일 돌려
줄게' 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가루루는 쿠루루에게 그걸 그렇게 순순히 말하게 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는 멍하니 앉아있는 쿠루루의 안경을 벗겨내었다.
─이것은 도박이다.
"무슨짓이야, 안경 내놓으시지?"
"호오~ 아직도 그따위로 말할 여유가 남아있나보군."
처음보는 쿠루루의 황금빛 날카로운 눈매──이것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곧이어 가
루루는 쿠루루의 머리를 묶고 있던 검은 고무줄까지 풀러내었다. 벌꿀같이 농밀한 색
의 금발이 흘러내리듯 어깨까지 떨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쿠루루는 의외로 예상보다
반항이 없었다. 이런이런, 벌써 의도를 알아챈건가. 가루루는 왠지모르게 조금 실망스
러운 기분이 되었다.
"내가 토루루 신병에게 관대한것은, 천만분의 1 정도 그대를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어딜 봐서."
"기로로를 살리고 싶나?"
"……니 맘대로 해 새꺄."
─동의라고 생각해도 괜찮겠지. 가루루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벽에 붙어있는 마이
크의 스위치를 켰다.
"신병. 들리나?"
「예, 그런데 저항이 워낙 심해서… 하지만 곧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폭탄을 떨
어뜨릴까요?」
"아니, 그럴필요 없다. 죽이진 말고 잡아두기만 해."
「예? 예에….」
갑작스레 바뀐 명령에 좀 이상하다는 눈치였지만, 토루루는 다른 반문 없이 그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게 더 정상적인 형제관계라고 그 나름대로 납득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루루는 몸을 돌려 다시 쿠루루에게로 갔다. 말은 필요 없었다.
가루루가 의자에 앉아있는 쿠루루의 가슴께에 손을 대려고 할 때, 쿠루루가 갑자기 입
을 열었다.
"…선배는 정말로 몰라. 아마 대장이 나를 몰래 빼오라고 시켰겠지. 그 등신같은 길치
는 어쩌다 운이 없어서 당신네들 비밀창고로 가게 된거고."
그러나 가루루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쿠루루의 검은 남방을 한손으로 쥐고 난폭하
게 그를 일으켜 세웠다.
"소파가 낫겠지."
"………."
대답하고 말고도 없었다. 세평 남짓한 취조실에는 낡은 소파와 책상밖에 없었다. 소파
가 싫다면 책상 위에서 한단 말인가. 가루루는 쿠루루가 대답하기도 전에 소파쪽으로
그를 밀어 넘어뜨려 그의 양 팔목을 결박했다. 직접 만져보니 아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말라 있었다. 케로로 소대에서는 설마 작전참모에게 밥도 제대로 주지 않는 건가?
쿠루루는 황금빛의 눈동자로 가루루를 치켜올려다보고 있었다. 곧 죽어도 자존심이라
는 것이겠지. 가루루는 쿠루루의 목덜미에 입을 묻으며 귓불을 핥아올렸다. 잠시 움찔
하는 움직임이 전해져 오긴 했지만 저항은 없었다. 완전 포기했군.
가루루는 쿠루루의 검은 셔츠의 단추를 풀러 내려가며 입을 열었다. 흰 몸이었다. 가
루루는 정말 너무 말랐다고 생각하며 앞으론 밥을 좀 많이 먹여야 겠다고 다짐했다.
"내 동생을 좋아하나?"
"넌 나 좋아하냐?"
역시 곧바로 스트라이크다. 가루루는 잠시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의 그 하늘높은줄 모르는 자존심 만큼은 높게 사고 있지."
"……꺼~져. 이 짜증나는 자식아."
안경을 벗고 머리를 푸른 쿠루루는 그야말로 색정적이었다. 그러나 그 황금빛 눈동자
가 살기를 담아 자신을 노려보는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러면 마치 자신이 잘
못한 것 같지 않은가?
"맘에 안드는군, 그 눈."
가루루는 안주머니에서 손수건 비슷한것을 꺼내 쿠루루의 눈 위를 덮어버렸다. 그러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역시나 저항은 없었다. 가루루는 내심 우습다고
생각하며 쿠루루의 검은 셔츠와 흰 가운을 동시에 벗겨내버린 뒤 그의 바지 버클을 내
렸다. 매끈한 다리였다. 저 위에서 쿠루루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놈은 비겁해."
"눈이 안보여서 화가 난건가?"
"넌 선배랑 목소리가 너무 닮았어."
쿠루루의 그 말에 가루루는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가루루는 쿠
루루의 쇄골에 잇자국을 내며 그의 허벅지를 들어올렸다. 쿠루루의 분홍빛 돌기를 혀
로 지분거릴때마다 움찔거리는 모양새가 흡사 꿈틀거리는 뱀 같기도 하고 윤락가의 여
인같기도 했다. 초옥 초옥 거리는 야한 소리가 좁은 취조실에 울려퍼졌다. 아마 이러
면서도 쿠루루는 끝까지 신음소리는 내지 않으려 하겠지. 확실히 이건 짜증나지만 갖
고싶은 생물이다. 하지만 가루루가 원한 것 중 여태껏 손에 넣지 못한 것은 없었다.
"그대야말로 비겁하군. 나한테 안기면서 내 동생 생각을 한다니 말이야."
[가루x쿠루] 협박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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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가루쿠루가 너무 보고싶어서ㅠㅠ... 보고싶었는데 왜이렇게 소설이 부족한것이옵니까;ㅅ; 결국 자급자족해버렸습니다...후후;ㅅ; 가루쿠루 동지 여러분들 소설좀 써주세요!........
흑;ㅅ; 민폐끼쳐서 죄송합니다...
[가루X쿠루]
"가루루 중위님, 크, 큰일났습니다!!"
뱅글뱅글 돌아갈 것 같이 두꺼운 안경을 쓴, 짧은 주황색 머리에 사복을 입은 어린
소년 하나가 다짜고짜 가루루의 방 문을 열고 쳐들어왔다. 그건 굉장히 무례한 행동
이었지만, 가루루는 다만 눈살을 찌푸리며 소년을 쳐다볼 뿐이었다. 한편 그의 방으로
쳐들어온 소년은 수치심과 분노로 가늘게 떨고 있었다. 평상시엔 컴퓨터방에만 쳐박혀
있던 소년이 이렇게 직접 대장실까지 뛰어온다는건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에, 가루루는
잠시 침묵을 두고 입을 열었다.
"무슨일인가, 토루루 신병."
"해, 해킹… 해킹당했어요…… 저희가 1년동안 공들여서 만들려던 그 신무기…."
소년은 어찌나 분했는지 목소리까지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는 자신의 후드티를 오른손
으로 꽉 움켜쥐었다.사실 군대 내에서 복장이란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 소년에게만큼은
예외였다. 어차피 그는 최전선에 나가서 싸우는 일도 없는 작전 참모같은 존재였고,
육체 노동파가 아닌 정신적 노동파─굳이 말하자면─, 해커였다. 가루루는 엄격했지만
융통성 있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이번만큼은 가루루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부 다?"
"…네, 네에……."
낮은 중저음의 보이스에 토루루의 목소리가 힘없이 수그러졌다. 그러나 토루루는 다시
고개를 번쩍 쳐들며 바락바락 악을 써대듯이 소리쳤다.
"대장님! 전 이런 짓을 할 놈은…… 이건 분명히…!!"
"조용히 하게, 신병. 지금 자네때문에 머리가 아프니까."
가루루는 지끈지끈 쑤셔오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토루루에게 대답했다. 해킹? 해킹당
했단 말인가? 그것도 그가 근 1년간 추진해왔던 그것을? 지금 안그래도 할일이 쌓였는
데 또 한건을 만들어주셨군….
가루루는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실 토루루가 소리치지 않아도 그 범인이 누구인지는 아주 잘 알았다. 물증? 그런것
은 필요 없다. 토루루의 컴퓨터를 깰 수 있는 사람은 '그' 하나밖에 없으니까.
가루루는 참을성 좋게 화를 이겨냈다. 다른 대장들이었다면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신
병을 두드려 팼을지도 모르지만, 누가뭐래도 가루루를 젊은 나이에 중위까지 끌어 올
려 준 것은 어떤때도 무너지지 않는 그의 냉정함과 명석한 판단력이었다.
어쩌면 토루루는 가루루의 이런 성격을 알고 소리를 지르는 등의 행동을 했을지도 몰
랐다. 물론 의식적인건 아니었겠지만… 응석이랄까. 뭐, 그렇게 된 것에는 자신의 책
임도 있었다. 토루루에겐 어쩐지 관대해진다고나 할까.
가루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토루루는 드디어 자기가 끝맺지 못한 말을 하기
위해 다시금 입을 열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쿠루루 상사입니다! 쿠루루 상사라구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가 했다는 증거가 있나?"
가루루는 그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토루루에게 그렇게 물어봤다. 아마 이 질문에 자
세히 대답하는 것으로 토루루에게는 엄청난 모멸감이 될 것이다. 일급 기밀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해커에게는 이정도의 벌이면 충분했다. 이런 부류들은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쪽이니까. 가루루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질문을 이었다.
"증거도 없는데 범인을 무작정 쿠루루 상사라고 우겨대는건 아니겠지. 신병?"
"즈, 증거는 없지만……… 그치만………."
소년의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나올 듯 했다. 가루루가 그에게서 등을 돌린 사이 소년
의 안경에 눈물방울이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초간의 짧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토루루는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
"그치만… 제 컴퓨터를 해킹할 수 있는건 그자식밖에 없단 말입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토루루의 목소리가 더 격하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그는
분명 지금 울고 있을 것이었다. 방금 이 한마디로 토루루의 자존심에는 엄청난 금이
갔을 것이다. 됐다. 벌이라면 이걸로 충분했다. 가루루는 토루루에게 등을 돌린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
"쿠루루 상사는 자네보다 계급이 한참 위다. 다른 소대라고는 하지만 군대에서 하극상
은 사형감이지. 앞으론 제대로 호칭을 부르도록."
"……죄송합니다."
토루루는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서 있었다. 아까의 그 분노에 차오르던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젠 비에 젖은 강아지마냥 깨갱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토루
루에게 들려온 가루루의 명령은 소년을 다시 기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 당장 케로로 소대의 쿠루루 상사를 연행해 오도록. 저항할 시 수단과 방법
을 가리지 말고 내 앞으로 끌고 와라. 이번 건은 특무에 부친다. 케로로 중사가 항의
할 경우엔 직접 나에게 오라고 해."
가루루는 지금쯤 신병의 표정이 조금쯤 생기를 되찾았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예상대로였다.
"…알겠습니다!"
소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경례가 붙여졌다.
****
"끅~끄끄끅. 그래서 지금 그 망할꼬맹이 하나 때문에 이몸을 잡아왔다 이건가?"
뱅글뱅글 돌아갈것 같은 두꺼운 안경이 벌꿀빛의 노란 금발과 함께 큭큭큭하고 웃었다.
의도적으로 상대를 비웃는 기분나쁜 웃음소리였다. 취조실 치고 이곳의 조도는 꽤
높았다. 벽에 음습하고 찬 기운이 도는것은 여느 감옥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럼에도 불
구하고 밝아보이는 이유는 어제 갈아 끼운 형광등 덕분일수도 있고, 지금 신나게 가루
루를 비웃고 있는 이 과학자의 눈부신 금발때문일지도 몰랐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
발을 검은 고무줄로 아무렇게나 묶어 왼쪽 어깨로 내린 이 과학자는, 가까이서 보니
상당한 미형이었다.
"그나저나 이 소대도 다 됐구만~ 군내에서 저런 새파랗게 어린 놈이 사복을 입고 돌아
다니고 말이야. 응? 끅~끅끅끅."
─그 입만 안 열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말하는 당사자 역시 검은 남방에 청바지, 그 위에 흰 가운만 걸친 주제에 남말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는 이때가 기회라는 듯 마음껏 가루루를 비웃어 주었다. 매
드 사이언티스트는 방금전까지 여기서 씩씩대며 그를 노려보던 주황색 머리의 소년이
사복을 입고 있던 것을 보고 또 비꼴 건수를 하나 잡은 것이다.
"묻는말에 대답해라. 쿠루루 상사."
가루루는 자신과 마주보고 앉아있는 과학자─혹은 해커, 발명가─를 노려보았다. 이렇
게 하면 상대의 표정을 읽는 동시에 그를 제압할 수 있는 일거 양득의 효과가 있었지
만─ 그러나 눈 앞의 쿠루루에게 그것은 통하지 않는 듯 했다. 그는 압축 렌즈로 만든
것 같은 두꺼운 안경을 쓰고 가루루의 시선을 능숙하게 받아넘기고 있었다.
가루루는 문득 쿠루루가 저 안경을 그런 용도로 쓰기 위해 일부러 착용하는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쿠루루를 거의 반 강제로 연행해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지만, 1개소대를
다 투입한 만큼 성과는 있었다. 솔직히 가루루는 쿠루루의 능력이 이 정도까지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자칭 라이벌인 토루루 신병이 보기에 이 남자를 잡아오려면 1개 소
대 정도는 출동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부대원 중 누군가가 대량의 다이너마이트를 던져 쿠루루의 제 1 컴퓨터를 박살내지 않
았더라면, 지금쯤 아마 그들은 다 저세상에 가 있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쿠루루와 부
대원들의 꼴을 비교해 보면, 쿠루루가 그들을 잡아 온건지 그들이 쿠루루를 잡아 온건
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뺨을 살짝 긁힌것 뿐인데, 자신
의 소중한 병사들은 말도 안되는 기계들과 싸우느라 대부분이 중상이었다.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쿠루루는 마치 그런 그의 속마음을 읽듯이 더욱 더 가루루를
비웃었다.
"이거이거 아무리 중위라지만 너무한거 아니야?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막무가내로 잡
아오고 말이야. 끅~끅끅끅. 게다가 내 컴퓨터는 박살났지, 그 망할 꼬맹이는 나한테
막무가내로 욕을 해대지. 이거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꼭꼭 챙겨야겠어~? 끅~끅끅끅."
"빼돌린 문서는 어떻게 했나. 폐기했나? 아니면 벌써 케로로중사에게 갖다줬나?"
가루루는 자신의 눈 앞을 가리는 보라색의 앞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리며 쿠루루
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사람들이 말하길, 가루루의 눈동자는 꼭 뱀을 연상시킨다고 했
다. 짙은 보라색 머리칼에 샛노란 눈동자.
…아름다움? 그러나 그는 아름다움과는 느낌이 멀었다. 확실히 가루루는 준수한 용모
였지만, 그와 대면해 본 사람들은 그 기세에 눌려 아무말도 못하는게 대다수였다. 그
의 무시무시할 정도의 압도적 카리스마는 상대를 주눅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
루루가 그렇다고 하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맞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말장난을
잘 한다는 게 아니라, 그의 말 한마디는 상황을 바꿔버릴 정도의 힘을 갖고 있었다.
물을 한잔 마시는 단순한 동작에서도 품위와 절도가 뚝뚝 묻어 나오는 그런 것.
그러나 어딜가나 예외는 있는 법. 가루루 앞에서 능청스럽게 말할 수 있는 두 사람중
하나가 바로 이 쿠루루 상사였다. 친동생인 기로로조차 자기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는
데, 도대체 이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 것일까.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설계도에 조작일지를 비롯해서 죄다 다 빼갔더군. 무슨 속셈인가?"
"아 글쎄, 그건 이몸이 아니래도. 끄윽~큭큭큭큭."
쿠루루는 사람을 기분나쁘게 만드는 그 웃음소리와 함께 딴청을 피웠다. 어깨까지 내
려오는 눈부신 금발을 검은 고무줄로 아무렇게나 묶은 그는 확실히 이상한 면이 있었
다. 과학자를 상징하는 흰 가운속 삐쩍 마른 몸. 가루루는 가운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
고 삐딱하게 앉아있는 쿠루루의 신체를 어림잡아 계산 해 보기 시작했다.
결론은 이거였다.
"밥 좀 먹어야겠군."
"뭐?"
그제서야 심문의 내용과 관계없는 이 말에 쿠루루가 조금 당황한 듯 반문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오른손 검지로 자신의 벌꿀빛나는 금발을 배배꼬며 입을 열었다.
"이봐이봐, 증거도 없이 사람을 막 잡아오는건 아무리 상사라해도 불법입니다아~? 끅~
끅끅끅. 게다가 당신네들이 Top Secret나 되는 것을 해킹당한건 순전히 다 그 망할 꼬
맹이 때문이잖아? 열받는다고 엄한사람 붙드는거 아니지, 그 실력없는 꼬맹이한테 고
문을 하든가 심문을 하든가 하라고. 끅~끅끅끅."
"……."
─은근히 쌓였나 보군, 하고 가루루는 생각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때는 쿠루루의
컴퓨터를 점령까지 했던 토루루였다. 물론 쿠루루는 단시간내에 자신의 시스템을 되찾
고 신병의 대사를 똑같이 날려주었지만, 쿨한 척 했어도 그 역시 한때나마 자신의 시
스템을 빼앗겼다는 것이 그 대단하신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이다. 역시 해커란 단순하다.
어찌되었든 지금 상황으로만 보자면 가루루는 직권남용에 무단납치죄였다. 일단 쿠루
루의 말대로 그가 해킹을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고, 다짜고짜 쳐들어가서 그를
데리고 나온것도 그닥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쿠루루가 해킹을 한 것만큼은 확
실했다. 가루루 소대의 컴퓨터는 본부 다음으로 좋은 것이었다.(공식적으로는)
게다가 오퍼레이터로는 쿠루루만큼은 못해도 컴퓨터 천재인 토루루가 있는데─ 이걸
뚫고 들어올 사람은 전에 본부의 컴퓨터를 한번 해킹한 전적이 있는, 바로 이자밖에
없는 것이었다.
가루루가 보기에 지금 쿠루루의 행동은, 부모의 돈을 훔쳐놓곤 자기가 안그랬다고 우
기는 아이와 다름 없었다. 뭐, 오히려 그 아이는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지만.
가루루는 야트막하게 보이지 않는 한숨을 쉬며 좀더 유화책을 쓰기로 했다. 어찌되었
든 그 파일은 되찾아야만 했다.
"쿠루루 상사."
"…?"
"자네한테는 일종의 취미거리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소대에겐 중요한 문서다. 원상복귀
시켜놓는다고 약속만 하면 지금 당장 돌려보내주지."
─이미 케로로한테 보여줬다고 해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쿠루루가 만들 마음이 생기
지 않는 이상 그런 복잡한 문서는 케로로같은게 본다고 해도 알 내용이 아니니까. 중
위씩이나 되는 자가 한참 낮은 상사에게 이정도로 부탁조로 말하면 가루루도 상당히
많이 낮추고 들어간 것인데, 쿠루루는 잠시 그런 가루루를 쳐다보다가 이내 그 기괴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끅~끄끅끅. 끅~크크크큭. 이거야 정말 장관이군! 설마 '중령님'께서 나한테 부탁을
한건가? 끅~끅끄끅. 정말 안타깝지만 그건 내가 한게 아니래도? 오히려 이런 그쪽의
모습을 보여준 그 천재 해커에게 내가 감사할 따름이야! 끅~끅끅끅!"
─아아 그래, 네가 한번에 '예 죄송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라고 말할건 기대도 안
했지.
가루루는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그 또한 예상했다는 듯이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
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상사 모독죄라는 둥 까마득한 부하가 상관을 놀리는 것이냐
는 둥 버럭 화를 냈겠지만─그리고 그게 쿠루루가 원하는 것이었겠지만─가루루의 최
대 무기이자 장점은 바로 그 어느때에도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이었다. 다만 뱀을 연상
시키는 그의 샛노란 눈동자는 줄곧 마이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천재 과학자를 잠시
노려볼 뿐이었다.
가루루는 기다렸다는 듯이 책상 서랍 속에서 두꺼운 문서덩어리들을 꺼내 책상 위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 거의 대사전 한권은 될 정도의 두께였다.
"이게 뭔줄 아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끅~큭큭큭."
"……여태까지 자네가 저지른 각종 범죄에 대한 보고서들이다."
─흠칫.
이제서야 쿠루루가 약간 긴장한 듯 싶었다. 그러나 가루루는 단 한치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가루루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증거 조작이라고 비웃을 생각인가?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다 사실이라서 말이야.
자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증거까지 다 수집해뒀지. 자네가 케론군에 들어올때부터 시작
해서 최근 39일전의 해킹까지. 그리고 지금 이 건도. 덧붙여 이것은 우리 소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소대의 것 까지 다 합쳐져 있다. 총 256건이더군. 자네는 밥먹고 해킹만
하나?"
가루루는 마지막 말에 의도적으로 약간의 비웃음을 실어 상대를 조소했다. 문득 저 두
꺼운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가루루는 또
그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든 자신 또한 남에게 지는 성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무너진다면 쿠루루 역시 쿠루루가 아니었다.
"흥, 한 소대의 대장이라는 사람이 할일없이 남의 사생활이나 캐고 다녔나?"
"매일 건프라나 만드는 누구네 대장하고는 격이 틀리지. 그런 질 낮은 소대에 있는 자
네로서는 조금 놀랐을지도 모르겠군."
"…쳇."
쿠루루는 들릴락말락하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는 입가에 여전히 비웃음을 띄우고 있었
지만, 가루루가 보기에 그건 그저 심사 뒤틀린 땡깡쟁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두
꺼운 안경 때문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문득, 저 안경을 벗겨버리면 어떨까─ 하고, 가루루는 자신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끝까지 발뺌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게 좋을거다, 상사. 파일을 돌려주고 없었던 일로
하겠는가, 아니면 여태까지의 화려한 전적을 들춰내서 군법회의소로 가겠는가?"
"내가 아니라고 했지."
쿠루루의 눈썹이 크게 찌푸려지는것을 가루루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 금발의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문득 가소롭게 느껴졌다. 정말 저 안경을 벗겨버리면 무슨 표정을 짓
고 있을까?
어쨌든 지금은 쿠루루가 그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지 않게 된것만 해도 커다란 수확이
라고 볼 수 있었다. 그 큭큭거리는 비웃음은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상태. 가루루
는 슬슬 본격적으로 돌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젊은나이에 중위까지 된 그는, 단정하고
수려한 외모에 비해 잔혹하고 무자비한 면이 있었다. 또 그걸 장점이라면 장점, 단점
이라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말하자면, 고문같은건 가루루에게 있어 애들 장난에 불과한 것이었다.
"계속 그렇게 시치미 떼는 건 자네에게 좋지 않다."
"아니라면 아니라는 줄 알지, 진~짜 끈질기구만. 여태껏 그렇게 물고 늘어지기 전법으
로 일관해서 중위자리를 꿰찬건가? 게다가 나같은 천재님께서 그런 조악한 컴퓨터를
해킹하는건 시간죽이기도 안된다고. 끅~끅끅끅. 그리고 그딴 무기는 이 몸 혼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어. 알아?"
쿠루루의 조소 뒤로─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가루루의 뱀 같이 차가운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걸 의식한 것일까. 쿠루루는
미미한 불안과 함께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나는
듯 했다. 그러나 발끈할 줄 알았던 가루루는 한참동안이나 입을 다물고 있다가, 한참
이 지나서야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더이상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었다. 마
치 뱀이 개구리를 입에 넣은 승리감이랄까?
"그게 무기라는건 어떻게 알았지, 쿠루루 상사?"
"………니가 아까 설계도에 제작일지라고 했…."
"설계도에 제작일지라면 건축물일수도 있다. 그리고 뭣보다 난 자네에게 그걸 무기
라고 말한적이 없어."
가루루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그와 대조적으로 방 안에는 싸늘한 정적만이 감돌 뿐
이었다. 쿠루루는 앗차 하는 느낌이었지만 그것 또한 놓칠 가루루가 아니었다. 쿠루루
의 마이페이스는 점차 무너져 가고 있었다. 네모반듯한 직사각형의 책상을 사이에 놓
은 채 마주보고 앉아있는 두 남자. 보기드문 광경이었다. 가루루는 쿠루루가 좀더 변
명을 하길 바랬지만, 쿠루루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말해봤자 자신이 손
해라는걸 간파한걸까.
그런데 바로 그때. 어색한 침묵을 대신 깨주기라도 하듯이 벽의 네모난 스피커에서 토
루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 대장님!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현재 제한구역으로 가는 중…… 아무래도 A-88
방 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뭐야?"
그때까지 쿠루루와의 싸움에서 방금 쟁취한 자그마한 승리를 즐기고 있던 가루루는, 토루루
에게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A-88. 자신들이 개발 단계
에 있던 그 신무기가 있는 곳이었다. 가루루는 눈 앞의 쿠루루따위는 금새 까맣게 잊
어버린 듯 스피커쪽으로 달려가 마이크를 켰다.
"심각한 상황인가?"
「아닙니다. 적은 혼자인 모양입니다. 금방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워낙 이놈이 전
투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서……앗!」
그때, 토루루의 말이 짤막한 비명과 함께 끊겼다. 실로 가루루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
는 순간이었다. 설마 적이 벌써 그곳에 침입한건가?
"왜그러나, 신병? 대답해라!"
「치, 침입자 확인, ………케로로 소대의 기로로 하사입니다!」
순간 아까보다 더한 싸늘함이 취조실에 맴돌았다. 분명 시멘트로 만들어진 공간의 스
산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었다. 가루루는 조용히 마이크의 스위치를 끄고 뚜벅뚜벅 쿠
루루쪽으로 다가갔다. 스피커에서는 아직도 토루루가 뭐라고 지껄이는 것 같았지만,
가루루는 이미 들리지 않는다는 듯 쿠루루의 앞에 멈춰섰다.
─가루루는 이제 정말 화가 나려고 했다.
"…빠르군, 쿠루루 상사. 벌써 내 동생에게까지 가르쳐 준건가? 케로로 중사에게는 아
직 안보여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인가보군. 아무래도 내 동생은 우리들의
무기를 파괴하러 온 모양이야? 그러면서 잘도 아닌척 시치미를 뗐어."
그는 콱, 하고 쿠루루의 목을 움켜쥐었다. 가는 목이었다. 그 덕분에 쿠루루의 고개가
홱 쳐들어올려졌다. 가루루는 쿠루루의 귓가에 입술을 갖다댔다.
"……침입자는 죽여야겠지?"
"…아, 아니야. 선배는 몰라! 아직 대장한테도 안보여줬…큭!"
"그걸 나한테 믿으라고? 웃기는군."
가루루는 당장이라도 쿠루루를 죽여버릴 듯 그 목을 꽉 조이다가 이내 홱 놓고는, 다
시 마이크의 스위치를 켜고 토루루에게 말했다. 뒤에선 쿠루루가 콜록콜록 하고 기침
을 하고 있었다.
"신병. 침입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포획해라. 저항한다면 사살해도 괜찮다."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명령이다."
얼음장 같은 말과 동시에 스위치를 끄면서, 가루루는 뒤에 깜짝 놀란 얼굴이 된 쿠루
루를 바라보았다. 쿠루루는 아직까지도 콜록거리고 있었지만, 그 치고는 정말 보기 드
물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방금 전 자신의 해킹사실을 가루루에게 들켰을때보다 지금
기로로의 사살 명령을 들었을때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했다. 쿠루루는 더이상 입가에
비웃음을 걸고 있지 않았다. 가루루는 그런 쿠루루를 좀더 비웃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표정이지? 난 분명히 자네에게 기회를 줬다."
"…도, 동생이잖아."
"이런…. 자네는 내가 동생을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뭘 했는지 잊어버렸나보군."
자신이 지구에서 동생을 만나자마자 가장 먼저 한것. 그것은 바로 싸움이었다. 그것도
그냥 싸움이 아닌 목숨을 걸고 하는 싸움─ 그리고 기로로는 거기서 저항한번 못하고
져서 호숫가 바닥에 쳐박혔었다. 기로로가 나츠미를 생각하면서 깨어난건 그저 어쩌다
한번 일어나는 기적에 불과했다.
"어차피 적이다. 적이라면 죽여야지."
"………."
"난 그대가 좀더 시치미를 떼주길 바랬는데."
이것은 진심이었다. 가루루에게 있어서 지금의 기로로는 적, 그 이상 이하 아무것도
아니었다. 형제간의 정? 그런건 이미 예전에 팔아치운지 오래다.
그걸 알기 때문일까. 쿠루루는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파일 돌려
줄게' 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가루루는 쿠루루에게 그걸 그렇게 순순히 말하게 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는 멍하니 앉아있는 쿠루루의 안경을 벗겨내었다.
─이것은 도박이다.
"무슨짓이야, 안경 내놓으시지?"
"호오~ 아직도 그따위로 말할 여유가 남아있나보군."
처음보는 쿠루루의 황금빛 날카로운 눈매──이것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곧이어 가
루루는 쿠루루의 머리를 묶고 있던 검은 고무줄까지 풀러내었다. 벌꿀같이 농밀한 색
의 금발이 흘러내리듯 어깨까지 떨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쿠루루는 의외로 예상보다
반항이 없었다. 이런이런, 벌써 의도를 알아챈건가. 가루루는 왠지모르게 조금 실망스
러운 기분이 되었다.
"내가 토루루 신병에게 관대한것은, 천만분의 1 정도 그대를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어딜 봐서."
"기로로를 살리고 싶나?"
"……니 맘대로 해 새꺄."
─동의라고 생각해도 괜찮겠지. 가루루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벽에 붙어있는 마이
크의 스위치를 켰다.
"신병. 들리나?"
「예, 그런데 저항이 워낙 심해서… 하지만 곧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폭탄을 떨
어뜨릴까요?」
"아니, 그럴필요 없다. 죽이진 말고 잡아두기만 해."
「예? 예에….」
갑작스레 바뀐 명령에 좀 이상하다는 눈치였지만, 토루루는 다른 반문 없이 그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게 더 정상적인 형제관계라고 그 나름대로 납득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루루는 몸을 돌려 다시 쿠루루에게로 갔다. 말은 필요 없었다.
가루루가 의자에 앉아있는 쿠루루의 가슴께에 손을 대려고 할 때, 쿠루루가 갑자기 입
을 열었다.
"…선배는 정말로 몰라. 아마 대장이 나를 몰래 빼오라고 시켰겠지. 그 등신같은 길치
는 어쩌다 운이 없어서 당신네들 비밀창고로 가게 된거고."
그러나 가루루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쿠루루의 검은 남방을 한손으로 쥐고 난폭하
게 그를 일으켜 세웠다.
"소파가 낫겠지."
"………."
대답하고 말고도 없었다. 세평 남짓한 취조실에는 낡은 소파와 책상밖에 없었다. 소파
가 싫다면 책상 위에서 한단 말인가. 가루루는 쿠루루가 대답하기도 전에 소파쪽으로
그를 밀어 넘어뜨려 그의 양 팔목을 결박했다. 직접 만져보니 아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말라 있었다. 케로로 소대에서는 설마 작전참모에게 밥도 제대로 주지 않는 건가?
쿠루루는 황금빛의 눈동자로 가루루를 치켜올려다보고 있었다. 곧 죽어도 자존심이라
는 것이겠지. 가루루는 쿠루루의 목덜미에 입을 묻으며 귓불을 핥아올렸다. 잠시 움찔
하는 움직임이 전해져 오긴 했지만 저항은 없었다. 완전 포기했군.
가루루는 쿠루루의 검은 셔츠의 단추를 풀러 내려가며 입을 열었다. 흰 몸이었다. 가
루루는 정말 너무 말랐다고 생각하며 앞으론 밥을 좀 많이 먹여야 겠다고 다짐했다.
"내 동생을 좋아하나?"
"넌 나 좋아하냐?"
역시 곧바로 스트라이크다. 가루루는 잠시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의 그 하늘높은줄 모르는 자존심 만큼은 높게 사고 있지."
"……꺼~져. 이 짜증나는 자식아."
안경을 벗고 머리를 푸른 쿠루루는 그야말로 색정적이었다. 그러나 그 황금빛 눈동자
가 살기를 담아 자신을 노려보는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러면 마치 자신이 잘
못한 것 같지 않은가?
"맘에 안드는군, 그 눈."
가루루는 안주머니에서 손수건 비슷한것을 꺼내 쿠루루의 눈 위를 덮어버렸다. 그러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역시나 저항은 없었다. 가루루는 내심 우습다고
생각하며 쿠루루의 검은 셔츠와 흰 가운을 동시에 벗겨내버린 뒤 그의 바지 버클을 내
렸다. 매끈한 다리였다. 저 위에서 쿠루루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놈은 비겁해."
"눈이 안보여서 화가 난건가?"
"넌 선배랑 목소리가 너무 닮았어."
쿠루루의 그 말에 가루루는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가루루는 쿠
루루의 쇄골에 잇자국을 내며 그의 허벅지를 들어올렸다. 쿠루루의 분홍빛 돌기를 혀
로 지분거릴때마다 움찔거리는 모양새가 흡사 꿈틀거리는 뱀 같기도 하고 윤락가의 여
인같기도 했다. 초옥 초옥 거리는 야한 소리가 좁은 취조실에 울려퍼졌다. 아마 이러
면서도 쿠루루는 끝까지 신음소리는 내지 않으려 하겠지. 확실히 이건 짜증나지만 갖
고싶은 생물이다. 하지만 가루루가 원한 것 중 여태껏 손에 넣지 못한 것은 없었다.
"그대야말로 비겁하군. 나한테 안기면서 내 동생 생각을 한다니 말이야."
[가루x쿠루] 협박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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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가루쿠루가 너무 보고싶어서ㅠㅠ... 보고싶었는데 왜이렇게 소설이 부족한것이옵니까;ㅅ; 결국 자급자족해버렸습니다...후후;ㅅ; 가루쿠루 동지 여러분들 소설좀 써주세요!........
흑;ㅅ; 민폐끼쳐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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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TMANF 작성시간 06.05.08 더 더 더 더 더 더 더 더~~~~~~~ 써주세요;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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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에이리에 작성시간 06.05.11 사랑해요!!!!! 완전최고예요흑흑 쿠루루는 역시 수예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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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飛流珍:: 작성시간 06.05.16 쿠루수 동지님 싸랑합니다아아~~~..앞으로도 많이 기대하겠습니다아!!.....끝까지 써주셨으면 좋았을걸...아쉽습니다아앗...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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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aroru 작성시간 06.07.16 등신같은 길치 등신같은 길치 푸하하 <- / 아놔 여기 극강 한 분 추가입니까 /// 분량이 너무 짧아서 슬퍼요 ㅇ르우라ㅓㅇㄴ어ㅜ라 <- / 좀더 엄하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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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king_샤베트S2 작성시간 06.10.24 쿠루루수 만세만세 잇힝 (기립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