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수상자 : 임금희
수상 일시 : 2025년 12월 05일 금요일 오전 11시.
수상 작품집 : 『호주살아보기』
대표 작품 : Black Swan
Black Swan
12월을 우아하게 장식하는 여름비가 무화과나무에 총총하고 내 머리에도 맺힌다. 추위와 눈 대신 무성한 나무와 보라색 꽃들과 무화과 열매를 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큰애 집이 있는 호숫가의 풍경이다. 이 생경한 느낌이 내게 여유로움을 주는 건 여행자처럼 잠시 머물기 때문이며 이곳의 평온함 때문일 것이다.
블랙스완이 새끼들을 데리고 호숫가 가장자리에서 쉬고 있다. 일명 흑고니라 불리는 검은백조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상징하는 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고니는 거의 철새인데 이 흑고니는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살아가는 텃새이다. 가끔 한국의 강기슭에서도 한두 마리가 보이기도 한다니 신기할 뿐이다. Black Swan은호숫가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운다. 저 새를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고하고 귀한 새가 새끼를 키우는 모습이 신기하여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Black Swan은 또 다른 의미로 쓰인다. 상식에 대하여 반대로 생각하는 것과상상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을 내포하는 것으로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이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뜻한다. 그것은 호주에서 18세기에 검은 백조가 발견되면서 생긴 용어이다. 수천 년 동안 유럽인들은 모든 백조는 희다고 생각해왔다. 유럽의 한탐험가가 호주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하면서 그 통념이 깨진 데에서 유래되었다. 경제 용어로는 흑조 이론이라 일컫는다. 그 의미는 미국의 금융 분석가 니콜라스 탈레브의 저서 『Black Swan』으로 더 유명해졌다. 탈레브는 Black Swan을 과거의 경험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관측값이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우리는 통념이 없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가만히 살펴보면Black Swan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도 또 세상 곳곳에 빈번히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내게 도Black Swan과도 같이 그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으니…. 오스트레일리아에 온 것이다. 이곳에 와서 정원앞에 호수가 펼쳐진 그림같은 이층집에서 머물게 될 줄 상상이나 했던가! 호주하면 백호주의(⽩濠主義)가 강해서 차별이 심하다고 생각했었다. 여행도 오고 싶지 않은 나라였다. 뜻밖에도 멜버른에 내렸을 때 온갖 인종들이 다 모여 사는 곳이라는 것을 오감으로 실감했다. 이곳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감행했으며 나 자신 편견에 가득 차서 보고 듣는 것이 막혔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는 예외적인 이민정책을 많이 펼쳤다. Black Swan 즉 과거의 통념을 부순 예기치 않은 관측값이 일어난 것이다. 큰애가 여기 와서 살거나 아기 때문에 내가 오게 될 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정원 앞의 호수를 바라보면서 그레이 기와지붕에 크림색 벽, 테라스가 있는 이층집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내리게 될 줄이야!
오스트레일리아는 나무로 집을 짓는다. 1층은 생활공간으로 차고와 주방이 있으며 바닥은 돌로 된 타일을 깔았다. 2층은 거실과 방이 있으며 마루바닥에 카펫을 깔았다. 계단부터 베이지색 카펫이 깔려있는데 나무의 단단하면서도 정겨운 감촉과 덜걱거림이 카펫 아래에서 느껴진다. 7년 된 이 집은 여기저기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콘크리트로 지은 아파트에서 수십 년을 지내다 오니 이층 테라스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으면 판타지 영화 속의 세상으로 들어온 착각에 빠진다.
이곳 오스트레일리아 포인트쿡에 있는 호수에는 흑고니 삼사십 마리 정도가 산다. 물길 따라 굽이굽이 자신들의 영역이 있다. 거의가 암수 한 쌍으로 다닌다. 유유히 호수 위에 그림 같이 떠 있으면 백조의 호수가 연상되기도 한다. 몇 마리가 목에 인지표를 붙이고 있다. 자치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는 멸종했다고 한다.
새끼를 기르는 블랙스완도 더러 있다. 새끼 보호가 얼마나 강한지 암수가 에워싸다시피 하면서 다닌다. 물닭이나 갈매기가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그 커다란 날개를 펼치면서 위협을 가한다. 물 위에 있는 모습과 나는 모습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부리는 빨갛고 몸은 검은색인데 날개를 펼치면 숨어있던 새하얀 깃털이 펼쳐지면서 우아하기 이를 데 없다. 검은색이지만 백조임을 나타내는 것 같이….
블랙스완이 노니는 호수를 바라보며 자연과 더불어 잠시나마 지내게 된 것이꿈을 꾸는 것 같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다시 깨우치고 있다. 이례적일 수도 있고 다양성의 세상으로 문을 연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들이 들락거린다.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지혜를 얻기 위해 틀을 무너뜨리며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리라.
수상 소감
행운의 네잎클로버
유난히 글이 막막하던 한해였습니다.
머리를 비우고 건강을 위한답시고 산책을 자주한 해이기도 합니다. 사실은 글을 찾는 시간이었는데 글은 오리무중이고 뜻밖에도 네잎클로버를 보았습니다. 풀숲 가장자리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잊어버릴 만하면 나타났습니다. 두세 개가 모여있기도 했지요.
‘행운이 오려나. 네잎클로버가 많이 보이네.’ 했는데….
2025년의 끝자락, 입동을 앞두고 행운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가을은 더 붉고 세상은 더 넓어 보였습니다. 쉽게 쓰지 못하는 글들이 예뻐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자의로 시작할 여유 없이 살아온 것 같은데 그 중 단 하나, 제게 글쓰기는 바쁜 와중에도 자의로 시작한 유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순간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지만 문학과 함께 한 시간들이 촘촘히 놓여있습니다. 달려가는 삶의 순간들이 기억에서 원고로, 책으로 기록되어 남겨지면서 수필은 분신이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여정을 보여주는 수필은 쉽지 않은 과제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수필은 여전히 힘들겠지만 이 순간을 기억하며 가슴에 품고 연모하며 살아갈 것임을 다짐합니다.
응원해 준 가족과 제 작품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 문우들 모두 고맙습니다.
▮임금희 r-keumhee@hanmail.net
2012년 월간 〈한국수필〉 등단. 〈지필문학〉 시 등단. 리더스에세이편집장. 강남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위원. 한국수필가협회 편집디자인실장. 수상: 제13회 한국문협 서울시문학상, 리더스에세이문학상, 제21회 강남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