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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수상자 : 서영옥

작성자편집기자(최춘)|작성시간25.12.11|조회수30 목록 댓글 0

제18회 수상자 : 서영옥

수상 일시 : 2025년 12월 05일 금요일 오전 11시

수상 작품 : 그림자를 벗고, 본래의 빛을 보다

                    — 플라톤의 동굴을 연기(緣起)의 지혜로

 

 

 그림자를 벗고, 본래의 빛을 보다 

  — 플라톤의 동굴을 연기(緣起)의 지혜로

 

  어릴 적 나는 어두운 방에 혼자 자도 무섭거나 두렵지가 않았다.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리고, 벽에 드리운 창호지 문 그림자를 바라보면 거기에 비친 그림자가 마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어느 날은 괴물의 형상으로, 또 어떤 날은 기도하는 어머니의 손짓처럼. 그림자는 늘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 내 마음을 채웠다.

 

  나는 그것을 친구처럼 여겼다.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나만의 ‘세상’이었다. 빛의 실존을 알기 전까지 나의 유년은 그림자와 함께 자랐다. 무엇이 허상이고, 무엇이 실체인지 따질 이유도 없었다. 그저 익숙함 속에서 살았고, 마음으로 믿음이 있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나오는 어른이 되었다.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쌓아 올린 시간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이 만든 벽에 갇혀 살고 있었다. 세상은 복잡해졌고, 삶은 예측할 수 없는 곡선으로 휘어져 갔다. 헤아릴수 없는 수 많은 어려움, 나 자신을 탓하며 쌓아 온 죄책감과 미련, 허약한 나를 위로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채 주어진 하루하루를 기계처럼 견디고 있었다.

  그렇게 사노라니 마음은 언제나 굳었고 눈빛은 흐려졌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무기력한 절망의 밑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말도, 관계도, 미래도 모두가 짐처럼 느껴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지던 어느 날, 통도사 사명암 동원 스님께서 “생각이 많아질 땐 언제든지 들러라.” 하신 말씀이 문득 생각났다.

  나는 그 길로 무작정 사명암으로 갔다. 통도사의 무풍한송길은 사철 솔향기로 가득했다. 소나무 사이로 연초록 봄기운이 흩날리는 4월의 사명암은 법당보다 작은 마당과 다실, 그리고 수행 방으로 이루어진 조용한 공간이었다. 스님을 뵙는 일이야 약속 없이도 가능한 일이지만, 어쩐 일인지 그날은 큰스님께서 마당을 쓸고 계셨다. 나는 숨을 고르고 스님 앞에 섰다.

  “스님, 요즘 제가 많이 힘듭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저 자신에게조차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말에 스님은 툭 던지듯 몇 마디를 건넸다.

  “생각을 멈추고, 그 생각이 흘러가는 걸 보십시오.”

  그 한 말씀은, 내 머리를 세게 때리는 망치처럼 다가왔다. 마치 내 안의 오래된 벽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에 돌처럼 서 있었다.

  그날 이후, 사명암에 수시로 드나들며 조용히 나 자신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스님은 여전히 말씀이 없으셨고, 그 대신 행동으로 모든 걸 가르쳐주셨다.

  이른새벽, 스님께서 마당을 쓰는 빗자루의 사각거림이 어김없이 들려왔다. 묵언 속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공양 준비, 나무 아래서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다 잠시 멈춰 선 걸음조차 법문 같았다. 나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내 안의 수 많은 그림자와 마주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 두려움, 이루지 못한 욕망, 누군가를 원망하면서도 끝내 용서하지 못했던 마음, 그 모든 것은 내 마음의 투영이었고, 내가 붙잡고 있었기에 사라지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진실을 보았다.

슬픔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이 쥐고 있던 아픔이었다. 내가 갈망했던 성공, 내가 애썼던 관계, 내가 인정 받고 싶어했던 모든 욕망은 나라는 환영(幻影)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림자는 실체가 아니며 빛이 있을 때 생기는 상이었다. 그 빛이 바로 마음의 본래성, 불교가 말하는 ‘자성(⾃性)’이지 싶었다.

  동원 스님께서는 한 번도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그분의 눈빛과 걸음에서 자성(⾃性)을 보았다. 말 없는 자비 그리고 행동으로 전하는 진실에 담겨있었다. 지금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분명 사람들 사이에 있고,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고, 갈등도, 유혹도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바뀌었다. 나는 동굴을 벗어나 동굴 입구에서 찬란한 태양을 눈부시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피하지 않았고, 벽을 진실이라 믿는 이들과 그림자를 삶이라 여기는 이들에게 내가 느낀 작은 등불 하나를 건네주고 싶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당신의 고통은 실체가 아니라 당신 마음이 만들어 낸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를 지우려 하지 마십시오. 다만 침묵 속에서 바라보십시오. 그 안에 당신 본래의 빛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의 소녀적 별명이 ‘미스 캔들’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불을 밝히고, 내 속은 타들어 가도 겉으로는 기뻐하는 촛불, 미스 캔들.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는지도.

 

  수상 소감

  늦게 핀 꽃 향기처럼

  일흔이 넘어 등단한다는 것은 어쩌면 용기보다 수줍음이 앞서는 일입니다.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 남은 문학의 불씨를 외면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불씨가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이어지며 잊고 지냈던 제 목소리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며 깨달은 것은 문학은 삶의온 도를 견딘 이들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언어라는 사실입니다.

  2025 신인작가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보다 먼저 떠오른 건 감사였습니다. 제 마음을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 같은 길을 걷는 수필가 선배님들, 그리고 묵묵히 제 곁을 지켜준 가족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

  이 상은 제가 써야 할 새로운 서문의 한 줄이라 생각하겠습니다. 문학은 삶을 가꾸는 손 끝의 일입니다. 하루하루의 조각난 기억을 이어 붙여 문장으로 엮다 보면, 그 안에서 슬픔은 부드러워지고 기쁨은 더 깊어질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일,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자신만의 향기를 남기는 일이라 믿습니다. 이제는 빠르게 달리기보다 천천히 머물며 쓰고 싶습니다.

  혹여, 운이 좋다면 언젠가 누군가의 하루를 밝혀줄 문장을 남길 수도 있을 일입니다.

문학은 여전히 나를 자라게 하고, 세상과 나를 잇는 다리가 되어줍니다.

  그 다리 위에서 오늘도 조용히 생각합니다. 삶은 지나가지만, 문장은 남는다고.

  그리고 그 문장이 누군가의 위로가 되기를….

 

▮서영옥 seoyoungf@daum.net

㈜화인테크놀리지대표이사(현). (사)어곡지방산업단지관리공단이사장(현). 경남메세나협회부회장(현). 2021년 존경받는 기업인 선정(중소벤처기업부). 금탑산업훈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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