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통렬하게 비판한 김익순은 바로 그의 조부였다.
조형문 이라는 자에게 1천 냥을 주겠다고 약조하고 적장의 목을 베어오게 한 것이었다. 일은 성공하여 조형문은 적장의 목을 가져왔다.
그런데 김익순은 마음이 바뀌어 그에게 사례금을 한 푼도 주지 않고 그의 공적까지 가로채어 버렸다. 이에 격분한 조형문은 곧바로 조정에 그 사실을 고해바쳤다.
그는 처형을 당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전력의 자손인데 어찌 얼굴을 들고 살 것인가. 김삿갓은 삿갓 속에 얼굴을 묻고 식객으로 떠돌아다녔다.
돌이켜보면 그가 떠난 지도 어언 140여 년이 흘렀다. 조상의 죄업을 가시관처럼 쓰고 속죄하며 살다간 한 생이었다. 그의 생은 전설이 되었다.
ㅡ 「김삿갓의 풍류風流 생각」중에서
ㅡ 임병식 수필선, 『웃음설設』, 소후출판,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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