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첫 수필집이 나왔을 때 나는 아버지의 병실에 들러 책을 선보였다. 마흔 안쪽의 숨결이 고스란히 밴 책이었기에, 병석의 아버지께 초를 다퉈 고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행한 이가 있어 더 머뭇거리질 못하고 병원 언덕길을 내려서는데, 누군가가 책 꾸러미를 잡아챘다. 놀라 돌아보니 어머니였다
“네가 책을 현관에 맡겨놨다는 말을 깜박 잊었다. 숨이 차게 왔구먼. 이리 내라. 하나도 안 무겁다.”
어머니는 나에게서 책을 받아 들어 머리에 얹고는 동숭동 길을 걸으셨다. 똬리도 없이 손도 놓은 채 조금은 도도하게 …. 나와 함께 맞들던 이가 어안이 벙벙해 서 있는 사이, 어머니는 저만치 앞서 걸으며 손짓을 하고 계셨다. 나로선 힘든 책 40권의 무게가 어머니에겐 그렇게 간 곳이 없었다.
ㅡ 「어머니, 책을 이고 걷다」 중에서
ㅡ 김선화 수필선, 『춤추는 풀』, 소후출판, 202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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