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가 없어진다는 뉴스를 들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하나둘 내 곁에서 떠나가는구나 하는 생각과 나도 저렇게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결국 산다는 것도 사라져가는 과정이고 사라지기란 말이 된다. 없어지기 위해 우린 열심히 살아간다는 이 아이러니, 하지만 그것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운명 아닌가.
내게 전보에 대한 기억은 놀라움과 기쁨이 공존한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막 마쳤는데 ‘외조부님 사망’이란 전보가 왔다. 목포며 광주에서 올라오셨던 이모님들이랑 신랑 · 신부는 밥도 못 먹고 부려부랴 전라도 나주로 내려갔다. 덕택에 나의 신혼여행은 외조부상 오일장이었다. 그때 전보를 받으며 떨리던 내 손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나마 식이 끝난 시간에 도착했으니 다행이었다.
1997년 첫 문학상을 받았다. 그 수상 통보를 전보로 받았다. 그 기쁨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이처럼 희로애락의 소식을 전해주던 전보인데 없어진단다. 요즘은 문학상 수상 통보도 전화로 하지만 전보 통보야말로 제격이지 싶다. 어린 날 빨간 자전거를 탄 우편배달부가 마을로 들어오면 어느 집으로 가는가 모두 쫓아가곤 했었다. 그리고 “전보요!” 하고 외치던 소리가 왠지 듣기 좋았다. 그런데 사라진단다.
ㅡ「사라진다는 것」 중에서
ㅡ 최원현 수필집, 『유명하지 않은 행복』, 북나비, 2026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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