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서 열차에 올라 망연히 밖을 보며 몸을 맡긴다. 천안을 지나고 점점 고향 땅이 가까워진다. 서대전역을 지나며 가슴이 더욱 공허로 치닫는다.
동생을 잃은 지 1주일, 그는 벌써 신선이 되어 외증조부께서 최초로 터를 잡았다는 마을 뒷산을 누비고 있었다. 저절로 새는 말을 참으며 맘을 다진다. 생사의 이별에서 산 자가 망자를 붙잡을 일이 아니라고들 한다. 놓아주어야 가는 길이 자유롭다고, 엄습하는 그리움을 억지로 떠다민다
‘잘 가라. 잘 가거라. 그렇게 떠난 데에는 하늘의 뜻이 있을 터, 훠이훠이 신선이 되어 잘 노닐어라. 견디어보마. 명치끝을 누르며 휘둘리지 않으마. 그렇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으려니 넉넉히 다독이며, 섣불리 그리워하지 않으마. 행여라도 매정하다고 서운해 말거라. 부디 잘 가거라.’
ㅡ 「시루봉 운무에 신선은 노닐고 – 또, 제망매가」 중에서
ㅡ 김선화 수필집, 『수맥(水脈)』, 북나비 , 2026.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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