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수상자 : 정성영
수상 년도 : 2025년
수상 작품 : 그래도 살 만한 세상
— 신삼숙의『눈물 도둑』을 읽고
그래도 살 만한 세상
갑자기 중환자실에 동생이 입원했다. 공기업의 임원으로 정년 퇴임하고 대학강의와 여러 기업체의 안전교육으로 동분서주하며 왕성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날벼락이란 말인가?
건설회사의 안전교육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안전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회사측의 부실한 시설물이 그동안 반복된 비바람에 느슨해져 하필이면 동생이 그 앞을 지날 때 무너져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누워있는 아우의 처참한 모습에 그만 대성통곡이라도 나올 듯 울컥한 마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눈물은 마음과 다르게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난겨울에 감명 깊게 읽었던 신삼숙 에세이 <눈물도둑>이 생각 난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수필집이 내게 준 감명이 그만큼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었던 탓에 필연인 듯싶었다. 온갖 시련과 역경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본인의 자아 성취를 위해 쉼 없이 절차탁마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 깊었다. 꾸밈없는 진솔한 글들을 읽으며 나만 겪는 어려움은 아니었구나 하는 큰 위안과 새로운 힘도 얻었다.
『눈물도둑』은 아직도 내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어 가끔 인상 깊었던 대목을 다시 펼쳐보곤 한다. 작가의 삶은 그리 평탄해 보이지 않았기에 애틋하게 더 정이 간다. 부부를 중심으로 자녀와 함께, 한 가정의 구성원 간에 갈등과 불협화음이 때론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작가는 슬기롭게 전화 위복의 기회로 삼아 역경을 새로운 도전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친구들을 사랑했다. 가장의 역할은 잊고 있다. 나와 아이들은 순위에서 항상 밀려 있었다. 그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자연히 우리도 그를 그림자처럼 대했다.>
부부간에 다툼이 있을 때마다 그래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지 뭐 별수있나, 하면서도 새삼스럽게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나야말로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나 하는 것일까?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동생은 졸지에 닥친 불행에 얼마나 좌절을 겪을까? 가족 한 사람이 병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면 온 가족이 환자가 되기 쉽다. 나의 돌아가신 모친은 폐암으로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뜨셨다. 산소 호흡기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힘들어하시는 가쁜 숨소리가 오랫동안 자식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듯 고통스럽고 괴로운 나날이었다. 집안 식구 모두 환자가 되어 분위기는 늘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지막 호스피스에서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몸의 진통은 마약 진통제로도 듣지 않았다. 고통의 앓는 소리는 애간장을 태운다.
바로 내가 겪었던 일이었다. 모든 죽음이 슬픈 일이지만 고통 속에서 가족과 마지막 작별을 하는 임종의 시간, 그 처절한 동병상련의 비통함을 내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불안 속에 살아가는 삶이 우리 인생이다. 나의 동생도 어느날 느닷없이 불행한 사고를 당했다. 신삼숙 수필가도 마음 착한 남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과 초조함이 머릿속을 맴돌아 늘 대비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눈물도둑>을 읽으면서 세상을 읽는 유비무환의 지혜를 생각하게 된다.
나도 그늘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눈물을 흘려보지 못한 사람은 남의 눈물에 공감 할 줄 모른다.
그늘은 시련과 역경이다. 누구나 비바람을 맞으며 눈보라를 헤치고 인생길을 걷는다. 그렇기에 간간이 비추는 따사로운 햇살도 더욱 반갑고 길가에 핀 들꽃도 향기롭게 느껴지는 법이다.
오래전에 8시간에 걸친 큰수술로 대학병원에 근 보름여 입원해 고생한 경험이 나에게는 잊을수 없는 시련이었다. 삶과 죽음의 불분명한 경계선에서 마음이 몹시 심란했다. 모두 살기 바빠 병문안 오는 사람도 별로 없다 보니 누워있는 나로서는 이기심에 섭섭한 마음이 일었다. 그런 환경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남들이 힘들어할 때 그들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던가?
남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는 “아휴, 조심해야지.” 하며 남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내 일이 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경우가 바뀌어 봐야 남의 사정도 알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망자의 이름을 부르며 대성통곡하고 실신까지 한다. 그러면 감정이입이 돼 같이 짠해지는데 막상 나한테 일이 닥치니 담담했다.
눈물은 흘리고 싶다고 마음대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배우는 연기자이니 장소와 상황에 따라 울며 눈물을 흘릴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은 어려운 일이다. 나도 긴 세월을 살다 보니 비슷한 경험에 공감이 간다.
이제 내 인생을 싱싱하게 하려면 실컷 울어 쌓여온 찌꺼기를 깨끗이 씻어내고 다시 살아나고 싶다. 가끔은 내 눈물을 누가 훔쳐 갔을까 생각해본다. 진짜로 감정이 무뎌져서일까. 삶이 팍팍해서였을까 모르겠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이별, 실패, 죽음, 뜻하지 않은 재난 등으로 수많은 시련을 겪는다. 신삼숙 수필가처럼 영화나 미술, 문학 등 다양한 친구들과 동행한다면 더 즐거운 인생길이 되리라.
산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눈물의 강을 건너야 피안의 정토(淨⼟)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렵게 살다가 33살에 죽은 김소월도 아내에게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 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넓고 길게 보면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결론이다. 이 세상은 그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따뜻한 양지쪽도 있고, 눈보라도 치지만 꽃피는 봄도 온다. 희로애락이 점철된 인생길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가는 길이다. 『눈물 도둑』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확실한 신념이 되었다.
수상 소감
수필 문학에 더욱 정진하는 기회로
어린 시절에 해방을 맞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6ㆍ25 동족상잔의 난리를 겪으며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참으로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문학 잡지나 소설책 한 권은 고사하고 교과서와 참고서도 없어서 선배한테 물려받거나 빌려서 공부하던 시절이 가끔 떠오릅니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이처럼 어려운 시절을 겪은 80세 전후의 문우들이 은발을 휘날리며 매주 화요일이면 수필 한 편씩을 들고 도서관에서 만납니다. 벌써 7년여의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치열하게 토론하며 문학을 논하지만 때로는 고담준론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냉엄하게 정치판을 질타하기도 합니다. 밥도 같이 먹고 막걸리도 한 잔 합니다. 참 좋은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는 길은 어디까지나 문학입니다. 열심히 쓰고 읽고 감상하며 토론하지만 때로는 반복되는 일상처럼 나른함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마침 신삼 숙수필가의 <눈물 도둑>을 읽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눈물과 마주 서야 하는 순간들이 누군들 없겠습니까만, 이 수필집을 읽으면서 크게 깨달은 점은 슬픔을 견디고 극복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고, 그래서 더욱 값진 삶의 기쁨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제8회 독서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느슨해지려는 문학의 허리 띠를 다시 바짝 졸라매고 수필 문학에 더욱 정진하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정성영 jsungy1941@hanmail.com
2019년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한국 문인협회 회원. 계간 <창작산맥> 詩 등단. 현 서울 강서문인협회 이사. 저서: 『동진이 사람들』, 『한 밤중에 찾아온 손님』 기타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