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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수상자 ] 이혜복 : 우수상

작성자편집기자(최춘)|작성시간25.12.11|조회수23 목록 댓글 0

제8회 수상자  :  이혜복

수상 년도 : 2025년 

수상 작품 : 외롭지 않은 노년을 미리부터 설계한

                 —성의제의 『가래를 나누어 드립니다』를 읽고

 

 

  외롭지 않은 노년을 미리부터 설계한

  성의제 수필가의 『가래를 나누어 드립니다』를 반갑게 읽었다.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글에는 작가의 소신과 가치관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글쓴이에게 내재한 생각의 갈피, 감정의 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수필의 경우엔 더 말할 것도 없다.

  중국 문학을 전공하고 오랜 세월 그 분야에 몸담았던 작가는 강원도 평창에 거주하며 산천과 벗하고 있다. 그를 처음 대면했던 그날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어제인 듯 떠올랐다. 굽은 몸을 지팡이와 동무해 들어오셨는데, 잔뜩 그을린 얼굴에서 빛나던 눈은 소년의 그것보다 반짝였다. 강의실 구석에서 잠자는 먼지까지 깨울 정도로 쩌렁쩌렁한 음성이었지만 오랜 세월 응축된 따스함이 배어 나왔다. 노구의 모범생은 그날 맨 앞자리에 앉으셨고 항상 그 자리가 지정석이다.

  어쩌다 접하는 수필집 중에는 읽기 힘든 경우가 더러 있다. 잔뜩 힘을 주어 과한 포장에 골똘했거나, 사실의 나열에 그쳤거나, 글을 쓴 의도를 찾기 어려운 경우엔 읽는 입장도 난감하다. 그의 수필집 『가래를 나누어 드립니다』를 단숨에 읽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작 『오대천은 흐른다』도 그랬지만 위의 예시와 동떨어진 까닭이다. 90을 넘긴 노교수가 살아온 흔적, 장남이자 교육자였던 그의 삶은 치열했지만 부양과 후학 양성의 임무를 다한 현재의 삶은 단출하기 그지없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본 모습으로 살고있는 그의 수필에는 촌철살인의 유머가 있었다. 불필요한 수식이나 어려운 말로 치장하지 않아서 담백하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빠뜨리지 않으면서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는 일은 말처럼 만만치 않다. 군더더기 없이 깔밋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한 문장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는 흡인력은 평생을 책과 함께한 작가의 내공이다.

  딸만 둘 낳은 사람은 금메달, 아들딸 낳으면 은메달, 아들만 낳은 사람을 우스갯소리로 목매달감이라고 풍자한 「감나무가 지에」에서 감나무와 발음 한 끗 차이의 밤나무를 데려오는 천연덕스러움은 차라리 해탈로 여겨진다.

  「호감이 가는 식당」 3호점에서 “99세 넘은 어르신은 편안한 마음으로 담배를 즐기세요.”라는 재치를 읽고는, 몇 년 더 기다려 그 나이에 이르면 끊은 담배를 맛있게 피워보고 싶다며 한층 기교 높은 유머로 응수한다. 6호점은 또 어떤가. 도시를 관광하다 시장이 추천한 10곳의 식당을 보며 그는 추천받지 못한 다수의 나머지 식당을 염려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생을 희망한다.

  순과 싹의 다른 점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탐구심은 천진하고 친숙하다. 생명의 경이 앞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한 궁금증이다. 순은 목본의 움, 싹은 초본의 씨앗에서 처음 나오는 여린 잎이라고 정리해보는 모습은 얼마나 그다운가.

  또한 그는 욕의 건강함을 역설하기도 한다. 교양과 품위와 다소 동떨어진 단어지만 그것이 주는 효과도 없지 않음을 짚고 넘어간다. 감정의 발산이나 화의 배출이라는 정신적 약리작용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름다운 꽃 속에 치명적인 독이 있을 수 있고, 독초에도 약 성분이 존재하는 것처럼 욕도 그러하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욕도 약이 될 수 있다며 추켜세우는 작가는 가식적 품위 따위엔 눈을 주느니 원초적 진심을 지지한다.

  일전에 그는 개복숭아 씨앗으로 베갯속을 채우고픈 지인을 위해 구해주겠다고 호기를 부린 적이 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복숭아 자체가 드물고 풀숲을 헤쳐 열매를 줍는 일도 쉽지 않다. 씨앗 한 되를 구하려면 한 말은 넘게 주워야 하는데 기쁘게 자청한 그였다. 「가래를 나누어드립니다」에서 역시 나누기 좋아하는 작가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산책길에 떨어진 가래를 발견한 그는 생각지도 않던 장소에서 보물을 찾은 심정이다. 햇볕과 공기, 물과 바람이 합작한 선물이 하도 어여뻐 하나둘 주워 모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가래 손질은 여간 손이 가는 게 아니다. 외피는 비교적 쉽게 벗기지만 울퉁불퉁한 속껍질에 박힌 섬유질은 솔로 제거해야 하는데 작가는 나눠 줄 사람들을 생각하며 흐뭇이 수고한다. 병원에서 대기 중인 환자들, 터미널이나 공원의 노인들께 나눠주며 손 운동을 권유한다. 그들의 혈액순환과 지압에 기꺼이 공헌한다. 문우들을 떠올리며 노구를 쭈그린 채 손마디에 힘을 준다. 손질한 가래를 햇볕에 말려 정표를 완성한다. 손아귀에 쥐고 마찰하면 운동이 되지만, 손바닥에 놓고 비비면 비손이 됨을 그는 친절히 안내한다. 기도 전에는 반드시 반성과 용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그게 빠지면 헛기도라고 일침을 놓는다. 아직 가래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눠 주고 싶은 그의 심미안은 열매의 마찰음에서도 음률을 감지한다. 개골개골 빨리 비빌 때 나는 개구리 소리를 반기며, 천천히 마찰하며 가을 풀벌레의 수심가를 듣는다.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절대로 들을 수 없는 경지다. 사물을 꿰뚫으며 자유자재로 소통하는 작가의 능력이다.

  책을 읽는 동안이 아니더라도 그의 사유는 쉬지 않는다. 글을 쓰고 번역하고 사전을 찾고 틈틈이 산책하며 자연에 의지한다. 떨어진 가래는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선물이 되고 그의 눈에 들었던 빈 땅의 명아주는 외출을 책임지는 청려장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외롭지 않은 노년을 미리부터 설계했음을 알 수 있다. 규칙적인 생활의 자기관리, 열린 소통으로 관계 맺기, 멈추지 않는 배움으로 삶을 충실히 메워나간다. 나눌수록 흔해지는 마음의 여유를 무엇보다 닮고 싶어진다.

  정년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했었다고 수필집에서 그는 말한다. 전원에서 닭이라도 키우며 살 것인가. 북한산을 등반하며 빈 병을 주워와 보탤 것인가. 방방곡곡 개인택시를 몰며 살 것인가. 장작을 패주거나 비질을 해주며 암자에 의탁할 것인가. 그가 얼마나 무욕의 인생

을 추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렇게 바람대로 사는 모습에서 그가 단련했을 정신과 지성의 균형을 짐작할 수 있다.

 

  “내 생애와 인연을 맺었던 고마운 분들게 작별의 인사를 정중히 올리는 바이다. 풀지 못한 오해와 갚지 못한 신세를 내 생의 부채로 안고 가는 부담이 무겁습니다. 언제까지나 여러분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입니다.”

  이토록 서운하고 서글픈 서문을 아직 본 적 없었다. 이렇게 기품있는 작가의 말은 처음이지만 미리 정중한 작별 인사를 적어 내렸을 작가의 심정이 헤아려졌기에 나는 슬프다. 그러면서 부럽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죽음에 대비해 지나온 인연을 되돌아보며 작가는 이렇게 훗날 남아있을 사람들의 심정에 미리 예방주사를 놓는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는 동안에도 끝까지 주위를 챙겨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점검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혜로운 나눔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행간마다 머무는 정과 유머는 특별 부록 같은 선물이었다.

 

수상 소감

건강한 자극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멀쩡한 책상을 놓아두고 글을 쓰는 곳은 언제나 앉은뱅이책상입니다. 목과 어깨와 허리에 좋을 리 없는 자세지만 이 불편 또한 오랜 벗이기도 합니다. 반면 글을 읽을 때는 등을 의자에 붙여가며, 바른 자세를 의식하곤 한답니다. 어쩌면 장시간이 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필집을 읽을 때는 특히나 주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작가가 툭 건드려주는 건강한 자극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내게 고갈된 그 무엇이 길지 않은 글 속에 들어있기도 하고, 무뎌지던 감동 센서가 호전되기도 합니다. 불안정한 내면이 순해지기도 하며,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띌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수필집을 접하는 건 행운입니다. 나에게 맞는 유능한 의사를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염려와 고통이 유난하던 여름이었습니다. 오봉저수지를 둘러싼 호젓한 풍광을 좋아하는 까닭일까요? 열대야 속 성근 잠으로 뒤척일 때면 버릇처럼 강릉 날씨를 검색하곤 했습니다. 생활용수 부족으로 타들어 가는 그곳에 단 며칠만이라도 작달비가 쏟아지기를 꿈속에서도 바랐습니다. 그 무렵 성의제 작가의 수필집을 읽었는데, 심상치 않은 끌림에 앉은뱅이책상 위 노트북을 켜고야 말았습니다.

  이번 결실이 뜻깊습니다. 성의제 수필가님께 존경을 바치며 기쁨을 같이하고 싶습니다. 특유의 음성으로 웃으시며 좋아해 주실 것입니다. 기회를 주신 권남희 이사장님과 다루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꾸준히 글의 근육을 키워 보라는, 무언의 격려라는 걸 알기에 어긋남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혜복  post636363@naver.com

2015년 <문학시대> 수필로 등단. 하서문학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문인협회, 강원수필문학회, 강원여성문학인회 회원. 수필집 『아는 만큼 보이나 봐』, 『다르니 다행』. 전자책 『엄마와 시간을』. 한국수필가협회 올해의 좋은수필상 수상(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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