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4일
| 큰돌개혁장로교회 주일예배 ▣주일경독시간 인도: 심진희 집사 ▶시편찬송 43장(21편1-7 B) 다같이 ▶경 독 열왕기하18장 마가복음12장 다같이 ▶합심기도 다같이 ① 성령과 말씀의 예배 /설교자와 회중을 위해 ② 성찬의 예배/ 은혜언약 안에서 하나님과 성도의 교제가 풍성하게 드러나는 예배를 위해 ③ 믿음과 순종의 예배/ 배움(교리)과 실천(삶)이 있는 예배를 위해 * 예배부름과 축언 ▶목사;“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1:3) ▶회중;“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 * 송영(시편찬송) 107장(시50:14-15,23절 * 니케아신경 다함께 *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제24주일 * 십계명낭독 다함께 * 참회기도 다함께 “자신을 진실로 죄인으로 인식하며, 겸비하게 그리스도 안에서만 전적으로 사죄의 은혜를 기대하는 그대들에게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사죄를 선언하노라. 아멘” * 시편찬송 56장(시25편1-4) 헌 상 심진희 집사 목회기도 담임목사 말씀의 강설 계1:9-16 ② “요한계시록 강해”(18) 공동기도 다함께 주의만찬 계10:8-11 다함께 * 찬 송 찬송가336장 다함께 * 강복선언 설교자 * 교제의 인사 다함께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 표는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 헌금은 미리 준비해 미리 봉헌함에 넣어주세요. *주일 오후 모임: “성경과 교리” 교리와 함께 읽는 베드로전서 본문연구(84) |
|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제2부 인간의 구원 제24주일 제62문: 왜 선행을 통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와질 수 없으며, 왜 선행은 의로와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답: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수 있는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은 불완전하며 여전히 죄로 더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63문: 하나님께서는 선행에 대하여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보상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당신은 그토록 선행을 무시합니까? 답: 그 보상은 노력의 댓가가 아니라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제64문: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러한 교훈으로 인해 선행에 관하여 무관심해지고 사악해지지 않겠습니까? 답: 아닙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감사의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성찬본문 / 계10:8-11
『 (계10:8-11)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
▣설교본문 계1:9-16 ②
『(계1:9-16)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
▣지난 주 말씀 반추하기
계시록의 서론은 사도의 공적증언으로 삼위하나님의 사역으로서의 복음을 선포한다. 진리는 선언적이고 고백적이어야 한다. 서문은 신앙을 구성하는 객관적이고 사도적인 진리를 선언한다.
①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참여하는 믿음 - 이제 참된 신앙을 구성하는 주관적인 3가지 요소를 언급한다. 하나의 관사가 이끄는 ‘예수의 환난과 예수의 나라와 예수의 참음’에 참여하는 것이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예수의 지상적 생애와 죽음에 참여한다.‘환난과 나라와 참음’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계2장의 일곱교회에 대한 서신은 예외 없이 ‘환난과 나라와 참음’을 내용으로 한다. 일곱교회의 현실에서 환난과 참음의 다양성을 본다. 종교적일뿐 아니라 정치적인 환난도 있고, 믿음과 행위의 불협화음, 부유함속에 안일함과의 싸움, 극심한 경제적 빈곤의 문제등 그리스도인의 환난은 다양하다.‘루터’는 고난을 참된 교회의 표지 중 하나로 정의한다.
▶요한은 일곱 촛대사이에 계신 그리스도를‘인자 같은 이’라고 묘사한다.‘인자됨’은 지상의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를 나타내시는 자신을 향한 독특한 메시야적 칭호였다. 요한은 승귀하신 그리스도를 보면서,‘인자 같으신 분’으로 묘사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지상교회의 고난과 낮아짐에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레고리 빌은 ‘환난을 견디는 것은 예수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루터는 고난은‘가면을 쓰신 하나님’의 ‘낯선 일’이라고 묘사한다.
② 고난, 참된 믿음의 시금석 - 바울도 말하길, ‘그리스도를 증언함과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한다. 루터의 말처럼 고난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지로 작동한다. 말씀은 반드시 환난과 박해를 수반한다.(마13:21) 개혁파는 고난을 통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한 교회가 그분과의 교제에 참여하는 방식이라고 고백한다. 나아가 칼빈은 고난을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섭리적 훈련’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고난은 그리스도와의 교제, 자기부인의 훈련,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도록 마음을 들어올림, 그리고 참된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는 수단이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한다.(행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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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재창조의 증인이 되다
▶ 사도요한은 일곱 교회의 형제로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계01:0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이 앞에서‘나라와 제사장’된 교회의 정체성과 소명을 이야기할 때 그 ‘나라’(바실레이아)라는 단어를 여기서 다시 사용합니다. 곧 요한은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다’을 ‘예수의 환난과 예수의 나라와 예수의 참음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동참하는 자’(sugkoinwnov")란 ‘함께’(쉰)라는 전치사와 ‘참여하는 자/동업자’(코이노노스)란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곧 함께 참여하는 동업자라는 의미입니다. 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증인일 뿐 아니라 교회의 형제로서 그리스도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함께 하는 자, 곧 마치 동업자요 파트너가 되어 그 나라에 참여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그분의 생애적 삶과 죽음에 참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합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신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제32문: 그러면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웁니까? 답: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한 지체가 되어 그의 기름부음에 동참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주의 이름을 시인하고 나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리며 선한 양식을 가지고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며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만물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우리를 위해 속죄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대리적 고난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십자가에서 깨어진 주님의 옆구리에서 속죄의 피와 물이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서서 그분의 대속의 수난이 주는 은혜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덧입혀지고, 시커먼 죄 덩어리 인생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씻김을 받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의인이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즉시로 우리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청합니다. 이것은 어떤 간격 없이 일어나는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그분의 삶과 죽음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십자가 구속은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창조의 본래적 목적에 기여하는 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본래적 소명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재창조(구속)의 일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교회로서 그분의 재창조의 일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 창조의 증인들은 천사들이었습니다. (욥38:4-7) 그러나 두 번째 창조의 증인들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은 그리스도의 새창조사역을 그림처럼 묘사합니다.
▶(행2:2-4)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말씀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덮으시며 만물을 창조하신 사건과 흙으로 지으신 사람에게 하나님의 호흡(루아흐)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사건과 상응합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20:22)하시며 새 창조로서의 교회의 예표가 되었다.
▶교회를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다는 말씀은 창1:27-28절에서 아담에게 주신 지상명령의 연속으로서의 성취국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형상된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사역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같이 그리스도의 형상인 교회(롬8:29;갈4:19)는 그리스도의 통치사역에 동참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상교회가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는 방식이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13: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계시록은 그리스도의 나라에 참여하는 교회의 초상을 ‘인내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계시록에서 인내는 환난가운데 참여할 때 믿음의 또 다른 실제로서 작동합니다. 그래서 계시록 안에 ‘참음’이라는 단어가 모두 7번 등장한다는 점을 주목한 바 있습니다.(계1:9;2:2,3,19;3;10,13:10;14:12)
요한에게 믿음이란 항상 인내라는 단어와 병행적으로 사용됩니다. 믿음이란 견디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함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 본문의 말씀은 오후에 공부하게 될 베드로전서의 결론부와 내용이 중첩됩니다.
▶(벧전5: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ejpitelevw) 줄을 앎이라
여기서 ‘동일한 고난을 당한다’라고 할 때 모든 지상의 교회의 공통의 소명이며 경험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당한다’(ejpitelevw,에피텔레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채운다, 성취한다’는 의미입니다. 관용적으로는 ‘세금을 지불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마17:25;롬13:7,고후8:6,111)참조) 흥미롭게도 유사한 단어가 쓰인 곳이 십자가위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Tetevlestai,테텔레스타이)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이 두 단어 모두 ‘텔레오’라는 단어를 어원으로 합니다. 다만 예수님의 경우, ‘채무를 갚다’는 의미이고, 베드로의 용법에는 ‘세금을 완납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양자 모두 특정한 분량을 채운다는 의미가 있지만 전자는 객관적인 속죄의 의미로서 칭의의 은혜를 수반하고, 후자는 교회의 당위의 의미에서 성화의 은혜를 수반합니다. 교회가 채워야하는 고난의 분량은 속죄의 목적이 아닌 그리스도의 완전한 통치(심판)을 구현하기 위해 이 땅에서 채워야하는 고난의 분량을 의미하기에 종말론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백성은 세금을 지불함으로 그 나라 백성의 지위와 신분을 확인하듯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흩어진 나그네(벧전1:1)인 교회는 그들이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임을 입증하기 위해 ‘고난이라는 세금’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고 묘사합니다.
▶(골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이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속죄사역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완결적 속죄사역에 참여하는 교회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지상교회를 통하여 완전한 성취를 위하여 전진하고 있음을 기록합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십시요. 사도행전에서 교회의 확장의 기록은 승리하신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하여 이기고 또 이기고 계시는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계06:0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환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확장될 때, 제자들은 유대당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행4장) 교회 안에 아나니아와 삽리바 사건으로 진통을 겪습니다.(5장) 헬라파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갈등이 촉발됩니다.(6장)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확장될 때는 스데반의 순교가 있었습니다.(6장후) 이 박해로 말미암아 ‘유대와 사마리아로 교회가 흩어졌다’(행8:1)고 기록합니다. 교회가 예수의 믿음을 증언하자 박해를 받았고, 이로 인해 오히려 교회는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교회가 ‘환난과 나라와 참음’의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십자가로부터(ex cruce)
더 나아가 교회가 치러야 할 이 고난의 분량은 다만 선교적인 의미에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존재자체가 직면하는 모든 고난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들의 삶의 한 부분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갖게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 죄에서 해방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이 된’ 존재들(계1:5-6)입니다. 바울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합니다.(고후5:17)
그러므로 중생한 신자의 삶은 그 양상이 무엇이든지 구속적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의 지상적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일용할 양식에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모든 삶의 문제는 영적인 의미가 있고 온갖 시험으로부터 투쟁하며 인내하는 믿음을 요구받습니다. 마6장의 주기도문적 세계를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하나님의 섭리(통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제27문 :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
답: 섭리란 하나님께서 항상 지니고 계신 전능하신 능력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을 붙드시고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꽃잎과 풀잎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양식과 음료 건강과 질병 번영과 궁핍이 모든 것들이 사실상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애로운 손길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들의 모든 삶의 어느 한 부분도 해당되지 않는 부분이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신자가 당하는 모든 고난에도 구속적 의미와 상관없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시련은 그것이 종교적인 명분과 상관없는 것처럼 보여도 삶의 모든 영역이 구속적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야고보사도는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약05:0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사도가 인내를 촉구하는 문맥은 순교냐 배교냐하는 종교적인 고난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2) 교회 안에서 지체들과의 다툼과 비방같은 갈등의 문제(약4:1-3;11-12), 세상과 벗되며ㅜ 살아가는 일상의 탐심(약4:4), 두둑 한 이윤을 챙기기 위해 한해간 장사를 해보려는 헛된 계획들(약4:13-14), 부하려 하는 자들의 부당한 욕망(약5:1-3), 질병으로 인한 고통(약5:14절이하)등입니다. 이런 일상의 유혹들과 싸우는 모든 삶의 고난에 대해 ‘주꼐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당면하는 모든 고난을 ‘십자가로 부터’(엑스 크루케)라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삶에 찾아오는 좋은 일들에도 십자가의 은혜로부터 왔다고 고백하고, 삶의 모든 고통도 십자가로부터 오는 수난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신자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시련, 예기치 못한 고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모든 수고와 역경들, 삶의 일상적 무게들도 모두 ‘십자가로부터’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동안 치러야하는 모든 종류의 고난을 십자가에서 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에게 요구하는 남은 분량의 고난을 기꺼이 참고 견딥니다.
여기 종말론적 희망을 담아 고백합니다. 우리가 더 큰 시련에 노출될 때 우리는 더욱 감사합니다. 십자가를 앞두신 주님이 ‘이 땅의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않겠다’(마26:29)고 하신 것처럼 다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희노애락을 누리며 끝낼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실때까지 이 땅에서는 고난의 쓴잔을 그리스도와 함께 마시는 자들인 것입니다.(막10:39)
▶‘빙점’이라는 책의 저자인 일본의 여류작가이자 독실한 기독교인인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70년의 생애 중 40년간을 병마에 시달렸습니다. 폐결핵성 척수염, 대장암, 디스크, 심장부정맥, 혈소판 감소증, 악성 대상포진에 실망위기 등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 분이 이후 ‘돌멩이의 노래’라는 수필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하나님, 왜 저를 이토록 편애하시나요?’라고 말입니다. 고난이 하나님의 편애라는 것은 신학적인 진술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모두가 그리스도의 은혜의 부요함을 같은 정도로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참여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고난이 신자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지 경험한 사람들은 그 안에 담긴 그리스도를 더 충만하게 소유하는 것입니다.
▶(골02:0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사도는 ‘지혜와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안에 있다’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 그리스도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그 보화를 찾기까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합니다.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믿으면 믿을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이 놀라운 지혜와 보화들을 더욱 풍성하게 체화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다음 장에서 ‘우리의 생명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있다’고 말합니다.
▶(골3:3-4)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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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돕기 위해 연보를 모으는 일을 독려할 때, ‘성취하라’는 의미로 쓰인바 있다. 작정된 혹은 공적인 지불의 책임을 강조한다.
2) 야고보서와 같은 초기 사도의 저작인 공동서신은 교회의 박해가 일어나기 전, 초기상황속에서 세속주의와 이교주의와의 갈등을 배경으로 기록한다.
▣ 시편으로 기도하기!(피터 버미글리)
시편30편
2. 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끌어내리고 있는 이런 곤경들로부터 당신이 교회를 높이 들어올려 주시기를 당신의 교회가 기도합니다. 당신의 이름의 원수들이 교회의 멸망을 보고 즐거워하도록 허락하지 마옵소서. 오 하나님, 당신은 언제나 당신에게 호소하는 자들을 들어주시고 즉각적으로 그들을 도와주십니다. 지옥 같은 처지에서 다시 구해오시며 이미 구렁텅이에 거의 빠져 들어간 자들을 소생케 하는 것은 오직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을 찬송하는 친근한 감정들이 일어나도록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주소서. 그리고 당신이 우리에 대하여 진노하셨으나, 우리를 향한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결코 깨뜨리지 않으셨으며, 오직 일시적으로 노하셨을 뿐이라고 우리로 하여금 선포하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당신 안에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물과 한숨이 속히 기쁨과 행복으로 변하도록 돌아보아 주시길 간구합니다. 우리가 행한 공로들을 고려하지 마시고 오직 당신에게 적합한 것을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에 우리는 치명적인 증오와 극단적인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러나 만사가 잘 되고 우리 계획들에 따라 진행될때, 우리는 어리석게도 만사를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하여 수행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 잠시 동안 당신이 우리에게서 낯을 돌리셨고, 그래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들이 일어났음으로, 우리는 자기 발로 간신히 설 수도 없을 정도로 낙담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의 긍휼과 약속들이 요청하는 바를 보옵소서. 당신께 의뢰하는 자들이 멸망에 이르는 것을 주께서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원수들은 결코 당신을 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의 슬픔이 끝나게 해 주셔서 우리가 당신께 회복된 것을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이제와 다음 세상에서도 영원히 감사와 찬양을 당신에게 돌릴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