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1일
| 큰돌개혁장로교회 주일예배 ▣주일경독시간 인도: 강성웅 집사 ▶시편찬송 44장(22편1-2) 다같이 ▶경 독 열왕기하19장 마가복음13장 다같이 ▶합심기도 다같이 ① 성령과 말씀의 예배 /설교자와 회중을 위해 ② 성찬의 예배/ 은혜언약 안에서 하나님과 성도의 교제가 풍성하게 드러나는 예배를 위해 ③ 믿음과 순종의 예배/ 배움(교리)과 실천(삶)이 있는 예배를 위해 * 예배부름과 축언 ▶목사;“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1:3) ▶회중;“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 * 송영(시편찬송) 108장(시51:1-11) * 사도신경 다함께 *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제25주일 * 십계명낭독 다함께 * 참회기도 다함께 “자신을 진실로 죄인으로 인식하며, 겸비하게 그리스도 안에서만 전적으로 사죄의 은혜를 기대하는 그대들에게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사죄를 선언하노라. 아멘” * 시편찬송 57장(시25편1-7) 헌 상 강성웅 집사 목회기도 담임목사 말씀의 강설 계1:9-16③ “요한계시록 강해”(19) 공동기도 다함께 주의만찬 신16:5-8 다함께 * 찬 송 찬송가46장 다함께 * 강복선언 설교자 * 교제의 인사 다함께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 표는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 헌금은 미리 준비해 미리 봉헌함에 넣어주세요. *주일 오후 모임: “성경과 교리” 교리와 함께 읽는 베드로전서 본문연구(85) |
|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제2부 인간의 구원 제25주일 제65문: 당신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그의 복에 참여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답: 성령께서 거룩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믿음을 넣어 주시며 거룩한 성례를 사용하시어 그 믿음을 강하게 하십니다. 제66문: 성례란 무엇입니까? 답: 성례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룩한 표시이며 날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세우셔서 그것을 집행하는 우리들로 하여금 복음의 약속한 것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셨을 뿐 아니라 친히 자신의 약속을 보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음은 이것입니다. 즉,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드림으로써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제67문: 그러면 말씀과 성례는 우리의 믿음을 구원의 유일한 근거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수행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로 향하게 합니까? 답: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실 뿐 아니라 거룩한 성례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께 달려있다고 확신시켜 줍니다. 제68문: 신약성경을 통해서 볼 때 그리스도께서는 몇가지 성례를 제정하셨습니까? 답: 두 가지입니다. 즉, 세례와 성만찬입니다 |
▣성찬본문 / 신16:5-8
『(신16:5-8)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에 네 장막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8) 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
▣설교본문 계1:9-16 ③
『(계1:9-16)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지난 주 말씀 반추하기
①교회 재창조의 증인이 되다 - 사도는 자신을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한다. ‘동참하다’(쉰코이노노스)는 의미는 ‘동업자’적 연대를 강조하는 말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아담을 떠올린다. 교회는 재창조의 증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나라에 참여한다. 하이델베리그요리문답 32문은 신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그리스도와 함께 지체가 되어 그의 기름부음에 동참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십자가 구속은 죄인을 구원하여 그 창조의 목적에 기여하는 본래적 소명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은 창조사건을 이미지화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에 ‘환난과 나라와 참음’의 방칙으로 참여한다. 그래서 계시록에서 ‘인내’(7번 등장)는 핵심사상이다.
②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함 - 벧전5:9절은 지상의 모든 형제들이 동일한 고난을 당한다(에피텔레오)라고 말한다. 이것은 한 나라의 백성됨을 인해 치러야하는 마땅한 댓가인 ‘세금’에 빗댈 수 있다.(같은 어원을 가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테텔레스타이-는 말씀은 채무를 갚는 것을 의미한다.) 지상교회는 저마다 정해진 분량의 고난이 있고, 이것이 채워질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 교회의 인내는 그리스도의 무서운 인내에 참여함이다. (환난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설은 사도행전이 그대로 보여준다.)
③십자가로부터(엨스 크루케)-예수믿음으로 당하는 고난은 종교적일뿐 아니라 전체 삶을 포괄한다. 중생한 신자의 지상적 삶은 소명으로서 그 존재와 삶의 양식자체가 구속적 의미를 갖는다. 초기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삶의 희노애락을 ‘십자가로부터 오는 것’(엨스 크루케)라고 고백했다. 일상의 삶의 무게는 구속적인 가치가 있다, 모든 신자들은 참고 견딤으로 삶을 살아낸다. 그리스도안에 ‘숨겨진 보화’(골2:3)는 찾는 자의 것이다. 삶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신비를 날마다 새롭게 경험하는 하나님나라의 성취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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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는 그 자신이 모든 형제들과 함께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가 됨을 증언합니다. ‘환난과 나라와 참음’이라는 이 신앙의 이 세 가지 양상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소명을 특징짓습니다.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성취하는 여정이며 우리에게는 저마다 정해진 분량의 고난이 있어서 이것을 채우는 것이 ‘나라와 제사장’으로서의 신자의 소명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삶을 소명으로 재해석하고,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킵니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고, 참된 안식과 영원한 구원을 갈망하지 않을 수없는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가득한 현실 속에 놓여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하나님을 찾기까지 결코 그 마음이 안식을 누릴 수 없다!’고 한 말은 고난의 신비를 일깨웁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의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바빙크는 “하나님은 율법의 끈에 매여있는 인생을 ‘자연과 역사’, ‘이성과 양심’, ‘축목과 심판’, 그리고 인생의 갖가지 일들과 영혼의 경험 속에서 말씀하신다”고 말합니다. 이런 삶의 진실을 일깨우는데 많은 종교와 철학들이 공헌한 바가 적지 않지만 요한처럼 ‘환난과 참음이 그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가 이 모든 고난의 현실을 신자의 소명으로 역전시키고, 신자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삶, 곧 그 나라백성의 삶을 살게 한다고 선언합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심판을 향하여 치닫고 있습니다. 그 심판에 참여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아 그분의 삶과 죽음에 참여했던 교회들입니다. 교회는 실로 세상과 천사를 심판할 것입니다.(고전6:2-3) 대제사장들에 의해 심판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오실 것’(마26:64)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세상의 심판을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교회의 수난사로 기록될 것이고, 이 역사의 종국은 교회의 고난의 분량이 차는 날,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리스도’와 ‘거룩한 성도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유1:14) 이것이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서의 교회의 위상이며 소명인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종국을 예고합니다.
▶(살후1:6-9)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종말론적입니다. 우리의 삶은 세상을 향하여 끝이 있다는 사실을 지시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으로 알려진 ‘므두셀라’처럼 말입니다. 1)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묵시 공동체
이 종말론적인 계시가 시작된 순간을 요한은 촘촘히 회상합니다.
▶(계1:10-13)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시작되던 날을 요한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시가 주어진 날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신 이’가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서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주의 날’에 ‘일곱 교회(촛대)’사이에 계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계시가 시작되던 그 시간과 공간을 묘사하는 의도는 명확합니다. 그리스도의 계시가 시작되던 날은 교회가 공적인 예배를 위하여 회집하는 그 날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밧모섬에 유배 중에서도 규칙적으로 교회의 회집 시간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은 이미 1세기 당시, 사도적 교회안에 정형화된 형태의 예전을 가지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계시록은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들’이라는 명확한 예배공동체를 향하여 쓰였고 공적인 예배에서 회람되도록 의도된 서신이었습니다.
▶이 계시가 예배공동체로서 교회를 향한 공적서신이라는 증거는 본문 안에서 암시되고 있습니다. 요한의 계시체험은 예배를 암시하는 신학적인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입니다.
▶‘성령의 감동’과 ‘나팔 소리같은 음성’은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기록하는 참된 예배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합니다.
▶(요0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영과 진리’는 신약교회가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일한 방식이었습니다. 거룩한 성령의 감화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여인에게 예루살렘에서도 사마리아산에서도 말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날’을 지시하신 것처럼, 초기 사도교회의 예배는 예루살렘 성전예배의 특징인 제사와 성결의식에 의한 시각적인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 청각적인 예배였습니다.
반면, 인간의 종교적 열정과 정념에 사로잡힌 사마리아인들의 예배와 다른 성령의 감화하심에 의지하는 수동적 예배였습니다.
요한이 ‘주의 날’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을때, 그것은 이 사도적 예배의 전형적인 모범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이 예배공동체가 갖는 종말론적 성격을 주목해야 합니다.‘주의 날’이라고 할 때 두 가지 중첩된 개념이 있습니다. 곧 ‘안식’(구원)과 ‘심판’입니다. ‘주의 날’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 마지막 안식의 날(7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의 날’은 깨진 안식을 인해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2)
▶(창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요한이 묘사하는 이 계시의 현장과 대조해서 관찰해보십시오. ‘주의 날’에 ‘성령께서’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범죄 한 후 아담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을 두려워 나무 뒤로 숨은 아담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 창3:8 | 계1:10 |
| 그 날 | 주의 날 |
| 바람이 불 때 | 성령 |
| 소리를 듣고 | 큰 음성 |
이 같은 구원과 심판의 이미지는 처음 교회가 탄생하던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강림사건에서도 반복됩니다.
▶(행2:1-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오순절은 정확히 신약의 주일입니다. 유월절 기간 중에 안식일 다음날(주일)에 바치는 초실절과부터 일곱 번의 안식일을 지난 후 50일째 되는 알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에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었고, ‘불의 혀’와 같이 갈리지는 것이 각 사람위에 임했습니다. 역시 시간적으로 주일이고, ‘성령과 말씀’이라는 예배의 특징들이 드러납니다. 그러면서도 그 말씀은 방언이라는 심판(고전14:22)과 구원의 메시지(행2:21)로 터쳐나온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신약교회의 예배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연속이고 갱신으로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요컨데, 교회는 종말론적인 예배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회집하는 날, 곧 ‘주일’은 세상에 종말을 알리는 예언적이고 묵시적인 시간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창조의 날(부활)을 선포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심판의 날을 예고합니다. 비유하자면 교회는 ‘므두셀라’ 같은 묵시적 공동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안식)과 심판을 선포하는 이 묵시적 공동체를 향하여 그리스도의 계시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펼쳐지는 계시록의 모든 환상들은 실상 교회가 예배할 때 펼쳐지는 영적인 실상을 펼쳐 보여주는 광경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했을 때 이것은 ‘진리의 표지석과 좌대’라는 의미로 세상을 향하여 진리를 증언하고 전시하는 계시공동체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어떤 이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됩니다.(고후02:16) 교회가 경험하는 환난은 박해자에게는 멸망의 증거가 되고, 환난 받는 교회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됩니다.(빌01:28)
교회는 주되신 그리스도처럼 ‘사람들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눅2:34)이 되는 것입니다. 이 극명한 가름의 표적이 드러나는 시간이 교회의 예배이며, 교회의 모임입니다.
▶바빙크가 신자의 중생을 우주적 중생의 예표가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지상의 교회의 경험은 장차 성취될 세상의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 ‘주의 날’에 교회가 회집했다고 하는 의미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영원한 생명과 사망을 가늠하는 종말론적인 기표로서 회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교회가 회집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강림을 의미있게 연결합니다.
▶(살후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그리고 공예배 시간에 그리스도의 강림이 가져오는 구원과 심판, 축복과 저주가 공적으로 선포됩니다.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의 날과 주의 몸’
또한 요한의 계시체험은 종말론적 예배공동체로서 교회가 소유한 두 가지 지성소를 보여줍니다.
하나는 시간의 지성소로서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주일’입니다.
주일은 그리스도인의 생애주기를 구성합니다. 이 주일에 공적인 회집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시간의 찰라성을 폭로하고, 종말이 가져올 시간의 단절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든 노동과 노력들이 만들어내는 자력구원의 신념을 저항하고 부정합니다. 복음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져오는 세상의 파국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는 안식일이라는 시간의 창문을 통해서 영원한 것을 이야기해주는 희망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공간의 지성소로서의 ‘교회(敎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대표하는 언약백성들의 모임으로 장차 성취하실 하나님의 나라의 종말론적 실체가 됩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주기적으로 ‘교회로 모일 때’, 그 모임(에클레시아)을 종말론적인 모임으로 간주했고, 재창조의 종결로서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완성을 전망하고 확인했습니다.
▶교회의 이 특별한 종말론적인 정체성을 주님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마0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빛’은 창조의 첫날을 상기시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처음 ‘보시기에 좋은’ 상태를 만드신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주일은 ‘안식 후 첫날’(요20:19) 곧 ‘빛을 창조하신’ 창조의 첫째 날입니다. 성경은 주일을 ‘그 주간의 첫날’이라고 강조합니다.(행20:7;고전16:2) 교회가 모이는 그 시간은 이 세상이 주목해야 할 시간의 지성소로서 ‘주일’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산 위에 동네’란 온 세상이 처음 주목하는 공간의 지성소로서의 ‘교회’와 관련됩니다.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의 통치아래 있는 언약공동체로서의 특이한 삶의 모습을 전시합니다. 주일의 신자들의 회(會)는 세상의 예언적 기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을 구속력을 가진 신약의 안식일로 지킵니다.(웨민21조7항)3) 그러나 주일을 안식일로 지킨다고 할 때, 이것은 구약의 안식일과 같은 율법적 구속력을 가지고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약적’ 혹은 ‘율법적’이라는 말은 ‘언약으로부터 탈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신약의 주일은 그런 ‘율법적’의미가 아니라 ‘도덕적이며 묵시적인’의미입니다. 묵시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누리는 영원한 생명의 실체가 이 역사 속에 침투해 들어오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른바 ‘종말론적 소망의 현재’로서 주일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청교도들은 안식일의 언약적 구속력이 신약에서도 도덕적이고 영적인 규범으로 연속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주일성수는 행위언약아래 있는 구약의 율법처럼 언약으로부터 배제를 위협하는 율법아래서의 준수가 아니라 구약의 안식일이 궁극적으로 지시하는 영원한 안식을 향한 복음적 소망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적어도 사도요한은 그 안식의 성취를 의미하는 시간의 지성소, ‘주의 날’에 거룩한 예배공동체와 함께 하늘의 성소 안으로 부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날에 주님의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고 있는’ 지금, 큰돌 개혁장로교회의 지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입니다.
▶(히12:22-24)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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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므두셀라’는 ‘창던지는 자’ 혹은 ‘그가 죽을 때에 그것을 보내리라’는 의미로 그의 생이 마치는 해에 노아의 홍수심판이 시작되었다.
2) 구약에서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의미하는 종말론적 명칭이었다. 이 날은 창조주이자 동시에 심판주로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웅변한다.
3) ▶웨민21조7항;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적정한 비율의 시간을 구별하는 것이 자연적 법칙이거니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말씀에서 적극적이고 도덕적이며 항구적인 계명으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부과하시사 특별히 칠일 중에 하루를 안식일로 지정하시고 자기를 위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다. 이날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부터는 주간의 첫날로 바뀌었으며, 성경은 그날을 주일이라 부르며 세상 끝 날까지 기독자의 안식일로 계속될 것이다.
▣ 시편으로 기도하기!(피터 버미글리)
시편31편
2. 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의 호의에 찬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소서. 왜냐하면 거기로부터 모든 위로와 행복과 기쁨이 흘러나와 당신의 신실한 자들에게 이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확고하고 당신의 도움을 구하는 한, 우리를 적대하는 세력들의 간계와 속임과 거짓과 올무는 실패로 돌아갈 것입니다.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위해 마련해 두신 당신의 선하심의 달콤함은 참으로 위대하고 찬란하며 즐겁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은혜로써 씻음을 받고 정결케 되기를 간청하오니, 우리가 저지른 죄악들 때문에 그 달콤함에서 배제되지 않게 해주옵소서. 우리가 이 정결함을 얻는다면, 당신의 보호하심의 성막과 성채 안에 숨겨질 것이며,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악들로부터 보호받을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에, 당신의 단호하고 확고부동한 보전하심에 의하여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지극한 행복이신 당신에게로 이끌려 갈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