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돈으로 통일을 이룬 나라가 있다. 아직 통일을 그림 속의 떡처럼 생각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나마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의 통일을 두고 여러 가지로 평가하고 있지만 그들이 50여년만에 이룬 통일이기 때문에 아직도 두서를 잡지 못하고 들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올바른 평가를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고 보는 견해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가장 옳은 말이라고 본다.
그들은 아직 국토는 통일되었을지언정 가장 중요한 게르만 민족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올바른 의미에서 통일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
민족을 통일하는데 있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자명할뿐더러 돈이면 간단하게 인간의 마음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믿는 것부터 큰 착각 속에 헤매이는 것이다.
민족을 통일한다는 것은 같은 수돗물을 마시고 같은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같은 목욕탕 안에서 목욕을 하고 서로의 자식을 결혼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면 또한 큰 오해라고 생각한다.
민족의 통일은 마음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민족정기 통일인 것이다.
민족이 정신을 빼앗기고 몸체만 한 곳에 어우러져 산다고 해서 통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같은 감정을 느끼고,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마음으로 한 몸임을 자각할 수 있는 형편에 이르러야 한다. 또한 민족의 장래를 함께 걱정하고 민족의 살길을 개척해 나가기 위하여 함께 땀흘리며 일하는 태도가 스스로 우러나오는 현상이어야 하며 이러한 모양은 자연스러운 가운데서 이루어져야만 참다운 통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흩어져 있던 가족이 한 처마에서 한 부엌밥을 같이 먹는다고 해서 통일이 된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필자와는 일가인 한 축구감독의 부자간의 상봉을 보면서 부자가 한솥밥을 먹게 된다고 해서 그 가족이 다시 한 덩어리의 가족으로서 함께 행동할 수 있을 수 있을지,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행동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서로가 주고받는 인사말을 두고 보더라도 너무나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었다는 현실을 찾아 볼 수 있으며 비록 말은 같은 말을 쓰고 글도 같은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말과 글로서 토해 놓는 그 내용은 너무나 다른 뜻을 담고 있다는 현실을 볼 때 너무나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을 살아오는 동안 가장 뼈아프게 후회스러운 것이 몇 가지 있다. 배고픈 것이 그 첫째요, 이민족으로부터 만만하게 보여 침략을 수없이 받아 온 것이 두 번째요, 배우지 못한 것이 그 세 번째다. 그 외에도 잘 입어보지 못하고 좋은 음식 마음대로 먹어 보지 못한 것, 권력에 눌려서 기를 펴보지 못한 것, 질병에 시달리며 신체적인 고통을 받은 것 등등이 있다.
이러한 동기로 경제개발을 치중해서 이제는 경제적으로는 거의 선진국 수준에 육박하는 국민소득을 올리고 있다. 국방력을 키워서 이제는 세계에서도 4번째 군사강국으로 부상했으며, 웬만하면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우수한 인재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외국에 나갔다 하면 외제 옷가지와 술담배는 물론이고 강장제도 싹쓸이 해올 정도로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었고, 자식들은 일류 법과대학에 보내어 판검사를 시켜야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의과대학이라도 보내어 의사를 시키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을 만큼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 되었다.
‘누가 장가간다고 하니까 거름을 지고라도 장가간다’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오랜 역사 동안 속담으로 전해 오면서 따끔한 교훈이 되어 주었다. 동서독이 통일된 동기는 단순하게 돈으로 해결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진행되는 모양을 두고 돈으로 통일을 샀다고 따끔하게 비평하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당면하고 있는 남북의 통일 역시 사실과 다르게 오해받는 통일이 된다면 지금까지의 나누어져 고통받던 비극 이상으로 더 쓰라린 아픔을 맞는 결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통일문제는 신중하고도 신중하게 다루어 나가야 한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한편 지나치게 조심하다 보니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는 성급한 주장도 없지 않다.
이러고 저러고 하는 사이에 한발 한발 대세라는 거대한 바퀴에 의하여 통일의 문으로 다가서고 있는 현실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소원은 오직 통일이기는 하지만 남의 것을 흉내내는 통일을 소망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남북간에 갈라 서 있는 사이만이 통일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살고 있는 현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악독한 일본 식민지 시절에 짓밟혀 왔던 민족의 정기, 이해관계, 신의가 흩어져 있으며, 이웃과 이웃이 서로 알게 모르게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형세로 살아가고 있다. 억압착취에 밀려 조국을 떠나 먼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풍습에 젖어가고 있음은 어찌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런 심각한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보려는 이 땅의 각박한 마음자세가 통일을 갈망하는 자세로서는 진실하지가 않다.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문화의 창출은 국민의 마음에서 나온다.
한 민족이 그 주권을 다른 민족에게 맡기면 노예가 되는 정도에 그치지만 마음을 남에게 맡기면 그 생명체는 죽음을 뜻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담고 있는 문화만은 누구에게도 위임할 수 없고 잘하거나 못하거나 국민 스스로 창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가장 먼저 공격하는 목표는 국민의 마음을 장악하고 문화를 이데올로기에 부합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일 첫 번째 전략이다. 일본 군국주의가 가장 열심히 노리고 있었던 전략도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 배달 민족의 얼을 빼앗으려고 무진 애를 다 쓰던 흔적을 우리는 목도한 바 있지 아니한가?
이만큼 정복자에게 문화는 매력 있는 전리품이기도 하다. 경제로서 문화를 다스리려면 구호의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문화로서 경제를 다스리면 복지와 창의로 승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