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連理枝-2244-둘이사네 the lovingtree)
송곡동 연리수 (松谷洞 連理樹)
사고막골,솔무데미(주1) 사이에는 큰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지만 이 나무는 두 그루가 하나로 합쳐진 나무다.
흔히 나뭇가지가 서로 엉킨 모습을 연리지(枝)라 하고, 큰 나무가 서로 엉킨모양을 연리수(樹)라 한다.
국도 924번 도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서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약 900년으로 보일 정도로 큰 나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두 나무가 나란히 자라서 하나의 나무로 합쳐졌는데 500가까운 역사를 지켜와서 보기보다는 젊지만 누가 보아도 오래 묵은 고목이고 마치 옛날 백낙천이 쓴 장한가(長恨歌)의 그 연리지(連理枝)요 요즘 말하는 사랑나무(Loving Tree)로서 별칭은 둘이사네-2244-로 하고자 한다.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살아서도 같이 살고 죽어서도 같이 살자“ 고한 말이 이러한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연리지는 뿌리를 같이 하는 나무 두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나무가 된 것을 말하는 것으로 부모를 같이하는 한 형제간에 우애를 돈독히 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며, 부부간에는 깊고 깊은 사랑과 아름다운 금슬을 노래할 때 옛사람들이 자주 사용한 글귀였는데 이 나무가 바로 그러한 "연리지"다.
이 나무는 들판입구에 초연히 서 있러 더운 여름날 온 들판에서 일 하면서 바라보면 나무그늘이 매우 매혹적인 모습으로 일하는 마을 사람들을 유혹한다고 한다. 청청한 잎에서 솟아나는 싱싱함이란 힘차고 든든함을 보여주어 마치 나무그늘에서 쉬기만 해도 힘든 농사일은 대신해 줄 청년처럼 든든해 보인다.
그가 서있는 자리 주변을 “양느티나무걸”이라고 이름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옆에 서 있고 그 길가는 이 나무가 가로막고 서서 지나는 사람마다 느티나무 밑에서 쉬고 가게 되어 있다. 더구나 한여름 뙤악볕을 지나면서 이 나무그늘에 매혹당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만큼 포근하고 편안하다. 이 나무아래에는 장기판도 있고 풀 꼰 둘 자리도 있어 파한대작 하기도 좋다.
이 나무아래를 지나가는 사람치고 쉬고 가거나 땀을 녹이거나 느긋하게 단잠을 자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숫한 이야기를 털고 가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러노라면 어울려 한두 마디 오고간 이야기들은 이 느티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리어 나뭇가지는 지긋하게 땅 그늘 가까이 까지 수그리며 늘어지고 축 늘어진 가지 끝을 잡은 아이들은 힘차게 발을 굴러 솟아오르며 환성을 지르고 나무그네를 타면서 철렁철렁 꼬리를 치며 나무꼭대기 까지 기어오를 때 마다 이 나무는 덩달아 춤을 추듯 놀아 준다. 그 수많은 아이들 기운찬 숨결을 맡으며 푸르고 싱그럽게 젊음을 힘차게 토해 내던 그 느티나무는 아직도 옛 그대로 건재하건만 나무에서 놀던 아이들은 어디론지 가고 없고 그늘에서 쉬어가던 과객들도 드문드문한데 어디선가 아이들 아우성 소리는 들리는듯하여 나무 위를 처다 보며 느티나무에 매달린 이야기 열매들을 들춰 보았다.
이 두그루 나무가 처음으로 싹을 틔워 솟아 오를 무렵은 이 마을이 시작되던 시기였을 거라고 한다.
이 마을의 서쪽인 사고막골은 연안이씨 파시조이신 별좌공의 장자 교위공께서 이마을에 정착하시고 동쪽인 솔무대미는 영남 가사문학의 대가인 조이제(怡齊-梅湖-曺友仁)가 살던 마을로 1,0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어서 이 나무의 수령을 참작할 때 느티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성장속도가 빠르다고 본다면 대략 그 정도는 실히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나무에 대하여 더울 때는 쉬어가기도 하던 고마운 맛을 보여준 나무인지라 누구라도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도 이 나무에 대한 말 을 남기지 못하여 이 나무의 나이와 생년월일을 아는 이가 이젠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전해오는 전설은 남아 있다.
이 나무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 나무가 기억한 곳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어 간추려 본다.
지금은 이 나무를 옆에 끼고 사고막골과 솔무데미 마을에 연안이씨가 누대 400여년을 넘게 살아 오는 동안 혹독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견디고 일제 강점기에도 무사하게 건너왔으며 육이오 때에도 지혜로운 조상님 덕분에 잘 보존되어 오늘에 이어 오고 있다.
주렁주렁 매달린 이 나무의 옛 이야기 주머니를 한개 땄다.
나무사이로 지나갈 수 있던 여유가 점점 좁아지게 되고 이야기가 시작되던 그 때는 두개의 나무가 성큼성큼 자라서 하나의 나무로 합쳐지기 직전 이였다. 나무주위를 맴돌며 뛰어 놀며 숨바꼴질하는 동안 어느덧 두 나무사이에는 사람머리하나가 들락거릴 만큼 한 틈새가 생겨 장난스런 아이들이 그 틈사이로 머리를 들어 밀었다가 빼내 곤 하는 것이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미로웠다고한다.
마침 한 소년도 머리를 틀어넣고 잠한숨 자고나서 머리를 빼내려고 하던 차에 그만 머리가 빠져 나오지 않아 온 동네가 시쓸씨끌한 때도 있었다고하는데 그러한 찰라에도 나무는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듯 더 빨리 자라는듯 하여 목을 죄어 오는 듯 조바심을 하였다하며 온 동네는 고사하고 들판에 일나온 이웃마을 사람사람들까지 비명을 지르고 법석을 떨어 일시에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너무나 황당한 일을 만난 동네 어른분들이 고심하던 나머지 나무틈사이 양 옆을 깎아 내어 겨우 그 머리를 빼어 낼 수 있었다고 하는 처음에는 웃을 일이 끝나고 나서는 파안대소 웃지 없는 전설도 이나무 틈서리와 가지사이마다 매달려 있기기도 하는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미 백수년전 어른이 시다. 지금도 이 나무 가운데 중허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움푹 파인 자국이 있는데 그때 나무를 쪼아 낸 흠집이다. 이때 나무는 나이가 듬직스런 고목인지라 야담법석 떨던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무가장자리를 깎아 내는 아픔도 참았었으리라. 세월이 흘러흘러 그 소년이 자라서 100수년이지난 조상으로 동네에서 유명한 인기를 누렸다고하고, 그 구멍에 손목이 들락거릴 정도 되었을 무렵의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10살 소년도 70을 넘어가고 있으며 그 나무가 그 정도로 자랄 만큼 세월이 지났다면 400년 정도 된 나무라고 해도 어림짐작은 맞을 거라고 본다. (전설보유자-이정녕)
지난 이야기이니 나무도 마냥 미소 지으면서 그때 그 희한한 일을 회상하고 있을 런지 모르겠다. 이 나무를 사이한 두 마을은 화목하게 지내라는 조상님의 교시로 받아 들여 지금도 돈독한 우의를 다지면서 화목하게 살고 있다.
최근 이 나무를 찾았을 때 블가사의한 이야기가 또 하나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이 나무 앞 도로를 고치던 인부가 포크레인으로 나뭇가지를 크게 손상시킨 일이 있은 후로 큰 병이 났는데 병원에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하여 이 나무에 극진히 빌고 빌어 겨우 목숨은 살아났다고 하지만 오래 못가 죽었다는 소문이다. 이 나무는 그 이후로 군청에서 보호수로 지정을 하였는데 작은 비석에 보면 느티나무 일본(一本)으로 기록되어 있음은 이 나무의 깊은 사연을 모르는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단순한 표기에 대해 이 신령한 나무의 자존심을 해치지나 않을 가 조심된다. 이 동네사람들은 이 나무의 잎이나 가지를 집으로 갖고 가지 않으며 그 뿌리를 밟지 않는다. 동네 누군가 이 나무가지를 줏어다 군불을 짚였는데 큰병을 앓았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은 늘 경건한 마음으로 이 나무앞을 지날때 마다 조심하고 있다( 전설 보유자-이병도)
빌기만 하면 사정을 봐 주고 복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소에 잘 가꾸고 정성스런 보살핌을 통하여 스스로 마음가짐을 다스리게 될 때에 소망하던 행복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앞에 세울 멋들어 지고 아름다운 글귀하나를 먼저 생각해 두고자 한다.
내가 오래도록 둘이사네(2244-주2)라는 호 아닌 애침을 달고 살아 온 탓은 평생을 노사관계일에 종사할 때에 붙게 된 사연은 있지만 이 나무아래에서 지내던 한 작은 소년으로서 닮은 이미지를 갖게 된 필연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더욱 더 맛깔 스러운 나의 자호로 "2244"를 사랑한다.
이 나무가 상징하고 교훈하는 바가 바로 한 조상을 받들고 사는 자손만대를 돈독한 우애와 출천한 효도, 나아가 행복한 부부간 금슬이 이 나무처럼 두텁고도 두텁도록 이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244-이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