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직 민족인가?
'민족'이란 우리에게 있어 어떤 의미인가?
흔히들 세계화의 시대라고 한다. 글로벌 스텐더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고들 한다. 우리것 우리의 생각 우리의 문화보다는 세계 표준 국제규격 세계화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나라 전체가 영어광풍에 시달리고 애있는 부모들은 능력이 되면 나라 밖으로 애들을 유학보낼 궁리만 한다. 우리 주변만의 일이 아니다. 학계에서는 이미 민족주의 담론은 20세기의 유물로 치부되고 있고 국제적 기준 세계적 기준이 우리가 따라잡아야만 할 지상과제가 된 거 같다.
이 모든 담론의 중심에는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 이제는 재야라고 말할 수 없게 된 이 사회의 주류인 진보적 지식인들이 자리잡고 있다. 소위 진보주의의 중심적 지위에 있는 사회주의는 그 태생부터가 범국가적이다. 인터네셔널 정확히 말하면 엥때르내쇼날 부터 그들은 국가와 민족은 지배계급이 씌운 굴레이며 만국의 노동자는 이로부터 단결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외쳐왔다.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이 바로 보수주의이다. 보수주의의 이념은 그 시작부터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달리 자유주의가 아닌 민족주의에 그 기반 이념을 두고 있었다. 보수가 사회의 한축이 아닌 몰아내야 할 하나의 사회 기생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젊은 신진 학자들에겐 민족주의도 그와 같이 이제는 버려야 할 쓸모 없는 지식이 되고 말았다. 과연 우리는 이제 민족을 버릴 수 있는가?
작년 여성정책 수업을 들으면서 소위 진보적이라 불리우는 이 땅의 주류 페미니스트들과 만날 기회를 우연히 갖게 되었다. 그들이 이 땅에 소위 미국으로 부터 들여온 진보적인 이론이라는 것이 정말 내가 보기엔 엄청난 컬쳐쇼크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탈식민주의이론에 기초한 페미니즘. 식민주의와 반식민주의에서 벗어나서 탈식민주의 사회로 가야한다는 그 주장에서 내가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이 땅이 선진 미국 사회의 하나의 주로 편입되는 편이 바람직 할 수 있다는 소위 중심부 주변부 이론......여성은 한국이라는 가부장적인 주변부 사회에서 주변으로 살아가는 것 보다 중심부인 미국에서 평등한 중심부로 끌어올려져야 한다라는 그 주장은 단지 취해서 나오는 한 영국 유학파 교수의 발언이라고 보기에는 나에게 있어서 너무 충격이었다.
민족보다 여성의 계급의 이익이 더 중요할 수 있는가? 물론 있다. 그러나 과연 이 나라가 소위 중심부인 미국에 진입해서 이 땅의 여성들이 그 사회의 중심부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생각은 Nein 이었다. 단연코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도데체 어떤 소위 진보적이라는 학자들이 이 여교수를 이런 식으로 세뇌를 시킨 것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소수민족의 문제는 중고등학교 학생만 되어도 알 수 있는 문제이지 않은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면만 보는 면이다. 굳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한미간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과 역사를 살펴보자.
나는 예전 역사학도를 꿈꾸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가슴속에 품고 있는 단 하나의 화두가 있었다.
우리 민족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생존해야 할 것인가?
중국의 옆에 붙어 살면서 지금까지 생존해낸 민족은 한국과 월남과 몽골밖에 없다. 일본은 바다로 막혀서 그리고 티벳은 지금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룡에 소화되고 있는 중이다. 몽골은 중국에 필요없는 사막이고 월남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북경과 코앞에 위치한 우리는 원/명/청을 지나면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우리 민족은 중국과의 관계속에서 삼국시대를 지나 통일신라를 형성하면서 이미 서양과 달리 하나의 민족의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와세다대학의 이성시 교수의 견해에 따르자면 한국과 일본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용해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 우리가 이룬 것은 탈중국화를 위한 중국화였다는 결론이다. 중국보다 더 중국적 즉 선진적인 문화를 이룩함으로써 중국으로부터의 문화적 유입을 막아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는 중국과는 다른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화가 되었어도 제 색깔을 잃지 않았다. 중국과 다른 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철저하게 중국을 분석해서 중국과 다른 또 하나의 중국을 완성하는 것을 통해 한국과 일본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중국에 있었던 구이와 그 밖의 제민족들은 무분별하게 중국문화를 받아들여 스스로의 색깔을 잃을 수 밖에 없었고 몽골은 철저하게 비중국화를 꾀하다가 지금은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양대 강국 속에서 제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소중화라는 의식은 조선후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이런 의식은 통일신라에도 고려에도 있었던 것이다.
원나라의 침입을 원의 수도 대도에서 불과 지척에 떨어진 고려가 수만리 타향의 러시아보다 더 오래 몽골족의 공격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문화 민족으로써의 자긍심이다. 우리가 강한 거란이나 여진 몽골 만주족보다 약하지만 문화민족인 한족과 더 가까운 관계를 이루었던 것도 문화민족으로써의 자긍심 때문이었다.
때문에 역대 중국의 왕조들은 이민족이든 한족이든 한반도가 실제보다 광대한 땅이고 그 땅의 군주는 중국에 비견되는 군주로 여겼다. 쿠빌라이칸도 고려는 일만리나 되는 옥토의 나라라고 했다. 고려인이 40년간 항쟁을 한 것이나 조선말기 위정척사운동을 국제사회의 흐름에 거스르는 하나의 오만과 독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민족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중국이라는 중심부에 편입되면 되지 않겠느냐고? 자기 정체성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아직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어지지 않은 이상 이런 주장은 공허하다. 실제 중심부로 편입된 주변부 주민들은 노예 또는 노예와 같은 지위에 머무르게 되며 그 것을 해소하는데에는 오랜 시일이 걸린다.
중심부로 들어가자며 항복문서에 싸인하는 소위 주변부의 최정상부에 있는 일부만이 중심부의 중심부 한켠으로 영전하는 경우는 있다. 이완용은 일본으로 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하지만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그 때 무엇을 당하고 있었는가? 중국의 만리장성은 중국에 항복한 이웃 민족국가들의 국민들의 피눈물이 어린 장성이라고 하지 않은가? 중심부로 진입하자고?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아 할 상대는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로마제국이다. 로마제국은 자국의 글로벌 스텐더드를 따르는 주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침략하지 않았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할아버지들 말씀대로 쏘련놈이나 되놈이나 왜놈들보다는 미국넘이 낫더라 라는 얘기는 미국은 미국 방식을 따라주면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현실적으로 우리는 아직 중심부가 될 역량도 능력도 부족하다.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장기를 살려야 한다. 탈중국화를 위한 중국화가 아닌 탈미국화를 위한 미국화. 글로벌 스텐다드를 익혀서 이를 죽어라고 우리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단순한 미국화가 되는 것은 경계해마지 않아야 할것이다. 무분별한 조기유학이나 우리 전통에 대한 경원시는 탈미국화를 위한 미국화가 아니다.
우리는 중국을 두려워해야 한다. 중국은 그 주변 민족들을 모두 융화해내는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이다. 사실 중국 주변에서 중국과 힘으로 대적해서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단지 멀리 미국이 있기 때문에 중국은 건드리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미국 문화는 고위 문화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는 우리가 오랫동안 받아들여서 탈중국화에 사용한 고위문화이다.
우리는 체질적으로 중국에 더 항체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항상 한국의 친중국화를 경계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무의식중에 우리는 중국에 끌린다. 그러나 우리는 더이상 탈중국화를 위한 중국화의 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한류의 반대로 화류가 불어닥칠 때 영화나 가요가 아닌 고위 문화로 이 것이 불어닥칠 때 우리가 이를 막아낼 힘이 얼마나 있겠는가는 우려할만한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주변에 있던 다양한 민족들이 먹혔다. 미국의 패권이 사라질 때 중국이 일본에 대한 방어를 외치면서 한반도로 진주한다면 민족의식이 없어진 한민족은 무엇으로 그들을 막겠는가? 우리가 숫자로 그들과 게임이 될 수도 경제력으로 그들과 게임이 될 수도 없을 것이고 이미 문화는 중국에 접수되어 버린 상황일 것이다. 미래의 세계에선 쇄국정책이 통하는 것도 아니다. 한민족은 중국내에서 겨우 10%미만인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서양은 민족 개념이 생긴지 얼마 안되었는지 몰라도 중국은 북방민족과의 항쟁속에서 그 피속에 민족의식이 새겨진 민족이다. 민족이 혈연이 아닌 정신이라는 점을 상기해볼 때 지금 한족이라고 자처하는 10억 인구가 진짜 한나라의 한족인지는 의문이지만 우리 조선족이 어느날 갑자기 한족을 칭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우리는 지금은 중심부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주변부이지만 민족의식을 버리게 되는 순간 주변부에 맴도는 하위 문화 그룹으러서의 주변부 밖에 될 수 없다.
왜 아직 우리는 민족을 내새울 수 밖에 없는가? 민족은 서구에서는 하나의 담론이요 통합을 막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는다. 서구는 고만고만한 수십개의 민족이 거의 대등하게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민족이라는 개념은 오히려 미국의 번영에 제약이 되면 되었지 발전이 될 수 있는 요소가 못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민족은 아직 생존의 문제이다. 만주와 티벳 그리고 오와 초 서역제국들의 뒤를 우리가 이어서 중국의 조선성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북방민족과 일본과의 전쟁을 겪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우리 조상들은 한족과 문화전쟁을 벌여왔던 것이다. 중국의 불교종파인 천태종도 중국의 유학인 성리학도 고려와 조선에서 그 완결을 맺었다. 왜 아직도 민족인가? 이것은 우리에겐 담론이 아닌 생존이기 때문이다.
이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