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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쥐마담 (그여인을 직접 만나 보시렵니까?)

작성자2244/이관희|작성시간06.12.15|조회수65 목록 댓글 0
콩쥐마담 (그여인을 직접 만나 보시렵니까?)


콩쥐가 사는 마을에 그 나라 상감님이 행차하실 거라는 소
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상감님행차는 시골구석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구경거
리로 여겨지던 시절이라 일생에 한번 볼가 말가하는 이 기회
를 노칠세라 집집마다 입성치례하기 바빴다.
콩쥐내 집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계모는 우선 언니인 콩쥐는 제껴두고 먼저 어미가 대려온
의붓딸 팥쥐에게 입힐 옷부터 챙기기 시작한다.
입고 있는 것도 주체를 못할 지경으로 많이 있지만 명절보
다도 드물게 찾아오는 이런 기회 아니면 먹성이나 입성을 챙
기기 위한 구실을 얻기가 어려운 일이므로 이대를 놓칠세라
또다시 모든 것을 새것으로 짓고 신발도 더욱 호화찬란한 꽃
신으로 작만 하였지만 콩쥐것은 머릿댕기조차 새것으로 작만
하려 하지 않고 팥쥐가 쓰던 것 중에 가장 낡고 버려야 할성
싶었던 것 한 개를 건네주면서 생색은 있는 것 없는 것 다 들
추긴다
콩쥐가 믿는 것은 그나마 아버지다. 아버지가 어련히 해줄
것으로 믿으나 이제 와서는 아비 역시 계모 눈치만 보느라 담
뱃대만 빨고 먼 산만 바라보면서 모른체한다.
이윽고 상감님의 행차가 이 마을 앞을 지나가신다는 날이
밝자 새벽같이 일어난 계모는 팥쥐에게 입히고 신기고 마을
어귀로 부리나케 나가며,
"콩쥐야 나는 네 동생 대리고 일찍 상감님 뵙기 좋은 자리
를 맡아 두어야하니 넌 밑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고 벼열섬
을 모두 찧어놓고 따라 오너라!" 하고 으름장을 놓는다.
콩쥐는 설음에 복바쳐 닭똥같은 눈물을 닦다가도 저녁 녘에
계모가 돌아와서 혹독하게 꾸짖고 매질할 가 두려워 부지런히  
샘물을 길러 독에 부었건만 야속하게도 밑구멍이 훌러덩 빠져
버린 키를 넘는 큼지막한 독에는 물이 좀처럼 고이질 않는다.
그러는데 하늘에서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으며
없는 것도 없는 능수 능란하기로 빼어난 선녀가 옥황상제의
명으로 많은 시녀들과 함께 내려와 어쩌고 저쩌구해서 독에
물도 그득 채우고 멍석에 벼도 말끔히 찧어 놓고 그리고 콩쥐
에게 썩 어울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고 맵씨
나는 새옷도 그 자리에서 당장 지어 입히고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신까지 신겨 때마춰 상감님 행차를 구경할 수 있도록
빈틈없이 때 맞추어 보냈다.
콩쥐는 상감님의 행차를 구경하느라 거의 얼이 빠져버렸다
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어 황급히 돌아오는 통에 꽃신 한 짝을
잃어버리는 큰 실수를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실수가 아니라 전화위복이 되어 마침 이
예쁜 꽃신을 주어다 본 상감님은 어김없이 이 꽃신임자를 찾
기  위하여 이 마을 저 마을 모든 처녀들에게 하나하나 신겨
보았건만 꽃신에 딱 알맞은 처녀는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무서움에 가슴이 콩닥콩닥 질려 뒷녘에 숨어 있
던 콩쥐에게 신켜본즉 딱!하는 소리가 나도록 척들어 맞지
않는가?
그래서 콩쥐는 상감님 며느리가 되어 잘 살았다고 한다. 그
러나 요즘에 와서는 너무 옛날 이야기인데 다가 황당무개하기
짝이 없다고들 빈정거며 요즈음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팥쥐가 콩쥐를 쏙 닮게 성형수술해서 콩쥐대신 임금님 며
느리가 되고, 콩쥐는 상심하여 어디로 멀리 떠나 갔는데 훗날
들은즉 경남 충무통영에 있는 어느 술집마담으로 지내더라"
하기사 전통문화는 외래문화에 밀려나고, 농어촌은 도시화
에 밀려 황폐한 시궁창으로 변모하고,예의와 도덕은 떨어지고
이익과 모략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팥쥐는 제 어미의 강력한 후원을 얻어 갖은 호강을 다하지
만 보다 더 어여쁘고 마음 착한 콩쥐는 어미 없는 탓 하나만
으로 제 아비로부터도 소외 받는 신세로 전락한다.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쫓아버린다던가?
우리가 무려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송두리째 나라
를 빼앗겼던 역사는 일제통치 36년여였다. 그들은 한반도를
영구히 그들의 식민지로 갖기 위한 첫 번째 일은 민속과 전통
을 단절시키는 소위 문화정책이라는 것을 앞 뒤 돌보지 않고
단시일 내에 망가뜨리고 말았다.
눈에 뜨이는 문화재라 할만한 것들은 모두 파괴하고 또 그
들이 싹쓸이 훔쳐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연연히 흘러 내려
온 우리네 민속은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여 우리민족의
손에서 멀리하게 종용하였으며 우리의 전통문화는 미개한 문
화라고 하면서 멸시하는 풍조를 일으켜 하나둘 사그라지게
만들어 갔고 그들의 해괴한 풍습을 옮겨다 우리네 마음속에 심
어 보려고 별별 짓거리를 다하여 왔다. 말을 빼앗고 글을 빼
앗아 가며 이름마저 뭉개버렸다.
인류사에서 나타난 가르침을 눈여겨보면 자신의 전통과 문
화를 망실한 민족은 살아졌고 다른 민족에게 흡수되고 말았
다. 한때 대청제국을 건설하여 중원천지를 호령하던 여진족들
은 거대한 중국의 호화스런 환경에 함몰하여 풍비 박산 되어
버린 후 이젠 400여명의 만주어를 하는 몇 사람만 박물관에
남고 영원히 이 땅위에 살아지고 말았다. 그들은 중화민족이
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침몰하여 다시는 재생하기 어려운 지경
으로 녹아 없어지고 말았다.
로마 역시 방대한 식민지에서 흘러드는 부[富]에 탐닉하여
어느덧 민족정신이 허물어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에 영원한 유물만이 덩그렇게 뒷사람들의 교훈거리를 남기는
정도에 그치고 오늘날에는 도둑이 들끓고 부패로 뒤범벅이 된
후유증만 남기고 천년의 문화를 장식한 찬란한 역사의 주인공
자리를 물려주고 영원히 살아지고 말았다.
이와 같이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곧 민족정기를 지키는 것
이요 민족이 고유한 주체적인 문화의 바탕 위에 새로운 문화
를 증폭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인데 하룻밤 사이에 외래문화
에 심취하여 전통을 뒤엎어 버리는 망발을 한다는 것은 유구
한 역사를 지닌 민족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네 전통문화가 남해구석 어느 바닷가 술집으로 쪼껴나
는 신세처럼 된 그 다음에는 더욱 비참한 최후가 우리의 후손
에게 철퇴처럼 떨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으며 지난 36
년여의 굴욕스럽던 왜놈들의 지배도 장차 400년 아닌 4000년
이 지나도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운 절망의 지경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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