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녕선생공적 새로 쓰자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이루 말 할 수 없이 큽니다.
기왕 말씀 나오신 김에 그동안 혼자 생각이나마 올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연안 이 씨로의 성을 갖인 사람 중에 역적이없다는 점도 투철하거니와 지난 일제 36년 동안
친일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이 점은 독립운동에 앞장서신 석오 이동녕선생의 압도하는 애국심의 저력이 컷으리라 생각
됩니다.
이 보이지 않는 힘의 배경에는 더욱 우리 연안이씨의 빛나는 역사가 뒷 바침하고 있을 것으
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일제압박에 의하여 강제로 숨겨야만 했었던 기록들을 이제
부터 발굴함으로서 해방조차도 보시지 못한 석오선생의 유한을 덜어드리고 연안이씨의 기
백을 다시 이르켜 세워야 합니다.
1920년에 만든 족보와 1984년에 만든 족보사이에 변화된 계보를 참고 한다면 많은 차이를
느끼는 바, 이는 민족 독립운동을 위하여 상해 분 아니라 만주군관학교를 설립하실 당시부
터 앞장서신 이동녕선생을 돕기 위하여 연안이씨 일족이 투신한 연안이씨 청년들의 열성이
숨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확실한 증거가 감춰진 상태이기 때문으로 아직 이점에
대한 기록이 없음이 매우 아쉽습니다.
증거를 찾아보기 위하여 참고사항을 말씀드린다면, 1917년경 일제가 토지수용령을 통하여
각문중토지를 탐혹하려 할 땅시에 삼척공파의 춘사공(병관), 장령공파의 행남공(의덕)께서
앞장서시면서 연안이씨는 거국적으로 나서서 모금을 하였는데 48,000여원(현재 금으로 환
산한 가치- 50여억 원) 을 모아 전국의 문중땅을 구입하여 부근에 사는 일가들에게 신탁토
록 하므로서 오늘까지도 다른 성씨 중에서 조상을 지키려는 열성을 엿보이게 하고 있습니
다.
이만큼 열렬한 자금동원능력을 짐작하더라도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입시정부 수립당
시 이동녕선생이 가장 앞장서서 주도하신 일, 역시 탁월하신 영도력에 힘입은 바도 컷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주위의 협력작용도 없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시 한번
이승만과 김구의 공적에 가리워진 석오선생의 공훈이 그들 보다 못하지 않으신 이상, 우리
후손들은 재삼 이 시기의 자료를 수집하여 이를 뒷받침하여야 할 책임이 막중하게 기다리
고 있으니 이를 주저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연안이씨에 많은 종중이 있고 다행하게도 종중토지가 많이 있어 이를 기초로 넉넉한 운영
을 하는 곳도 있는바, 이에 대한 계획을 각기 세워 연안이씨로서의 명예로운 공적을 다시
발굴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말을 하면서 상기되는 사실은 1920년대 48,000원을 사용하고 1932년 당시에 27,000원
(금으로환산가격 20여억원)을 문중재무이사의 통장에 보관한 것으로 되어 있는바 그것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그 행적을 살핀다면 아마 독립자금과 관련이 없으리라는
짐작을 아니 할 수도 없는 것임으로 이에 대하여 각 문중이 오래된 자료를 발굴한다면 능히
가능 할 것으로 봅니다.
비록 저 세상에 계신지만 석오선생의 독립운동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시기 바랍니다.
석오선생님은 남북이 갈라서서 독립을 하지 못하고 싸우는 지금의 현실을 결코 민족독립으
로 보시지는 않을 실 것입니다.
온전한 민족독립운동을 위하여 북한(원산 공동묘역)에 모셔져 계실것으로 보이는 석오선생
선친(先親)의 유혜도 찾아서 안겨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로만 쓰인 석오선생의 공적만으로 서는 우리 연안이씨로서는 도
저히 만족할 수 없으며 그 크나큰 업적을 더욱 높이기 위한 노력이 따라야만 할 것입니다.
답답해서 오늘 아침 (삼척공파 글 읽고) 처음 생각해 봅니다.
2014. 1 22. 별좌공파 2244 이관희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학범 작성시간 14.01.23 석오께서 훌륭하다는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직계후손들이 앞장서야 하는데......
-
작성자관희2244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1.27 직계후손? 뜻이 같은 연안이씨라면 전부다 다.
-
작성자관희2244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1.28 석오선생의 호는 석오(돌石 나吾) = 나는 돌이다 옛날 만화의;주인공 똘이장군이 연상됩니다.
민족독립투쟁을 최선봉에서 이글어 주신 분 똘이장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고
민족독립과더물어서 임시정부를 당시 상황으로 보아
어려 웠던 환경에서 대한민국을 국민의 나라로
만든 분도 이동녕 선생이십니다.
앞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이나라 민주주의의 최선봉 투사이기도 합니다 -
작성자gogohee 작성시간 14.02.06 이승만이나 김구 등은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데 석오선생은 그렇지 못함을 느낍니다. 구국의 정신이 빛날 수 있도록 연리 후손들이 뜻을 함께 해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