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1일 정오,
당시 2천만 한국 민족이 방방곡곡에서 “민족자주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만 아직 제대로 된 이름이 붙여 지지 못한 형편인 체 있습니다. 지금도 ”3.1절“ 이라는 이름으로 97번째 다시 찾아오기는 합니다만 먹고 살기에 여념이 없는 이 가엾은 민족에게는 그냥 하루 노는 날로 여깁니다.
미루어 보건데 ‘7.17'은 헌법을 만든 날로 `제헌절`이라, '8.15'은 일제압제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빛을 보았다하여 `광복절`, '10. 3'을 단군이 처음 하늘을 열어 나라를 세웠다하여 `개천절`이라 부르지만 '3.1' 이 날만은 이름이 없이 그냥 "사밀쩔"이라 발음할 뿐 의미없이 노는 날로 기억 될 정도입니다.
첫째, 이날은 민주(民主)를 회복한 날입니다. 수천년 세습해온 전제군주, 임금과 그 측근들의 손아귀를 비로소 벗어나 우리 민족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습군주의 땅이 아니라 국민의 땅임도 선언했습니다. 특히 이날은 대한제국(大韓帝國)의 마지막 임금을 장사지내고자 방방 곡곡에서 구름처럼 모여드는 나라잃은 사람들에게 민족의 자각을 깨우치게 하고자 각계의 종교지도자들이 앞장서 계획된 거대한 푸로젝트였습니다. 이날에 계획된 이 운동은 단순히 군주제국의 마지막을 점 찍고자하는 행사이기보다 이 민족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용트림 이였습니다.
둘쩨. 중국의 세력으로부터 억압받던 사대(事大)의 수모에서 벗어나 우리가 자주독립국가가 되었습니다.(自主). 원효에 의하여 불교의 가장 금강정수인 대승사상을 깨우쳤고, 퇴계 이황에 의하여 유교의 극치사상인 성리학의 근본정수를 터득해 낸 민족의 자주적 긍지를 다시 살려 마침내 "민족 민주 자주독립사상"을 온 세계로 하여 금 깨우치게 하므로서 암흑의 지구를 밝히게 한 영광스러운 동방의 등불로서 자리매김 한 것입니다.
세째. 귀족들의 차별과 수탈로 부터 평등과 자유(自由)를 찾아 양반과 상민과 종, 그리고, 남녀차별이 없어졌습니다. 이는 민족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데 가장 필요한 원동력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네쩨. 일본제국주의의 유례없이 악랄하고도 모질던 마수로 부터 우리민족이 완전해방을 소원하던 독립(獨立)의 절규였습니다. 민족이 살아 있기에 이 삼천리강토나마 지키고 있고 부모와 형제와 동포가 있는 것이며 사람다운 삶이 있는 것임을 알려면 다시한번 살이 시리고 뼈가 저린 모진 경험을 또 거듭 반복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 자각운동은 이 지구상에서 우리 민족이 가장 먼저 깨우쳤을 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압제받던 민족에게 이 행복을 일깨워준 거룩한 행사였습니다.
이 행사로 말미암아 10억의 중국대륙이 비로소 움직여 신문화운동인 5.4운동이 일어났고, 3억의 인도민족이 300년압제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무저항정신의 태동이 시작되었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임을 명심합시다
이상의 독창적이고 민주적이며 전 인류적이고 보편적이면서도 인간에게 있어서는 가장 필수적인 자주와 자립과 자유 평등과 해방의 드높힌 기치는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것이 곧 세계적인 것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이번 97년째 민족자주독림을 맞는 우리는 한번 다시 모여 1919년 3월 정오에 시작한 만세운동보다도 더 큰 목소리로 만세를 불러 봅시다. 봄이 시작되자 세계는 자스민(모리화)혁명의 기치가 오릅니다. 이 범상치 않은 움직임을 주시하십시다.
인류만방에 고하는 만민평등의 당당한 고함은 “시인 타골”이 말한 그대로 곧 전세계 억압받던 민족의 앞길에 등불로 태어납니다. 조속한 시일내 민족의 숙원인 무궁화혁명도 기대해 볼 만한 기회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 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올해부터 또 “민족자주독립만세절”이라고 하면 이름이 길 까요?
2016. 3. 1. 노동도서관 이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