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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月 대보름 元宵節

작성자이관희|작성시간16.02.04|조회수92 목록 댓글 1

정월은 음력의 첫 달(元月)이고 옛 사람들은 밤을 ‘소(宵)’라고 불렀다.

그래서 정월 보름날을 바로 원소절이라 부른 것이다.

정월 보름은 1년 가운데 첫 번째 보름밤이고 또한 1년이 다시 시작되면서 대지에 봄기운이 무르녹는 밤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 날을 경축하기도 하고 새로운 봄이 이어지기를 축하하기도 한다.

원소절은 또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한다.


이날을 흔히 중국의 명절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중국과 가갑다기보다 우리도 중국과 같은 달력을 쓰며 달과 계절이 윌와같으므로 풍속에 있어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보는 정원보름달은 12달 중 가장 크고 아름답다.

어찌이날을 중국 것이라고누가말하던가?


원소절의 명절휴일의 기간과 명절 풍습은 역사의 발전에 따라 길어지고 발전되었다. 명절휴일의 날자를 보면 한나라 때는 하루였고 당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사흘이었으며 송나라 때에는 닷새까지 늘어났고 명나라 때에는 정월 초 여드렛날에 등을 켰다가 정월 열이레 밤에 등을 내리면서 열흘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또 설과 접하면서 낮에는 장이 열리는데 아주 활기차며 밤에는 꽃등(燃燈)을 밝혀 장관을 이룬다. 특히 정교하고 다채로운 등불은 설 기간 오락활동의 절정을 이룬다. 청나라 때에는 용춤, 사자춤, 파오한촨(跑旱船 , 두 사람이 배 타는 시늉을 하며 추는 춤), 차이가오차오(踩高蹺, 높은 나무 다리를 타는 춤), 니우양거(扭秧歌, 휘청휘청 걷는 춤) 등 갖가지 곡예[百戲] 둥 프로그램 들이 추가되었다. 다만 명절휴일은 나흘 혹은 닷새로 줄었다.

传说故事——元宵姑娘

전설 이야기——원소 아가씨

이 전설은 원소(元宵)를 먹게 된 습관과 연관이 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한무제[漢武帝]에게는 동방삭 [東方朔]이라는 총애하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선량하고 또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느 해 겨울, 며칠 동안 큰 눈이 내리자 동방삭은 무제에게 바칠 매화를 꺾으려고 어화원 [御花園]에 갔다. 그가 어화원 문을 막 들어섰을 때 눈물을 흘리며 우물에 투신자살하려고 하는 궁녀 한 명을 발견하였다. 동방삭은 황급히 나아가 그녀를 구하고 자살하려는 연유를 물었다. 알고 보니 ‘원소(元宵)’라고 부르는 이 궁녀는 집에 두 분의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었다. 궁에 들어온 후 그녀는 더는 집안 식구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고 매년 연말 연시가 되면 평소보다 식구들이 더 생각났다 그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동방삭은 그녀의 사정을 듣고서 깊은 동정심을 느꼈고 그녀에게 집안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하루는, 동방삭이 궁을 나와 장안(长安)(長安)의 거리에서 돗자리를 깔고 사람들에게 점을 봐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점을 봐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모든 사람들의 점괘는 ‘정월 16일 불이 몸을 태운다’라는 내용이었다. 삽시간에 장안은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사람들은 몇 번이고 재해를 막는 방법을 물었다. 이에 동방삭은 “정월 보름날 해가 질 즈음 화신군(火神君)이 붉은 옷을 입은 신녀를 인간세상에 내려 보내 방문하게 할 것인데, 그녀가 바로 명령을 받고 장안을 태우러 오는 사자요. 내가 불경의 게(偈)를 적어 당신들에게 줄 테니 지금 천자께 올리면 방법을 강구하실 것이오.”라고 하였다. 말이 끝나자 붉은 봉투를 한 장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백성들은 그 붉은 봉투를 바로 황궁에 보내 황제에게 올렸다.

한무제(漢武帝)가 그것을 받아보니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장안에 재앙이 생겨 황제의 대궐을 불사를 것이다. 보름날 하늘이 내린 불로 화염이 밤새도록 붉게 타오를 것이다.” 이를 본 한무제는 속으로 크게 놀라 지혜롭고 꾀가 많은 동방삭을 급히 불렀다. 동방삭은 짐짓 생각하는 척 하더니 “제가 듣기론 화신군은 탕위엔(汤圆)을 가장 즐겨 먹는다고 하옵니다. 궁녀 원소가 폐하께 늘 탕원을 만들어 올리지 않습니까? 보름날 밤에 원소를 시켜 탕위엔을 만들게 하십시오. 그리고 황제께서는 향을 살라 올리시고 영을 내려 도읍의 집집마다 탕원을 만들어 함께 화신군께 공양을 올리도록 하시옵소서. 그리고 신하와 백성들에게 함께 보름날 밤에 초롱을 걸도록 명하시고 온 도성이 폭죽을 터뜨리고 불꽃을 쏘게 하여 마치 온 성에 큰 불이 난 것 같게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옥황상제를 속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밖에 성 밖 백성들에게 통지하여 보름날 밤에 성에 들어와 등불구경을 하도록 하십시오. 사람들이 많이 섞여 있으면 재난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제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바로 명을 내려 동방삭의 계책대로 하도록 명하였다.


정월 대보름이 되자 장안성은 등롱이 환하게 걸리고 울긋불긋 채색단장을 했으며 구경꾼들이 구름처럼 모여 흥성흥성한 분위기로 넘쳤다. 궁녀 원소의 부모도 여동생을 데리고 성에 들어와 등불구경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원소’라는 글자가 써 있는 대궁의 등불을 보고는 놀라서 “원소! 원소!”라고 크게 소리쳤다. 원소가 그 외침 소리를 들었고 마침내 한 가족이 상봉할 수 있었다.

이처럼 열광적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장안성은 과연 평안 무사하였다. 한무제는 크게 기뻐하여 바로 영을 내려 이후 매년 정월 대보름에 모두 탕위엔을 만들어 화신군께 올리고 이번처럼 온 도성에 등을 걸고 불꽃을 터뜨리게 하였다. 원소가 만든 탕위엔이 가장 훌륭했기 때문에 이날을 또한 원소절(元宵节) 이라 부르게 되었다.

元宵节的传说——点彩灯

원소절의 전설——채색초롱을 밝히다


원소절(元宵節)은 중국의 전통 명절로 이미 2000여 년 전의 서한(西漢) 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원소절의 꽃등구경은 동한(東漢) 명제(明帝)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명제는 불교를 제창하였다. 명제는 불교에서 정월 보름날에 승려들이 부처의 사리를 볼 때 등을 밝혀 부처를 공경하는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정월 보름날의 밤이 되면 황궁과 절에 등을 밝혀 부처를 공경할 것을 명하였고 고관대작들과 서민들에게도 모두 등을 걸라고 명하였다. 그 후로부터 이러한 불교적인 의식의 명절이 점차 민간의 성대한 명절로 형성되었다. 이 명절은 궁에서 민간으로, 중원에서 전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거쳤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옛날 옛적에 사나운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아주 많아 사방에서 사람과 가축들을 해치고 다녔고 이에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맹수들을 공격하였다. 그러다 한 마리 신조(神鳥)가 피곤해 길을 잃어 인간세상으로 떨어졌고 그 사정을 모르는 사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천제(天帝)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크게 노해 곧 유시를 내렸다. 천제는 정월 15일에 인간 세상에 내려가 불을 질러 사람과 가축, 재산을 모두 다 불질러 없애 버리라고 신병들에게 명하였다. 마음씨 고운 천제의 딸은 차마 무고한 백성들이 해를 입는 것을 볼 수가 없어서 목숨을 걸고 몰래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이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마치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친듯 놀라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참이 지난 후 어떤 노인이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그가 말하길 ‘정월 14, 15, 16일 사흘 동안, 집집마다 모두 등을 걸고 형형색색 장식을 하며 폭죽을 터뜨리고 불꽃을 올리도록 하게. 이렇게 하면 천제는 아마 사람들이 모두 불타 죽는다고 생각할 게야.’라고 말했다.


이에 모두들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였고 준비에 나섰다. 정월 보름날 밤 천제가 인간세상을 내려다 보니 붉은 빛이 가득하고 소리가 하늘을 진동하고 있었다. 천제는 사흘 밤 내내 이러한 것을 보고 불을 크게 질러 화염이 일어난 걸로 생각하고 내심 크게 기뻐하였다. 이렇게 인간세상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 후로부터 해마다 정월 보름날이 되면 집집마다 모두 꽃등을 걸고 불꽃을 터뜨리게 되었다.


元宵节不可缺少的节目——猜灯谜

원소절에 빠질 수 없는 프로그램——차이덩미

차이덩미(猜燈謎, 시등미 : 등롱에 적힌 수수께끼를 맞추는 놀이)는 또 ‘다덩미(打燈謎, 타등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중국의 민족 풍격이 풍부한 독창적인 일종의 오락 형식으로 고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원소절의 특색 있는 활동이다.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이 되면 집집마다 채색초롱을 걸어 불을 밝힌다. 후에 재미를 위해 수수께끼를 종이에 적어 오색 찬란한 초롱에 붙이면 사람들은 그것을 맞춘다. 수수께끼 맞추기는 사람들의 지혜를 계발시켜줄 뿐만 아니라 또 명절분위기에 맞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적극 참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수께끼 맞추기는 점차 원소절의 빠질 수 없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차이덩미는 원소절 후에 생겨난 원소절 행사이다. 처음에는 수수께끼에서 발전된 것으로 춘추전국시대에 기원하였다. 시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수수께끼를[詩謎]를 등에 써 놓고 촛불이 등을 비출 때 마다 하나씩 하나씩 글자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맞추는 방식이다. 그래서 ‘덩미(燈謎)’라 불렀다. 지금도 원소절 때마다 각 지방에서는 모두 덩미를 맞추면서 올해도 기쁨이 가득하고 평안하게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수수께끼는 지혜를 계발시키고 흥미가 감돌기 때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과정에 사회 각층에서 크게 환영을 받았다.

元宵节习俗——点花灯

원소절 풍습——꽃 등 켜기

灯彩,民间也叫“花灯”。每逢春节、元宵节等喜庆的日子,中国的城市和乡村,家家户户都要挂灯笼。

채색등을 민간에서는 ‘꽃등(花燈 화덩)’이라고도 부른다. 매년 설과 원소절(대보름) 등 명절날이나 경축행사때면 중국의 도시와 농촌에서는 집집마다 등롱을 건다.

원소절 꽃등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 한 가지로 사물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형상등[形象燈]이 있는데 예컨대 용등[龍燈], 호등[虎燈], 토끼등[兔燈] 등이다. 또 민간 고사를 근거로 만든 활동등[活動燈]이 있는데 예컨대 견우직녀[牛郎織女], 24효[二十四孝] 등으로 충효절의[忠孝節義)]의 민족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각 종 꽃등의 제작 공예는 아주 정교한데 공장[工匠]의 지혜와 기예을 보여준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원소등절[元宵燈節]은 점점 더 성대해졌고 민족 특색도 점점 더 짙어졌으며, 등절[燈]의 휴일기간도 또한 점점 더 길어졌다. 당나라 때 등회는 보름날 전 후로 각각 하루씩 더해져 모두 사흘 이었고 송나라 때에는 정월 열엿새 후에 이틀을 더 보태 모두 닷새였으며 명나라 때에는 초 여드레부터 열여드레까지 모두 열흘이나 되었다.

舞狮子

사자 춤

舞狮子是中国优秀的民间艺术,每逢元宵佳节或集会庆典,民间都以狮舞前来助兴。这一习俗起源于三国时期,南北朝时开始流行,至今已有一千多年的历史。

사자춤[舞獅子]은 중국의 우수한 민간 예술로 매년 원소가절(元宵佳節) 혹은 각종 경축 행사 때 민간에서는 모두 사자춤을 식전행사로 추면서 흥을 돋군다. 이 풍속은 삼국시대에 생겨나 남북조시대 때 유행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미 천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人们相信狮子是吉祥瑞兽,舞狮能够带来好运,每逢节日和喜庆活动,都会舞狮助兴。

사람들은 사자를 길하고 상서로운 동물로 여기며 사자춤을 추면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었다. 하여 명절과 경축 행사때 사자춤을 추면서 흥을 돋구는 것이다.

舞狮子一般由三人完成,二人装扮成狮子,一人充当狮头,一人充当狮身和后脚,另一人当引狮人,舞法上又有文武之分,文舞表现狮子的温驯,有抖毛、打滚等动作,武狮表现狮子的凶猛,有腾跃、蹬高、滚彩球等动作。

사자춤은 보통 세 명으로 완성된다. 두 사람이 사자를 연기하는데 한 사람은 사자의 머리를 잡고 다른 한 사람이 사자의 몸통과 뒷다리를 맡는다. 다른 한 명은 바로 사자를 인도하는 사람이다. 사자춤에는 문무(文武)의 구분이 있는데, 문무(文舞)는 사자의 온순함을 털을 터는 모습과 구르는 동작 등을 통해 보여주고 무무(武狮)는 사자의 사나움을 힘차게 도약하는 동작 그리고 높은 곳에 오르며 채색 공을 가지고 노는 등의 동작을 통해 표현한다.

元宵节食俗——汤圆

원소절 음식——탕위엔


탕위엔(汤圆)은 중국의 대표적인 간식 가운데 하나로 역사가 아주 유구하다. 일설에 의하면 탕위엔의 기원은 송나라 때부터였다. 당시 각 지역마다 일종의 신기한 식품들이 나타났는데 곧 각종 과일소를 넣고 찹쌀가루를 덧입혀서 둥글게 만든 후 잘 익혀서 먹으면 달콤한 향기로움이 입맛에 맞고 정취가 넘쳐 흘렀다. 이러한 찹쌀 덩어리는 솥에 넣어 삶으면 뜨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해서 처음에는 이것을 ‘푸위엔즈 (浮元子)’ 라고 불렀다. 이후에 어떤 지역에서는 ‘푸위엔즈부원자’를 ‘원소(元宵)’라 개칭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남방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춘절 새벽에 온 집안 사람들이 모여 앉아 함께 탕위엔을 먹는 전통 풍습이 있다. 전해지는 말에 원소는 집안의 단란함과 하나됨을 상징하는데 원소를 먹는 것은 새해에 온 집안의 행복과 만사형통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演变到现在,其实元宵、汤团已经是两种食物。可以说是北方、南方之不同渊源所致。

현재에 이르러, 사실 원소와 탕투안(汤团)은 이미 두 가지 음식물이 되었다. 이는 북방과 남방의 서로 다른 연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징(北京)에서 만드는 원소는 소을 기초로 하여 만든다. 먼저 소에 들어 갈 재료를 균등하게 잘 반죽한 뒤 잘 펴서 큰 원 모양의 얇은 조각으로 만든다. 이것을 잘 말린 후에 다시 탁구공보다 작은 네모 모양으로 썬다. 완성된 원소는 찹쌀가루 층이 아주 얇고 표면은 마른 상태이며 이것을 솥에 넣어 삶으면 찹쌀가루층이 수분을 흡수하여 끈적해 진다.


남방의 탕투안(湯團)의 제작 방법은 북방과 완전히 달라 오히려 교자를 만드는 방법과 비슷한 면이 있다. 먼저 찹쌀 가루에 물을 부어 덩어리로 만든다. 다음으로 소을 만들 각종 원료를 균등하게 섞은 뒤 큰 그릇에 넣어둔다. 탕단 속의 수분 함유량은 원소보다 많은데 이것이 두 음식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이다. 탕투안을 싸는 과정도 또한 교자를 싸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밀 방망이가 필요 없을 뿐이다. 축축한 찹쌀가루는 점성(粘性)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손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데 조그만 덩어리를 떼어서 누른 다음 둥근 모양의 박편으로 만든다. 젓가락으로 소을 집어다 찹쌀 박편 위에다 올린 다음에 다시 두 손으로 돌린 후 잘 결합하여 탕투안을 만든다. 잘 만든 탕단은 표면이 매끄럽고 빛이 난다. 어떤 것은 한 쪽에 뾰족한 모양을 남겨두어 복숭아 모양으로 만들기도 한다. 탕투안의 껍질은 아주 많은 수분을 함유하고 있고 점성도 높기 때문에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현장에서 만들어 현장에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詩한수

青玉案元夕 (宋)辛弃疾

(송) 신기질

东风夜放花千树, 봄바람이 불어오는 밤 나무에 걸린 수많은 꽃,

更吹落,星如雨。끊임없이 소리 내며 떨어지는 불꽃은 유성우와 같아라.

宝马雕车香满路,좋은 말과 장식한 수레는 길가에 가득하고,

凤萧声动,퉁소소리가 울려 퍼진다.

玉壶光转,옥 주전자 같은 달빛이 흐르고

一夜鱼龙舞。 밤새도록 어룡무를 추누나.

蛾儿雪柳黄金缕, 아아•설류•황금루, 갖가지 장신구로 장식한 머리,

笑语盈盈暗香去。웃고 즐기면서 향을 뽐내며 가는 구나.

众里寻他千百度,인파속에서 그를 찾아 천백 번 헤매다,

蓦然回首,홀연히 고개 돌려 보니

那人却在灯火阑珊处。 그 사람은 등불 희미한 곳에 있었네.


<청옥안(青玉案)•원석(元夕)>은 남송(南宋)의 유명한 사인(詞人) 신기질(辛棄疾)의 작품으로 원소절의 화려하고 다채로우며 시끌벅적한 장면을 아주 과장스럽게 표현하면서 도리어 고독하고 담백하며 세속을 초월해 금과 비취장신구, 연지와 분과는 거리가 먼 다른 모습의 여인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이렇게 작자는 정계에서 뜻을 펴지 못한후 세속과 함께 더럽혀지길 원하지 않는 자신의 고독하고 고결한 품격을 작품에 기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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