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남해안 어디에는 “갓걸이”라는 이름의 고개가 있습니다.
상놈들만 모여 고기잡고 농사지어 열심히 일만 하면 먹고 사는 시시콜콜한 걱정따윈 하지 않고 지내는 마을과 양반들이 자리잡고 손끝 까닥 않고 공맹자만 읽으며 고픈 배를 끌어안고 체면 치례나 하려는 마을 사이 이 고개턱에는 고목나무가 한그루 서 있습니다.
양반님이 상놈들이 사는 마을에 아쉬운 부탁이나 하려고 가는 일 외에는 가야 할 일이 없는 터인데 갓 쓰고 도포입고 양반차림하고 거들먹거리면서 가 봤자 될 일은 커녕 멀쑥하니 뒤 돌아 오기가 십상인지라 양반님이 상놈마을에 넘어가 컬컬한 막걸리 한 사발이라도 목을 축일라면 갓이랑 도포따위는 이 고목나무에 걸어 놓고 가곤 했었습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간의 이데오르기를 두고 큰 상처를 입어가며 체험적으로 배운 민족이 이 지구상에는 오직 우리민족 밖엔 없다고 들 한답니다. 그러나 참담한 폐허 위에 놀라우리 만큼 발 빠른 경제개발을 발판으로 소망의 민주화사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비록 작은 땅덩이요 한때 약소민족으로 빌빌하던 처지였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강한 나라이며,용기와 지혜가 넘치는 민족으로 부상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는 스스로 도리켜 보더라도 놀랍고 대견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것걸이고개 양반처럼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중산층행세를 하고 싶어하는 최면술에 걸려 그 마음을 담은 심장들이 공중에 둥둥 떠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버릇은 이웃에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고약한 버릇을 본 뜬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어떤 재벌총수가 25평 아파트에 산다고 했더니 일본 국민들이 “나도 25평 아파트에 살고 있으므로 나 또한 재벌?”이라며 최면을 걸게 한 일본 경제 정치인들의 꾀를 그대로 수입한 것으로 봅니다. 오로지 보수지향의 일본정치는 전후 50년간 일사불란하게 일당독제로 이끌어 왔으며 이 비결을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이 다투어 흉내내고 우리 국민들 대다수 역시 일제라면 사죽을 못쓰니 조금도 의심 없이 받아 들여 지는 모양입니다.
번번히 선거때만 되면 대개 부동층표는 40%로 봅니다. 지난 선거때에도 그랬습니다.
소위 개혁의지가 함축된 신세대 표는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간 사이 이 투표율 60%에서 거의 결정적인 역활을 하는 것은 부동표가 한국정치를 죄지우지 해 왔습니다.
일종의 의리[義理]아니면 연고[緣故]따위 외에는 분간하기 어려운 엇비슷한 정치패들에게 투표직전까지 전혀 선택의 여지조차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방향을 잡지 못하는 부동표[浮動票]로서의 역활밖에 하지 못하는 대다수 자칭 중산층에 속하는 노동자표의 고민은 그야말로 선거라는 계절에 둥둥 떠다니는 나뭇잎과 다름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은 장차 유동적이며 불안을 가중시키는 부동[浮動]적 역활을 하는 계층으로 이용될 따름이며 당선된 그들로부터 번번히 배신감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변질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은 왜 선거철만 되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부동층으로서 겨우 자본주의를 지켜주는 보호막[保護膜]에 불과할 뿐 아무것도 아닌것이라는 것 쯤은 스스로 자리 매김을 분명히 해두었으면 합니다.
우리 국민의 한결 같은 타성은 스스로 중산층이라 자처하며 수십여년 정치체제의 둘러리로 길들여져 왔던 버릇은 하루 아침에 고칠 수 없을 것이 당연하다 생각됩니다만 몇 해전 고소득자5%를 제외한 모든 국민이 그야말로 거지가 되기 직전에 이르렀던 체험적인 사실,그 IMF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아직도 자칭 중산층의 재벌흉내는 뱁세의 황세흉내“와 흡사하여 소위 왕자병 공주병 같은 환상을 쫒는 “중산층병”에 걸려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주고 뺨맞는" 그러한 비열하고 천대받는 계층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이제 ‘갓걸이’고개에 양반으로 하여금 갓을 걸게 할 것인가?
아니면 자칭 중산층들이 갓을 걸게 될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그러는 사이 중산층이라는 어리삥빙한 양반들 계층은 사라질 것이다.
(1992)통영에서 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