遁甲한 원숭이
마음이 추(醜)한 자는 언제나 추잡(醜雜)한 짓을 하기 마련인가보다.
동물원에서나 볼상싶은 구경거리가 요즘 또 호도(狐島) 에서 눈에 뜨인다.
*호도(狐島) 죽은 여우처럼 늘어진 모습의 섬 = 일본 땅모양
이차대전이 끝난 일본땅은 흡사 미국식민지를 방불케 했으며 미국정부 역시 일본 열도를 미국에 예속시킬려는 계획을 일찍이 꾸몄었던 것도 전승국으로서 당연한 판단이다.
이 계획추진단원의 한사람은 "국화와 칼"의 저자 루드 베네딕트도 포함되었다. 천황을 격하하고 주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민주의식주입도 그 스케줄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일본이 점령했던 모든 땅은 일부 중국과 소련에 돌려지고 나머지 태평양상에 수없이 널려 있던 섬은 모두 미국에게로 돌아가고 말았으며 맥아더 군사령부는 "일본열도는 미국의 일부이며 장차 미국영토의 부속도서로써 병합, 진주만 피해의 일부라도 변상받아야 한다"라고 속으로 미리 계산해 두었던 것은 거의 상식수준이다.
그러자면 우선 조선반도를 절반으로 나눠 소련과 국경을 삼고 일본열도를 그 다음 방위선으로 획을 그을 심산이였는데, 이같은 속셈을 간파한 소련은 반도를 삼키려 한국동란을 일으킨 것도 그 한 역사적 사실로 나타났던 것이다.
왜소한 일본인들은 점점 더 왜소해지면서 미국군인들에게 아첨하고 그들에게 허리를 굽혀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걸하며 미군의 군표를 식민지 화폐로 이용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도 그당시 상황이 신문지상에서도 여실이 말 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봉건국가시대 때 우리나라에 하던 허리굽혀펴기 아첨을 고유한 예절로 비화시키면서 여자들은 정복자의 사타구니밑에서 요분질치고 사내들은 허리를 굽혀가며 전후 목숨붙여 살기에 죽는 시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그들이 천년을 넘게 겪어 온 굼주림의 역사반복에 바탕을 둔 것이다.
지금은 그것들이 미덕처럼 억지를 쓰지만 사실은 미국이 일본종족을 온순한 식민지 백성으로 길들이고자 허리를 굽히는 동작과 계집이 요분질칠때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면서 그런 행동을 더욱 더 권장하여 훈련시켰던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자본주의 국가로 키우기 위한 계획을 짜야만 했고, 그들이 미처 날뛰는 천황을 그대로 남겨 두어야만 민주의식(民主意識)을 깨우치지 못하도록 한 의도인 것이다.
수천년의 길들여진 동물적 습성을 벽안의 양인들이 가르켜준다해서 하루 아침에 고처 지지 않을 것이란 계산도 했었을 것이다. 더구나 바로 바다건너에 있는 소련과 중국공산당에 의하여 전후 일본이 사회주의로 전향하게 되면 미국의 군사적 방위선마저 무너지기 때문에 미국정부는 일본인 길들이기에 전력투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꼭두각시 천황을 심어 주어야 그들의 환상본능을 잠재울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이정도의 상식을 국화와 칼에서도 반영된 생각이다.
미국은 일본장사꾼에게 기술을 무상으로 가르쳐 주었고 하루속히 길들여진 원숭이가 되기를 바랬다.
한국전쟁의 발발은 이러한 미국의 계획을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고 일본의 경제는 자본주의 체제로 서서히 물들며 토실토실 살이찌고 있었다. 일본의 노동조합은 기업별로 조직되었으며 형식적인 춘투를 계기로 걁나업평화는 근근히 유지되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표면적으로는 탄압이 없는 가운데 내면적으로 사육되어졌으며 정경유착의 본보기인 특유한 일본식 정치형태를 만들어 놓았다.
사회당과 공산당도 역시 눈치빠르게 들러리 서는데 서슴치 않았다.
이 기형적인 일본의 기업과 정치딥단은 미국의 예속계획을 차질나게 하였지만 마침내 미련을 둬온 군국주의(軍國主義)로의 전환을 손쉽게 만든 결과를 낳았다. 어리광질하던 원숭이가 돌연 추한 고릴라로 둔갑질하고 있는 것이다.
고릴라에 대한 길들이기 방침은 미국이 알아서 할 것이지만 고약한 "고이즈미" 그야말로 원숭이같은 " 꾀주머니"가 아니던가?
지금 그들의 꼬봉들이 또 천방지축 떠들고 있다.
수년전 내가 벚꽃이 먼저 핀다는 일본 땅 나가사끼(長岐)에 갔었는데 볼만한 구경을 했다.
1945. 8. 9. 원자탄을 얻어 맞은 피해가 극심하다는 유적이 널려 있는 것은 매우 측은 하기까지 하였으나, 즐비해 놓은 장식물은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폭탄을 떨어 트린 상대국에 대한 욕설이 난무하였다.
나는 원자탄이 터졌다는 자리 한 복판에 우뚝 세워진 탑아래 가장 높은 계단에 섰다.
"만세!"
두손을 높히 들고 만세를 웨쳤다.
함께 구경온 친구들이 모여 섰기로 나는 이들에게 말하였다.
"여기에 원자탄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이자리에 없다"로 말문을 열었다.
" 대한민국만세! "
이렇게 큰 소리로 불렀다. 아마 그때 이 폭탄이 투하되지 않았고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나의 몸둥이는 여우세끼가 물고 다니다가 버려지고 지금쯤은 아마 만주벌판에 흩어진 해골이 되거나 태평양 외로운 섬에서 고기밥이 되었을 것이 뻔하다.
“대한민국만세! "누구든지 들으라고 더욱 더 우렁차게 불렀다.
이 원자탄공원을 구경 온 외국인도 있었는데 대개는 우리나라 관광객과 산책 나온 일본인들이다.
갑자기 우렁찬 만세삼창이 울려 퍼진 공원중앙에 서 있는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나 싶어 꾸역꾸역 모여 들고 있다.
여기에 나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헛기침을 몇 번 한 다음에 안내원이 들고 있는 마이크를 건네받아 들었다.
“지금 이 자리는 인류역사상 가장 저주받은 자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만 한국인인 나로서 생각하기에는 여기보다 더 위대한 역사적 교훈이 남아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창 대동아전쟁을 몰아가던 시기에 나는 열 살이 되던 해였답니다. 만일 이 자리에 이 원자폭탄이 떨어지지 않았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이겨야만 하는 일본의 처지로 보아 더 오랫동안 저항하면서 싸움을 했더라면 일본은 기세등등하게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 갔을 것이고 나 같은 어린것들마저도 징용이나 학병에 댕강 끌려갔을 것이 뻔한 것이 그 당시 절박한 현실이 였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가 무엇보다도 기분 좋은 자리임에는 틀림없어 만세를 불렀습니다. 여러분 여기 한국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 저주스럽고 처절했던 그 전쟁을 끝마쳐 준이 폭탄 한방이 아니였다 면 오늘 이런 기분 좋은 일을 맛 볼 수 있었겠습니까? 다같이 이런 의미를 생각한다면 한번 더 크게 만세를 부릅시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저마다 큰소리를 다하여 공원이 부서져도 좋다는 생각으로 만세를 웨첬다.
“대한 민국만세"
“둘이사네 2244 만세"
그중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호기를 다하여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었다. 마침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이 비참한 원자탄공원 한복판에서 목소리를 돋워 큰소리로 다시 만세를 불렀다.
참으로 모처럼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고 개선장군이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여 비행기에 올랐다.
언젠가 이들의 못난 생각들이 사꾸라꽃처럼 사그라들기를 기대하면서,
이제 U N에서도 일본인들이 사람으로 다시 돌아 오기 바라는 결의문까지 보낸 것으로 안다.
일본이 사람되기를 선택하는 일은 그네들 스스로할 일이기는 하다.
기우(杞憂)이기는 하지만, 현제 4개의 판이 만나는 곳에 살고 가장 지진 화산활동이 활발한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는 까닭에 언젠가 국토가 폭싹 내려 앉을 위험부담을 안고 살겠지만, 그렇다고 동해에 조그마한 섬 독도에 눈독을 드리는 것은 본래 너무 속이 좁다지만 좀 심하다 여겨진다.
말만 잘하면 대마도라도 그냥 갖도록 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원숭이들이 잠을 깨우치고 귀괴(鬼傀)한 속성에서 깨달았으면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꽃 한송이를 보낸다
자스민이라고도 부르지만 동양에서는 모리화(茉莉花)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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