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월드컵은 축구 경기 이상의 무엇이다. 그것은 인류가 주기적으로 치르는 거대한 신화이며,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현대의 제전이다. 사람들은 경기장에 모이고, 광장에 모이고, 텔레비전 앞에 모인다. 평소에는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이들이 하나의 공을 바라보며 같은 숨을 내쉰다. 월드컵은 인간이 얼마나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거울이다.
생각해 보면 공 하나는 참으로 이상한 물건이다. 둥글다는 것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강자에게도, 약자에게도 똑같이 굴러간다. 그래서 월드컵에는 늘 이변이 존재한다. 약소국이 강호를 꺾고, 무명의 선수가 영웅이 된다. 우리는 그 순간 운명조차 완전히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배운다.
월드컵이 아름다운 이유는 승리 때문만은 아니다. 패배가 있기 때문이다. 우승컵은 단 하나지만, 수많은 팀이 눈물 속에 대회를 떠난다. 그러나 그 눈물은 헛되지 않다. 인간은 승리로만 성장하지 않는다. 넘어지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 속에서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어쩌면 인간 존재의 비극과 숭고를 압축해 놓은 드라마인지도 모른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은 인생의 종소리와도 닮았다. 아무리 위대한 선수도 추가 시간을 무한히 받을 수는 없다. 언젠가는 그라운드를 떠나야 한다. 젊음도, 명성도, 환호도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달렸다는 사실은 남는다. 삶 또한 그렇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경기장에서 제한된 시간을 살아간다.
월드컵을 볼 때마다 나는 바벨탑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인간은 언어가 달라 서로 흩어졌지만, 월드컵이 열리는 한 달 동안만큼은 다시 하나의 언어를 얻는다. 그것은 골이 터질 때의 함성이고, 패배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며, 승리의 기쁨 속에 서로를 껴안는 몸짓이다. 말보다 먼저 통하는 언어가 거기 있다.
그래서 월드컵의 형이상학은 결국 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 공은 굴러가지만, 그 공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희망이다.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달리지만, 사실은 인간의 꿈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네 해를 기다리게 하는 힘도, 새벽잠을 잊게 하는 힘도, 낯선 나라의 승리에 박수를 치게 하는 힘도 모두 그 꿈에서 비롯된다.
월드컵은 끝난다. 우승팀의 환호도 언젠가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시 네 해를 기다린다. 인간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월드컵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삶이란 어쩌면 우승 자체가 아니라, 끝없이 공을 따라 달리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월드컵은 축구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 희망의 역사로 남는다.
체코와의 첫 경기로 대망의 북중미 월드컵이 바로 오늘 개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