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 / 윤형돈
― 탄환이 불발되었다
투표는 탄환과 닮았다. 총구에서 발사되는 탄환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총열에서 발사되는 의사의 탄환이다. 한 장의 투표용지에는 한 사람의 생각과 희망, 분노와 기대가 담긴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사람들은 조용히 기표소로 들어가 자신의 탄환을 장전한다. 그리고 미래라는 표적을 향해 한 표를 발사한다.
그런데 최근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바라보며 문득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오발탄(誤發彈).
원래 오발탄은 목표를 빗나간 탄환을 뜻한다. 때로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발사되기도 하고, 발사되었으나 엉뚱한 곳에 떨어지기도 한다. 전쟁터에서 오발탄은 위험하고 비극적이다. 민주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민의 의사를 담아야 할 투표가 절차적 혼선과 준비 부족으로 얼룩질 때, 사람들은 자신의 한 표가 과연 제대로 날아갔는지 의심하게 된다.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생겨난 불신이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신뢰 위에 세워진다. 설령 내가 지지한 후보가 낙선하더라도 절차가 공정했다고 믿는다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과정에 흠집이 생기면 패배한 사람은 물론 승리한 사람마저도 마음 한구석이 개운하지 않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오래전 영화 《오발탄》을 떠올렸다. 전쟁의 상처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가자!"라고 외치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던 시대의 초상이었다.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도 때로는 그런 질문 앞에 서 있는 듯하다. 우리는 과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정치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신뢰인데, 어느 순간 승리만 남고 신뢰는 사라진 것은 아닌가.
탄환은 목표에 명중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탄환은 단순한 명중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구나 공정하게 장전하고, 누구나 같은 조건에서 발사하며, 누구나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사격장의 최소한의 규칙이다.
투표용지 한 장은 종잇조각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국가에 보내는 편지이며, 미래를 향한 위임장이다. 그 편지가 전달되지 못하거나 훼손되었다는 의심이 생기는 순간 민주주의는 상처를 입는다.
다행히 민주주의는 한 번의 실수로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실수를 인정하고, 원인을 밝히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고쳐 나갈 때 더욱 단단해진다. 불발탄은 회수할 수 있지만, 신뢰를 잃은 사회는 복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나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단순한 행정 착오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점검하라는 경고음에 가깝다. 탄환은 발사되었다. 그러나 어떤 것은 불발되었고, 어떤 것은 목표를 벗어났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구를 향해 쏘았느냐가 아니라, 다시는 오발탄이 생기지 않도록 총열을 손질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총성이 아니라 신뢰로 완성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