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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고난을 인내하고 죄를 이기는 부활 소망(고린도전서 15:29~34)

작성자이원주|작성시간26.06.15|조회수5 목록 댓글 0

2026년 6 월 15 일  월요일

 

고난을 인내하고 죄를 이기는 부활 소망

 

오늘의 말씀(고린도전서 15:29~34)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죽은 자들을 위해 세례받는 행동이나 믿는 자들이 위험을 무릅쓰는 삶이 헛될 것이라고 전합니다.

부활이 있기에 바울은 자신이 날마다 죽는다고 단언합니다.

또 악한 친구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짓지 말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본문 해설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이유(15:29~32)

바울은 부활이 사실임을 다시 논증합니다. 

'죽은 자들을 위하여 받는 세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29절).

어떤 학자들은 그 세례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대신해 받는 세례'도, '죽은 사람을 위해 그의 시체에 주는 세례'도 아니라 '죽은 성도로 인해 받는 세례'를 의미 한다고 봅니다.

즉 믿음을 지키다가 죽은 사람을 보고 그 믿음의 삶에 감동했거나, 천국에서 그를 다시 만날 것을 소망하기에 받게 된 세례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미래의 약속일 뿐 아니라 현재의 위험 속에서도 인내하게 하는 소망입니다.

부활은 그 자체가 강력한 복음 증거입니다.

이러한 약속과 소망이 있기에 성도는 복음을 위해 자신을 드리며 어떤 위험도 견뎌냅니다.

 

- 바울이 위험을 무릅쓰고 인내하며 복음을 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부활 소망을 전하기 위해 나는 어떤 위험까지 감수해 보았나요?

 

깨어 의를 행할 이유(15:33~34)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마시자" (32절)라고 하며,

육체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 악행을 선택합니다.

부활은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이후에 영원한 삶이 있음을 상기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부활 소망을 가진 사람은 현재 삶에서 방종하지 않고, 선한 행실을 더럽히는 악한 자들을 거부합니다.

반면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은 성도의 선한 행실을 더럽힙니다.

성도는 깨어 의를 행하며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또 부활 소망을 굳게 붙잡고,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인도 하심에 깨어 있으며, 죄를 이기고 의를 선택해야 합니다.

부활 소망은 현실을 가치 있고 영광스럽게 만듭니다.

-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현실에서 어떤 선택을 하기 쉬울까요? 

- 부활 소망을 가진 나는 날마다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주님!

부활 능력도, 소망도 없는 세상 사람들처럼 저도 현실에 매몰되어 사는 것은 아닌지 돌 아봅니다.

죽음 너머에 영원한 삶이 있음을 기억하며 육체의 만족을 좇는 마음을 멈추게 하소서.

매일 죄에 대해 죽고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에세이

'지금' 누리는 영원한 생명

 

“다 왔어요?"

이 말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을 해 보지 않은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궁극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기다려야 할 것이 많다.

난민들은 거처가 생기기를 기다려야 한다.

굶주린 아이들은 먹을 것이 생기기를 기다려야 한다.

직장을 잃은 사람은 새로운 직장을 얻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늙어 가는 얼굴을 거울로 보는 사람은 자신이 아직 '저곳'하늘나라)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미 '저곳에 도착했다.

아니, '저곳'이 '이곳'으로 왔다.

탄식이 가득한 세상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들어왔다.

실망과 외로움, 썩음이 존재하는 한복판에서 결코 나를 버리지 않을 영원한 친구 되신 분이 내 곁으로 오셨다.

은혜의 선물로 우리는 그분의 사랑하는 친구가 되었다.

내게 임한 그리스도의 부활 권능을 아는 것 (빌 3:10), 이것이 곧 영원한 생명이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영원한 삶을 '지금' 살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일상에서든 고난 속에서든 주님의 부활 능력으로 '지금' 영원에 참여할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다. 

- 두란노

 

우리 몸의 부활은 죄와 죽음 그리고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을 뜻하기에 영생과 같은 의미다. 

- 글리슨 L. 아처

 

 

한절묵상(고린도전서 15장 31절)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제자도의 본질은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라는 고백을 통해, 제자의 삶이 자기 부인의 연속임을 드러냅니다.

죄의 유혹을 간과하면 죄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성도는 옛 자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죄와의 싸움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 성숙은 옛 자아의 모습이 점점 줄어 드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날마다 죽는 과정 없이는 생명이 자랄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날마다 자아를 못 박을 때, 주님 안에서 날마다 사는 인생이 됩니다.


출처 : 생명의 삶(두란노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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