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홍산문화란 무엇인가? 1부.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 복기대 교수

작성자늘새로움|작성시간26.06.23|조회수16 목록 댓글 0

추천영상 https://youtu.be/eb_Kw6KecRw?si=-U6EICPjtUv945W1

시간대별 주요 내용

 

  • 00:00새 창에서 열기 방송 오프닝 및 홍산문화 소개

    • 문명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만리장성 바깥 지역(요서 지역)에서 세계 4대 문명에 비견되는 고대 문명이 발견되었음을 알리며 대담을 시작합니다.

    • 초청 강사: 인하대학교 대학원 융합고고학과 복기대 교수

  • 01:24새 창에서 열기 복기대 교수의 연구 인생을 바꾼 '봉니(封泥)' 논문 비화

    • 석사과정 중이던 1993~1994년경 발굴 현장에서 임둔태수 봉니(공문서 비밀 진흙 봉인)가 출토되었던 경험을 소개합니다.

    • 다른 학자들이 논문을 쓰지 않자 본인이 직접 '봉니를 통해 본 사군의 위치'라는 논문을 작성하여 백산학보에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가 언론(MBC 뉴스)에 보도되면서 교육부의 '일본 역사 왜곡 대책반' 자문 등으로 이어져 고조선 및 동북아 고대사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 04:07새 창에서 열기 한사군(낙랑군)과 고구려 평양성의 실제 위치 추적

    • 사료를 추적한 결과, 중국 사료에는 고구려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성이 한반도 평양이 아니라 현재 중국 요녕성(의무려산 요양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 낙랑군이 한반도 평양에 있었다는 인식의 왜곡은 고대 지리지인 《수경주(水經注)》를 지은 역도원(酈道元)의 주석 오류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합니다.

  • 08:51새 창에서 열기 청동기 '화가장하층문화'에서 '홍산문화' 연구로의 확장

    • 본래 복기대 교수의 전공은 청동기 시대의 '화가장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였으나, 이 문화가 형성되는 전 단계에 존재했던 '홍산문화'와의 고고학적 연결고리를 발견하면서 본격적으로 홍산문화를 파고들게 되었습니다.

  • 10:45새 창에서 열기 홍산문화의 발생 시기와 광범위한 분포 지역

    • 홍산문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6,700년 전에 시작되어 약 5,000년 전에 붕괴할 때까지 약 1,700년간 지속된 거대 문화권입니다. (일반적으로 핵심 유물이 집중된 기원전 3500년~3000년 사이의 문화를 중심으로 다룹니다.)

    • 분포 지역은 중국 내몽골 동남부 지역과 요녕성 서부 지역에 걸쳐 있으며, 그 크기가 한반도 전체 면적에 맞먹을 정도로 광범위합니다.

  • 12:47새 창에서 열기 홍산문화 유물·유적의 독창성: 규격화와 정형화

    • 홍산문화(특히 기원전 3500년~3000년기)의 가장 큰 고고학적 특징은 유물과 유적이 극도로 규격화·정형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 출토되는 옥기(玉器)들은 추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좌우·전후 대칭의 정밀한 비율을 갖추고 있으며, 돌을 쌓아 만든 무덤(적석총) 역시 매우 정형화된 건축 양식을 보여줍니다.

  • 15:08새 창에서 열기 20세기 초, 일본 학자(도리이 류조)들의 초대 발굴 비화

    • 1900년대 초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蔵)를 비롯한 일본 학자들이 만주와 적봉(赤峰) 지역을 돌며 유물을 채집한 것이 시초입니다.

    • 현지 답사 당시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던 원주민들에게 "우리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 선조들의 문화를 찾으러 왔다"고 사칭하여 유적 정보를 알아낸 뒤 발굴을 진행했던 웃지 못할 현지 일화를 소개합니다.

    • 1930년대 교토대학교 연구팀이 홍산후(홍산 뒤편) 유적을 발굴하여 '채도(채색 토기)'를 찾아내면서 학계에 본격 보고되었고, 1950년대 중국 학자들에 의해 '홍산문화'라는 명칭이 정착되었습니다.

  • 23:26새 창에서 열기 중국 고고학계를 뒤흔든 3대 발견 (C자형 옥룡, 동산취 재단, 우하량 여신상)

    • 1980년대 '우특기'의 C자형 옥룡(玉龍) 출토: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용의 자손'이라 여기는 사상의 원류(기원지)가 홍산문화임이 밝혀지며 중국 학계의 관심이 폭발했습니다.

    • '동산취(東山嘴)' 유적 발굴: 중국 역사상 최초로 거대한 '제사용 재단' 유적이 발견되면서 문화의 단계가 문명 수준으로 격상되었습니다. 당시 중국 최고 고고학자 소병기(蘇秉琦) 선생이 연구를 진두지휘하게 됩니다.

    • '우하량(牛河梁)' 유적의 여신상 발견: 눈에 푸른 옥(玉)이 박힌 흙으로 만든 소조상이 발견되면서 '여신상'으로 승격되었고, 홍산문화가 북방 문화의 확고한 정점으로 자리매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 28:35새 창에서 열기 대담 마무리 및 인류학적 연구 과제

    • 홍산문화는 단순한 지역 문화를 넘어 현재 전 세계 중국 연구 학자들이 주목하는 핵심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단순 유물 발굴을 넘어 당시의 사회 구조와 인류학적 특징을 밝히는 융합 연구가 계속 진행 중임을 전하며 대담 1부를 마무리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