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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한국인 성씨의 뿌리 - '만석꾼'하면 떠오르는 경주 최씨

작성자늘새로움|작성시간26.06.12|조회수15 목록 댓글 0

추천영상 https://youtu.be/stJBq8QtroA?si=lxlh8rtaclaHvu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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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 03:30 | 경주 최씨의 기원과 소벌도리공

  • 사로국의 출범: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은 6촌 부족 사회였습니다. 그중 돌산 고허촌의 촌장이었던 소벌도리공이 경주 최씨의 원시조입니다.

  • 최(崔)씨 성의 시초: 신라 유리왕 9년(서기 32년), 6촌 장들에게 성씨를 하사할 때 소벌도리공의 가문이 '최(崔)'씨 성을 받으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03:31 ~ 09:15 | 실질적 시조 '최치원'과 '신라 3최'

  • 고운 최치원의 등장: 경주 최씨의 실질적인 1세조(시조)는 통일신라 말기의 천재 학자 최치원 선생입니다.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빈공과에 수석 급제하며 문명을 떨쳤습니다.

  • 토황소격문과 천부경: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적장을 문장으로 굴복시킨 '토황소격문'으로 당나라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 고유의 신교 정신이 담긴 '천부경'을 한문으로 번역해 후대에 전하는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 신라 3최의 활약: 당대 최고의 천재들인 최치원, 최승우, 최언위를 '신라 3최'라 부르며, 이들은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개국에 이르기까지 학문적·정치적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09:16 ~ 15:40 | 고려의 기틀을 닦은 '최승로'와 민족의 새벽을 연 '최제우'

  • 최승로의 시무 28조: 고려 성종 시기, 유교적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한 '시무 28조'를 올려 왕권을 견제하고 고려의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완성했습니다.

  • 수운 최제우와 동학: 조선 말기, 서구 열강의 침략과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경주 최씨 후손인 최제우가 '동학(東學)'을 창시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을 통해 민족의 주체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5:41 ~ 24:10 | 300년 부(富)의 역사, 경주 최부잣집의 '육훈(六訓)'

  • 최부잣집의 시작: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정무공 최진립 장군을 시작으로, 그의 손자 최국선 대에 이르러 만석꾼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 가문의 상생 철학, 육훈: 12대 300년 동안 만석꾼의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탐욕을 경계하고 이웃과 나누는 여섯 가지 가르침 덕분이었습니다.

    •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권력 투쟁의 화를 피함)

    • 재산은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지나친 탐욕 경계)

    •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지 않음)

    •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덕을 쌓고 정보를 얻음)

    •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사회적 책임 실천)

    • 시집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검소함 유지)

24:11 ~ 30:48 | 독립운동 지원과 전 재산 사회 환원 (아름다운 마무리)

  • 독립 자금 투쟁: 경주 최부잣집의 마지막 만석꾼인 최준 선생은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은밀하게 막대한 독립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 교육 사업으로 사회 환원: 해방 이후 "재물은 거름과 같아서 나누면 세상을 이롭게 하지만, 움켜쥐면 썩는다"는 신념에 따라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대구대학을 설립하는 데 가문의 전 재산을 기부하며 만석꾼의 역사를 아름답게 마무리했습니다.

  • 후손들의 구국 정신: 면암 최익현, 최용덕 장군, 최용신 선생 등 수많은 후손들이 한말 구국 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서며 경주 최씨의 고결한 가치관을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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