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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 05:40 | 일본 천태종의 뿌리 '사이초 대사'와 신라인의 터전
천태종의 창시자 사이초(最澄): 백제계 칸무 천황의 후원을 받아 당나라로 유학을 다녀온 고승으로, 신라인의 후예입니다 01:11새 창에서 열기. 귀국 후 해안경(평안경) 왕도로 가지 않고 규슈 가와라 지역의 향춘산에 '향춘신궁사'를 세워 신라 신(神)을 모셨습니다 01:35새 창에서 열기.
신라인들의 근거지 '오미(시가현)': 사이초와 그의 제자들이 활동한 주 무대는 히에이산 아래 오미 호수(비와코) 인근의 시가현 일대로, 고대 신라인들의 집단 정착지였습니다 02:33새 창에서 열기.
불교 성지 히에이산과 사카모토: 해발 848m의 히에이산은 고대 신라 불교의 핵심 성지입니다 03:14새 창에서 열기. 이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인 '오토모무라(대우촌)'는 현재 '사카모토'라고 불리며, 신라인들의 가장 알찬 집단 거주지이자 근거지였습니다 04:42새 창에서 열기.
신라인의 사찰 온조지(園城寺): 삼정사(미이데라)라고도 불리는 온조지는 명백한 신라인의 사찰입니다 05:54새 창에서 열기. 일본 불교미술사학자(와세다대 이토 슈무 교수 등)들도 오토모무라 일대를 신라인들의 주요 정착지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06:26새 창에서 열기.
05:41 ~ 11:41 | 일본 역사 왜곡의 실태와 신라계 고승들의 등장
역사 왜곡의 현장: 사이초 대사의 생가터에 세워진 '고쇼겐지(오쇼겐지)' 사찰의 그림판에는 사이초를 중국인(당나라 사람)으로 묘사하는 등 일본의 역사 왜곡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07:19새 창에서 열기.
신라계 고승들의 계보: 헤이안 시대에는 사이초의 뒤를 이어 신라계 고승들이 줄지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엔닌(圓仁)과 엔친(圓珍)입니다 08:44새 창에서 열기.
엔닌과 입당구법순례행기: 엔닌 대사는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의 활약상을 세계적으로 알린 명저 《입당구법순례행기》를 저술한 역사적 인물입니다 09:27새 창에서 열기.
엔친의 신라계 혈통 입증: 유력 족보 기록인 《신찬성씨록》(815년)에 따르면, 엔친 대사는 오토모무라(대우촌) 신라계 '와케(和気)' 가문 출신임이 명확히 입증됩니다 11:10새 창에서 열기. 일부 학자들이 시코쿠 출생설을 주장하나 이는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합니다 11:45새 창에서 열기.
11:42 ~ 17:59 | 서해 바다에서의 기적과 수호신 '신라묘진(新羅明神)'
서해 바다의 풍랑과 신의 구원: 엔닌과 엔친 두 고승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서해 바다에서 배가 뒤집힐 만한 거대한 풍랑을 만났습니다 13:32새 창에서 열기. 이때 '신라묘진'이라는 신(神)이 나타나 이들을 무사히 구원해주고 유학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13:46새 창에서 열기.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 건립: 엔친 대사는 고향으로 돌아와 히에이산 밑에 온조지(원성사)를 세우고, 신라묘진을 천태종의 수호신으로 깍듯이 모셨습니다 15:17새 창에서 열기. 온조지 동쪽 숲속에 위치한 '신라선신당' 법당 내부에는 78cm 높이의 신라묘진 신상이 비장되어 전해 내려옵니다 15:48새 창에서 열기. 이 신상은 머리에 조선 시대 양반들이 쓰던 세모꼴 삿갓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17:01새 창에서 열기.
18:00 ~ 22:23 | 해상왕 장보고의 전폭적인 유학 지원
수진 천황과의 연결: 일본 학계(교토박물관 가케야마 박사 등) 연구에 따르면 엔닌 대사는 신라계 천황인 수진 천황 가문과 연결되는 명문가 출신으로 밝혀졌습니다 18:26새 창에서 열기.
장보고의 적산법화원: 엔닌 대사가 838년 당나라 양자강 하구에 도착했을 때 당나라 관원들의 방해로 고립되었으나, 신라인 승려이자 통역관인 '연수' 스님과 해상왕 장보고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19:30새 창에서 열기. 산동반도 적산에 장보고가 세운 '적산승원(적산법화원)'에 머물며 신라방 사회의 극진한 대접과 보호 속에 무사히 불법 공부를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19:47새 창에서 열기.
22:24 ~ 27:48 | 일본 최고 권력가 '겐지(源氏) 가문'의 신라묘진 숭배
지배 가문의 수호신: 10세기부터 일본의 실질적 지배 세력이었던 무가(武家) '겐지 가문' 역시 신라묘진을 가문의 수호신으로 극진히 받들었습니다 22:47새 창에서 열기.
신라사부로(新羅三郎)의 탄생: 겐지 가문의 전설적인 명장 미나모토노 요시미쓰(源義光)는 20대 시절 오토모무라의 신라선신당을 찾아와 땅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습니다 23:42새 창에서 열기. 그는 신라묘진 신주 앞에서 성인식(관례)을 치른 후, 자신의 이름을 '신라사부로 요시미쓰'라고 창씨하여 평생을 사용했습니다 24:15새 창에서 열기.
명백한 신라공(新羅公)의 후손: 신라선신당 이웃 숲속에는 신라사부로의 묘지와 비석이 남아있습니다 25:04새 창에서 열기. 1879년 그의 후손인 다이묘 사다케 요시타카가 세운 '신라공 묘비' 비문에는 조상인 신라사부로 요시미쓰를 분명하게 '신라공(新羅公)'으로 추존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5:43새 창에서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