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에는 뛰어난 건축가와 조각가들이 많았었다.
아테네 화가 카르미데스의 아들인 페이디아스도 그중 한 사람이다.
기원전 490년경에 태어난 그는 그리스 조각의 고전기를 대표하는
거장으로서, 그가 조각한 것이라고 입증할 만한 작품은 없지만
파르테논 신전에 장식된 조각들을 통해서 그 작풍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책에서는 아테네의 파르테노스상(象)과 올림피아의
제우스상(象)은 그가 조각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우스상이 있는 올림피아는 그리스의 펠레포네소스반도 북서쪽
앨리스 지방에 있는 제우스의 신역(神域)으로서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로 예부터 알려져 있다.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곳 올림피아는 종교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처음 그리스인들은 땅의 신 크로노스와 여신 헤라를 숭배
했지만 후에는 제우스신을 숭배하게 되어서 기원전 457년에
우뢰의 신 제우스 신전을 만들었고 그 안에 페이디아스가 만든
제우스상을 안치하였다. 대지 위에 우뚝 세워진 신전에는 양옆에
열세개씩,양끝에 여섯 개씩 장엄하고 무거운 도리아식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완만하게 기울어진 지붕이 덮여있다. 이 신전의
한가운데에 있는 제우스상은 높이가 90cm, 폭이 6.6m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12m정도 되는 상은 거의 천장에 닿고 있다.
제우스상은 보석과 흑단(黑檀), 상아를 박아 장식한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금으로 된 발디딤대에 올려져 있는
양다리는 거의 예배자의 눈높이와 일치하는 위치에 있다.
오른손으로는 금과 상아로 만든 승리의 여신 니케상(象)을
떠받치고 있으며 왼손은 황금을 박아 장식한 지팡이를 쥐고 있다.
지팡이 위에는 매가 앉아있다. 상아로 만들어진 어깨에는 꽃과
동물이 새겨진 황금의 아름다운 망토가 걸쳐져 있다.
어떤 고대인은 제우스상을 보고 다음과 같은 감상을 토로했다고 한다.
'무거운 짐을 진 사람도, 불행과 비극에서 헤어 나지 못하는 사람도
만약 우뚝 서 있는 제우스상을 보게 된다면 고통과 절망을 잊어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올림피아라 하면 누구든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를
생각하게 된다.전설에는 헤라클레스가 효시였다고 한다.
제1회 대회는 기원전 776년에 벌어졌고 기원후 217년까지는
4년마다 개최되었다.
처음에는 지방행사에 불과 했지만 나주에는 그리스인의 행사가 되었다.
이 경기는 그리스가 지배권을 잃은 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지만 394년에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경기금지
칙령을 내렸고 426년에는 이교의 신전파괴령이 내려짐으로써 제우스
신역은 파괴되었다. 더욱이 522년과 551년의 지진으로 크로노스
언덕이 허물어졌고 그라데오스 하천의 범람으로 신역은 3~5미터
아래 모래층으로 매몰되어 버리고 말았다.
후에 그리스가 독립한 1829년에 프랑스인이 제우스 신전이 있던
자리를 발굴하기 시작하여 메도프(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기둥,지붕 등의 파편을 발견하였다.
1875~1881년에는 독일 정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되어
올림피아의 전체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제우스상이 있던
곳도 거의 드러나게 되었다.
기독교사상이 들어오기 이전에 이 지역의 종교는 미트라(Mitra)신앙이었다. 즉 태양신을 모시는 종교였다. 그들의 신전이 파괴되기 이전 에는 이와같이 웅장했다. 지금은 교회가 웅장하지만 개벽후에는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다. 왜! 지축정립되기 때문이다. 살길이 중요하다.
비록 비열할지라도 살길을 알아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