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비 , 고속버스터미널 승강장
이슬비가 내린다
마치 하늘도 알고 있다는 듯
오늘의 작별이
예전의 작별과는 다르다는 것을.
버스터미널 처마 끝에서
우리는 말없이 서 있었다.
수십 년을 건너온 우정이
밤안개 처럼 어깨 위에 내려앉고
친구야,
젊은 날 우리는 애국심 열정
내일이 영원히 올 것처럼 살았지.
노가리 소주 한 잔에 세상을 논했고
가난한 주머니로도
웃음만은 넉넉했다.
그런데 어느새
세월은 우리 머리에 눈처럼 내려
검은 머리를 하얗게 만들고,
멋진 계급장 푸른제복에는
세월의 그림자가 남겨졌네.
버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자꾸만
쓸데없는 이야기만 꺼냈다.
아픈 얘기는 하지 말자고,
슬픈 얘기는 하지 말자고.
너도 알았겠지.
그 말들이 모두
울음을 숨기기 위한 우산이었다는 것을.
"다음에 또 보자."
우리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빗속을 바라보는 눈빛은
다음이라는 말이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알고 있지.
친구야,
우리는 마지막 여행이라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네 걸음에서 들었다.
바람 속에서 들었고
젖은 눈동자 속에서 들었다.
버스가 천천히 떠나고
붉은 후미등이 빗물에 번져
한 송이 꽃처럼 흔들릴 때,
나는 손을 흔들었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이나
정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사람들은 떠나는 버스를 보았지만
나는 지나가는 한 시대를 보았다.
내 청춘의 한 장면이
빗속 도로 저편 산자락 터널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친구야,
우리 함께한 날들은
너무 아픈 힘든 추억이 아니라
너무 바빴던 벅찬 고마운 생애였다.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오늘의 이 비도
그때는 꽃비가 되어 내리겠지.
그래서 나는 슬퍼하지않고 울지 않으려 한다.
다만
비 오는 버스터미널에서
멀어지는 버스안에서
가슴속으로만 말한다.
"잘 가라, 친구야.
내 삶의 가장 따뜻한 계절 중 하나였던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