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The Cambodia Daily 2015-6-20 (번역) 크메르의 세계
[종합] 캄보디아, 사망한 찌어 심 상원의장 국장(國葬) 엄수
Thousands Bid Farewell to Chea 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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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iv Channa / The Cambodia Daily)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이 다비용 점화 토치를 들이대자, 유족 대표인 사켕 내무부장관이 촛불을 들어 불을 붙이고 있다. |
기사작성 : Khy Sovuthy 및 Matt Blomberg
사망한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 당의장(=총재) 찌어 심(Chea Sim) 상원의장이 금요일(6.19) 반나절에 걸친 장례식을 거쳐 영면에 들었다. 그의 장례식은 프놈펜(Phnom Penh)의 '왓 보떰'(Wat Botum) 사원 앞 공원에 설치된 다비식장에서 진행됐고, 화장용으로 설치된 탑에 안치된 그의 관에 불이 당겨지면서 절정에 달했다.
'노로돔 대로'(Norodom Boulevard) 양편에는 오전 7시부터 수천명의 추모객들이 나와 운구 행렬을 맞이했다. 고(故) 찌어 심 상원의장의 운구 행렬은 쩜까몬(Chamkar Mon) 구의 자택을 출발해, CPP 중앙당사와 상원의사당을 거친 후,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상원 의원들이 도열해서 기다리던 '독립기념탑'으로 향했다.
오랜 기간 상원의장으로 으찌어 심 상원의장은 지난 6월8일(월) 향년 82세로 사망했다. 운구행렬의 선두에는 3개의 머리를 지닌 나가(naga)로 장식된 운구 차량 위에 화려한 황금색 관이 안치돼 있었고, 흰옷을 입은 왕궁 근위대가 호위했다.
군인들을 비롯한 조직화된(=동원된) 추모 군중들이 다비식용 탑에 도착해 대열을 정돈하자, 자발적으로 참석한 이들 대부분은 흩어졌고, 훈센(Hun Sen) 총리가 자신의 오랜 정치적 동반자를 위해 찬사를 늘어놓는 연서을 하는 동안에는 불과 수백명의 청중들만 남아 있었다. 훈센 총리는 다비용 불탑 앞에 서서 귀빈들이 착석해 있는 천막을 향해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섬다잇(Samdech [대공, 大公] = 찌어 심의 왕실하사 칭호)의 육신은 한순간이면 우리 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 종교(=불교), 국왕, 사회, 국민을 위해 섬다잇께서 보여주신 선행, 위엄, 투쟁, 인내, 열정, 진지함, 이상, 위대한 업적들은 영원히 남을 것이고, 결코 육신과 함께 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고귀한 덕목들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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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iv Channa / The Cambodia Daily) 찌어 심 상원의장의 운구 행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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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iv Channa / The Cambodia Daily) 장례식에 참석한 훈센 총리가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훈센과 찌어 심은 1979년 베트남이 수립시킨 꼭두각시 정권의 출범과정에서 정치적 동지였고, 이후 집권 권력 내에서 라이벌 계파의 리더로서 경쟁하기도 했지만, 훈센이 그 최종적인 승자가 됐다. [크세] |
내무부 장관이자 찌어 심 상원의장의 매제이기도 한 사켕(Sar Kheng) 부총리는 장례식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유족들과 여타 귀빈들을 이끌고 불길을 점화하기 전에 정성들여 설치한 탑 주변을 돌았다. 그 뒤에는 께 낌 연(Ke Kim Yan) 부총리와 유임 처일 리(Yim Chhay Ly) 부총리, 쭈온 소봔(Chuon Sovann) 프놈펜 경찰청장, 찌어 심 상원의장의 경호실장이었던 유임 리엉(Yim Leang) 장군이 숙연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고, 캄보디아 전통 대나무 플룻(클로이, khloy)의 연주가 이어졌다.
이후 훈센 총리와 그 부인 분 라니(Bun Rany) 여사가 고인이 생전에 수여받은 훈장들 왼쪽에 화환을 헌화하는 또 다른 상징적 의례가 이어졌다. 이어서 서이 춤(Say Chhum) 신임 상원의장과 헹 삼린(Heng Samrin) 국회의장이 훈장들 오른쪽에 헌화했고, 여기에는 황금빛 장식이 달린 흰샌 관복을 입은 모습의 찌어 심 상원의장의 영정이 설치돼 있었다.
이후 사켕 부총리가 짧은 연설을 했다. 그는 조문객들 및 찌어 심 상원의장이 지난 2000년 10월 심장마비 이후 오랜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곁을 지켜준 측근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찌어 심 섬다잇께서 투병하는 동안 치료를 해주신 베트남, 프랑스, 싱가포르에서 온 의료진과 캄보디아 의료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 국왕과 노로돔 모니니엇(Norodom Monineath) 왕대비는 대부분 흰색 의상을 차려입은 조문객들 사이에 검은 옷을 입고 참석했다. 국왕이 발치를 들어 긴 토치를 내밀자 사켕 부총리가 촛불을 들고 그 끝에 점화를 했다. 국왕이 불붙은 토치를 퓨즈에 갖다 대자, 관을 향해 섬광이 날아갔고, 이후 화장이 시작되면서 연기가 올라왔다. 오전 11시가 되기 직전 흰 연기는 사라졌고, 시종들이 불길에 바람을 넣기 시작하자 관에서는 검은 연기가 올라왔다. 프놈펜시청의 롱 디만쩨(Long Dimanche) 대변인은 장례식이 끝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故)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전 국왕의 장례식과 이번 장례식을 비교하긴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이번 장례식 규모가 전 국왕의 장례식에 이어 2번째일 것으로 생각된다. 대단한 존경심을 담아 장례식을 준비했다. |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찌어 심 상원의장이 사망한 지 몇 시간 후에 성명서를 발표하여, 그가 과거 살인적인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에서 담당했던 역할을 조명하고, 그럼에도 법의 심판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롱 디만쩨 대변인은 회견에서 찌어 심 상원의장의 입장을 변호했다. HRW의 브래드 애덤스(Brad Adams) 아시아 지부장은 성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찌어 심이 크메르루주 이후의 캄보디아 정권에서 조사도 받지 않고, 체포나 기소되지 않은 채 수십년간 지도자로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사법정의에 대한 조롱이다. |
이에 대해 프놈펜시청은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공무원, 프놈펜시청, 프놈펜 시민들은 이러한 주장을 수용할 수 없으며, 고인은 크메르루주 정권의 피해자였다. |
금요일 장례식이 진행되는 한켠에서는, 젊은이 단체가 찌어 심 상원의장에게 마지막 조문을 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고인이 크메르루주 정권에 참여했던 일보다는 그 정권을 전복시키는 데 담당한 역할을 기억하길 선호했다. 보이스카웃 멤버인 속 리(Sok Ly, 15세) 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분이 돌아가셔서 정말 유감이다. 그는 좋은 지도자였고, 훈센 섬다잇과 함께 국가에 이바지했다. 그는 중립성을 지켰던 단순한 지도자였고, 어느 누구도 착취한 적이 없다. |
'캄보디아 적십자사'(CRC)의 자원봉사자 까 오은 뻬쩻(Ka Oeun Pecheta, 17세) 양은 찌어 심 상원의장을 "폴 포트(Pol Pot) 정권에서 캄보디아를 구한 지성적인 지도자"로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다음 세대들이 그의 모범을 따랐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는 국가를 발전시킨 지성인이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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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캄보디아의 집권당은 전국에서 거의 배타적인 선전활동을 벌여왔다. 집권당 권력의 주축 3인방인 찌어 심 상원의장(당서열 1위, 당의장), 훈센 총리(당서열 2위, 당 부의장), 헹 삼린 국회의장(당 서열 3위: 명예 당의장)의 사진이 실린 입간판은 캄보디아의 시골마을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3인 체제는 사실상 훈센 총리의 권력 독점 체체로 변화돼 왔지만, 찌어 심의 사망으로 이제 그 형식적 완성까지 이루게 됐다. 이 수많은 집권당 입간판들의 모습도 앞으로는 변모하게 될 것이고,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크세] [사진출처: 블로그 'BAR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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