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조선일보 2015-5-21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탁신 "泰國에 멋진 민주주의 만들고 싶다"
정지섭 기자
[7년째 고국 떠나 망명생활… ALC 인터뷰서 침묵 깨]
태국에서만 '민주주의 후퇴' 아쉬워 現정부 법·원칙있다면 만나서 대화 가능 잉락 지지 '레드셔츠'에 비폭력 부탁한다
군부에 축출돼 7년째 망명 생활 중인 탁신 친나왓(66) 전 태국 총리가 군부 쿠데타 1년을 맞은 고국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참석차 서울에 머물던 그는 20일 본지 인터뷰에서 작년 5월 여동생 잉락 친나왓(48) 당시 총리를 물러나게 하고 정권을 잡은 육군참모총장 출신 프라윳 찬오차 현 총리와 정부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쿠데타 발생 뒤 1년여 고국 상황에 대해 침묵했던 그가 어렵게 입을 연 것이다.
기업인 출신으로 2001년 총선에서 압승하며 집권한 탁신 총리는 포퓰리즘 논란 속에서도 서민층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군부·보수 세력과 대립해 왔다. 그러나 미국 방문 중 군부의 기습 쿠데타로 물러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형사 피고인 신분으로 7년째 망명 생활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지층이 두터워 향후 태국 정세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잉락 총리는 2011년 선거에 이기며 집권했지만 작년 5월 오빠 탁신처럼 쿠데타로 물러나 국가 재정에 손실을 입힌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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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탁신은 이 인터뷰에서 "팔레스 서클"(palace circle: 왕실 및 그 주변)을 직접 언급하면서 왕실이 2014년 5월 쿠데타의 배후임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는 태국의 언론환경에서는 '왕실모독 처벌법'에 저촉되는 매우 민감한 내용이 된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TV조선'이 방송하고 '조선일보'의 해당 기사 인터넷판이 기사 중에 삽입한 동영상 원본은 현재 '유튜브'에서 비공개로 전환된 상태이다. 또한 이 기사에서 보듯이, '조선일보'의 활자화된 기사에서도 해당 내용은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동영상은 이미 여러 곳으로 유포돼 나갔다. 여기에 삽입시킨 동영상은 레드셔츠 공식계정 중 하나가 업로드한 것이다. [크메르의 세계] |
탁신 전 총리는 "태국의 민주주의를 살려야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군부가 집권한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나.
"세계 곳곳에서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마당에 태국에서만 정치가 후퇴하고 있는 모습이 아쉽다. 태국 민주주의의 DNA를 복제하고 싶다. 그래서 '탁신연구실'에 가지고 들어가 훨씬 강력하고 멋진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고 싶다."
―잉락 총리와는 오누이 지간이다. 1년 전 쿠데타 당시 나눈 얘기가 있나.
"난 두바이에 있었고 전화로 통화했다. '오빠도 똑같은 일을 당했단다'고 위로했다. 잉락은 자기 자신보다 국민부터 걱정했다. '군부가 무서운 게 아니라 국민이 진실을 알지 못할까 두렵다'고 얘기했다. 18살 나이 터울 때문에 동생이라기보다는 자식처럼 애틋하다. 어머니가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면서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고 맡겼던 동생이다."
―현 정부는 헌법 개정 작업 중이다.
"소수 정당들의 난립을 유도해 특정 정파가 힘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려고 한다."
―계엄령은 지난달 해제됐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대체 조항을 만들었다.
"정부는 인권 탄압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 말을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태국인들은 성품이 부드러워 높은 위치에 있는 권력자가 말하면 강하게 반발하지 못하곤 한다.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새로운 헌법이 제정돼야 한다."
―쿠데타 이후에도 레드셔츠(탁신 지지 세력)와 옐로셔츠(탁신 반대 세력) 간 반목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국가개혁위원회에서도 국민 화합을 위해 프라윳 총리와 탁신 전 총리가 만나야 한다고 권고했을 정도다.
"총과 법이 만나서 쉽게 해결될 수 있겠나. 꼬인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면 똑같이 법과 원칙으로 일을 풀어나갈 의지가 현 정부에 있어야 한다."
―군부는 헌법 개정과 총선을 거쳐 민정 이양 절차를 밟겠다고 하지만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 명쾌하지가 않다. 프라윳 총리와 군부 세력에 할 말이 있다면.
"프라윳 총리에게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민생 문제는 민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복잡하고 세심한 사안일수록 민주적 절차를 통해 현안을 풀어나가야 한다. 군이 잘못됐다고 하려는 게 아니다. 일반적인 국민이 지향하는 것과 군이 지향하는 것이 다르다. 국민을 마치 자신이 거느린 휘하 장병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잉락 총리는 재임 중 무리한 정부 쌀 저가 수매 정책으로 5180억바트(약 16조원)의 재정 손실을 끼친 혐의와 부정부패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쌀 수매 정책은 당신 재임 때 시작됐다. 기소가 옳다고 보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든 정책이다. 이런 취지의 정책을 펼친 총리가 기소된 것은 세계 최초의 일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서 이익이 발생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모순이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돕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정부의 쌀 수매는 다른 나라에도 있다."
―그럼에도 표심을 의식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런 정책의 혜택을 얻어 돈을 쓸 수 있게 된다. 일방적으로 돈이 나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새 수익이 창출된다는 얘기다. 양쪽 주머니가 있는데 오른쪽에서는 돈이 계속 들어오고 왼쪽 주머니에서는 돈이 나가기만 한다. 그런데 오른쪽 주머니를 안 보고 왼쪽만 보면서 돈이 줄줄 빠져나가고 있다고 보면 안 된다. 쌀 수매 정책에 대한 비판도 결국 같은 맥락 아닌가. 태국은 전 세계 쌀 수출 국가 1위인데도 농민을 위한 정책은 없었다."
―탁신·잉락 정권은 무너졌지만 여전히 정계 복귀를 바라는 지지 세력(레드셔츠)이 있다. 이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목소리가 힘을 얻을 때 내면 된다. 다만 폭력은 안 된다."
―쿠데타 직후 아들이 SNS에 '태국인이여 준비되었는가'라는 글을 올렸다.
"알고 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순간적으로 판단을 하지 못해서 화가 났던 것 같다. 아들을 몹시 꾸짖었다. '공인으로서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을 무책임하게 동요시켜선 안 된다'고 훈계했다."
* '크메르의 세계' 추가 해설
이 인터뷰는 국제 언론인들과 태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태국 언론 중에는 보기 드물게 신뢰할만한 보도철학을 지닌 <카오솟 영문판>(Khaosod English) 역시 이 인터뷰 동영상에 관해 소개했다. (참조☞ 카오솟 영문판 5월22일자 보도) 하지만 '왕실' 관련 내용은 직접 언급을 못했는데, 기사 말미에 "태국의 왕실모독 처벌법에 맞춰 기사내용을 편집했습니다"라는 안내문을 첨부해, 독자들로 하여금 발언의 강도를 유추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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